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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한 노동

 

정에게서 빌린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를 뜨문뜨문 읽다가 일부분을 옮긴다.

 

"나는 여러해 동안, 쓰레기 처리가 사회의 한 계층의 일로 되어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느껴 왔다.

우리는 가장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이 필수적인 위생 서비스를

처음으로 할당한 사람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누구였든 간에 그는 전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우리 모두가 청소부라는 인식을 마음에 새겨야한다.

그렇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을 깨달은 사람 누구나

청소부 일로 생계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성적으로 선택한 청소부일은

인간의 평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있다.

 

"지적인 노동은 영혼을 위한 것이고,

그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은 보수를 요구해선 안된다.

이상적인 국가에서 의사, 변호사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다.

생계노동의 법을 따르면 사회구조에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 것이다.

생존을 위한 노력을 상호봉사를 위한 노력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 인간의 승리가 될 것이다.

짐승의 법 대신 인간의 법이 들어설 것이다. "

 

 



6개월만 아기를 키우고 나는 일을,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으나 그렇게 안되었다.

공증을 위해 글까지 올렸지만 워낙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안되었다.

뭐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 더이상의 미련은 접어두기로 했고.(그러기까지 쉽지 않았다)

자, 문제는 올 7,8월 정도까지 끝내야하는 작업이 내 몫으로 남아있다.

부족한 내 처지에서는 아이 키우면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인형 눈 박기나 밤까기처럼 시작부터 완성까지의 사이클이 짧은 일이어야 한다.

주어지는 게 토막시간인데 긴 시간 집중을 요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아마 나는 남편을 미워하고 아이를 귀찮아할 것이다. 그건 도저히 못하겠다.

 

월요일, 토요일은 남편이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그래도 시간은 부족하다. 남편이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육아도우미를 쓰면 어떻겠냐고 한다.

일반업체를 통한 육아도우미는 가정형편상 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기사들을 봐도 무서울 따름이다(http://www.hani.co.kr/arti/SERIES/115/190313.html)

저소득층을 위한 육아도우미 서비스 제도가 있는데 그나마 관악구는 없다(동작구는 있다)

있다 하더라도 고정적으로 한 사람이 올 수 있을 것같지가 않다. 고민 중.

 

솔직히 된다 하더라도 저번 산후조리도우미 아줌마와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좀 불편하다.

한 달 내내 난 도우미 아주머니의 눈치를 봐야했으며(아주머니도 뭐 힘드셨겠지만)

끝나고 돌아간 후에 보니 엄마가 챙겨준 음식들이 다 그대로 있었다.

도우미아주머니는 사골도 끓이기 귀찮아하셔서 남편이 끓여야했다.

(아주머니는 더운데 두번 일하기 힘드니까 고기를 사오라고 하셨고

 그래서 남편이 "제가 끓여놓을께요"라고 해서 남편이 국물을 다 내놓으면

 그걸로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나라는 사람에게 지시하는 일은 힘들다. 그래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알아서 해주십사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오죽하면 '우렁각시가 있었으면...'하는 생각까지 했을까.

 

또다른 방법으로는 여성노동자회에서 운영하는 가사도우미제도를 이용하는 것.

그런데 내게 필요한 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지 가사를 대신 해주는 사람은 아니다.

집안일을 해주시면 편하긴 하겠지만,

또 집은 지금보다 깨끗해져서 손님이 오시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역시나 익숙하지 않아서...불편할 것같다.

작년 여성영화제에서 폐막식에서 봤던 <하우스키퍼>라는 영화는

세계 곳곳의 가사도우미들을 다룬 영화였는데

영화 중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많이 배웠지만 혼자서 생활하질 못해요."

인터뷰 중 아주머니가 열심히 걸레질을 하자 키보드를 두드리던 남자가

발을 살짝 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순간 그 남자가 약간 얄미워보였다. ^^ 

 

사무실 담당 세무사가 바뀌었다.

옛날 세무사는 송파구에 있어서 너무 멀기도 했고 한달에 88,000원이라는 거금이 나갔기 때문에

NGO들을 돕는 세무사 모임이 있다고 해서 그 전 세무사와는 정리를 하고 새로운 쪽에 연락을 했는데

그 쪽은 한 달에 10만원이란다.

'정'이 사정을 설명하고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그럼 그 전 수준으로" 다시 정했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일, 밥을 하는 일, 육체를 써서 집을 짓는 일.....그런 일들은 보수가 너무 낮다.

산후조리 도우미 아줌마에게 건네지는 하루 일당은 6만원이었다.

우리 엄마가 건네주었던 많은 음식들을 냉장고에 처박아두었어도

사골국물 내는 일을 귀찮아해서 남편이 대신 하였어도

그 아주머니는 많은 일을 하셨다.

두끼 밥을 차려주셨고 아이와 나의 옷가지를 빨아주었으며 거실과 안방 청소를 해주셨다.

 

내가 라디오에 나가서 10분 이야기하는 데 6만원,

원고지 15매를 쓰는 데 7만원.(기획사를 낀 청탁원고는 매당 13,000원 정도를 받기도 한다)

1회 촬영을 나가는 데 15만원.

2시간 교육을 하는 데 15~20만원.

하루 편집을 하는 데 30만원.

그런 것을  따지면 아주머니의 일에는 너무나 적은 보수가 주어진다.

노가다라 불리는 육체노동자들의 하루 일당은 7만원이라 한다.

'Made in~'제 3세계'의 라벨이 붙어있는 옷가지는 또 얼마나 싼지...

 

작업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육아도우미를 써야할 것같기도 한데

나는 다른 문제로 고민하고 주저하고 있다.

아이가 잘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다음 문제이고.

지금 이렇게 주저하는 이유는 어쩔 수 없이 관계의 어려움 때문이다.

자산관리를 위해 회계사를 쓴다거나

법률자문을 위해 변호사를 쓰는 일 때문에 이렇게 망설이지는 않을 것같다.

육체노동보다 무한히 우월한 존재로 자리잡은 그들과의 사이에서

관계의 문제는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가사도우미라든지 육아도우미 처럼

어느 순간 사회의 한 계층의 일이 되어버린 그 일,

그리고 그 계층이라는 존재가 부당한 권력구조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고민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덜 절박해서일 수도.

하지만 정말 피해가고 싶다.

우렁각시가 나타난다면...

남편이 휴직을 한다면....그러면 정말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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