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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9/05
    숙제하기 힘들다(6)
    말걸기
  2. 2006/09/05
    바탕화면용 이미지를 기다리시는 분들께
    말걸기
  3. 2006/09/04
    소나무 숲길로(2)
    말걸기
  4. 2006/09/04
    관악산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다(2)
    말걸기
  5. 2006/09/03
    첫 야경 사진에 도전하다
    말걸기
  6. 2006/09/03
    뚝섬 서울숲에 가다(6)
    말걸기
  7. 2006/09/02
    축포 한 방 쏜다(6)
    말걸기
  8. 2006/09/01
    민주노동당 선거를 보고 기억이 새록(9)
    말걸기

숙제하기 힘들다

 

6월말부터 여행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여행 사이엔 등산 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동호회 정기출사와 번개출사를 쫓아 가서도 찍고. 사진이 한 4,000장 쌓여 있다. 컴퓨터가 고장난 새 벌여놓은 일이라 한 번에 수습하려니 만만치 않다.

 

일단 눈에 띄는 것만 골라서 보정을 하고 있다. 보정은 사실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상의 디지털 아트를 하는 건 아니구. 사진 한 장 열어 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사진 속 피사체들이 부각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근데 왠지 어수룩.

 

 

예전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반쪽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었다. 사진은 필름에 감광이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상과 인화에서 다시 한번 찍힌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꿈은 집 한 구석에 암실을 만들어서 직접 현상과 인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흑백 사진일 수밖에 없지만, 명암만의 대비로 형태와 구도, 사람의 표정까지 잡아내기라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니 도전할 만한 예술의 영역이 아니던가.

 

하지만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암실을 만들만한 집에서 살지도 못할 뿐더러 암실에 갖출 장비 살 돈도 없었다. 그리고 필름값, 약품값, 인화지값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능력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돈은 없다. 디지털 기술이 필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필름 사진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돈이 없으니 필름 사진은 포기했다. 그리고 디지털 사진으로 개종했다.

 

개종의 기회는 사직과 함께 찾아왔다. 바로 퇴직금. 악착같이 받아낸 퇴직금의 반은 디카에 퍼부었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진을 찍고 있다. 필름 카메라라면 엄두도 못낼 양이다. 디카는 부담없이 셔터를 눌러댈 수 있지만(물론 그만큼 빨리 수명이 짧아지겠지만), 그 때문에 많은 양의 디지털 이미지를 남긴다. 그리고 막샷이 가능해서 촬영할 때 진중함을 쉽게 놓치지고 하고. 이게 결국 다 숙제로 남는다.

 

필름 사진은 현상과 인화로 완성한다. 디지털 사진의 보정은 현상과 인화에 해당한다. 컴퓨터가 암실의 역할을 하고 보정프로그램이 현상-인화 약품과 장비 역할을 한다. 보정을 하다보면 후회가 막심할 때가 자주 있다. 화면에서 놓쳐버린 게 보이기도 하고 촬영 셋팅의 실수도 보인다. 사진이 아주 엉망이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생 한 번 가볼까 하는 시베리아-몽골 땅에서 망친 사진은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그러면서 사진을 배우고 있다. 숙제가 숙제인 이유가 있는 게지.

 

 

장비의 무게가 항상 버거워서 여행을 다닐 때도 괴로웠고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도 매번 힘들었다. 그래도 찍는 즐거움이 있다. 게다가 숙제한다고 펼쳐놓은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 보는 것도 기쁨과 슬픔과 뿌듯함과 자책감을 선사한다.

 

후보정 작업에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어제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후 내내 앉아서 보정을 했다. 저녁 먹고 들어오니 피곤해서 잠이 쏟아졌는데 너무 일찍 자면 새벽에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졸음을 견디며 사진 보정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해 뜰 때까지 작업했다. 이런 일에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건 TV를 보거나 게임을 해서 밤을 새는 것보다는 생산적이긴 하다. 하지만 삶의 패턴은 건강치 않으니 오늘 아침도 파란꼬리한테 야단맞았다.

 

그래도 한 가지. 이렇게 정신없이 사진을 들여다 보니, 말걸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구나 깨닫는다.

 

9월 안에 숙제는 다 해야지.

 

 

○ 시베리아-몽골사진 3258컷

○ 관악산 등산 사진 79컷

○ 동호회 정기 출사 480컷

○ 그외 태국 똑딱이 이 만큼, 동호회 번개 출사도 남은 것 있고...

 

 

 

바탕화면용 이미지를 기다리시는 분들께

 

말걸기가 올 여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이 무척 많군요. 그 중에 볼만한 사진은 무척 적군요.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지라, 여행선물로 바탕화면용 이미지를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말걸기가 블로그에 하나둘씩 공개하는 사진 중 맘에 드시는 거 있으면 댓글에 '바탕화면용!'이라고 외쳐주세요. 바탕화면용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다만, 말걸기가 사진을 전부 정리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니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하겠습니다. 바탕화면용 이미지들은 한 번에 다 모아서 포스트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마 추석을 넘기진 않겠죠.

 

 

■ 알아두시면 좋은 일

 

ㅇ (가로 세로 비율) 블로그에 올리는, 바탕화면이 아닌 이미지들은 4 : 3 비율이 아니기 때문에 바탕화면으로 적당치 않습니다.

 

ㅇ (사이즈) 특별한 주문이 없으시면 1024×768 픽셀로 제작하겠습니다. 이 외의 사이즈가 필요하신 분은 '바탕화면용!'을 외치실 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이미지들은 긴면이 950 픽셀입니다.

 

ㅇ (주문) 편하게 주문하세요.

 

 

소나무 숲길로

 

바이칼 호수에는 바이칼을 닮은 섬이 있다. 알혼섬이다. 알혼섬의 중심지는 후쥐르 마을이다. 작은 마을이다. 한국으로 치면 면소재지 정로랄까. 이 평온한 마을은 섬의 서쪽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차를 타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알혼은 바이칼의 백미이며, 후쥐르에서 알혼 여행은 시작된다.

 

아래의 사진은 후쥐르 마을 남쪽의 소나무 숲길이다. 알혼에는 여기저기 방풍림마냥 소나무숲이 있다. 실제로 방풍림인지는 모르겠고. 바람에 모래 바닥이 쓸렸는지 거대한 뿌리를 내놓고 숲 입구 길가에 큰 소나무가 서 있다. '각'이 후쥐르에서 빌린 자전거를 끌고 후쥐르로 향하고 있다.

 

 

@ 06-07-03 18:58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0.0mm | 1/250s | f/5.6 | ISO 100

 

 

 

관악산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다

 

지난 8월 1일에 관악산엘 갔었다. 당에서 일하며 얽힌 인연들하고. 사당에 모여 연주대로 올라갔었는데 왜 이리 힘들던지. 무서운 곳도 많고. 올라가기만 힘든 게 아니라 내려오는 것도 괴롭던 길이었다. 등산 코스를 정한 백수광부와의 산행은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연주대에서 서울대 공대로 내려오던 능선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이다.

 

@ NIKON D200 | Nikkor 24-50mm F/3.3-4.5D | 24.0mm | 1/160s | f/11.0 | ISO 100

 

 

첫 야경 사진에 도전하다

 

사실은 어두운 밤에 사진을 찍어 봤다. 시베리아와 몽골에 가서 별을 찍었었다. 그리고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도 숲 속의 집을 찍어 보았다. 일본에서는 불꽃놀이를 찍었었고. 그런데, 불빛이 많고 스펙타클한 공간에서 야경은 처음이다.

 

소감은, '자리잡기부터 어렵다'이다. 야경도 풍경 사진이라 어느 자리에서 어는 각도로 찍을 것인가가 중요한 듯하다. 그냥 한갈의 다리가 보인다고 시진 찍을 만한 자리는 아닌 걸 알았다. 그리고 야경 사진에도 뭔가 '팁'이라는 게 있을 법한데 모르겠다.

 

아래의 첫 사진은 성수대교. 분명 흔들렸을 것이다. <서울숲>에서 강변까지 놓여 있는 다리 위에서 찍었는데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진동이 있었으니까. 두번째 사진은 해질녘 동호대교와 하늘이다. 파란 기운과 붉은 기운을 함께 찍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해질녘 분위기에 맞는 밝기는 어느 정도인지도.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20.0mm | 30s | f/29.0 | ISO 100

 

@ NIKON D200 | Sigma 10-20mm F4-5.6G | 10.0mm | 1/80s | f/8.0 | ISO 100

 

 

뚝섬 서울숲에 가다

 

뚝섬에는 <서울숲>이 있다. 말걸기는 이번에야 알았다. 어제 사진동호회 번개출사가 여기에서 있었거든. 넓은 공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부러움을 감출 수 없는 날이었다. 근데... 왜 이리 더워?

 

서울숲에는 출입을 제한하는 생태숲이 있는데 꽃사슴 등등이 살고 있다. 근데 그곳이 과연 야생 동물들이 살 수 있는 숲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꽤나 넓은, 혹은 잘 조성된 동물원 같다. 초식동물 사파리라고나 할까... 꽃사슴이 거기서 살 이유도 없는데 사람들을 위해서 가두어 놓았다면 슬픈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동물들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사람들이 해꼬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뿔이 도도해 보이는 사슴, 오리에 관심 갖는 사슴. 물을 마시는 사슴. 그리고 먹이를 찾는 듯한 새(백로인가? 뭐지?). 사진에 담아 왔다. 철조망 사이로, 숲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320s | f/2.8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180s | f/3.5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1500s | f/3.5 | ISO 100

 

@ NIKON D200 | Nikkor 105mm F2.8D | 105.0mm | 1/200s | f/3.5 | ISO 100

 

 

축포 한 방 쏜다

 

말걸기[제대로 바보가 되다] 에 관련된 글.

 

 

드디어 말걸기의 컴퓨터를 고쳤다. 시베리아-몽골 여행을 간 사이에 파란꼬리 손에서 멈춰버린 말걸기의 컴. 금요일 저녁 용산에서 들쳐업고 왔다. 이제까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다운받고 설치하고. 물론 다 된 건 아니지만 당장 사용할 건 준비해 두었다.

 

고친 컴퓨터로 여름 내내 찍었던 사진을 한 번 훑었다. 벌써 추억처럼 되어버린 시베리아와 몽골의 땅. 동경과 근교의 풍물들. 어쨌든 40GB가 넘는 사진을 손볼 일이 까마득하다. 대부분을 지워버리겠지만...

 

 

어쨌든, 컴을 고쳤으니 자축이나 함 해보자. 축포를 쏘자!

 

@ Nikon D200 / Nikor 24-50mm / ISO 100 / 50mm / F 9 / 8.50s

@ 동경 이타바시구 하나비(불꽃놀이)에서

 

축포가 너무 화려한가?

 

 

민주노동당 선거를 보고 기억이 새록

 

민주노동당 노동부문 최고위원은 선출되지 못하였다. 투표율 49. 63%. 말걸기에게는 민주노동당이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산된 기억이 없다. 그럼 초유의 사태였나?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블랙코미디였던 이번 선거는 말걸기의 오래 전 희미한 기억을 일깨운다.

 

 

97년 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하진 않다. 말걸기가 다니던 단과대학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총학선거나 다른 선거와 함께 하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재선거일 것이다. 선관위는 각 학과 학생회장 등으로 하여금 재선거에서 흔히 겪기 쉬운 투표율 올리기에 매진하였다.

 

당시는 대학의 학생회가 붕괴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전의 영화란 없었다. 학생회를 이끄는 자들에게는 학생회의 명맥 유지가 대단히 중요했다. 말걸기도 학생회가 여전히 '운동권'의 둥지였으면 했다. 하지만 어쩌랴! 붕괴하는 학생회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 그것도 원래 일정이 아닌 재선거에 유권자들의 절반 이상은 냉담했다. 대단히 각성한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들만의 잔치'에 애써 공들일 필요가 없으니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지. 투표 마감은 다가오는데 50%에 미치지 못하는 투표율...

 

 

대학엘 다니면서는 학생회 활동을 주욱 했었고 후배들의 활동도 도왔던 말걸기는 선거 진행에 관심이 많았다. 마지막 날 오후, 선거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던 단과대 안터(로비)에 나갔더니 과학생회장이 말걸기에게 말을 건다. 

"말걸기! 4학년이나 복학생 등등 중에 휴학생이나 뭐 그런 사람 없어? 여기 명부에서 찾아 줄래?"

 

 "얘도 휴학했고, 쟤도 휴학했는데... 근데 왜?"

 

"선거 정족수에서 빼려고. 투표율이 50%가 되지 않을 것 같거든."

 

"잉? 그런 게 어딨어. 선거하기 전에 선거인명부는 확정하는 거 아냐? 지금 빼면 안되지."

투표 시간은 종료되었다. 언제나처럼 개표는 계단식 강의실에서 공개했다. 말걸기도 주루루 쫓아 들어갔다. 두 개의 선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양 선본의 운동원들과 후보들, 선관위 구성원들이 다수였다. 그리고 말걸기 같이 여기저기서 찾아온 학생회 활동가들. 선관위는 각 학과 학생회장 등의 도움을 얻어 선거인명부에서 휴학생 등을 골라내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을 유권자 총수에서 제외했단다. 근거를 설명했다. 학년초라 학생처에서 받아온 명부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단다. 그러니 뺄 수 있단다.

 

띠~용~ 이럴수가! 말걸기는 당시만 해도 제 눈에 벗어나는 건 절대 못보는 작자라서 손 번쩍 들고 발언을 했다. 그럼 안되지!  선거인 명부는 선거 전에 수정했어야지. 그때도 충분히 할 수 있었잖아. 그때 안해 놓고 투표율 땜에 지금 하면 안되지! 선거 무효!

 

거의 말걸기가 혼자 개기는 분위기였는데, 말걸기가 계속 개표 진행을 방해하자 다들 혐오와 짜증이 섞인 눈초리로 말걸기를 쏘아붙였다. 쪽수가 안되면 져야지 뭐.

 

당선자는 가려졌고 뒷풀이가 열렸다. 두 선본의 뒷풀이 중 좌파 계열 연합 후보의 뒷풀이 장소엘 쫓아 갔다. 거기에 아는 녀석들도 많고, 무엇보다 NL이 다굴한 뒷풀이엘 가면 끈적여서 못 버티니... 하여튼 뒤풀이 장소에 선관위원장도 있었다. 선관위원장은 95학번으로 당시 영문과 학생회장이었다. 현 사회당의 조직 기반이었던 '공동체 학생연대'의 조직원이었다. 술을 한참 마시더니 선거인명부 조작이 그래도 맘이 걸렸나 보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 선거인 명부를 조작한 사실을 인정한다거나 선거가 무산되면 자기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다나 어쩐다나... 허거덕. @.@'

 

'저것이 몇이나 처먹었다고 벌써 정치적 생명 따위나 운운하고 지랄이야. 씨발, 운동권 다 썩었다 썩었어!' 나이 먹으면 이 상황에서 정치적 생명 운운해도 되나? 역시 이런 점에서 말걸기도 모자랐던 시절. 그 자리에서 선관위원장과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얼굴 익고 잘 아는 후배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제발 선거 결과를 뒤집어라. 그 중 하나가 선관위원장과 같은 조직원이었던, 나름대로 믿음이 가는 후배였다.

 

다음날 선거 결과 공고가 붙었다. ㅇㅇㅇ과 ㅇㅇㅇ이 각각 정회장,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공고. 조직 라인도 없는 말걸기는 어디 가서 쪽수 모으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세상이 망해가는구나 한탄만 하였다. 그런데 그 날, 어쩌면 다음 날. 믿음을 갖고 있던 '공동체 학생연대'의 그 후배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말걸기가 선거 결과에 문제제기하는 자보를 붙일 줄 알았다. 그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퍽! 퍽! 퍽! 우당당탕! @.@~

 

이런 개새끼들이 다 있나. 지네 조직원이 책임지고 있던 선거관리가 개판 되었는데 자기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직의 힘을 동원해서라도 선거결과에 문제제기를 해야지, 왜 빽도 조직도 없는 말걸기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그래! 하지만 비겁했던 건 '공동체 학생연대'만이 아니었다. 학생회를 장악한 NL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고 대장정이나 21세기 진학련도 마찬가지였다.

 

아, 줄 없는 활동가의 비애여!

아니다. 말걸기는 줄 없이 살래...

 

 

선거는 선출을 위한 절차다. 그런데 어떤 선거는 투표율 규정 때문에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선출을 위해 선거를 치렀는데 선출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10여 년 전 말걸기가 겪었던 선거는 원래 선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거였다. 그런데 운동권들이 장난쳐서 억지로 달성시켰다. 그러니 학생회가 망하지. 절차에 충실한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내용적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운동권의 독선과 오만을 관철시키고자 한 짓이었다. 그러니 외면당하고 그래서 투표율은 낮아지고, 그 때문에 또 억지를 부리고. 운동권의 악순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싹이 트고 있었다.

 

8월 31일에는 민주노동당이 장난칠 기미를 보였다. 사실 두번째 투표 연장은 꽤나 편법적으로 보인다. 그래도 0.38% 미달로 억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민주노동당 노동부문 최고위원 선거 결과는, ①어처구니 없는 이영희의 컴백, ②이영희를 추천한 현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만, ③민주노총 지도부가 사람 심는 노동부문 최고위원 제도의 부당, ④점점 한심해지는 민주노동당의 작태에 대한 당원들의 심판이거나, 그에 따른 무관심의 표출이다.

 

위의 네 가지 평가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이해하는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율 넘기기 위한 당, 혹은 선관위의 노력이 미진했다는 한심한 평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말걸기는 (근거는 없지만) 이덕우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몇몇 선관위원들의 의중은 이를 의식하고 있었던 걸고 믿고 있다. 매끄럽지 못하여 항의를 받는 한이 있어도 돈 발라쳐 전화 돌리고 6시간 연장하는 따위의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라고 50%를 넘길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도박이긴 해도.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압력, 당 지도부의 협박도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지도부(혹은 그 중 일부)는 선거관리의 미숙함으로 인해 투표율이 50%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해서는 안된다. 그런 소리 하는 새끼는 진짜 나쁜 새끼다. 악당에 불한당에 양아치다.

 

중요한 건 선거 평가를 제대로 해서 현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만함에 경고를 주고, 그리고 노동부문 최고위원 제도의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당의 일반적인 선거 내지는 투표 제도의 문제점도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