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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다.

 

2007년을 병원에서 시작한 하경이는 지금 장모님과 깊은 잠에 빠져있다. 2006년 마지막 날에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하루 더 있으라고 해서 결국 2007년 1월 1일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엔 아이들이 많이 들어왔다. 6명의 아이들이 침대에 누워 있고 가족들은 그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린 아이를 안고 침대에 기대 잠이 든 여성을 보면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잠을 못 이루는 아이 때문에 피곤에 지친 얼굴이지만 아이를 안고 졸고 있다.


아내는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하경이는 혼자 잘도 떠든다. 아내는 하경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지 기대가 된다고 한다. 아마 상당히 적극적인 여성으로 자라지 않을까?


하경이는 힘이 장사다. 병원에 있는 동안 떼도 늘었다. 병원의 간호사들이 하경이를 좋아한다. 물론 병실 모든 아이들을 좋아하겠지만 하경이의 방긋 방긋 웃는 모습이 보기에 좋은가 보다.


가끔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하지만 하경이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부모로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살았으면 하는 정도의 소박한(?) 바람도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하경이도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제는 주일 오전 11시 예배를 마치고 곽명환집사님과 김경태형제를 위해 차량운전을 하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아내는 양복을 입고 병원에 들어온 날보고 한마디 한다. 여보 그렇게 입고 오면 아이를 어떻게 봐???


아내는 친정에 잠깐 갔다가 장모님과 목욕을 다녀온 후 저녁을 해서 병원에 왔다. 저녁을 먹고 8시 30분 쯤 교회로 갔다. 동원이 엄마가 준 주차증 덕분에 주차비는 걱정이 없었다. 교회에 도착해서 1년 기도 제목을 적어 낼 쪽지 만들고 2008년 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송구영신예배를 준비하다 예배를 드렸다. 성도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모두 마친 후 곽명환집사님을 위해 운전을 하고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 돌아가니 3시가 되어간다.


아침을 먹고 나갈 줄 알았는데 점심을 먹고 병원에서 나왔다. 쉬는 날이라 퇴원 수속이 늦어졌다. 연락 올 때만 기다렸다면 더 늦은 시간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리 저리 발품을 팔아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하루였다.


병원에서 나와 처가에 와서 처남에게 하경이를 맡기고 아내와 누워버렸다.


아이를 입양한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하는 기쁨은 더 크다. 처음 하경이를 입양하고 하경이 동생을 입양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망설여진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벌서 2007년이다. 2006년이 시작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있다. 내년 2008년에는 2007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 까?


2007년은 한국 교회적으로나 예수교대한성결교회적으로나 내 자신에게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평양 대부흥 운동이 있었던 100년이 되는 해고 성결교가 이땅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100년이 되는 해고 내가 예본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시작한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하경이 돌이 있는 해다.


2007년에는 나름대로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활동 범위도 많이 줄이려고 한다. 목회에 집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활동을 줄인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한 아이의 아버지요, 한 여성의 남편이고, 한 교회의 담임 목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자 한다.


올 2007년 사랑하는 딸과 아내와 성도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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