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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밤길

1.

가끔 외출을 했다가 좀 늦으면 남편은 자꾸 전화를 한다.

전화를 안받으면 내 옆에 있는 사람한테 전화를 한다.

100% 사무실 동료들이다. 그래도 다행히 Moon에게는 하지 않는다.

아마도 Moon의 아내 때문에 집에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은 나이든 선배만 사무실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날이면 그 선배는 어김없이 전화를 받는다.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네 남편이 너무 불쌍하다"

그 자리의 모든 동료들이 깜짝 놀라며 내가 더 불쌍한 거라고 말해줘서 위로는 됐다.

 

한 달 전, 다큐보기 때엔 좀 황당했는데 밤이 늦자 전화를 해서 막 화를 내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를 해서 화를 내길래

번개같이 집으로 뛰어갔더니 모든 사람들이 다 자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그 밤에 대해서 물었다.

모두 자면 그냥 자면 되지 왜 자꾸 나한테 전화를 하느냐고.

예전이야 수유때문에 오래 못 나가있었지만 이젠 내게 좀 시간을 줄 수도 있지 않냐고.

 

남편은 무섭다고 했다.

택시 범죄가 너무 많아져서 밤이 늦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하지만 만약에 안좋은 일을 당한다하더라도 전화로는 해결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는 설교 시간에도, 아이들에게도 항상 "현재를 살아라"라고 말하면서

왜 그렇게 걱정을 하는 것인지.

나의 동료들은 항상 택시를 함께 잡고 메모하는 액션을 취해주고...

무엇보다 사무실에서 우리집은 차로 10분이 안걸리는 거리인데.

고립무원의 시간을 살아가다가 가끔씩 그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시간을

나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 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번 달 다큐보기에는 마침(!)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다 나가 있어서 두고 나갔지만

대신 하늘의 전화기를 들고나왔는데...역시나 알람처럼 벨이 울려서 나는 돌아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던 건...

밤길이 좀 명랑해졌으면 좋겠다는 것.

 

사실 나도 무섭거든.

돌아갈 길을 무서워하면서도 기를 쓰고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게 술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목숨을 걸고 술을 마시는 인간인 거다.

 

2.

글쓰는 일이 면죄부같아지는 건 싫다.

변명처럼 말하자면 <워낭소리>에 대한 글을 쓴 건 염둥이의 글을 보고 썼던 것 뿐이고

mb와의 일은 모른 상태였고..

그리고 글이 마무리 될 즈음에 mb와의 일을 알았다.(사흘은 썼던 것같다.)

그래서 중간중간 mb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넣긴 했지만 정확한 사태를 몰랐다.

처음엔 그냥 옘비가 영화를 봤고 그 자리에 이충렬감독이 있길래

저 사람이 독립영화 대표로 저 자리에 있는 건가 해서 의아했긴 했다.

사무실에 가서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주긴 했는데

여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 일에 대해서 그나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있었던건 J선배뿐이었으니까.

 

이제 다시 디지털악마 사태가 일어나면서 정말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한독협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자나깨나 사무실에만 있었으니까.

그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현재의 한독협에 대해서 이해가 안되는 것만큼

한때는 한독협 멤버였던 사람들이 '한독협이 그렇지..'라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나는 이 곳에서조차도 이방인인 거다.

 

J선배가 한독협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았다.

해결없이 무마되었던 일이 다시 되새겨지는 건 반갑다..

서울영상집단이 제안했던 토론회가 여전히 필요한 것같다.

게시판에서는 서로 사과를 주고받은 사람들의

여전한 태도를 바라보는 일은 괴롭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글을 씀으로서 면죄부를 받는 것같은 분위기 또한 불편하다.

침묵에 대해 '음흉함'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를 못견뎌서인가?

어쨌든 나는....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다.

내가 이 토론에 참여하게 된다면 블로그가 아닌 게시판일 것이다.

준비를 해야겠다. 일단 팀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3월 복귀를 계획했으나 앵두의 어린이집 적응기가 늘어나는 바람에

4월에 복귀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팍팍하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크레딧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 곳에 쓸까 하다가 말았다.

몇 년동안 나는 내가 쓴 글이 다른 이의 이름을 달고 돌아다니는 걸 두 번 당했다.

블로그에 쓴 글의 문장이 누군가의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일도 겪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

일단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상 피해의식은 눈덩이처럼 커져간다.

그래서 블로그에 중요한 일은 안 적게 되어버렸다.

아, 슬퍼라. 나는 이렇게 점점 외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친구도 하나씩 둘씩 떠나보내고 혼잣말도 점점 삼가고있다.

자꾸자꾸 마음을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혹은 파헤치기도 해야 하는데

이제 그런 일은 안한다. 

공책을 하나 마련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손이 너무 아프다.

오늘 형부가 "하늘이보다 더 글씨를 못 쓴다"고 하셨다.

오랫동안 손으로 글씨를 안썼더니 이제 손은 키보드로만 마음을 옮겨준다.  

 

<20세기 소년>과 <킹덤>이 이번 영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

그리고 반짝거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이번 영화를 끝으로 나는 새로워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꼭!

부산엔 영화를 들고 갈 것이다. 굳은 다짐!

 

4.

오늘은 내 생일이다.

작년에 남편한테 미역국 끓여달라고 했는데 안끓여줘서 아침에 잠깐 가출을 했다.

집을 나왔는데 갈 데도 없어서 그냥 쇠고기 사서 집에 들어가서 미역국 끓였다.

올해에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

일주일 전부터 선물 같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미역국 끓여달라고 했다.

남편은 미역국을 끓여두고 잠이 들었다.

 

1971년 3월 9일은 음력 2월 13일이었다.

2009년 3월 9일도 음력 2월 13일이다.

뭔가 역사적인 해인 것같다.

아이들에게도 생일이니 선물을 꼭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는데

어떻게 하나 두고봐야겠다.

결혼기념일이건 생일이건 안 챙기고 살아오다가

갑자기 작년에 충동적으로 가출을 한 게 계기가 되어서

이제부터는 꼬박꼬박 챙기려고 한다.

엄마가 생일 챙기는 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이렇게 변해가는고나.

 

축하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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