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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들리나요?_서정민갑

혹시, 내가 들리나요?
 [공연리뷰] 노래모임 새벽 콘서트(동영상)
이메일보내기 서정민갑 _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4월 28, 29일 이틀동안 열린 '새벽' 콘서트 모습
▲ 지난 4월 28, 29일 이틀동안 열린 '새벽' 콘서트 모습

조금 일찍 공연장에 도착해서 콘서트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공연이 그저 노래모임 새벽만의 콘서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공연장 로비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30대 초반 이하인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노래모임 새벽이 활동을 중단하던 1993년에는 빛나는 청년이었을 사람들은 이제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온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공연장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의 한켠에는 자신들을 닮은 아이들이 있었고 또 그들은 공연장 로비에서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의 공연은 노래모임 새벽의 콘서트였으며 또한 노래모임 새벽과 함께 청춘을 투신했던 사람들의 13년만의 동창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노래모임 새벽의 공연을 찾은 이들에게 노래모임 새벽의 공연은 과거로의 초대이며 현재의 자신과 자신들의 세대에 대한 자기 응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노래모임 새벽은 이날 공연에서 그들이 함께 어깨를 걸고 불렀던 노래들안에 묻어두었던 수많은 사연들을 다시 끄집어 내지는 않았다. 앵콜곡까지 모두 스무곡 정도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노래모임 새벽은 지난날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기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한시간 반 가량의 콘서트에서 선보였던 것은 류형수와 이현관, 황란주, 송현주, 김현종, 성임숙 등 새벽의 멤버들이 만든 새 노래들이었다. 4곡의 옛노래들이 양념처럼 끼어들기도 했지만 그도 널리 알려진 노래는 아니었다. 윤선애의 목소리로 널리 알려진 <벗이여 해방이 온다>만이 앵콜곡으로 선보였을 뿐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노래모임 새벽이 단순히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거나 복기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7080 콘서트처럼 추억의 감상으로 손쉽게 감동을 호출하지는 않겠다는 고집에서 허투루 삶을 살아오지 않은 이들의 자존심같은 것이 배어나왔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역시 세월을 속이기는 어려웠다. 음악활동을 떠난지 오래된 이들의 목소리는 음이 잘 맞지 않았고 오랜만에 무대에 선 이들은 13년전에 그러했듯 별다른 움직임이 없이 굳어 있었다. 음향에서 가끔 파울링이 생기기도 했고 조명은 밋밋했으며 특별한 흐름이 없이 노래만으로 이어져가는 공연은 콘서트라기보다는 오히려 창작발표회에 가까워 공연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열리는 공연임에도 지난 13년간의 여백에 대한 이야기들을 생략해버린 것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새벽 - 겨울 그 가지 끝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모임 새벽의 90분 콘서트는 그다지 실망스럽거나 안타깝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들이 자신의 현재를 가감없이 드러내보였으며 또한 공연에서 연주된 레파토리들이 그 진정성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몸을 던져 투쟁하며 혁명을 꿈꾸었던 날들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뒤에도 이들은 결코 멈춰있지 않았다. ‘흐르는 세월에 역류한 젊음의 피땀이 지나간 노을로 빛’난 지금 각각의 창작자들이 선보인 새 노래들은 모두 나름의 무게로 충분히 묵직했다. 새 노래들은 모두 일정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개별 창작자들의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새벽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류형수가 선보인 곡들은 섬세하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단정함으로 새벽에 몸담았던 이들의 오늘을 설득력있게 대변해냈다. <가을>, <겨울 그 가지끝에서>, <내 이름을 불러봐> 같은 곡들에서 그는 흐르는 세월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며 과거로부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다만 이날 공연에서 선보인 노래들 가운데 몇몇은 과거에 대한 회한이 지나친 감상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들이 살아온 과거가 녹록치 않았음은 모르는바 아니지만 후일담을 뛰어넘어 노래모임 새벽이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을 현재로 끌어온 노래들이 많지 않았음은 아쉬운 지점이었다. 새 노래들의 대부분이 김정환의 시를 빌리고 있었는데 여전히 일정한 관념성을 가진 김정환의 시 역시 새벽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현실과 능란하고 치열하게 조응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2006년의 노래모임 새벽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혹시, 내가 들리나요?’라고 정한 공연 제목에 값한 것은 사실이다. 노동자 민중들의 곁에서 이제는 생활인의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의 모습에서 386세대의 과거와 현재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앞으로도 이러한 창작발표회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계속 이어간다면 새벽만의 또다른 활동이 이어질 수 있지않을까 싶다.

새벽-떠나는 그대를 위하여

새벽의 멤버들은 앞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갈지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최근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한 노래를찾는사람들처럼 새벽이 활동을 계속한다면 그만큼 민중가요의 가능성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행여 뛰어난 작품이 나오지 않고 노래 실력이 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자신의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생애는 흔적으로 남는 것이 아닌 것’이며 ‘영원 불멸한 생애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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