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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40회)

~들리세요? (40회)

 


날씨가 점점 더워진다.
메르스 공포가 몰려다닌다.
가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막막한 내 생활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숨이 막힌다.
숨이 막혀서 술을 먹는다.
술을 먹으면 안되는데 하면서 술을 먹는다.
술을 먹으면 더 답답해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술을 한 병 더 먹는다.
그래도 잠은 안 오고 정신이 말짱하기만 하다.
tv를 여기저기 돌리다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자살사이트를 검색한다.
이런 내 모습이 무서워서 다시 술을 먹는다.
그렇게 술을 마신 다음날은 몸이 엄청 힘들다.
마음도 같이 힘들어진다.
오늘은 술을 먹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본다.
하지만 숨은 계속 막힌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익명님의 사연이었습니다.
익명님의 사연을 읽고
17살에 자살을 해서 구천을 떠돌고 있는 꼬마인형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나는 어떻게 하면 자살에 성공하는지를 얘기해줄 수 있는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저는 익명님의 사연 앞에서 답답한 가슴을 쓸어봅니다.


‘자살’이라는 놈이 저한테는 낯설지 않습니다.
처음 그 놈을 만났을 때는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달라붙는 그 놈을 떨치기가 힘들더군요.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 죽으면 덜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여러 방법들을 생각하다보니 더 무서워지더군요.
결정적으로 내가 죽으면 너무 슬퍼할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죽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 놈을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지나서
어디서 본 듯한 어떤 이가 제 주위를 서성이더군요.
불길한 기운에 뒤를 돌아봤더니 다시 그 놈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애써 모르는 사람인 척 해보기도 하고
뛰어서 달아나보기도 해봤지만
그 놈은 아주 여유롭게 천천히 제 주위를 서성일 뿐이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멍하니 있을 때
그 놈이 살며시 제 옆에 앉더니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거꾸로 말하면 ‘살자’라고 하지? ‘살자’를 한 번만 더 거꾸로 말하면 다시 내 이름이 되는데 말야. 흐흐흐”
그 놈의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져서 엄청나게 도망쳤습니다.
그 놈은 세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익명님,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이게 다입니다.
제 얘기를 어떻게 해석하실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중요한 건 익명님의 목소리가 제게 들렸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숨이 막히면 여기에다가 얘기해보세요.
어떤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 얘기는 듣고 있을테니까요.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싸인 길
잡힐 듯 말듯 멀어져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길 없네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가듯 떠나는 이는
제 갈 길을 찾았네
손을 흔들며 떠나보는 길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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