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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는 남자 하나가 내게 전화를 했다.
그 남자가 내게 말했다.
"네가 결혼제도를 반대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전화를 받고 있는 쪽 손이 조금 떨렸다. 그 남자는 나랑 친구라는 관계에 있다. 결혼식에 와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 누구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는다고, 그래서 너의 결혼식에서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
그 남자가 말이 없다. 나는 그냥 간다고 거짓말을 할까 잠깐 생각했다. 그 남자를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스쳤지만, 여기서 물러나 버리면, 그 남자가 내게 전화를 다시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때마다 마음이 쓰일 것이다. 그 남자에게 가져서는 안 될 '미안한 마음' 같은 게 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용기를 내서 그 남자가 하려는 이야기를 더 듣기로 마음 먹었다.
"뭐라고?"
"결혼제도를 반대하는 것과 내 결혼식에 오지 못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냐?"
"......"
"와서 축가를 불러주면 좋겠다"
나는 이 부분에서 약간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결혼제도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나한테 결혼식에 와서, 그 남자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네가 나와의 관계를 그렇게나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식에 가지도 않을 뿐더러, 축하할만한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어떻게 축가를 불러 줄 수는 있겠는가?"
"......."
"그럼 피로연에라도 와라."
그 남자는 고집을 피우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 남자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는 거절하기가 훨씬 쉽다. 그리고 내가 그 남자의 결혼식에 가지 않는 또다른 이유를 말하기도 훨씬 수월해진다.
"나는 피로연에 가지 않는다. 그 곳에 가면 너의 친구들이면서 동시에, 성폭력 가해자인 자들과 분명 대면하게 될 것이고 그럼 나는 화가 날 것이다. 네가 나를 초대하는 이유가 행복한 순간을 나누기 위함이라면, 네가 아무리 행복한 날이어도 나에겐 그렇지 않을 것이다. 너의 행복 따위는 나의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나는 가차 없이 그 자리를 전쟁터로 만들 것이다. 나는 그들과 마무리짓지 못한 싸움을 끝낼 것이다.그래도 좋은가?"
그 남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사실 그 남자의 침묵은 익숙하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 때문에 언제나 모욕을 느낀다.
"모두들 너를 궁금해하고 있다"
그 남자는 항상 나와의 대화 끝에, 나도 잘 모르는 '모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중에 추론해 본 결과 그 '모두'는 바로 그 남자의 친구들이면서 동시에 나의 성폭력 가해자인 그들을 지칭하는 듯 했다. 나는 그 '모두들' 이 궁금할 리가 없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너에게 두 번 정도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다고. "
" .........."
또 익숙한 그 남자의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이 마지막 침묵을 견디기만 하면 된다.
" 그럼 결혼식 끝나고 보자, 집에서 보자"
그 남자와의 전화통화가 끝나고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격렬하게 웃었다.
그 남자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 다시 비슷한 내용으로 전화를 걸 것이다.
"모두들 널 궁금해 한다. 왜 이렇게 안 보이는 거냐?"
이것이 사라진 여성들의 전모이며, 이것이 진정 웃을 만한 일이다.
정말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이렇게 진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진부한 이야기의 주이공이 나라는 사실이 정말 웃기지 않은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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