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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을 조금 높여보세요. 그룹 새벽의 '떠나는 그대를 위하여'가 흘러나옵니다. <편집자 주> |
"쟤만 없으면 돼." 노래를 부르다 말고 임정현씨가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남색 조끼를 입은 구자우씨였다. 신발은 등산화같았다. 임정현씨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산에서 딱 막걸리 한 잔 하고 내려온 거 같잖아." 다들 왁자지껄 웃었다. 구자우씨가 아무 말 없이 조끼를 벗었다. 노래가 다시 시작했다. "아름다운 가을하늘 난 보고 싶었는데, 이제 난 구름되어 가을 하늘에 떠있네…." 무사히 한 곡이 끝났다. 구경하던 이들이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끝나자 임정현씨가 말했다. "너무 심각해." 다른 이도 말했다. "노래가 심각해." 조이한씨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임정현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우린 눈 마주치며 하고 그랬어." 그리고 둘이 '다정한 눈빛 교환'을 실연해 보였다. 다들 애들처럼 까르르 웃었다. 한쪽에선 그 틈을 빌어 기타를 뜯었다. 40대가 아니라 20대로 돌아간 듯 했다. 노래 모임 <새벽>, 혹시 내가 들리나요? 1980년대 민중가요를 달구었던 노래모임 <새벽>이 돌아왔다. 13년 만이다. 김광석, 안치환, 윤선애가 다 노래모임 <새벽> 출신이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도 이들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새벽>은 1993년 해체했다. '러시아에 관한 명상'이 마지막 공연이었다. 각자 일터로 돌아가고 유학을 떠났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선언', '저 평등의 땅에', '그날이 오면'…. 그들이 부른 노래는 전설로 남았다. 다른 일터에서 시위 현장에서 누구나 불렀다. 그리고 또 잊혀졌다. <새벽>은 전설로만 남았다. 83·84·85학번이던 그들이 20대 때였다. 그들이 이제 훌쩍 마흔이 넘었다. 40대가 되어 다시 모였다. 오는 28일과 29일 백암아트홀에서다. '혹시 내가 들리나요? - 사랑, 노래 15'란 제목으로 노래모임 <새벽>이 다시 무대에 선다. "반 정도는 음악을 계속 했어요. 반 정도는 회사를 다니고. 그런데 가끔 만나 술 먹다보면 손톱을 기르고 있는 거예요." 이 공연을 주동한 성악가 임정현씨가 말했다. 그가 이태리로 폴란드로 유학을 다녀온 뒤였다. 다들 사느라 바빴다. 애들도 하나 둘 씩 있었다. 성악가, 미술사가, 작곡가, 연극배우, 게임 프로그래머, 일반 회사원까지. 직업도 다양했다. 그 때 그 시절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불러 유명했던 윤선애씨는 입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우리 전통음악 정가를 공부하는 한편으로. 그런데 40대 아저씨들이 손톱을 길게 기른다는 게 가리키는 건 분명했다. 기타를 친다는 거였다. 이들은 기타를 피크로 치지 않았다. 손톱으로 쳤다. 그래서 예전에도 기타를 치기 위해 손톱을 길렀댔다. 임정현씨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 지금도 기타 치냐?" 물으니 "왜 안 쳐요? 기타를 쳤는데?"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죠. '야. 쟤들이 칼을 갈고 있었구나.' 회사원, 성악가, 프로그래머, 학원 강사... 그들은 계속 손톱을 길렀다
어느 날 그가 임정현씨에게 말했다. "형, <새벽> 공연을 우리 극장에서 하고 싶은데, 형이 한 번 불러 모을 수 있나?" 생각해보니 재밌을 거 같았다. 임정현씨가 말했다. "어?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총대 매볼께." 임정현씨는 부랴부랴 <새벽> 멤버들을 만났다. 만나서 공연 이야길 했다. 같이 하자고 했다. 반은 반응했다. "재밌겠다" 그렇게 모였다. 백암아트홀이 기획했고 공연장을 내놨다. 그런데 무슨 노래를 부르지? 그렇다고 10여년 전에 부르던 곡을 회상하듯 부르긴 싫었다. 7080 콘서트 같은 걸 회고조로 하긴 싫었다. 신곡을 만들기로 했다. 지금 40대로 사는 감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들 40대가 된 <새벽>의 노래를 하자고 했다. "넌 예전처럼 작곡해." "넌 가사 쓰고." 서로 '납기일'을 정했다. 잘 될까? 걱정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납기일에 맞춰 시가 나왔다. 곡이 나왔다. 곡들도 이뻤다. 예전 <새벽>과 달랐다. 색깔도 여럿이었다. 재밌었다. 그렇게 만든 창작곡 12곡을 이번에 부르기로 했다. 6곡은 예전 곡 중에서도 골랐다. 무대 연출은 최근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를 만든 남선호 감독이 흔쾌히 맡았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남선호 감독은 과거 연극집단 <한강>에서 일한 인연으로 알았다. 하지만 쉬운 건 아니었다. 13년만이었다. 임정현씨 표현에 따르면 "처음엔 이게 얼굴인지 발가락인지 몰랐다."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 모습이 됐다. 시간도 별로 없었다. 다들 일과 가정이 있었다. 애엄마, 애아빠였다. 평일엔 각자 연습했다. 낮엔 일하고, 밤마다 알아서 연습했다. 잠잘 시간을 쪼갰다. 주말이면 모두 모여 노래를 맞췄다. 서로 타박하고 웃고 떠들고 노래했다. "자기도 모르게 우리더러 386이니 뭐니 규정하고, 성실히 산 우리를 도매급으로 넘기는 게 싫었어요." 무대에 서는 건 아니지만, 공연 외적인 것을 담당하는 구자혁씨는 말했다. "진짜 386 그 세대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그 세대로 열심히 산 이야길 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과거 '선언', '저 평등의 땅에'를 작곡했던 류형수씨는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도 여기까지 올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하다 말겠지 했죠. 그런데 다들 마음 속에 뭔가 있더라고요. 다들 숨기고 산 거구요." 게임회사 프로그래머로 산 세월이 얼만지 모르지만, 그는 다시 곡을 썼다. 기타도 잡았다. "스트레스가 많아요, 죽겠어요"라고 했지만, 그의 입가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엔 써있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중. 네가 마흔이니? 웬일이니?
"먼 훗날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하여, 우리 오늘 헤어짐의 눈물 보이지 않으리. 흐르는 세월에 역류한 젊음의 피땀이 지나간 계절의 노을로 빛날지라도/ 눈을 감고 격한 호흡을 고르며 떨군 고개를 들어 흐린 먹빛하늘 저편 먼 곳에 아직 남아있을 희망의 조각들 추억 떠오는 구름 한점이라도 노래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리라." "어. 틀렸잖아?" 다른 노래를 하다 말고 임정현씨가 말했다. "나 못해."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팔짱을 꼈다. 13년이란 시간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마음은 사라졌는데, 몸은 다른 소릴 하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노래하던 조이한씨가 그를 살짝 흘겼다. "으이구. 예민을 떨어요." 다른 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간주 들어가는 거 틀리지 않았어?" 기타를 치던 류형수씨의 고개가 더 깊숙이 내려갔다. 다들 히죽히죽 웃으며 그를 쳐다봤다. "아구. 여덟 마디도 못 세냐?" 임정현씨가 툴툴 댔다. "다시. 다시." 기타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들은 그렇게 소리를 맞췄다. 굳은 손을 풀었다.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듯이 진지했다. 나이를 묻자 김묘진씨가 말했다. "마흔이요." 그 때였다. 조이한씨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야. 네가 마흔이니? 웬일이니?" 그러게 웬일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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