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5월은 행복하다.

5월이면 나는 행복하다.


2001년 5월 28일 이광흠은 이진희와 가족이 되었다.


2006년 5월 1일 노동절에 하경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움과 미안함이라면 하경이가 내게 딸이 되어 준 것에 대한 기쁨과 이런 딸을 낳아 준 친생모에 대한 감사로 행복한 5월이다. 친생모가 포기 하지 않고 낳아준 덕분에 세상에 나온 하경이는 45일이지난 6월 15일 이광흠과 이진희의 딸이 되었다.


2011년 5월 9일 하람이가 이광흠과 이진희의 딸과 이하경의 동생이 되었다.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2013년 입양의 날 기념행사를 5월 10일 한다고 한다. 아내는 산어린이학교라는 초등대안학교 교사로, 하경이는 산어린이학교 1학년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5월 10일은 아내와 하경이는 들살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다. 토요일에 기념행사를 하면 좀 더 좋았을 텐데 왜 평일에 기념행사를 한다고 했을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가정은 아이들과 함께 참석하기 힘들텐데라는 원망해본다.


요즘 입양법 개정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미안함 때문에 그리고 입양법에 대해 개인적으로 할 말도 많지만 개인적인 일들 때문에 입양법 개정에 대해 신경을 못 쓰고 있으니 기념행사장에라도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하람이가 궁더쿵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낮잠을 자기 전 궁더쿵에서 나와 함께 기념행사장을 다녀와 올 생각이다.


5월 1일 성공회대학교에 갔다. 하경이가 좋아하는 케익을 자연드림에서 샀다. 처음 계획은 집에서 케익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하경이와 하람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부랴부랴 편의점에서 플라스틱 수저를 사서 학교 의자에 앉아 먹었다. 케익을 반쯤 먹은 뒤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다가 고척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 너무 늦게 반납을 해서 상당기간 대출 금지다. 이러다 고척도서관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 같다.


5월이면 불편하다.


입양에 대한 불편한 기사들이 언론에서 흘러나온다. 입양은 민법과 특별법이 있다. 입양과 관련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가끔 민법에 의한 입양의 부정적인 사례들을 특별법 입양과 혼돈해서 기사를 쓰곤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민법은 일반입양과 친양자입양이 있고, 특별법은 입양법에 의한 입양이다. 개인적으로 입양은 촉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양을 반대하는 분들은 입양이 촉진될 문제냐고 말하지만 나는 촉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 딸들과 같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자라기 보다는 가정에서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을 낳은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 보다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입양은 촉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입양법이 개정되고, 보건복지부가 좀 더 입양에 대해 고민을 해주면 좋겠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새벽부터 짬짬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4월 초 박원순시장이 구로에 와서 지역 단체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속한 단체에 알리지 못했다. 결국 어제 5월 1일 저녁 우리 단체 대표는 그 모임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요즘 난 이렇게 산다. 그래서 힘들다.


맘도 복잡하고 힘든데 입양법까지 힘들게 한다. 입양에 대해 쏟아내는 부정적인 말들을 들을 때마다 한마디 하고 싶지만 신경 쓸 여력도 없다. 그래서 힘들다. 5월 정말 할 말이 많은 달이다. 그래서 마구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목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지금의 내 위치에서 버티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아이는 자신을 낳은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자신을 낳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살아야 한다. 왜 엄마에게만 그 짐을 지우려 하는가? 아빠들은 어디에 갔나? 엄마의 의무만 이야기 하지 말고 아빠의 의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고 있나? 왜 엄마들만 숨을 죽이고 울어야 하는가.


혼자서도 자신이 낳은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엄마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 아이를 함께 돌봐줄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없는 엄마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네가 낳았으니 네가 끝가지 책임지라는 당위성 말고 우리는 그녀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묻고 싶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어린 엄마들에게 적은 생활비를 줄테니 너 혼자서 네가 낳은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그녀와 그녀가 낳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만약 그녀가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나 내 딸들과 같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낳은 부모들을 위해서 입양법이 개정되어야 하고, 입양은 촉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입양은 단지 절실함에 의한 실천이고 삶일 뿐 선행이 아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