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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41회)

~들리세요? (41회)

 


1


지난 주에 이사를 또 한 번 했습니다.
여기는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라는 곳인데
바다가 보이지 않는 중산간지역입니다.
제주도에 살면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동네에 살기는 처음이라서
산 속 동네는 솔직히 낯섭니다.
이곳은 중산간 마을치고는 비교적 큰 마을이기는 하지만
제가 있는 곳은 마을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라서
느낌은 산 속에 혼자 떨어져 있는 기분입니다.


집에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이곳에 농사지을 밭을 빌렸고
그 한켠에 컨테이너로 만든 집을 갖다놓고 살게 됐습니다.


낯선 중산간지역이라 버스도 많지 않고
컨테이너로 만든 집이라서 매우 비좁지만
tv와 냉장고와 샤워시설은 갖춰져 있고
다행스럽게 인터넷도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로 15분쯤 가면 부모님이 사시는 집이 있고
걸어서 10분쯤 가면 조그만 가게도 있습니다.
뭐,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 있고
살만하다면 살만한 그런 조건입니다.


이사를 하면서 조금 어수선 했던 데다가
장마가 시작되면서 인터넷 연결이 늦어지다 보니
지난 주 방송은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예고도 없는 결방에 그 누구도 항의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지만
매주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속상하고 죄송합니다.


한라산 중간의 외딴 밭 한편에 놓인 컨테이너에서 혼자 진행하는 이 방송이
그 누군가에게는 전해지겠지요.
제 목소리 들리세요?

 


여기 앉아서
좀 전에 있었던 자리를 본다


아, 묘한 기분
저기에 있었던 내가 보인다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저기에 있었을 땐 볼 수 없었지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
흐르는 물속에 세상이 비치네
내 얼굴도 미춰볼까


(시와의 ‘랄랄라’)

 


2


컨테이너 앞에 낡은 소파와 투박한 평상을 갖다 놨는데요
낮에 더워서 일을 하기 힘들면 거기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합니다.
아직 제주도는 30도를 넘는 더위는 아니어서 심한 더위는 없는데다가
이곳이 산속이라서 그늘 아래 있으면 조금은 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이것저것 간단한 것들 정리하고 나면
날씨도 훨씬 선선해지고 더불어 마음도 여유로워집니다.
그런 기분으로 산책을 하기도 하고 tv를 보기도 하다보면 해가 집니다.


해가 진후 재미없는 tv를 끄고는
한 손에는 차를 들고 또 한 손에는 휴대용 라디오를 들고
좁은 컨테이너를 나와 낡은 소파에 앉아
귀로는 음악을 듣고
입으로는 차를 마시고
눈으로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루 중에 가장 아늑한 시간입니다.


어떤 방해도 없이 몸과 마음으로 하늘과 호흡하다보면
외로움과도 말동무를 할 수 있어집니다.


오늘도 하늘 한 번 볼 일 없이 이리저리 치이다가
숨 막히는 조그만 공간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들 많겠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 노래 선물 합니다.
브루콜리 너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께요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 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


내일은 출근해야 하고
주변의 이웃들은 자야 할 시간
벽을 쳤다간 아플테고
갑자기 떠나버릴 자신도 없어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랠 부르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 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

 


3


외롭게 지내지 않으려고 고향에 내려왔는데
산 속에 컨터이너를 갖다놓고 혼자 사는 꼴이 돼버렸습니다.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요. 히히히


부모님이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신경을 써주시고
주말이면 할머니집에 놀러오는 조카들 얼굴도 볼 수 있고
낮에는 밭에서 할 일들이 솔솔치 않게 있기도 해서
외로움에 몸서리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혼자 있으면 적적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기르던 개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제가 애정을 많이 쏟았더니 개도 저를 잘 따릅니다.
개 한 마리가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의지가 되더군요.


그런데 이런저런 걱정도 생기더군요.
밭 바로 옆이 도로라서 개를 풀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묶여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이라도 자주 시켜주려고 하는데
사람과 산책하는 훈련이 안 되서 산책을 나가면 서로가 고생입니다.
식탐이 없어서 먹는 양도 많지 않다보니 야윈 편인데 그것도 신경 쓰입니다.


개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개와 사람은 집단성이 강한 동물인데
민감한 성격의 사랑이와 성민이가
이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겠지요?
사랑이를 많이 사랑해줘야겠군요.


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해지고 착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 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해야겠지요.
이 방송을 쉼 없이 이어가면서
계속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천지인의 ‘청계천8가’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없는 인파로 가득 찬
땀 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 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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