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05/03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03
    "직업이 뭐예요?" - (2)(2)
    말걸기
  2. 2006/05/03
    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10)
    말걸기
  3. 2006/05/03
    "여선생이 너무 많아"
    말걸기

"직업이 뭐예요?" - (2)

 

말걸기["직업이 뭐예요?" - (1)]에 이어 본격적인 얘기를 풀어야겠다. 나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관심은 보통 직업을 물을 때와는 다르다. 이 사람들의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사실 다양한 변종이 있다.

"직업이 뭐예요?"

"무슨 일 하세요?"

"무슨 회사 다니세요?"

"그렇게 하고 다녀도 회사에서 뭐라 안해요?"

"평범한 일을 하시지는 않은가 봐요?"

"머리 모양이 참 독특하시네요?"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이 서로 다른 내용의 질문들을 나에게 물었을 때는 사실 거의 같은 의미이다.

 '네 머리 참 희한하게 생겼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일명 '꽁지머리'라 불리는 이 머리칼들은 워낙 거칠고 푸석푸석해서 우수사랑은 '옥수수 수염'이라고 부른다. 이 노란 머리칼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난 항상 머리가 짧은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짧게 자르고 다녔다는 건 아니다. 귀차니즘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미용실에 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귀와 목을 덮는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러다가 길어진 머리를 견디다 못해 미용실에 가서는 짧게 깎아 버린다.

 

어느날 문득 머리를 길러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목과 눈 주변을 찌르는 머리칼을 견디지 못할 듯했다. 그러다 문득 특정한 곳만 기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래저래 머리 모양을 구상해 보았다. 결국 뒷머리 왼쪽만 기른 다음 빨갛게 물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좌익빨갱이'니까.

 

요즘 같으면 소위 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수소문해서 나의 구상을 설명한 다음 제대로 된 머리 모양을 만들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걸 못해서 그냥 가던 미용실에서 목을 덮고 있던 내 뒷머리 일부를 손으로 움켜쥐고선 "이거 빼고 싹 밀어주세요" 했다. 난 아주 왼쪽으로 머리가 남길 바랬으나 어정쩡한 곳에 남아버렸다.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패스. 다시 목을 덮을 때까지 머리를 기른 후 처음부터 시작할라니 귀차니즘이 발동했다. 이대로 기르자.

 

상상을 해 보라. 한 4~5cm밖에 되지 않는 머리가 왼쪽 뒷머리에 요만큼만 붙어있으면 얼마나 흉할까를. 집에서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잘라라. 이게 뭐냐." 이 한 마디 돌아가가가 몇 달이었다. 내가 돌 지경이었으나 개겼다.

 

이 머리칼은 빨갛게 물들이지 않고 제 머리색대로 기르고 있었다. 2002년이 되니까 꽤 길어졌는데 그 때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 애초 계획대로 빨강색으로 염색을 했었는데, 이를 위해서 검은색을 한참 빼고 나서 빨강색을 들였다. 이날이 언제였냐면 월드컵 한-이태리 16강전이 있던 날이다. 축구 중계가 시작하기 전에 물을 들이기 위해 집 근처 미용실에 갔는데, 아무래도 이 아저씨 축구 중계 보려고 맘이 급했는지 뚝딱뚝딱 물을 들이는 게 아닌가. 원래 빨리 물이 들도록 제작한 약품이란다. 믿었지. 이틀동안 머리도 안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머리를 감을 때 물 싹악 빠졌다. 젠장. 다신 그 집 안가.

 

빨강물을 제대로 들인 건 2003년도다. 3월에 결혼식을 했었는데 내가 신경쓰고 준비한 것 중에 하나가, 딱 그 부분만 빨갛게 물들여 쫙쫙 편 머리 모양이다. 돈 좀 쎈 미용실에 가서 물 안빠지게 당부하고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도 비싼 걸로 했다. 내 결혼식 사진 보면 가관이다.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내 머리 모양 보고 신기해 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지 아저씨 아줌마들에겐 얼마나 재미 있었을까.

 

난 머리숱도 별로 없고 잘 빠져서 한참 지나면 물을 들였던 머리칼은 다 빠지고 검을 머리만 남는다. 그럴 땐 가끔 물을 들이곤 했는데, 빨강물은 몇 번 들이지 못했다. 머리가 너무 푸석푸석해서 좋지 않단다. 그래서 검은물만 빼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옥수수 수염'이 된 것이다.

 

 

내가 뒷머리의 한 부분만 기르고 다닌 게 5년 반쯤은 된 것 같다. 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길렀으니 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장난스레 뭐든 해보고 살았던 것 같다.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직접 해보는 실험정신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아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하는 그 실험정신 말이다.

 

어쨌든 난 이 실험에서 깨달은 게 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여태껏 보지 못한 어색한 행동을 하는 걸 싫어한다. 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온갖 구박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엄니는 6년 가까이 머리 자르라는 말씀을 하셨다. 짝꿍도 내 머리 모양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당에서 일할 때 처음에는 부총장까지 나서서 머리 자르라고 했다. 반면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이 희한한 짓을 하면 재밌어 한다. 물론, 자기에게 피해가 없으니까.

 

한편으로는 희한해서 꺼리는 나의 머리 모양을 계속 보면 익숙해진다. 그냥 그렇구나 해버린다. 짝꿍도 언제부턴가는 익숙해졌는지 하는 얘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이쁘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내 머리칼 건강에 신경쓴다. 또는 내 머리를 뒤로 젖히고선 긴 머리칼로 내 등을 쓰다듬을 때가 있는데 이런 행동은 귀엽단다. 그리고 가끔 내 머리를 정성스레 따 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익숙한 걸 좋아한다. 그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건 보기도 듣기도 싫어하고 해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게 나쁜거라고 생각한다.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게 보수성이다. 눈앞의 작은 변화도 싫어하는 것이다. 변화가 다 진보고 옳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가 될 이유도 없는 걸 익숙치 않다고 꺼리고 배제하는 태도는 그야 말로 폭력이다. 난 5년 반 동안 일상적으로 폭력을 당했다. 자기들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난 수없이 조롱과 비웃음과 '머리 잘라'라는 강요와 무거운 시선을 느끼고 살았다.

 

"직업이 뭐예요?"는 나에 대한 호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희한한 놈으로 여기는 시선이기도 한다. 또는 자기가 갖을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나에게 부러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난 불쾌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어찌하고 다니건 그대와 상관없는 나에게 왜 쓸데없는 간섭을 한단 말인가.

 

내 머리 모양에 대한 반응으로 알게 된 건, 운동권이나 아니나 똑같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느냐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건 매한가지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성격 따라 다른 거지 이념에 따라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결국 난 실험으로 몇 가지 결론을 얻었다.

1. 사람들은 익숙치 않은 것을 싫어한다. 특히,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면 부끄러워한다.

2.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싫어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3. 익숙치 않은 것에 대한 경기는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운동권도 똑같다.

난 여기에서 더 나아가, 즉 비약이 될지 모르는 결론을 추론하고 있다. 이제는 진보운동한다는 것들 다수도 변화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 자기들 익숙한 대로 운동한다는 것. 그게 현재 속성이라는 것.

 

 

이제 내 머리 모양도 달라질 때가 되었다. 6년이 다 되어가니 주변 사람들 반응도 별거 없다. 실험은 끝났다. 어떤 결론을 내리려고 시도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결론까지 얻었으니 고만 됐다. 모가지에 기승을 부리는 아토피 피부염도 치료할 때 되었고 하니 겸사겸사 꽁지머리를 잘라버릴 거다. 귀차니즘의 작동으로 인하여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조만간 얘도 내 머리에서 떨어질 거다. 좀 아쉽긴 하다. 안녕.

 

 

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

 

새벽길님의 [맘에 안드는 노동절 집회]

해미님의 [짜증을 넘어, 허탈한 노동절]

달군님의 [엄마는 모르실꺼야?]

스머프님의 [메이데이 에필로그..]

강철새잎님의 [투쟁하지 않는 노동절]

행인님의 [[마라톤] 메이데이 마라톤 참가]


등등 노동절 후기와 관련된 글일 것으로 믿음.

 

 

병원에 간다는 이유로 노동절 집회 및 행사 다 빼먹은 주제에 이런 글까지 쓰면 뻔뻔한 축으로 몰릴 수 있겠으나, 이제 뻔뻔하게 살 때도 되었으니 그냥 쓸란다.

 

2006년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노동절 행사는 말 그대로 '왕짜증'이었나보다. 요즘 스트레스에 민감한 내가 어느 곳에도 가지 않은 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블로그에서만 익숙한 블로거들을 만나지 못한 것, 그리고 찌라시 못 뿌린 건 안타깝고도 미안하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한심한 노동절 행사를 지적하고 있다. '아빠 힘내세요' '엄마는 모르실꺼야'에서는 확 깬다. 더더구나 그 망할 뽀스떠와 함께 의도된 컨셉이었다는 것에 뒤로 넘어간다. 그 한심함은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지역의 노동절 집회와도 비교된다. 메인 구호가 선거구호로만 채워지는 것도 어색하긴 하다. 보수정당 심판은 좋은 얘기지만 '투표소 가서 민주노동당 찍어라'하고 동일한 의미로 씌여지니 어색하고 민망한거다.

 

나는 이 모든 후기들의 의미를 이해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노총이 마라톤 대회를 연 건 좋은 본보기라 생각한다. 오만 잡것들 TV 나오게 판 벌려 준 게 한심하고, 명박이한테 감사나 하는 짓거리가 짜증날 뿐이다. 투쟁의 긴박함 없는 시청 잔디밭의 시민축제같은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나는 노동절 집회 뿐만 아니라 이 바닥 집회가 사실 다 짜증난다. 그건 그 집회에서 얘기하는 혹은 외치는 말과 구호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주저리는 새끼들만 주저리는 게 싫다. 그 씨방새들이 지껄인다고 투쟁의지가 높아지나? 힘이 커지나? 행사 주관자가 A부터 Z까지 다 결정하고 동원령 때리는 집회가 싫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집회 잘 안간다. 눈치 보여서 가거나 누구 만나서 노닥거리러 갈 뿐이다. 이제는 눈치 안보니 놀고 싶어지면 집회 나갈거다.

 

일년 내내 싸움없는 데 없고 갈등없는 데 없다. 투쟁은 일년 내내 해야 하니 하루쯤 놀면서 쉬자는 의미로 노동절 행사나 집회를 치렀으면 좋겠다. 개떼같이 모여서 재밌으려면 행사 주관자들이 A부터 Z까지 결정하는 행사는 꽝이다. 주관자는 판만 깔고 나서 찾아온 사람들이 알아서 놀게끔 빠져주는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거시기 연사들 주저리는 말보다는 집회장 여기저기에 나름대로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이래저래 듣는 게 더 유익하다고 믿는다.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을 KTX 승무원이 행여 마이크 잡고 얘기한들 직접 대면하고 얘기해 보는 것보다 좋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투쟁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 방향으로 모두 앉혀놓고 무대 위에서 발언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 그러는 모양인데, 난 천만의 말씀 만만의 팥떡이라 생각한다. 왠만한 선동가가 아니면 무대 위에서 발언해 봐야 감정이입도 안되고 주목도 잘 안된다. 하지만 얼굴 맞대고 대화하면 상대가 말을 썩 조리있게 하지 못해도 집중하게 되고 그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에 실려오는 의미를 알아챈다. 이런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당일에는 한정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파급력은 더 좋다고 믿고 있다.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행사장 여기저기에서 돌리는 거다.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 그리고, 연설하고 싶으면 연설하고, 호소할 게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호소하고, 책 팔고 싶으면 책 팔고, 전시하고 싶으면 전시하고. 물론, 돌아댕기고 싶으면 열나 돌아댕기고. 뭐, 좀 모두 모였으니 잼나는 거 해보자 싶으면 행진하며 웃고 떠들고. 개성 있는 플랭카드 따위 들고 와서 자랑도 해보고. 행진이 밋밋한 사람들을 위해 달리기도 하고. 까이꺼 노무현 싫으면 괜히 청와대 쪽으로도 기웃거려 보고. 안되면 말고. 좋잖아.

 

A부터 Z까지 주관자가 다 정하는 집회는 기본적으로 선택을 위해서 묻혀버리는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마이크가 권력이기 때문에 지들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한다. 적절히 정치세력간 안배를 고려하기도 하겠지만 생까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데서 힘을 얻으라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노동절 집회와 같은 행사에서는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으쌰 하면서 새로운 투쟁방향을 '총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게 일반적 운동권 정서인 듯해서 하는 말이다. 난 이게 운동권들이 갖고 있는 환상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투쟁방향이나 계획 따위는 집회 안 해도 이미 다 나와 있다. 사이트에 다 있다. 메일로도 온다. 모르겠으면 전화하면 다 안다. 그걸 노동절 집회와 같이 넓다란 곳에서 빽빽히 모인 사람들에게 마이크 잡고 떠든 들 뭐 달라지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알아듣고 끄덕끄덕 하나?

 

차라리 하루 쯤 '해방'을 즐기자. 평소에 못해본 거 해보고 못해본 말 해보고. 주관자가 할 말 다 정해놓고 모여든 사람들에게 훈시하듯 지껄이고 노래하고 춤 추는 건 아주 오래 전에 '해방감'을 주었었다. 결코 지금은 아니다. 왜 예전엔 군화발 앞에서 집회를 했었나? 그 순간은 '해방감'을 주었으니까. 그래서 조직선 없어도 대중 집회에 사람들이 모이고 구경했던거다.

 

갑갑한 현실, 그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현실에서 하루쯤 해방감을 즐기는 날로 노동절을 삼아보자. 그걸 함께 즐기자고 하자. 하나 둘씩 모여서 더 커지지 않겠나?

 

 

"여선생이 너무 많아"

 

突破, 늘 그랬듯이님의 [[이황현아] 왜 '여성노동권'인가] 에 관련된 글.

 

위 글을 읽고 생각난 김에 쓰는 글. 뭐, 꼭 트랙백까지 할 것인가 싶으나 '연상'이 되어.

그리고 진보네 블로그에서 이황현아씨의 글을 읽을 수 있어 무척 반가왔음.

 

 

1.

 

"여선생이 너무 많아."

 

내 짝꿍은 2개월짜리 신입 중등교사다. 직장도 몇 개 옮겨다니면서 결국 교사의 꿈을 키웠고 올해야 그 꿈을 이루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1주일짜리 연수를 갔는데 190명이 넘는 국어과 신규 교사 중 남자는 몇 안되었단다. 그리고 학교로 출근을 했더니 거기도 남자선생이 훨씬 적단다.

 

"여선생이 너무 많다"는 말을 내 짝꿍이 한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세간에 떠도는 말이기도 하고 내 주변에서도 듣는 얘기다. 더욱 기가막힌 건 "여선생이 너무 많은 건 문제이니 여선생 남선생을 똑같은 수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도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 남선생이 별로 없어서 문제를 겪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종의 '아빠' 모델이 학교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 성장에 장애가 된다나? 뭐 꼭 차별적인 성역할이 아니다 하더라도 여자랑 남자는 다르긴 하니까 어른 여자와 어른 남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동시에 배우는 것도 좋다고 할 수는 있겠지. 근데 이런게 뭐지 잘 모르니, 여선생이 다수인 학교에서 정말 학생들의 성장에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교사와 같은 공공영역(사립교 빼고)에서 여성들이 훨신 많은 이유가 뭔지 알고는 있으면서 "여선생이 너무 많아" 따위의 말을 뱉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결국 여선생 남선생 동수로 뽑자는 주장을 하기까지 이르는데 난 이 주장은 학생들을 위한 생각이 아니라 공공영역으로 밀려들어오는 여성, 즉 남성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여성을 밀어내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짝꿍이 예전에 다니던 회사도 산업계 성분업상 여성들이 다수인 기업이었는데, 소위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 되었다. 내 짝꿍도 그 중 하나였다. 정리해고로 회사 밖으로 쫓겨난 동료들의 대부분은 '정규직으로 정규직으로'의 강력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으로 고향엘 내려갔다. 그 바닥에서 갈고 닦은 경력으로 훨씬 안정된 동일계 회사로 간 동료도 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프리랜서'가 된 동료도 있단다.

 

'여성들이 안정적 일자리로 꼽는'(이건 여성들의 생각이라는 뜻이 아니다) 공공영역은 시험을 치러서 얻는 일자리기 때문에 '차별'이 가장 적은 일자리로 볼 수 있다. 기업에서는 채용에서부터 차별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학력이 비교적 높은 여성들이 교사나 공무원시험에 응시한다. 물론 이런 기회는 저햑력, 저소득, 고령 여성은 제외다.

 

모든 다른 영역에서 여성을 밀어내 놓고서 공공부문에서 여성이 많다고 한탄하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다. 진정 학교에서의 교육을 걱정해서 여선생 남성생 똑같이 뽑길 바란다면 모든 기업에서 여-남 모두에게 똑같은 질의 일자리를 똑같은 수로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마 이 얘기하면 '기업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능력 있는 사람을 우선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걸? 임용고시나 공무원시험(5급은 아니겠지. 이건 또 다른 사회적 배경이 있어야 가능하니까)에서는 확실히 여성이 능력 있어서 통과한 건데 그건 또 아니란다.

 

2.

 

내 후배이기도 한 짝꿍의 친구는 지금 교사다. 근데 비정규직 교사, 즉 기간제 교사다. 사립학교에서 근무하는데, 하는 일은 다른 정규직 교사랑 다를 바가 없단다. 이 친구는 요즘 고민이 많단다. 과연 교사가 자신의 길인가에 대한 고민. 돈을 벌어야 하니까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는데 그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교직사회라는 게 실망스러운 모양이다.

 

이 친구가 겪었을 법한 일상을 나와 짝꿍이 목격한 적이 있다. 신촌에 냉면 잘하는 집이 있어서 가끔 가는데 이곳은 한우전문 식당이다. 진짜 고급스런 음식인데 왕 비싸서 나름대로 주머니 두둑한 사람들이 회식하는 모습을 곧잘 본다. 옆자리에 7-8명이 앉아서 육사시미를 먹으며 술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하나만 여성. 20대 중반 정도. 나머지는 젊은 사람에서부터 아저씨까지 골고루. 분명 직장 회식. 호칭을 '선생' '부장' 따위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교사들 같았다. 공립교 교사들은 이렇게 비싼 데 오길 꺼리기도 하고 남성 비율이 월등한 것으로 보아 사립교 교사들임이 분명했다. 오가는 얘기라고는 듣기 민망한 연애 얘기 따위였는데 그들 눈에는 동료 여교사가 없는 듯했다. 아니면 그 사람 들으라고 더 뻥튀기며 얘기하나? 사립교에서 기간제 교사하는 그 친구도 거절하기 힘든 회식 자리에 불려다닌단다. 임용고시 보려면 공부도 해야 하는데...힘이 없으니 어쩔 수 있나...이렇게 포기하면서도 매번 괴로움과 후회로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면 여성으로서는 사립교는 지옥이다.

 

반면 짝꿍과 이 친구의 동기 녀석 하나는 사립교 선생인데 그 학교도 뭐 별로 분위기가 좋지는 못한가보다. 학교 생활을 썩 맘에 들어하지 않는 이 녀석은 내 짝꿍을 부러워한다. 임용고시 합격해서 공립학교 갔다고. 근데, 이 녀석은 임용고시 공부하기 싫어서 사립고 갔고, 그것은 남자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약간 도둑놈 심보가 보인다.

 

3.

 

내 짝꿍 옛동료는 애기 땜에 프리랜서가 되었다 했다. 학습지를 만드는 일은 그 과정 중 일부는 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그렇게 되었다. 일이 많은 철과 그렇지 못한 철 사이의 소득 차이는 불안의 원인이 되겠지만 애 키우는 입장에서 그나마 좋은 일거리일 수도 있다.

 

지난 일요일 밤 <위기의 주부들 2>에서 리네트가 겪는 일이 문득 생각난다. 리네트는 결혼 전 나름대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훌륭한 주부/엄마로 살고 싶어서 직장을 버리고 네 아이의 엄마로 살았다. 여기까지는 시즌1의 내용이다. 남편의 실직과 함께 다시 옛날의 커리어 우먼으로 돌아가 회사일을 한다. 여기에는 부부의 역할 바꾸기 합의도 있었다.

 

셋째 아들 파커가 엄마의 부재에 충격을 받아 엉뚱한 사람을 상상으로 만들어 내더니 유모라 한다. 엄마로서의 자존심도 상하고 경쟁심이 유독 많은 리네트로서는 두고보기 힘든 일이었다. 리네트는 회사일도 일찍 끝내려고 무지 애쓰며 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와 아이들에게 먼저 인사한다. 지난 회에서는 파커의 유치원 입학식에 가지 못해 안절부절했는데 결국 사무실에 웹캠을 설치해서 파커 곁에 있지 못함을 보상했다.

 

아빠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자주 출장을 갈 때는 아빠의 부재는 별일이 아니었다. 근데, 엄마가 출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는 이 난리다. 어린 아이를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유독 엄마만큼은 자기를 챙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어린 아이 때부터 머리와 심장에 새겨지는 건 좋아보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나레이터는, 일이 많아 늦게 들어와도 아빠는 죄책감이 없고 엄마는 죄책감을 갖는단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