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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꽃 개봉

2004년, <송환>이 국내 최다 독립영화관객기록을 경신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반 관객들에게 극장용 다큐멘터리는 낯선 장르였다. 그러나 2007년에 개봉한 <우리학교>가 10만여 관객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다큐 영화의 진정성이 가진 힘을 대중들에게 인지시켰다. 그리고 2009년, 소의 해와 함께 찾아온 <워낭소리>는 상업영화 부럽지 않은 관객동원으로 한국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또한 오는 3월 19일 개봉하는 <할매꽃>이 지금까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명품 다큐들의 수순을 밟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부터 해외 유수의 국제영화제까지
명품 다큐는 개봉 전부터 남다르다!
가장 먼저 국내 영화 관계자를 놀라게 한 독립 다큐멘터리 수상소식은 세계 최대의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날아온 <송환>(2004, 김동원)의 ‘표현의 자유상’ 수상 소식이었다. 이는 단숨에 이목을 집중시켰고 영화의 작품성은 곧 관객동원으로 이어졌다. <우리학교>와 <워낭소리>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에게 주어지는 운파상과 피프메세나상을 받으며 개봉 전부터 평단은 물론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혔다. 그리고 <우리학교>는 올해의 독립영화상에, <워낭소리>는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과 선댄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검증된 영화라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특이점은 이렇듯 ‘명품 다큐’가 걸어왔던 길을 <할매꽃>도 함께 고스란히 밟아왔다는 것. 제작이 끝난 시점인 2007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운파상을 받은 것으로 시작해 그 해 독립영화상을 수상하면서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작년에는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대한민국 현대사가 껴안고 있는 고민을 세�! 窩岵막� 확장시켰다. 더불어 3월 19일에 개봉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또 하나의 명품 다큐로써 극장을 찾는 관객들과 소통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핏빛 시대의 뜨거운 증언 <할매꽃>
3월 19일 대개봉!!
1월, 2월에 개봉한 <워낭소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로 사상 유례없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지금, 명품 다큐의 바톤을 <할매꽃>이 이어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할매꽃>은 3월 19일 개봉해 그 동안 말할 수 없었던 가족사의 비밀을 통해 관객들에게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현대사의 뜨거운 증언을 들려줄 예정이다.




99년, 모 방송사에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에 대해 한 미디어평론가는 ‘과거의 불량함에 대한 중대한 양심선언’이라고 표현했는데, 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들에 의해 불태워졌던 그 방송사의 시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공정과 객관을 표방하면서도 결국은 주류의 입장을 반영해왔던 공중파방송국에서 ‘얼마만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쏟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진실의 발설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란 것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지나간 역사에서 일정한 입장을 가졌던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 살아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권력의 핵심, 혹은 주변부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반세기도 지난 과거지만 여전히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화자가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면 어떨까? 다큐멘터리 <할매꽃>이 선 자리는 그래서 독특하다. <슬로브핫의 딸들>을 필두로 교회와 여성, 교회와 장애 등 교회를 화두로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문정현 감독은 집안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참 흥미롭다.
2001년 11월, 정신병으로 평생을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작은 외할아버지의 일기를 발견한 감독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몇 박스나 되는 일기는 작은 외할아버지가 30여 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적은 것인데 날마다 교회에 가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은 것에 대해서 꼼꼼히 적은, 거의 똑같은 내용들이었던 것이다. 이 이상한 일기의 정체가 궁금해진 감독은 작은 외할아버지가 그런 일기를 적은 이유를 물었고 감독은 어머니에게서 그 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가족의 비극, 고난에 찬 외가의 역사를 듣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나 다른 독립다큐멘터리에서 시도했던 ‘역사 바로쓰기’와는 선 자리가 다르다. 외할머니 일가가 살던 전라남도 산골을 찾아가 동네 어른들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듣는 첫 만남은 정답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듣게 되는 이야기들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화악산, 금정굴과 같은 지명들은 소설 <태백산맥>을 떠올리게 하고, 이장님이 부르던 기억 속의 노래는 다큐멘터리 <송환>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소설 속 장면이나 비전향 장기수의 노래가 시골 촌부들의 입을 통해서 재현되는 순간, 정형화된 역사는 내 이웃의 삶으로 녹아든다. 그리고 삶이 계속되는 것처럼 금기시된 역사는 여전히 말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처음 주저주저하던 이장님은 대화가 깊어갈수록 숨겨왔던 이야기들을 꺼내고 결국은 50여년 전, 빨치산들이 부르던 노래를 정확하게 불러보인다. 봉인된 기억들은 그렇게나 조심스럽게 세상으로 나온다.
가족들의 침묵은 더 깊고 무겁다. 이제는 말해도 된다는 감독의 말에 “아니다. 지금도 빠르다.”라며 카메라를 거부하는 이모할머니, “찍히면 자손들까지 영향이 있다.”는 남편의 말에 죄인처럼 입을 다무는 이모. 그분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위험한 곳이다. 문민정부나 참여정부라는 이름으로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가족들은 쉬쉬하며 살아왔다. 전향에도 불구하고 한때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평생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외할아버지, 박정희 정권의 연좌제 때문에 교사직에서 쫓겨나 농부로 살아가는 큰외삼촌, 할아버지의 행적 때문에 파혼을 당해야 했던 손녀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가족들에게 연좌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렇게 진실은 묻혀져 왔다.
생기발랄하게 카메라를 들었던 젊은 감독 또한 영화가 전개될수록 진실의 무게에 힘겨워한다. 어머니 가족과 친구 분의 가족이 과거에는 피살자 집안과 살해자 집안이었다는 불편한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외할머니의 오빠가 총살당할 때, 그 총을 겨눴던 사람이 바로 이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정답게 너나들이 했던 이웃에게 그 사실을 밝혀야 하는지에 대해 어머니와 감독은 입장을 달리한다. 밝혀야 한다는,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감독에게 어머니가 말한다. 그 사람도 피해자였다고.
“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너무 깊이있게 옳고 그른 것이 나타나있어. 그런데 어머니가 이 나이 먹도록 살아보니까 사실 그 옳고 그름이라는 것도 인간에게는 모순이야. 인간 자체가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는 거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웃을 죽이고 이웃에게 죽음을 당해야 했던 슬픈 조상들. 어머니는 이 땅의 슬픈 현대사를 껴안으며 이대로 묻고 가자고 한다. 어머니에게 설득당하는 감독과 감독 앞에서 단호하지만은 못한 어머니는 생각의 끈을 주고 받으며 마지막 만남을 준비한다.
여전히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미워하지만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의 어른들처럼, 이 땅의 역사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묻혀 있다.
진정한 화해를 위한 첫걸음은 묻혀 있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혔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치러야할 댓가를 헤아리던 관객들에게 영화는 결국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이 땅에서 진정한 화해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 해답을 찾는 것, 그리고 진정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역사 바로쓰기의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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