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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9/03/04
    내일이면...(7)
    말걸기

홍아에게 생색내기 - 모빌

 

아가를 돌보는 일에 있어서는 균등한 배분이란 없다. 모유를 먹인다면 무조건 엄마가 더 힘들다. 결국 아빠 되는 처지에 있는 자는 젖 먹이는 일을 쫓아 별별 일을 찾아 해내야 한다.

 

파란꼬리가 홍아를 위한 아이디어를 착착 찾아내는 사이, 겔뱅 말걸기는 꾸역꾸역 집안 일을 하고 있다. 파란꼬리가 홍아를 위한 작업의 구상을 내놓으면 말걸기는 그 구상을 구현한다.

 

파란꼬리는 흑백 모빌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말걸기더러 만들라고 했다. 말걸기는 짬짬이, 그리고 천천히 흑백모빌을 완성했다. 홍아가 모빌을 처음 보고서는 관심을 가졌다.

 

 

이 사진은 일종의 증명을 위한 기록사진이다. 솔직히 아가 입장에서는 입는 옷을 삶는 사람이 누군지, 모빌 따위를 만들어 재미를 주는 자가 누구인지 알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알게 하려고 찍어 두었다.

 

 

홍아 앞니

 

3주된 아기에게 앞니가?

어제(26일) 파란꼬리가 갑자기 홍아에게 앞니가 났다고 소리쳤다. 깜짝 놀라 달려갔더니...

 

 

젖을 빨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입술에 물집이 잡혔더랬다. 아프겠다 싶은데 홍아는 개의치 않고 젖을 잘도 빨았다. 물집은 굳은살로 바뀌었고 어제 껍질 벗듯이 떨어졌다.

 

근데, 이 표정은 뭐냐?

 

*****

 

어제는 홍아가 만 3주가 된 날이라 BCG 예방접종 맞으러 소아과엘 다녀왔다. 7만 원이나 하는 주사에 홍아는 잠시 찡찡 거렸지만 금새 그쳤다. 소아과를 찾은 어떤 아기 엄마는 홍아더러 참 순하다고 한다. 홍아 몸속에 있을 인공 결핵균은 아직 별 활동이 없는 듯, 홍아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

 

홍아에겐 첫 나들이(?)였다. 홍아는, 하루님이 선사해 주신 카시트에 누워 외출을 즐겼다. 어째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조용하다. 잠시 신호대기로 설 때면 살짝 달래야 했다. 홍아를 태우고 운전하느라 카시트에 누운 홍아를 사진에 담지는 못하였다. 외출 직전 모자를 쓴 홍아이다.

 

 

외출을 앞둔 홍아가 파란꼬리에게 뭐라고 한다.

 

 

"우리는 무적의..."

 

"우리는 무적의 가제수건 부대다."

 

 

 

 

 

"우리는 무적의 가제수건 부대다.

아가의 목구멍을 타고 넘치는 젖도,

볼기짝에 눌러붙은 똥도 오줌도 두렵지 않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아가의 살결을 빛내는, 무적의 가제수건 부대다."

 

 

 

가제 수건을 매일매일 삶는다. 아가가 태어나기 전에 이래 저래, 여기 저기서 받은 가제 수건이 서른 장 정도인데 어느 날은 하루에 스무 장을 넘게 썼다. 아무래도 50장은 있어야 맘 편히 쓰겠다. 진경맘은 기저귀 발진 때문에 기저귀 안에 덧대는 데에도 가제 수건을 썼다는데, 그렇게까지 하려면 50장도 여유롭진 못할 것 같다.

 

출산 전에 어딜 가든 가제 수건 준비하라는 소릴 빠짐 없이 들었는데 별 데 쓰니 그럴만하다. 그리고 아가와 엄가가 다녀간 곳에는 가제수건이 남겨진 걸 많이 목격하곤 했는데, 이렇게 많으니 하나둘 쯤 흘리고 다닌다고 문제될 것도 없겠더라.

 

 

'부대'라는 말 좋아하진 않는데 그냥 흉내 내보느라 써봤다.

 

 

출생신고

 

홍아 태어난 지 14일 째가 된 지난 18일(수)에 출생 신고를 하였다. 병원에서 발행한 출생증명서 한 장 딸랑 동사무소에 들고 가서 출생 신고 양식에 끄적 대었더니 한 명의 대한민국민이 생겨났다.

 

 

홍아의 국가등록명은 결국 말걸기가 지은 이름이 되었다. 홍아의 할머니가 말걸기를 데리고 '백운선생'을 찾았는데, 작명가가 그 이름이 너무 좋다 하여 홍아의 할머니가 지어주고자 했던 이름과의 경쟁은 그 자리에서 끝냈다.

 

작명소에 다녀온 후 몇 일을 두고 생각해 보았지만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가를 돌보는 데에 지쳐 있어서 파란꼬리도 더 이상 떠오르는 게 없다 했다. 좋은 이름이라 생각해서 지어주었는데 막상 출생 신고를 하려니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출생 신고를 할 때 말걸기 성씨의 본과 파란꼬리 이름, 파란꼬리 성씨의 본을 모두 한자로 적어야 했는데 하도 한자와 멀리 산 세월이 길다 보니 제대로 기억을 못했다. 동사무소 직원이 한자 정도는 조회해 줄 터이니 다른 칸을 채우라 했다. 왠지 창피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여느 업무와는 달리 무척 신중하고 꼼꼼하게 출생 신고를 처리했다. 사람은 병원이 아니라 그곳에서 태어나는 듯했다.

 

홍아 출생 신고를 했더니 주민등록등본에 홍아 이름이 찍혀 나온다. 가족관계증명서에도 생겨났을 터이다. 그리고 홍아에게 '주민번호'가 발급되었다.

 

주민번호... 아이가 태어났다고 국가에 신고했더니 처음 주는 것이라고는 평생 따라다니며, 언제나 실존을 증명할 때마다 튀어나올 강력한 숫자 13 자리이다. 이 땅에 태어났으니 이제 다 자랄 동안 의료와 교육은 국가가 모두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도 못해주고, 심지어 예방 접종을 공짜로 못 해주는 국가가 꼬리표나 붙인다. 서글픈 일이다.

 

출생 신고를 하니 홍아도 속박의 그늘을 피할 수 없는 현세의 인간이 된 듯하다. 살아가면서 별별 불쾌한 경험을 하겠지만 적절히 견뎌내길 바랄 뿐이다. 말걸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말걸기가 국가에게 홍아가 태어났다고 일러바친 날, 홍아는 여전히 파란꼬리 품에서 젖을 빨았고 기저귀 차림으로 몸부림도 쳤다.


 

 

 

홍아 9일째

 

홍아가 태어나 9일째를 맞이했다.

얼굴이 조금씩 달라진다. 더 예뻐지고 있다.

오늘에야 처음으로 여자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꼬리는 진작부터 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지만...

 

 

홍아가 입는 옷들은 분명 신생아용이라고 했는데 다들 몸에 비해 크다.

오른팔을 꿈틀꿈틀 움직여서 목 구멍으로 내놓는다. 탈출 마술의 재능을 보이고 있다.

 

 

가끔씩 홍아 발도 튀어 나온다.

젖을 빨고 있는 홍아의 발이다.

뭔가 쥐고 있는 듯하다.

 

 

 

* 어도비가 PS CS3에서 5D Mark Ⅱ RAW를 다룰 수 있는 ACR을 제작하지 않았다. CS4에서나 작동한다. 상위 기종의 DSLR은 CS4만 사용하라는 거냐, 이 어도비야! 넘한다. >.< jpg로는 색맞추기도 힘든데 말이지...

 

 

 

 

홍아의 얼굴과 이름

 

홍아 얼굴을 공개한다. 태어난 지 6시간 30분 만의 얼굴이다. 자고 있다.

 

탄생 10여 분 만의 사진은 공개할 수 없다. 외국의 한 사진가는 어린 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찍은 사진을 작품으로 발표했는데 그 때문에 딸에게 소송당했다. 결과는 아직 모르겠고...

 

 

직접 볼 때는 그래도 이쁘장 했는데 사진에서는 성깔 있어 보이네... 뿌연 유리창과 고감도 촬영으로 실물에 비해서는 사진이 영...

 

 

 

홍아의 이름으로 생각해 둔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지후'였는데 꽃남 때문에 후보에서 버렸다. 또 하나 이유는, 후보작으로 떠올릴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이름은 홍아의 두 사촌언니 이름에서 한 자씩 따 온 이름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홍아의 이름 후보작은 셋이다. 아주 가까운 몇의 지목한 경쟁력 순이다.

 

○ 수안

○ 시윤

○ 태리

 

'수안'과 '태리'는 말걸기가 내놓은 후보작이다. 성씨와 함께 붙였을 때 발음이 쉽고 어감이 좋은 이름을 찾고 있었다. 흔한 것도 싫고 지나치게 예쁜 척하는 이름도 싫다. 튀지 않으면서도 별로 없는 이름이 좋다. '수안'은 이리 저리 음을 조합하다가 떠올린 후보작이고 '태리'는 말걸기의 누나의 친구 이름이라 생각이 났다.

 

'시윤'은 말걸기의 엄니의 후보작이다. 이름에 파란꼬리의 성씨의 한자를 넣을 수는 없으나 발음이 같은 글자가 들어가는 것도 좋단다. 파란꼬리가 혹한다. 말걸기는 엄니와 경쟁하게 생겼다.

 

 

홍아 첫날

 

홍아가 태어난 첫날.

 

 

○ 2009년 3월 5일 목요일 08시 58분 탄생. 己丑年 二月 九日 辰時 生.

 

○ 3.18kg, 50cm.

 

○ 새벽에 일어나서 7시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했다. 파란꼬리가 병원에서 지낼 준비물과 홍아를 위한 몇 가지 옷가지들. 그 시각에 벌써 말걸기의 엄니는 입원실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고. 도착하자마자 맨먼저 수술, 홍아 처방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했다.

 

○ 8시가 되기 전에 수술실로 내려가 파란꼬리는 수술 준비를 했다. 밖에서 말걸기와 엄니는 홍아 키우는 얘기를 나누었다. 수술을 위한 마취 직전에 파란꼬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밝은 미소와 함께 설레임을 나눈 파란꼬리.

 

○ 얼마 후 간호사의 안내로 말걸기는 수술실에 입장했다. 입장 전에 수술 가운, 마스크, 모자를 착용했고  TV에서나 보던 손 세척을 하였다. 그때 수술실 안에서는 파란꼬리의 작은 비명이 들렸다. 마취가 덜 된 모양인지...

 

○ 수술실에 입장해서 누워 있는 파란꼬리의 오른편에 앉아 손을 잡았다. 의사, 간호사 셋이 파란꼬리의 불룩한 배 주위를 둘러섰고 파란꼬리 머리맡에는 마취과 의사가 서 있었다.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집도의인 병원 원장께서 잠시 기도를 하고...

 

○ 칼이 배를 가르는 순간 파란꼬리는 비명을 질렀다. 마취가 제 때 역할을 못한 것. 마취과 의사는 마취약을 조금씩 늘렸지만 파란꼬리는 계속 아프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며. 손을 꼭 쥐었지만 계속...

 

○ 마취과 의사는 파란꼬리가 잠들게 했고, 결국 파란꼬리는 태어난 장소인 병원 수술실에서 홍아를 보지 못했다. 의사 옆구리 사이로 파란꼬리의 배가 살짝 보였고 절개된 배 단면도 조금 눈에 들어왔지만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진 못했다. 아파하는 파란꼬리 손을 주무르며 얼굴만 쳐다 보았다. 제발 아무일 없길.

 

○ 집도의는 아가를 꺼냈는데 홍아는 잠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눕힌 모양이다. 집도의는 홍아를 꺼낸 후에도 파란꼬리의 뱃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훑고 있었다. 태반 덩어리를 꺼냈다.

 

○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잠든 파란꼬리 곁을 떠나 홍아에게로 갔다. 간호사와 함께 홍아를,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로 옮겼다. 불편한지 운다. 머리를 바치니 울퉁불퉁한 홍아의 뒤통수가 느껴진다. 따뜻하다. 피부는 선홍빛이 도는 회색이었다. 온 몸에 노란색 물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양수인가? 양수 속에 있는, 홍아와 39주를 보낸 그 무엇이겠지.

 

○ 몸은 가늘고 길어 보였다. 홍아 머리맡에서 얼굴을 바라보니 얼굴을 잘 볼 수는 없었다. 따뜻한 욕조 안에서 홍아는 울음 멈추었다. 기분이 좋은지 살짝 미소 짓는 것 같기도 하고. 탯줄은 아직 30cm 정도 붙어 있었다. 배 쪽으로는 20cm 정도 길이에 굵고 속이 꽉찬 탯줄이 가위가 집힌 쪽으로는 속이 빈 채 하얬다.  간호사가 굵은 탯줄과 하얀 탯줄 경계를 또 하나의 가위로 집더니 그 사이를 자르라고 했다. 자연분만할 때는 아가의 아빠가 엄마 몸에 붙은 탯줄을 직접 자르게 하지만 제왕절개에서는 이렇게 '의식'으로 대신한단다. 가위 끝에 질긴 탯줄이 느껴졌다.

 

○ 파란꼬리와 홍아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 직전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몇 시에 태어났는지를 확인하는 대화를 들었다. 잠시 후에 홍아가 침대에 누운 채 나왔다. 신생아실로 옮겨져서 씻기기 전이었다. 홍아의 할머니와 말걸기는 울고 있는 홍아를 잠시 만났고 사진도 찍었다. 변화한 환경이 서러운가 보다. 간호사는 홍아를 달래지 않았는데 갓 태어나서는 울면서 폐가 확장된다 하여 한동안은 울게 둔다고 한다.

 

○ 홍아의 사진은 홍아가 태어난지 10여 분 만이었다. 홍아의 피부는 좀 더 분홍빛에 가까와졌다. 두 컷 찍었는데 이 사진을 공개하면 훗날 홍아가 말걸기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지도 모르겠다. 두고서 홍아에게 주자.

 

○ 얼마가 지났는지 수술은 끝난 모양이다. 파란꼬리는 회복실에 있다는데 별 얘기가 없다. 파란꼬리도 홍아도 건강하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회복실 간호사를 호출했더니 수술 후 출혈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므로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 꽤 기다렸더니 파란꼬리가 어느 정도 회복된 모양이었다. 말걸기와 홍아의 할머니가 번갈아 가며 파란꼬리를 면회했다. 말걸기가 면회할 때 파란꼬리는 홍아를 처음 보았다. 이쁘다며 좋아라 한다. 근데 둘 다 닮지 않아 보여 누구를 닮았을까 우리는 궁금해 했다. 홍아에게 젖을 물렸더니 냉큼 빨아댄다. 아무것도 나올리 없으니 조금 후엔 포기했다.

 

○ 홍아의 할머니는 말걸기를 데리고 밥을 먹였고 말걸기는 큰일을 치른 흔적도 없이 잘도 먹었다. 입맛도 없었는데 밥이 뱃속으로 잘도 들어갔다. 홍아의 할머니는 세번째 손녀라서 그런지 크게 긴장도 하지 않으셨고 아가가 당신을 닮았다며 무척이나 좋아라 하신다.

 

○ 식사 후에 도로 수술실 앞으로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홍아의 할머니는 주로 홍아 키우는 문제를 얘기하셨다. 아이는 어떻게 길러야 한다 따위는 결코 아니다. 홍아의 할머니는 그런 걸로 아들래미와 며느리에게 간섭하시지는 않는다. 육아의 일을 홍아의 할머니가 상당히 부담하실 수 있으니 어찌어찌 하는 게 좋겠다는 것. 지금 키우고 있는 조카 사진도 일별해 주시면 아기가 어떻게 이뻐지는지도 핸드폰으로 보여주신다. 직접 키우는 조카에게 정이 많이 가듯 홍아에게도 정을 듬뿍 주시고 싶은 모양이다.

 

○ 병실이 정리되었다 하여 12경에 모두 병실로 올라갔다. 파란꼬리를 침사에 눕히는 간호사를 도와주고 잠시 자리를 피했다. 간호사가 무슨 처치를 하는 모양이다. 파란꼬리는 여전히 힘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웃는데 이쁘다.

 

○ 홍아의 할머니는 홍아의 사촌언니를 돌보러 다시 댁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잠시 홍아를 만났다. 홍아는 졸린지 하품하면서 칭얼거린다. 자주 보러 올 건 아닌 모양이다. 병실에서 파란꼬리와 둘이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말걸기는 왜 이리 피곤한지 파란꼬리의 다리도 몇 번 주무르지 못하고 한 시간 가량 파란꼬리 침대 옆 바닥에서 잠을 잤다.

 

○ 파란꼬리의 부모님께서 대전에서 올라오셨다. 3시 경 화정터미널에 가서 모시고 왔다. 파란꼬리와 홍아를 위한 선물도 한 가득 챙겨오셨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파란꼬리의 동생도 와 있었다. 세 분 모시고 신생아실로 가서 홍아를 잠깐 보았다. 잘 졸고 있었다. 이제 아가 피부색이다.

 

○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파란꼬리를 옆에 뉘어 놓고 대전에서 싸온 음식을 먹었다. 또 잘도 먹힌다. 그런데 너무 힘들다. 파란꼬리의 엄니께서 싸오신 물건을 자동차에 싣고 혼자 집으로 왔다. 그런데 가방을 병원에 두고 와서 열쇠가 없었다. 다시 병원에 가서 가방을 가지고 돌아왔다.

 

○ 이것저것 할 것도 많지만 제대로 한 것 없시 몇 시간 퍼져 있었다. 홍아 첫날밤 파란꼬리와 함께 있게되지 않은 건 조금 미안하다. 아침에 밥을 해서 병실로 가져가야 한다. 파란꼬리의 부모님께서 드실 식사. 예상치 못한 몇 가지 물건도 챙겨야 한다. 여전히 몸은 힘들다. 파란꼬리 만큼은 아니겠지만 괴롭다.

 

○ 홍아보다는 파란꼬리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파란꼬리가 더 많이 생각난다. 홍아도 생각나는 데 실감이 나질 않는다. 꿈 꿨나 싶다. 집은 조용하고 파란꼬리도 없는 걸 보아 꿈은 아닌 듯한다.

 

 

 

※ 2009년 3월 24일. 잘못된 기억이 있어 고쳤다. 기억은 여럿이서 기억해야 한다.

 

 

내일이면...

 

내일이면 홍아를 만난다.

 

파란꼬리는 홍아를 39주 동안 배 속에 넣고 있었으니 많이 친숙해져 있을 터인데 말걸기는 그렇지 못하다. 뻘쭘하고 쑥스러운 만남이 될지도 모르겠다. 홍아에게 자극이 될까봐 조심한답시고 자주 쓰다듬어 주지도 못했다. 그래도 파란꼬리와 수다는 무척 떨었으니, 손길의 감촉은 몰라도 말걸기의 목소리는 알아 듣겠지.

 

 

임신을 노력했던 시절까지 합한다면 불안과 초조의 시간은 2년이다. 임신을 성공하지 못한다면 입양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차에 어렵게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처음 홍아가 생겼을 때는 주수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아서 유산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다. 수주 동안 조마조마 마음 졸이며 지냈더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홍아가 파란꼬리의 뱃속에서 커갈수록 홍아의 존재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홍아도 한 생명인데 스스로 성장하려는 본능이 있지 않겠는가. 인간도 그 오랜 세월 진화하면서 안전한 임신 상태를 대물림했을 터이다. 임신 개월수가 늘어나니 파란꼬리도 기운을 차렸고 우리는 슬쩍슬쩍 잘도 놀았다.

 

어느 시점을 지나자 임신의 불안은 파란꼬리와 홍아의 의학적 상태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파란꼬리의 배가 티나게 불룩 솟기 전에는 지나치는 사람들이 임신 사실을 알 턱이 없으니 길을 걸어도 불안했다. 서비스 정신이 제로에 가까운 일산의 버스들을 타고 다닐 때는 난폭 운전 때문에 언제나 긴장을 했다. 태어날 생명은 뱃속에서 나름 알아서 잘 크니 스스로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위협은 언제나 문명에 있다.

 

 

올해가 시작할 때 쯤, 홍아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버릇대로 머릿속으로만 말이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2월이 되어서야 계획을 위한 계획을 수립했고 그것도 느지막이 수행했다. 결국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홍아를 맞이하기 위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홍아에게 방을 하나 주어야 하니 그 방에 있었던 파란꼬리와 말걸기의 옷가지와 물건들을 꺼내 다른 방들로 옮겨야 했고 그 방들의 물건들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연쇄 작업을 해야 했다. 집이 40평 정도라면야 대충 구겨 넣으면 되겠지만 20평 대 아파트니 쓰지 않는 물건들은 버려야 했다. 옷이라고는 거의 사 입지 않고 얻어 입는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리어카 하나 분량의 옷을 버렸다. 물론 재활용품으로.

 

말걸기는30여 년의 과거의 족적들을 아주 약간만 남겨두고 죄다 버렸다. 옷이야 얻어 온 것이니 별 거 아니지만 과거를 버린 것 같아 기분이 좋진 못하다. 아주 잠시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족적을 남기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파란꼬리는 대학시절의 10분의 1만 하고 살라고 한다.

 

홍아 덕에 이번 기회에 사료들도 버렸다. 싸구려 사료일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기록, 보관해야 할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걸기 책임은 아니니 그냥 내다 버렸다. 기록 관리가 중요하다고 6년을 떠들어 봐야 콧방귀도 뀌지 않는 운동권 조직들의 임무를 말걸기가 부담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얼마 전에 컴퓨터 업그레이드 하면서 실수로 수 GB의 자료들을 날렸는데 말걸기 돈 들여서 복구할 책임을 못 느껴서 그냥 생깠더랬다.

 

 

이제 새 역사는 홍아와 함께 시작할 모양이다. 어쨌거나 과거는 상당히 털어버렸으니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운명이 도래했나 보다. 홍아를 만난다니 설렘도 있지만 생활이 아주 달라질 터라 두려움과 불만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내일은 정신없이 지날 것이고 차차 새로운 생활에 익숙지자.

 

내일은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밥 먹고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경칩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