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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25회)

 

들리세요? (25회)

 

 

1

 

3월이 시작됐습니다.

학교를 다니시는 분들은 새학년이 시작됐고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본격적인 봄 농사 준비를 해야 하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는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고

꽃들은 꽃망울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고

부지런한 분들은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시는 분들도 조금은 몸과 마음이 산듯해질 것 같은

그런 3월이 시작됐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황사 속에 시작한 3월이

어떤 분들에게는 회색빛으로만 다가오기도 하겠지만...

 

저에게 올 3월은 조금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저를 무겁게 짓눌렀던 것들을 털어버리고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두 분이 지어오시는 농사를 거들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해가 갈수록 힘에 부쳐 하시는 부모님은 저의 귀향을 매우 반가워하십니다.

생각만 하면 항상 미소가 지어지는 귀여운 조카들도 저를 기다리고 있고요.

많이 망가져버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마음 한 편으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새어나옵니다.

여러 가지로 보이지 않게 부딪치는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을런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지역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런지...

내 몸과 마음이 새로운 환경에서 널뛰기를 하지는 않을런지...

이미 한 차례 귀향 생활에 실패했던 경험은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립니다.

 

뭐, 그렇더라고 겨울 굴속에서 나와 봄 들판으로 나가야겠지요.

아자! 꽃 피는 3월이 시작됐습니다.

 

백지영의 ‘dash’ 듣겠습니다.

 

 

벌써 며칠째야 애만 태우는게

날 사랑한단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용기가 없는 넌 다가오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멀리서 바라볼 거야

 

이젠 내가 너보다 먼저 다가갈 거야

널 사랑한다 그 말을 내가 먼저 하고 말거야

서로가 사랑인 걸 알고 있는데

왜 이러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정말 답답해

 

이런 얘길 내가 먼저 한다면

언제나 남자들은 부담스러워 하지

너 역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넌 사랑 받을 자격도 없는 거니까

 

이제 와서 이런 얘길 하기가

조금은 껄끄럽고 어색하긴 하지만

사랑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없어

언제까지나 이럴 순 없잖아

 

누가 먼저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짧은 생을 사랑 하나 만으로 산다면

 

 

너를 사랑한 후 내가 달라진 건

외롭던 나의 시간이 채워 준 너의 생각들

불처럼 타오른 열정은 아니지만

깨지지 않는 사랑의 믿음이 생겨난 거야

 

이젠 내가 너보다 먼저 다가갈 거야

널 사랑한다 그 말을 내가 먼저 하고 말거야

서로가 사랑인 걸 알고 있는데

왜 이러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정말 답답해

 

이런 얘길 내가 먼저 한다면

언제나 남자들은 부담스러워 하지

너 역시 그렇다면 어쩔수 없어

넌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거니까

 

 

2

 

안녕, 오래간만.

사연 자주 보내려고 했는데 잘 안되네, 미안.

오늘은 트리케라톱스 아저씨 사연을 대신 보내는 거야.

자신이 직접 보내면 될 걸, 글재주가 없다고 내가 대신 해달래.

뭐, 나도 글재주가 넘치는 건 아니지만...

 

트리케라톱스 아저씨 큰 딸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어제 입학식이 있었거든.

혼자 가기 뭐 하다고 같이 가자고 그래서 같이 갔어.

살짝 화장도 이쁘게 차려 입은 모습이 부러울 정도로 좋아 보이더라.

트리케라톱스 아저씨는 내내 환한 모습으로 딸을 지켜봤지.

이 아저씨는 조금 웃기는 게 절대로 가족들 가까이 다가가지 않거든.

항상 멀리 떨어져서 보기만 해.

귀신의 나쁜 기운이 사람에게 전해지면 안된다나.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딸의 입학식을 지켜보고 돌아왔어.

 

죽은 다음 이곳에 오고 나서 딸들 걱정을 엄청 하는 아저씨라서

대학생이 된 딸을 보니까 어떠냐고 물었는데

딸들이 어렸을 적 얘기만 하는 거야.

물론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얘기지.

그래도 밝은 모습 보니까 좋더라.

 

그날 저녁에 tv를 보는데 장사익 아저씨가 나오더라고.

트리케라톱스가 장사익 팬이라면서 엄청 좋아하더라.

덕분에 나도 이미자 할머니랑 같이 장사익 아저씨 콘서트를 보게 됐지.

나쁘지는 않았는데 내 정서랑은 별로 안 맞더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tv를 보는 트리케라톱스 옆에서 나도 열심히 봤지.

그런데 장사익 아저씨가 어떤 노래 하나를 부르는 장면에서 트리케라톱스가 코를 훌쩍이더니 노래가 끝나니까 엉엉 울어버리는 거야.

약간 당황했는데 그냥 울게 놔뒀어.

그때야 알았지.

트리케라톱스가 딸의 입학식을 보고나서 울고 싶었다는 걸 말이야.

 

그때 장사익 아저씨가 부른 노래가 ‘꽃구경’이라는 노래야.

나중에 인터넷에서 이 노래 찾아서 다시 들어봤거든.

가만히 들어보니까 트리케라톱스가 왜 울었는지 알 것 같더라.

그 노래 들려줄래?

 

 

 

어머니 꽃구경가요

제 등에 업혀 꽃구경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깊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쿰씩 솔잎을 따서 뿌리고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신데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신데요

 

아들아 아들아 내아들아

너 혼자 내려갈 일이 걱정이구나

길 잃고 헤매일까 걱정이구나

 

 

꼬마인형님의 사연과 장사익의 ‘꽃구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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