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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는

임진강 피해자들의 소식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마음이 아파 들여다보지 않으려 해도.... 너무 아까운 목숨들.

이 놈의 나라는 도대체 뭐하는 곳인가?

몇 년 전에 대가족이 바다에서 조난당했을 때에도

언론에서는 안전불감증을 얘기했지만

그 때 유족들이 잠깐 tv에 나와 말했었다.

"저희, 모두 구명조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안전수칙 모두 지켰습니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소복을 입고 시위를 했었다.  그분들은 어떻게 지내실까?

 

정부의 위기 관리 시스템도 문제지만

112, 119도 새벽에 연락을 받고서 서로 미루며 몇 시간을 지체했다고 한다.

구할 수 있는 목숨들이었고 지킬 수 있는 생활들이었는데.....

그게 깨져버렸다.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고 불편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정말 이 놈의 나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며 선배를 생각했다.

2004년에 나온 이 영화를 내가 만약 그때 봤다면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임기를 3개월 남긴 안병욱 진실화해위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무기력한 위원회의 활동들 조차

이제는 좋았던 시절로 회상해야하는 이 현실에 화가 난다.

........

정말 화가 난다.

아까운 목숨들....

영혼에 평화가 깃들기를.....

 

2.

대추리 정감독에게 손자 대하듯 다정하셨던 조선례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세 번이나 고향에서 쫓겨나야했던 조선례할머니.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건 고향들판이 아니었을까...

할머니 편안하세요....

 

3.

대추리 작업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평온해보이는 사무실 이면에는 긴장감이 있다.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 없고, 완성해야할 작업을 위해서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며칠 작업과 관련해서 새벽까지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 외의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면서

보여지지 않지만 존재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제작 공동체이다.

제작이 가장 우선시되는. 그리고 생활을 함께 하는 공동체이다.

사무실 공간을 정회원, 외부스텝, 인턴 등

직접적으로 사무실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사무실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기자재나 편집공간이 필요한 사람은 미디액트나 오재미동을 이용하면 된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사무실에 모여있다.

이제 예전처럼 아침 10시 출근과 같은 기타 자질구레한 생활수칙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이 공간, 재정, 기자재는 공동의 것이다.

월세였던 사무실을 전세로 돌릴 수 있었던 데에는 <송환> 덕이 컸다.

<송환>에 길게 올라가는 크레딧처럼 연출은 한 사람이 했지만

장기수 선생님들의 촬영은 18년동안 사무실 선배들과 동료들과 내가 한 것들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벌고 함께 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한다.

 

반이다의 <개청춘>을 보면서 본 내용과는 무관하게 자꾸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그거였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생존 자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업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 신경쓸 일이 너무나 많다.

테이프, 카메라, 전기세, 공간, 밥....

기본적인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 본 작업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것이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의미 중 하나이다.

 

이 공간과 이 기자재와 이 밥과 이 컴퓨터....

이건 선배들로부터 지금까지 사무실 동료들이 함께 이뤄왔고 앞으로도 함께 유지해나갈 일들이다.

물론 독립적으로 다큐멘터리작업을 하는 분들께 사무실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의미가 아무 때나 찾아와서 컴퓨터를 쓰고 기자재를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무실의 기자재는 외부대여가 불가능하다는 원칙 하에 운용된다.

 

1999년, 나의 첫번째 카메라 trv900을 살 때 사무실도 같은 카메라를 샀었다.

내 카메라는 2006년까지 쓰인 후 동료에게 넘겼지만 사무실 카메라는 3년을 못 버텼다.

두번째 카메라 a1을 산 후 6개월 후에 사무실에서도 a1을 샀다.

나의 카메라는 지금까지도 고장없이 잘 지내다가 동료에게 옮겨갔지만

사무실 카메라는 고장이 나서 두 번의 수리를 해야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그렇게 된다. 그 이유는....?

아주 엄한 선배가 기자재담당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분쟁이 잦았다. 너무 리버럴해서 그런가? ^^ 

사무실 내부에서도 (지켜지지는 않지만) 엄격한 이용규정을 갖는 기자재를 외부인에게는 못 준다.

왜냐하면 기자재를 빌려주면서 이러저러한 이용규정을 얘기하는 것보다는

좀더 심플한 이용규정을 갖고 있는 미디어센터를 소개하는 것이 피차 속편하다. 

그렇게 사무실 기자재는 배타적이다.  

 

사무실 컴퓨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외부대여불가가 원칙이다.

특별한 경우에만 회의를 통해서 결정한다. 그것이 우리의 룰이다.

여러 곳의 미디어센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곳을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주 친한 동료 한 명이 사무실 컴퓨터를 좀 쓰자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원칙적으로 그건 불가능하니 이러 저러한 곳을 먼저 알아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안되면 사무실의 허락을 받고 내 컴퓨터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결국 다른 곳을 알아보고 그 곳으로 갔다.

 

공간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손님이 오면 인사를 드리고 나름의 접대를 해야 한다.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그건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오는 사무실 손님은 모두의 손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손님들은 이러이러한 일 때문에 사무실에 가는데 괜찮겠냐는 연락을 미리 한다.

전화로 하든지 아니면 사무실 동료 누군가를 통하든지.

연락없이 불쑥 찾아와서 사무실을 돌아보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연락없이 불쑥 찾아오는 분이 계셔서 나는 그 분과 친한 감독에게 몇 번 이야기했다.

그 감독은 "나한테 연락을 했는데 내가 공유를 못했다"고 미안해 했다.

미안해할 문제는 아닌 것같다.

사실 미안하기로는 내가 더 미안할 수 있다.

항상 그렇지만 출산휴가가 끝나고 돌아올 때마다 나는 느꼈다.

동료들의 자유를 내가 방해하는 것같다고.

하지만 나도 이 곳의 멤버이고 나도 이 곳에 살아야하기 때문에 나는 요청해왔다.

 

세번째 복귀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모르는 사람이 사무실에 앉아있는 거였다.

또는 알던 사람이지만 몇날 며칠 사무실에서 자기 볼 일을 보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무실에 나왔을 땐 그러려니 했던 일들이

(사실 이번 휴가 때는 회의 없으면 안나왔다.

난 곧 떠날 사람이었기에 사무실 일에 애써 무관심하려 했다.)

매일 출근을 하려니 그런 일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낯선 분이 계시면 물어봤다. "실례지만 누구세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주변의 동료들에게 누구인지 물어보곤 했었는데

동료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결론적으로 내가 모르면 다른 동료들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나에게 사무실은 작업공간이자 생활공간이며, 집보다 더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그런 곳에 낯선 이가 앉아있는 것, 혹은 아는 분이지만 여러 날을 함께 앉아있어야 하는 걸

주어진 상황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불편했다.

또한 공간에 대한 권리와 의무라는 측면이 있다.

그저 편안한 곳으로만 느껴질지 모르지만 공동체라는 것이 지탱되기 위한 룰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외부인들에게는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나의 문제의식을 얘기했고 정관을 찾아냈으며

지금 여기 있는 우리들이 지킬 수 있는 정관과 생활수칙들을 다시 정하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최소한의 룰을 다시 정했다. 참 다행이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들을 후원하고 우리들을 좋아하는 분들과 만나는 행사를 한다.

사무실에 놀러오고 싶으시면 그 때 오시면 된다.

일상적으로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집을 하거나

마감에 임박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날 누군가 오기로 했으면 거기에 대해서 미리 알고 예비를 한다.

그런데 누군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화가 난다.

어떤 날은 쓰던 글에서 더 못 나간 적도 있었다. 마음도 불편했지만 시끄럽기도 해서.

 

회의 시간에 누군가 그랬다.

"나는 누가 오건 별 신경이 안쓰이는데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하지만 이 분은 대부분 외부활동...^^;)

내가 말했다.

"저같은 사람도 있으니 이런 회의를 하는 거지요.

 저는 사무실이 기본적으로 제작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미디어센터는 아니잖아요?"

어쨌든 지난 두 달동안 우리는 사무실의 묵혀뒀던 정관을 꺼내서 손을 보고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룰을 정했다.

정말 최소한의 룰이다.

 

3.

나의 작업은 내년으로 미뤄졌지만

 

부산에서 상영할 영화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막바지 작업은 특히나 집중이 요구된다.

나 뿐 아니라 몇 사람이 지금 예민해져있는 상황이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그러고보면....내가 그나마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것.

답답하고 안쓰러운 사람들.

 

최근에 어떤 감독에게 "당신도 알고 보니 참 예민하네요?" 했더니

옆자리 친구가 대신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야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예민한 사람의 일상도 지켜져야한다.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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