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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의 수수께끼 : 콩나물국밥 먹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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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짓, 부름, 부탁... 뭐 이런 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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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수수께끼 : 콩나물국밥 먹고 나서

 

지난 주 목요일(16일) 새벽에 전주를 잠깐 들르게 되었다. 남도 맛기행의 시작이었다. 전주의 음식은 맛있다 하니, 그 새벽에도 맛집은 있으리라 맘대로 단정하고 시내로 접어들었다. 새벽 2시경이었으니 왠만한 식당은 다 문을 닫았을테고, 이 시간에 영업할만한 국밥집을 찾아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 없이 시내를 몇 바퀴 돌았다. 정보가 없으니 불빛이 많은 이 골목 저 골목을 마냥 뱅글뱅글 차를 타고 돌았는데, 문득 [삼백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 [삼백집]의 간판. 왼쪽 인물은 동행한 W씨.

 

 

내게 '삼백집'이라는 이름은 추억의 밥집 이름이다. 10년도 더 전에 방언답사를 위한 사전답사랍시고 진안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친구와 후배와 함께 셋이서, 아는 동네도 아니고 하니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찾았다. 군청과 전화국이 모여 있는 곳 근처에 [삼백집]이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식당이 있었다. 이름이 독특했고 무엇보다 콩나물국밥만 파는 이른바 전문식당이어서 왠지 끌렸다.

 

뚝배기 그릇에 젓갈을 넣어 끊인 콩나물국밥이었는데 그 독특한 맛과 깊은 맛에 취해 입천장 다 벗겨지도록 먹었다. 한 그릇을 다 먹고나니 속이 든든해 타지라는 생경함, 그래시인지 쪼그라드는 마음은 다 없어졌다. 다시 배고파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배부름으로 하루를 꽉꽉 채워 이 일 저 일 했었던 기억이 있다.

 

진안의 [삼백집]은 그 후 몇 차례 더 찾을 기회가 있었다. 진안에 방언답사 본답사도 갔고, 친구들이랑 여행도 갔었고, 지금은 마나님이 된 애인이랑 놀러도 갔었다. 그때마다 식당은 제자리에 있었지만 한 번밖에 더 먹어보질 못했던 것 같다. 이 식당은 아주 나이가 많이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을 하셨는데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듯했다. 진안까지 가서 이 [삼백집]에서 콩나물국밥을 못먹는 건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지금도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전주의 [삼백집] 바로 오른쪽에도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애초에는 이 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내가 [삼백집]이 옆에 있는 걸 발견하고선 이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차에서 막 내리려는데 택시 한 대가 식당 앞에서 서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삼백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순간 '잘 찍었다' 싶었다. 새벽까지 술마시고 출출한 속 풀기 위해 택시까지 타고 오는 걸 보니 전주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는 식당인 게 분명했다.

 

@ 전주 [삼백집]의 콩나물국밥과 모주

 

콩나물국밥집에는 당연 모주도 있으니, 콩나물국밥과 함께 모주도 주문했다. 모주를 먼저 맛보았는데, 모주에 무엇을 넣었는지 맛이 무척 진하고 강했다. 위의 사진을 보아도 무척 진해 보인다. 약재 같았다. 따뜻하게 데운 모주는 강한 맛 때문에 쉽게 들이켜지지 않았다. 몇 모금 마시고선 입을 더 대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모를까 전주 [삼백집]의 모주는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밥을 넣고 끓인 국밥이었는데, 이처럼 끓여서 만드는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하는 집을 찾기는 어렵다. 대신 말아주는 콩나물국밥이 있는데, 홍대 앞에 [전주남부시장 콩나물국밥]집이 있다. 98년도 홍대 앞을 매일같이 들락거릴 때는 자주 갔었던 집인데, 이집의 콩나물국밥은 주인 아주머니 성격마냥 아주 깔끔했다. 모주도 맛있었다. 이 집은 반찬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젓갈도 맛나는 걸 주문해서 차렸다. 요즘은 홍대 앞에는 밥 때에 가는 게 아니어서 오랜 동안 이 집에서 콩나물국밥을 먹어보지 못했다. 조만간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전주 [삼백집]의 콩나물국밥은 3,500원. 모주는 1,500원. 모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3,500원에 국밥 한 그릇을 먹게 된다. 이 집이 내 활동 반경에 있는 집이라면,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보 맛이면 적잖이 찾게 될 듯하다. 하지만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감동의 맛을 지니지는 못했다. 끓여서 나오는 국밥 치고는 좋다. 하지만 진안 [삼백집]과 홍대 앞 식당의 콩나물국밥에 비하면 '진짜 맛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이번 콩나물국밥도 그러했지만, 작년에 민주노동당 전북도의원인 김민아 의원에게 소개받아 찾아간 한정식집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간장게장을 먹고 싶어서 김민아 의원에게 전주에서 잘하는 식당을 소개해달라고 하였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 식당 밀집지역의 한 식당을 소개해 주었는데 분위기 좋은 한옥집에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식사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집은 간장게장만 맛있었다. 다른 반찬은 아주 짜거나 하는 등 별로 맛이 없었다. 간장게장을 잘 만들 정도면 다른 반찬도 왠만히 만들 수 있을텐데 말이다. 전주를 지날 때 간장게장을 먹고 싶어도 이집에는 다시 들르지 않을 것 같다.

 

전주는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도시다. 함 팔러도 갔었고 여행도 갔었고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해서 들른 적이 있다. 갈 때마다 '전주시 향토음식 지정업소'라는 간판이나 누군가의 소개로 식당들을 찾았었는데 기대에 미치는 식당은 없었다. [삼백집] 아주머니에게 진짜 맛있는 비빔밥집 소개해 달라니까 이 집 저 집 소개를 해주셨는데 그러면서도 하시는 말씀 '진짜 맛있는 건 아니구...'

 

타지인인 나로서는 수수께끼다. 도대체 전주에서 맛있는 음식점은 어디에 있을까? 전주에서 오래 오래 살면서 맛집만 찾아다닌 분이 있다면 소개 좀 받고 싶다. 진짜 맛집.

 

 

전주의 [삼백집]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듯하다. 찾아가고자 한다면 아래 지도를 참고하시라. 063-284-2227


@ [삼백집]의 위치. 서쪽 다리를 건너서 죽 가면 예수병원. 오른 쪽 아래는 옛 도청.

 

 

생활의 변화, 그리고 화장실

 

내가 요즘 돈벌이도 없고 집에서 살림하는 시간도 많아지니 생기는 작은 변화가 있다. 이를테면 감자 사러 시장 가서 감자만 사온다거나 한다. 사실 이건 큰 변화다. 얼만 전만 하더라도 온통 먹을 것 투성이인 시장에 갔다면 몇 가지는 더 사왔야 한다. 감자만 달랑 사들고서는 '집에 가면 밥있어!'를 맘 속으로 수십 번 외친다는 건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경험이었다.

 

그저께 밤 늦게 집에 들어와 출출해서 며칠 전에 마나님이 사다 둔 도너츠를 먹었다. 한 입 깨물기 전까지는 이게 슈크림 도너츠인 줄 몰랐다. 순간 냉장고에 둘 것 그랬나 하는 약간의 후회가 들긴 했다. 살짝 시큼한 맛이 돌았는데, 유통기한을 보니 하루가 더 남아서 그냥 열심히 세 개 다 먹어치웠다. 먹고 나니 속이 요만큼 화끈거렸다.

 

약간이라도 의심가는 음식은 죄다 버려댔었다. 조금이라도 찝찝한 음식은 손도 안댔었다. 다 마나님이 해치웠다. 그런데 이젠 내가 음식 남겨놓기 싫어서, 아까와서 그 시큼한 슈크림 도너츠를 다 먹어버린 것이다.

 

 

도너츠 세 개 해치우고 이것저것 하다가 새벽에야 잠을 잤다.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화장실이 급해졌다. 어딘지는 잘 모르겠는데 공중 화장실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엄마가 꿈 속에서 저쪽 화장실을 쓰란다. 눈에 보이는 더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가지 말고 베개 두 개를 들고 따라 오란다. 왠 베개? 지저분한 화장실에 가는데, 깨끗할 리 없는 공중 화장실에 베개를, 그것도 불편하게 두 개씩이나 들고 갈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이쪽 화장실보다 멀기도 하고 베개 들고 갔다가 똥이라도 묻으면 빨래하기도 귀찮아질테니 가까운 화장실로 갔다.

 

가까운 화장실도 참 요상했는데, 내가 들어간 출입문 반대쪽으로도 문이 나 있는 게 사람들이 길을 가로지르는 곳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독특한 건 이 화장실은 밭이기도 했다. 고랑에다가 일보나 보다. 사람들이 가로질러 가기도 하니 눈치를 살치다가 인기척이 없어서 한쪽 켠에 쭈그리고 앉으려 했는데 왼쪽 발이 바닥에 깊이 뭍혀버렸다. 똥탕은 아닌 듯 했으나 왠지 좀 그래서 깊숙히 박힌 발을 힘겹게 빼고 다시 자리를 잡으려 했다. 근데 영 폼이 안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불편해서는 일을 못볼 듯했다.

 

고랑에서 싸기를 포기하니 한쪽 편에 두 개의 문이 달려 있었다. 저기로 가면 되겠구나. 나란히 있는 두 개의 문 중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 이것 참. 문을 열어보니 수세식 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없었다. 여기서 일 보다 왼쪽 문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그것도 낭패다. 뭐 이래. 그래도 싸야겠다. 그런데 변기에 대변이 있는 것이다. 물을 제대로 내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것부터 내려야지 하고 물을 내렸는데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 퍽퍽 튀면서 내 다리에 똥물이 튀었다. 아, 뭐야. 이곳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나섰다. 그때 잠이 깼다.

 

 

아침이었다. 요즘의 내 일상으로 보면 꼭뚜 새벽이었다. 새벽녘에 잠을 잤으니 이 시간에 깰 리가 없었다. 어, 이렇게 일찍? 배가 살살 아팠다. 진짜 반가운 화장실로 갔다. 주루룩주루룩. 도너츠가 화근이 될 줄이야. 먹던대로 먹고 하던대로 하고 살아야 하나?

 

 

손짓, 부름, 부탁... 뭐 이런 거

 

어제 오후 늦게 레디앙을 방문했다. 그저께 민주노동당 언론담당 정책연구원이랑 잠시 담소를 나누었는데, 내게 레디앙 소식을 물었다. 내가 19만원짜리 주주라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나도 조만간 사이트를 오픈한다는 소식만 들었지 어찌 돌아가는지 아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디앙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문득 정말로 레디앙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어차피 여의도에 갈 일도 있고 해서 어제 오후 레디앙에 먼저 들렀다.

 

19만원짜리 소액주주 주제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몇 마디 거들게 되었다. 오픈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주주들에게 전화든, 메일이든, 문자든 보내심이 어떨지. 언론담당 정책연구원의 의견이었는데 내가 전했다. 레디앙 편집국장 이광호 아찌는 주주 메일링리스트를 만들어서 뉴스레터도 보내려고 하는데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한다. 레디앙은 나름대로 오래 준비한 인터넷 매체이긴 하지만 예상보다 어려움이 많고 그래서 준비도 기대보다 화려하지 못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야스피스는 내게 편집기자 할 생각 없냐고 물었다. 난 그게 뭐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광호 아찌도 이런저런 일을 해 줄 수 없겠냐고 했다. 언론사에서, 그 근처에서도 일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나 스스로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내 주변 정리하던 거 마저 하고 4월에 와서 도울 수 있는 일을 얘기해보자고만 했다.

 

 

며칠 전 강동에서 구의원 출마하는 황씨가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다. 내가 강동에서 도와준 거 소문나면 서대문에서 죽는다고 했다. 그 전화 받기 전에는 거제에서 전화가 왔었다. 지역위 사이트 만들어야 하는데 도와달란다. 난 그런 일 해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할 수도 없고 지금은 인맥도 다 떨어져서 소개시켜 줄 사람도 없다고 했다. 내 사직 소식을 듣고서 한 지역 활동가가 지방선거 정책 만드는 거 도와달라고 했었다. 난 그때 상태가 무지 좋지 못한 상황이라서 도저히 도와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요전에 봉포항 만나러 속초갔을 때, 농담이었지만 놀면서 쉬면서 그 동네 선거나 같이 해 보는 건 어떠냐는 얘기도 들었다. 서대문에서는 내가 선거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분위기다.

 

주변에서 손짓을 한다. 함께 일해보자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주로 선거철이라 선거일이기는 하지만 레디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아주 잠깐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실장과 사무국장과 얘기한 적도 있었는데 연구소에 필요한 몇 가지 일을 같이 해보는 것도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다.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하기도 하겠고, 할 일 없는 나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제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난 오래오래 쉬고 싶지만 내가 다 쉴 때까지 이러한 제안들이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제안이 재미없거나 무의미하거나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몽창 다 깨끗하게 거절하는 것도 왠지 아쉽다.

 

만나는 사람들마다의 제안에 솔깃하는 건 내 귀가 얇은 탓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모든 게 다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정작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깨닫는 것 같다. 그 깨달음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차분히 있어야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깊숙히 개입할 일에는 열정을 쏟게 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지혜로운 판단을 하지 못해 기대에서는 무척 벗어난 인생의 길을 가버리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도 때마다 기회와 나의 선택의 시기를 맞추어가며 살아왔다. 인생의 기로란 이런 것인가 보다. 내 삶에서 아귀가 맞지 않는 첫 시절인 것 같다. 어쩌면 주변의 손짓, 부름, 부탁은 부담이기도 하지만 내 다음 인생을 위한 친절한 재촉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