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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 적기

2016년 3월 22일

당신에게 문학이란?

-음… 잠수함? 그걸 타면 나를 저 깊은 곳에, 평소에 갈 수 없었던 곳으로 데려다주는 것. 작가는 사람들이 하지 않아도 될 상상을 하고, 그 수압을 견디고 내려가서 사람들이 보려 하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걸 전해주는 거다. 가끔 술자리에 나가서 수다를 떨다가도 문득 생각한다. 아 저 깊은 곳에서 인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가서 ‘시작하자!’ 그래야 움직이는데. 때때로 내가 별것 아닌 존재처럼 느껴질 때 저 아래서 날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

미디어교육 가는 길에

학교 끝난 아이와
함께 걷는 엄마를 보았다.
새 책가방, 새 신발주머니......
아이는 이번에 초등학교에 들어갔겠지.
은별을 업고
하은이 끝나는 시간에
매일 운동장에 서있던 날들이 생각났다.
내가 지나온 시간.
근데 천년은 흐른 것같아.
영화가 남아서 다행.
 
나의 인물들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내가 편집을 해야
당신들이 살아날텐데.
나는 당신들의 신인데.
너무 사소한 일들에
에너지를 뺏기고 살고 있는가....
당신들을 외면한 채?
 
깊이 깊이 가라앉아야 하는데...

 

 

2016년 3월 5일

대담하다는 것은 정확하다는 것이다.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정확하다는 것은 대담하다는 것이다. 아끼는 마음을 핑계하며 말을 흐리지 않고 사랑할 수 없을까봐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엠마뉘엘 카레르. <나 아닌 다른 삶>

 

2005년 12월 26일

<오늘의 옮겨적기:편집 중인 동료들,그리고 날 위해 >

질문:다큐멘터리는 필름메이커에게 여러가지 의미가 될 수 있을 것같아요.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이 될 수도 있겠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고.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뭐죠? 과연 무엇이 영화제작 현장으로 계속 돌아오게 하는 걸까요?

수전 프롬키:우리는 소위 사회적 이슈를 둘러싼 신문 잡지 기사 같은 영화는 만들지 않아요. 당신이 만든 영화가 곧 의회에서 시작되는 교육 논의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흐뭇한 일이죠. 훌륭한 일이예요. 우린 저널리스트가 아니예요. 우린 흡사 문학적 감각에 의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에 더 관심이 있어요. ...

그건 저널리즘 보다는 논픽션 문학 쪽에 더 가깝죠. 우리가 항상 관심있는 것은 한 가족 내에서 감지되는 다이내믹한 역학관계, 심리적 진실, 정체 같은 것이죠. 인물들의 피부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들이 가진 진실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것, 이런 데에 우린 정말 관심이 있어요. 난 무엇보다도 영화제작의 기교, 그리고 시네마 베리떼의 도전정신에 한없는 매력을 느껴요.

영화를 구성하는 단계는 언젠나 나를 몰입하게 하죠. 어떤 때는 벽 앞에 놓인 것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어렵기도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흥미로운 순간이기도 하죠. 만약 당신이 지난 일년여동안 매달려왔던 구성을 과감히 버리고 그걸 흔들어 섞어 씬의 위치를 바꿔 재편집하면 모든 건 다시 바뀌고 영화에 또다른 생기를 불어넣는 전혀 색다른 구조와 만나게 돼요. 이 모든 것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죠. 난 이런 창작 과정을 통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요.

눈앞에 버티고 있던 벽을 박차고 나가 만족한 구성과 조우하는 편집실의 경험은 형언하기 힘든 짜릿함이죠. 촬영 현장에서 결정적 순간과 마주할 때 느끼는 그런 전율 같은 거죠. 그럴 때마다 앨버트와 나는 서로 마주하고 무척 행운이라 생각하겠죠. 내가 이런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죠. (다큐멘터리, 감독이 말하다.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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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8일 

이런 바람이 불면 말이야.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내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 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삶이 제공하는 당근과 채찍에 철저히 회유되고 협박당한 사람의 얼굴로 어머니는 작은 방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어머니의 살비늘 냄새를 맡고 있으면, 그녀에게 삶이 폭력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녀는 어떤 희망에 그토록 교묘하게 회유당했을까. 가정의 평화, 아들들의 출세, 딸의 행복한 결혼, 오순도순한 노부부의 말년, 종내에는 무릎을 무너뜨려 계단조차 오르내릴 수 없게 만든 삶을 그녀는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큰길까지 걸어 내려가면 상점들은 모두 셔터가 내려져 있어.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 한가운데를 걷고 또 걸어. 다리가 아파지면 밤고양이처럼 중앙선에 웅크리고 앉아서 힘이 돌아 오길 기다려. 죽음 따위 무섭지 않아. 강도나 치한 같은 것, 겁 안나.....그렇게 걷다 보면 갑자기 깨닫게 돼. 정말 두려운 사실을....어디도 더 갈 데가 없다는 걸....

 

생명이 꺼지면 영혼은 고통 없는 곳으로 간다는 말을 당신은 믿습니까 그 믿음에 의지해 때로 사람들은 피 흘리는 동료, 신음하는 개를 앞당겨 죽입니다. 하지만 사실일까요. 전장에서, 동물병원에서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때, 정말 사라지는 것은 그들을 지켜보던 우리의 고통 아닐까요.

 

나는 믿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찾아지지 않고, 어떤 것도 완성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언어를, 눈물을, 피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왜 술을 마시느냐고 나한테 물었지? 갑자기 그녀는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불안 때문이야....불안을 알아? 진짜 불안이 뭔지 알아? 돈. 빌어먹을 추위. 가망 없는 그 애의 병. 내가 인간이라는 거. 이 모든 걸, 빌어먹을 누구와도 나눠서 짐 질 수 없다는 거.

 

부산하고 살풍경한 변두리 번화가가 눈앞에 펼쳐진다.

 

만일 그가 아프지 않았다면, 하고 상상하면 혼란스러웠다. 아픈 그를 지워버린 뒤에 남는 그의 정수, 그 위로 겹겹이 쌓였을 또 다른 그의 모습들은 내가 알던 그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달랐을까.

 

어떤 관계는 고인 물처럼 시간과 함께 썩어간다는 것을, 거기 몸을 담근 사람까지 서서히 썩어가게 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소유와 의존, 집착과 연민, 쾌락과 무감각과 환멸, 한줌의 간절한 진실이 한무더기의 뱀들처럼 서로의 꼬리를 물고 얽히는 동안, 땅 밑에서 하나씩 뿌리가 문드러져 가는 나무처럼 어깨가 굽고 목소리가 잦아들어 가리라는 것을 몰랐다.

 

이 년 가까이 스테로이드 제제로 치료를 받았지. 부작용으로 온몸이 백 킬로그램 가까이 부풀어 올랐어. 견디기 어려웠어. 그렇게 육중한 몸으로, 조그만 상처도 내지 않으려고 절절매면서, 어린 누나가 안간힘을 다해 벌어오는 돈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는 게. 그러던 어느날 밤 꿈을 꿨어. 꿈에 보니 난 이미 죽어 있더구나. 얼마나 홀가분 했는지 몰라. 햇볕을 받으면서 겅중겅중 개울가를 뛰어갔지. 시냇물을 들여다봤더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만큼 맑은데, 돌들이 보였어. 눈동자처럼 말갛게 씻긴.....동그란 조약돌들이었어. 그중에서 파란 빛이 도는 돌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지.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걸......그게 무서워서, 꿈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아...

 

무한히 번진 먹 같은 어둠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삼촌은 말했지.

생명이란 가냘픈 틈으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한테서 생명이 꺼지면 틈이 닫히고,

흔적 없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게 될거라고.

그러니까, 생명이 우리한테 있었던 게 예외적인 일, 드문 기적이었던거지.

그 기적에 나는 때로 칼집을 낸 거지. 그때마다 피가 고였지. 흘러내렸지.

하지만 알 것 같아.

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는 걸.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는 걸.

.....지금 내가, 그 얼음 덮인 산을 피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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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4일

모르는 일에 직면했을 때 조바심을 치면 안 된다.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알겠다고 느닷없이 생선의 배를 가르듯 하면, 몰랐던 것의 본체가 어디론가 도망쳐버린다. 따라서 모르는 것과 마주칠 때는 물고기를 수조에서 기르듯 풀어놓고 찬찬히 관찰하는 게 올바른 이해를 얻는 길이다. (461쪽)

 

다들 제각각 불우한 신세인가.

젊은 대서인도, 의사 출신의 연로한 대서인도 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에 관해서는 지금 생활로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마음은 굶주린 듯 보였다. 어딘가에 금이 가 생긴 틈새로 바람이 스며드는 듯 보였다. 

나서부터 이름도 없고 가문도 없는 서민이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 해옵ㄱ하다는 사람의 귀에 그런 생각은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과거 '가문'이 있었고, 모실 주군과 지킬 것이 있었고 그에 의해 지켜진 경험이 있는 쇼노스케에게는 그들의 마음에 간 금이 보이는 듯 했다.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이 자신에게도 느껴지는 듯했다.(469쪽) 

        -미야베 미유키, 벚꽃 다시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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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1일

"나는 지금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어. 나이가 많아 체력이 부족한 데다가 부상까지 입은 몸인데도 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야. 바로 사람들 덕분이지. 나를 부축하고 손을 잡아 끌어주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네. 그래서 생각하게 됐지. 진정한 노인 복지란 손잡이를 달거나 턱을 없애는 게 아니다. 힘이 없는 노인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역할을 하는 게 가족이라면 이상적이겠지. 이웃이라도 좋고. 하지만 이 나라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어.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이득인 세상이 됐다고. 그 결과 혼자 살 수밖에 없는 노인이 늘어났지. 그런 사태를 국가는 문명의 이기로 대처하려고 노력했고. 노인들은 거기에 의지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됐어.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고."

          -히가시노 게이고, <패러독스 13>, 203쪽

 

2015년 11월 19일

"2030년에 가동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제로가 된다고 해도
원자력발전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오히려 폐로 문제(수명이 다한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력을 처분하는 것)는
그대로 남아. 
게다가 오십 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대량의 핵연료봉이 
보관되어있는 상태겠지.

일반적인 집은 방치하면 폐가가 돼.
하지만 원자력발전은 달라.
방치한다고 저절로 폐로가 되는 건 아니야.
이를테면 발전을 중지해도 엄중하게 관리하고 
신중하게 폐로절차를 밟아야해.
게다가 폐로 때는 방대한 양의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해.
그것을 처리하는 장소 또한 아직 결정되어 있지 않아.
그런 장소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분명하고.

가령 처리장이 생겨 거기에 묻어도 방사능 수준이 안전한 수치로
내려갈 때까지는 수만년이 걸리지.
실질적으로 이 나라는 이제 원자력발전에서 도망칠 수 없어.
그런 무서운 선택을 수십 년 전에 이미 내려버린 거야"

소타는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할 것을 각오하면서
다시 그 길을 선택한다.
친구가 걱정한다.
너 엄청 배고플거다. 
세상으로부터 차가운 시선도 받아야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게 돼.

소타가 말한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히가시노 게이고, <몽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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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5일

......과거를 지우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시간의 연속성을 모르는 백치들이다. 모래더미에 머리를 파묻는 닭들이다. 시간은 이어져 흐른다. 영국 좌파 지식인 타리크 알리는 “역사는 현재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의 대담에서 그리스 내전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상 모든 가족이 연루된, 잔인하고 지독한 전쟁이었어요. 이런 사건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 있죠. 사람들이 기억하니까요.”

역사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 교과서는 그 표층일 뿐이다. 그걸로 가치관이 통일될 리도 없거니와 삶 속에 새겨지는 역사는 교과서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나는 국정교과서로 ‘가짜 김일성’과 88서울올림픽 유치의 위업에 대해 배우고 자랐지만 나에게 와닿은 ‘역사적 경험’은 교실에서 배웠던 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할머니에게서 한국전쟁 때 납북된 할아버지 얘기를 들었던 일, 라디오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들었던 날 놀라워하던 아버지의 얼굴, 올림픽에 맞춘 서머타임으로 9시까지 날이 환하던 기억, 강경대군의 죽음을 알리던 대학생의 목소리, 남북 정상이 만난 날 도라산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봤던 일, 그런 것들이다. 책에 적힌 역사는 그런 파편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공동체의 기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체적 감각으로 받아들인 모든 것들이 합쳐져 만들어지고 이어진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잊지 말아달라”고 외친다. 역사를 지우려는 자들은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잊지 말라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애절하다. 기억의 ‘독재’다. 억압을 되풀이 하는 순간 과거는 ‘괴물’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끝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괴물 같은 이 순간마저 기록될 것이므로. 힘있는 이들의 목소리만 적힌 역사책보다 더 오래 전승되는 건 필부필부가 겪고 느끼고 기억 속에 새겨넣은 것들이므로. 망각협정 따위는 없다.

구정은, 경향신문, [로그인] 망각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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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31일

"함석헌은 이같은 교파의 싸움의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저희끼리 싸우는 것은 외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근본으로 하면 일체 현세적인 것을 상대로 싸우는 것인데, 그 근본정신이 살아있는 한 그 싸움은 그칠 수 없다. 그런데 외적이 없다는 것은 싸워야할 그 적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오늘 오신다면 그 성장, 그 예배당을 보고, ‘이 성전을 헐라!’하지 않으실까? 본래 어느 종교나 전당을 짓는 것은 그 종교의 마지막 계단이다. 전당을 굉장하게 짓는 것은 종교가 먹을 것을 다 먹고 죽는 누에 모양으로 제 감옥을 쌓음이요, 제 묘역을 파는 것이다.”“

문대골, 에큐메니안,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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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5일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황석영 <바리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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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0일

지금 내게 있는 여러 가지 고통들이 때로는 고맙다.

내가 후회로 서서히 죽어가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의 고통만으로도 숨이 벅차서

과거 일로까지 고통받을 시간이 도무지 없다.

               -권소은, 땅이 발에 닿지 않는 아이,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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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8일

청춘과 중년이라는 사회적으로 중간에 낀 애매한 나이 서른살. 우리는 이 때 일과 사랑에 쿨해지려고 애씁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소개해 드리자면 바로 서른살의 '쿨함'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일도 사랑도 시원스럽게 하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쿨하다고 하는데요. 과연 그것이 진정한 쿨함의 정의일가요? 모두들 쿨해지고 싶어하지만 왜 쿨해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을거에요. 쿨함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 어찌보면 소심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스스로 '난 쿨한 사람이야 쿨해져야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쿨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 ^^

서른살. 남을 의식한 cool함 보단 나 자신을 위한 cool함이 필요한 나이인 것 같습니다! 결혼을 안한 상태가 불안한 이유는 결혼을 골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발상자체를 바꾸면 혼자서도 충분히 완전할 수 있습니다.  -하루?

하지만 모든 것을 부모에게서 받은 트라우마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 가령 닥치는대로 남자하고 잔다던가, 툭하면 도둑질을 하고 싶어진다든가, 화가 치밀면 폭력을 휘두른다든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모두 트라우마 탓으로 돌리면 그만일 것이다.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애지중지 소중하게만 여겨진 과거 따위 있을 리 없다. 악의는 어디든 존재하고, 모두들 악의에 노출된 채 살고 있다. 완벽한 부모 따위 없다. 부모 역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살고 있다. 그 부모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지면 자기도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있다고 고백할 것이다. 결국은 책임 전가일 뿐이다. 사소한 일로 상처 입고, 그것을 무슨 깃발처럼 높이 쳐들고, 따뜻한 곳으로 도망치려 한다. 포근한 이불에서만 자면 등뼈가 굽는다. 부드러운 것만 먹으면 치주농루에 걸린다.

                                            -?? 

새벽에 잠이 깨는데 문득, 진짜 목걸이 하나, 양말을 신겨준 아기 한 명,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되었다. 그것이 바로 내 무의식 속의 아기, 상처 입은 유년의 내가 아닐까 싶었다. 정신분석을 통한 치료란 성인이 된 자기가 어린 시절의 자기를 보살펴주는 행위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아기에게 부모 역할을 한다'고 표현된 것도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그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이 바로 그것이구나 싶었다. 면담자가 아이들의 숫자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도 거기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내가 비로소 내 안의 상처 입은 아기를 알아보고, 그 아기를 보살피기 시작했다는 의미인 모양이었다. 문득, 가슴이 설레는 기분이었다. 2권 p.27

 

그럼에도 나는 모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 답을 찾으려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의 신화', '더 이상 모성은 없다', 그런 제목의 책들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자식과 먹이를 다퉜던 원시 시대의 어머니, 자식을 노동력으로 여겼던 중세의 어머니, 자식을 종속물로 여기는 현대의 어머니들을 보았다. 결국, 인간이 어머니라는 말에 만들어 씌운 이미지가 환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알아요. 그런 책을 선택했던 것까지 제 상처였다는 것을요. 책을 읽으며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애쓰고, 어머니의 입장을 변명하려는 태도가 방어라는 것도 알겠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내 엄마가 나를 질투해서 나를 그 먼 곳에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요? 아무리 그것이 엄마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것이라 해도......." 2권 p.162

 

'유아의 본능적인 허기와 이에 수반되는 환상들이 만족되지 못한 상태로 머물게 되면, 정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무의식적으로 시기심과 분노의 보따리를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무의식적인 감정은 삶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성장을 저해한다. 만약 아이가 이러한 수준의 분노와 좌절에 고착된다면, 이때 시기심은 아기에게도 숨겨져야 하고, 아기의 자아 또한 시기심으로 인해 압도당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극심한 형태로 무의식 속에 깊이 억압된다.'

 

수유 습관이 시기심과 분노의 감정을 형성한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었다. 너무 철철 넘치는 젖도, 너무 부족한 젖도, 모두 아기에게 특별한 감정을 형성한다고 했다. 아기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가슴에 불룩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지 않는다고 분노한다고도 했다. 면담자가 거듭 질문했던, 어머니가 젖을 잘 먹였겠어요?라는 질문의 의미가 비로소 새롭게 이해되었다. p.163

 

"......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노이로제였던 거죠."

"정확해요."

 

나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찬찬히 나의 질투에 대해 꼽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에 낙하산 인사로 입사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했던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들에게서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그들이 인간성마저 좋다는 점이었다. 좋은 환경에서 잘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니 정서에 왜곡이 없었을 것이다. 그 부러움이 곧 질투였구나 싶었다. 면담자에 대한 전이가 심해질 때 면담자의 꽃이며 액자가 다 상처가 되었던 감정도 질투였다. 엄마가, 니네 학교에서 니가 제일 예쁘지?라고 했던 말이 질투심이었듯이 내가 누군가를 칭찬할 때 그 마음 밑바닥에 있는 감정도 명백히 질투심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내 속의 질투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외가로 보내진 이후의 식습관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분유나 이유식이 없던 시기였어요. 암죽이라는 걸 먹었다는데, 그게 곡물로 끓인 미음 같은 거였나 봐요. 또 밥할 때 물을 넉넉히 부어서 밥물이 끓을 때 그것을 떠서 설탕을 타주면 좋아했대요. 누룽지나 물에 만 밥을 좋아했다고 하고......."

 

누룽지를 건지는 숟가락을 들여다보면서 나온다, 나온다, 좋아했고, 아예 누룽지를 '나온다'라고 불렀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데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는 감정의 실체는 서러움과 분노인 듯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아기의 감정이었겠구나 싶었다.

"십팔 개월이라면 아직 젖도 제대로 못 떼었을 것 아녜요? 어떻게 그런 아기를, 그토록 먼 곳에 떼어놓을 수 있어요? 분유도 이유식도 없던 시대였잖아요."

내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면담자는 쉬지 않고 나를 자극해다.

"나 참,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 아기는 어떤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굉장히 화가 났을 것같아요. 지속적으로, 암죽을 먹을 때마다 화가 났을 것같아요. 화가 나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울다가 지치기도 하고, 어쩌면 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을 것 같아요."

또 엉뚱한 말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아기가 무슨 살고 싶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했겠는가 싶으면서도 그것이 정확한 무의식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간단없이 시달렸던 열병과도 같은 자살 충동은 그 말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었다. 나는 빽빽한 명치와 가슴께를 양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 아기를 생각해봐요. 왜 십팔 개월 된 아기를......."

면담자는 다시 다그쳤다. p.166

"내 안에 있는 그런 요소는 뭐예요?"

"타인에 대해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점, 나는 도움받을 가치조차 없다는 판단, 그러면서도 타인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아, 말을 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말을 중단했다. 면담자는 틈을 주지 않고 되물었다.

"제일 끝에 한 말 다시 한 번 해볼래요?"

"타인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상한 느낌이 오면서 또 말을 중단했다. 바로 그것이었구나 싶었다.

.....

"언젠가 선생님이지적하신 대로, 내가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줄 것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이틀 동안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기거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퍼붓는 것도, 내 노동력을 투자해서 타인의 일을 돌봐주는 것도, 모두 셋째 딸 후남이의 생존법이었어요. 그 의식이 발전해서 이웃에게 도움되는 인간이 되고자 했고,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데까지 갔겠죠. 그 모든 행동의 본질은 결구,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였던 거예요."

말하고 나니 무언가 슬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가치관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가치관이 생긴 의식의 저 밑바닥, 그곳의 춥고 어둡고 헐벗은 구석에 대해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느 정신 분석 책에서 '어린 시절의 생존법을 성인이 될 때까지 질질 끌고 왔고, 그 때는 유익했던 그것이 이제는 삶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어린 시절의 생존법이 무엇을 말하는가 싶었는데,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p.176

"그 모든 딸들이 입을 모아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되뇌며 성장기를 보냈다고 말해요. 그들은 표면적으로 엄마처럼 되지 않았다는 사실으르 성공의 지표로 삼는 것같았어요."

늘 아파서 누워만 있던, 가사일을 하지 않던, 영원히 소아병적이었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던 여성. 그녀는 지금도 노동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증오를 남보다 많이 느끼는데 그 발단이 엄마인 것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독신이지만 한의사로서 자주적이고 책임감 강하고 경제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억압으로 갖고 있었어요. 엄마처럼 무지해질까 봐 공부에 전 인생을 걸고 학위를 따도 또 따는 여성, 엄마처럼 무책임해질까 봐 늘 과도한 책임을 떠맡고 쩔쩔매는 여성, 엄마처럼 폭력적일까 봐 모든 여성들에게 자매애적 친근함을 보이는 여성, 심지어는 엄마처럼 가족과 집안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되기 싫어 일부러 이기적이 된 여성....... 처음부터 눈에 띄던 그녀들의 특성이나 개성이 그 어머니의 이야기르르 들으니 환하게 이해되었어요. 그것이 바로 저들의 상처이고 콤플렉스구나. "

아, 이 말과 섞여 어떤 생각인가가 떠오르면서 방금 한 말이 고스란히 내 쪽으로 회절되었다. 내가 말을 중단하고 침묵 속에 있는 동안 면담자는 말없이 기다렸다.

"무슨 생각 했어요?"

"그 여성들은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 애써왔고 부분적으로는 그것에 성공했는지 몰라요. 그럼에도 말예요, 그들은 너무나 그들의 엄마와 동일한 면들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는 거죠. 한의사라는 여성이 그렇게 말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자주적이고 책임감 강하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실은 내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도피적인 사람인데요. 나는 한 번도 내 인생의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서본 적이 없어요.' 이제 생각하니 그 여성, 정말 똑똑하네요." p.180

"우리가 이미 말한 바 있잖아요. 사랑의 본질은 권력욕이라고. 그 당사자에게 매혹적인 것, 그 당사자의 생존에 가장 유익한 것, 그 당사자의 욕망과 일치하는 것이라거요. 사랑은 그러니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유지시키려는 본능과 맞닿아 있어요. 생식을 통한 종족보존의 욕구까지 포함해서 말예요."

"맞아요. 나는 사랑을 권력욕이라기보다는 생존 본능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아기들이 왜 엄마를 좋아하겠어요? 단지 엄마니까? 아니에요. 젖을 주고 보살펴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예요. 아기에게 엄마는 생존 그 자체죠. 학생들이 교사를 사랑하는 것, 여직원이 부서장을 흠모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교사나 부서장은 그들이 소속된 조직에서 그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존재인 거예요." p.223

"이 작업을 하면서 가끔 딜레마에 빠집니다. 과연 모든 사람들을 다 상식적이고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 특히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 말예요. 그들에게는 노이로제가 곧 창조력인데."

"그렇지만 이 작업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금세 상식적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아니죠. 그렇지만 자신의 추진력이 뭔지도 모르는 채 냅다 내달리는 때와, 자신의 창조물 하나하나가 어떤 결함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알고 난 후의 열정이 같겠는가 하는 거죠." p.250

'페르소나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청중에게 나타내기 위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다. 같은 의미로 페르소나는 인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나타내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그 역할과 타인들의 요구에 맞추어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현대 생활의 복잡한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페르소나가 유용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매우 해로울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페르소나가 진정한 자기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역할자 자체가 도어 버린다. 그러면 그 사람의 자아는 오직 페르소나와만 동일시되어 성격의 다른 국면들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결국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 팽창한 페르소나와 축소된 다른 성격의 국면들 사이에서 긴장을 초래하게 된다. 이 현상은 심리적 건강을 방해한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잘못 살았는가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성격을 오로지 페르소나에만 일치시키려 노력하며 성격의 나머지 측면들을 억눌러왔다. 면담자는 내게 그것을 꺼내 보여주는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초기에 면담자가 이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로 '사기치지 않기 위하여'라는 조건을 제시했었다. 이제야 그 말뜻의 본질이 이해되는 기분이다.

융은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연기하는 것이 곧 자기라고 믿는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기 무렵에 진정한 자신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된 삶을 살았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성격이 목표로 하는 것은 페르소나를 축소시키고 나머지 성격을 개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역할이 다 속임수이다.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는 데 반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는 점이다. ' p.253

경호를 만난 후 차를 달려 아버지의 산소에 다녀왔다. 아버지가 살아 있어, 엄마에게 했듯이 3박 4일쯤 합숙하면서 길고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구나 싶었다. 산소 앞에는 초겨울 햇살이 잔디며 마른 낙엽들 위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몸이 저리는 듯한 그리움, 안타까움, 막막함...... 그런 감정이 체험되었다. 거의 울음이 날 것같은 감정이었다.

그 감정은 계절이 바뀌며 햇빛의 성질이 달라질 때마다 어김없이 한 번씩 경험하는 것이었다. 새로 돋는 이파리 위로 튀어오르는 봄빛을 보다가, 나무 그늘에 서서 눈이 멀 듯 강렬한 여름빛을 보다가, 코스모스를 쓰다듬는 잘 건조된 가을빛을 보다가, 화르르 불꽃이 피어오를 듯 유혹하는 겨울빛을 보다가, 그러다가 한 번씩 걸음이 멎곤 했다. 걸음을 멈추고 서 있으면 살갗이 마르면서 온 몸이 조이는 듯 저릿저릿한 감각이 뒤따랐다. 머릿속에 휑한 어지럼증이 지나가기도 했다. 그 황망함을 잘 따져보면 그 속에는 막연한 그리움, 입 안이 마르는 안타까움, 맥이 빠지는 절망, 꼼짝도 할 수 없는 막막함...... 그런 감정들이 들어 있곤 했다.

그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느닷없이, 강렬하게 솟구쳐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아 사람들이 이런 감정 때문에 알코홀릭, 워커홀릭, 혼외정사에 빠지는구나 싶기도 했다. 자신들이 찾는 게 거기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에라도 몰두하지 않으면 안되는 심리를 이해할 것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분명 워커홀릭이었다.

면담자에게 그 이야기를 한 다음 내가 발견한 놀랍고 치사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눈앞에서 화르르 타오르는 겨울빛을 보고 있는데 몽환처럼 그림 하나가 떠올랐어요. 햇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버스 다니는 큰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요. 온몸이 비틀리는 막막한 그리움, 살갗이 마르는 듯한 안타까움..... 그런 감각들의 실체가 거기 있었어요. 박탈당한 아버지에 대한 애착을 가슴에 품은 채 하염없이 들판과 동구 밖을 보고 있는 아이였죠. 그 감각이 모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유년의 감각 그대로였던 거예요."

너무 정확해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매듭을 풀자 또 한가지가 이해되었다. 내가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에 강렬하게 매혹되곤 했던 감정의 뿌리 역시 거듭 내게서 떠났던 아버지의 뒷모습에 닿아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뒷모습의 인간학, 뒷모습의 매혹에 대해서 정리해둔 것들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우스워지면서 가벼워졌다.

"그래도 그런 감각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선생님이 무의식의 뿌리를 어디까지 파헤쳐야 할지 모호하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알겠어요. 이제 다시는 그런 감각들이 주는 진한 정서적 체험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본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내달리지 않게 될 뿐이죠. 인간은 아무리 변해도 오퍼센트라고 했죠?" p.296

                   -김형경,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어린아이는 모든 어둠에서 괴물의 모습을 찾아낸다. 그리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는 그 어둠 속에 진짜 괴물이 숨어 있을 수가 있다. 한번 진짜 괴물을 본 사토미는 모든 어둠에 숨어 있는 괴물이 실체가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미야베 미유키 <누군가> 

 

누구나 마침표는 자신이 찍고 싶어하지. 나는 너하고 결혼하면 내가 어떤 득을 볼까, 그것만 생각했어.

무엇을 받을 수 있을까. 얼마나 편해질까 하는 생각 뿐이었지. 하지만 정작 너한테는 해줄 게 아무것도 없어. 솔직히 말하면 뭔가를 해주겠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나는 그저 내가 끌어안고 있는 불안을 해소하고 싶었던 거야.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지. 나는 네가 뭔가 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너한테도 제대로 뭔가를 해주고 싶어.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 내 앞가림도 못하는 걸. 언제쯤에나 그런 여유를 갖게 될지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태양이 돌아갈 곳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고향집이 있다고. 할머니와 엄마, 유키오 네가 있다고. 그게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 어렸을 적에 저지른 실수나 모험담. 거기에는 항상 아사노강이 있고 우타쓰 산이 있고 비가 있고 눈이 있고 바람이 있었다. 그것들이 머릿 속에 떠오를 때마다 유키오의 가슴 속에 자리한 무수한 균열들이 하나씩 메워져가는 듯했다.

신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다른 누구와도 아닌 자신과의 약속이다.

 

약속한 일에 대한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그것이 자기다운 삶의 길이라 믿고 있다.

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제법 어른스러운 깨달음을 얻고난 뒤에도 인생은 후회와 상처의 지뢰밭이다. 메마르고 개인주의적인 도시 생활이 몸에 밴 것같은 20대 후반의 두 여성 리리코와 유키오 역시 어느 순간 지뢰를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폭발해 타버린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건 할머니와 엄마가 살고 있는 고향집 그리고 그곳에서의 아잇적 추억이다. 하지만 역시 믿을 건 가족 뿐이라는 뻔한 공식을 끼워 맞추기에 이 가족의 사연은 간단치 않다. 그 간단치 않은 사연을 무겁지 않게 펼쳐나가는 이 소설은 혈연이 아닌 특별한 인연으로서 가족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네 여자를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는 건 부드러운 연민의 시선이다. 이 진심어린 연민에서 나오는 속 깊은 위로야말로 가족을 가족이게 해주는 본질적 요소가 아닐까. 사랑의 결정체가 결혼은 아니며 결혼 또한 인생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김은형

글쓰기가 주는 기쁨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이 뭔지 아세요? 누군가 내게 "당신은 바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또는 "이 책은 바로 나예요."라고 말할 때랍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한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사물을 경험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싶다."......

브레히트의 문장이 생각나는군요. "그는 타인들 속에서 생각하고, 타인들은 그 속에서 생각하곤 했다." 때때로 난 삶과 글쓰기라는 두 차원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당신이 떠올린 "나는 내 사랑 이야기를 '쓰고' 내 책들을 '살고' 있다."

라는 문장에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내 책과 내 책들 사이의 접근과 교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쟁입니다. 그러한 상호작용은 내 삶 속에서 그리고 내 책들 속에서, 사랑과 성과 글쓰기 그리고 죽음 사이에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 <칼같은 글쓰기>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서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갈 수 있으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

여성 정신분석학자 레나타 살레클은 <시라노 드 벨주락>을 분석하면서 “여자는 연인의 꼭대기에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가?”라고 물은 뒤 이렇게 자답한다. “여자는 사랑의 불안감을 다루면서 그 결과 더 많은 남자를 보유하는 것, 특히 사진 속의 어떤 아버지의 형상을 갖게 된다.”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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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0일

그것이야말로 전에 작은선생님이 말씀하신 시대가 변한다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위해 우사는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 모든 것을.

지금 느끼는 마음 그대로 기억하고, 품고, 야무지게 살아야 한다.

우사는 생각한다. 아사기 가에도 틀림없이 나와 똑같이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구름 위의 존재인 아사기 가 사람들이 갑자기 친근하게도 여겨진다.

 

언젠가는 반드시, 전부 밝히도록 하자.

더 이상 아무도 비밀 때문에 괴롭히고 괴로워하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자.

비밀 속에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지는 일이 없는 세상으로.

그렇게 맹세하고 있는 '누군가'가 여기에도, 저기에도, 곳곳에 있을 것이다.

                                           -외딴집. 하. 240

 

뱃사람들은 별을 올려다보고 진로를 정한다.

신관은 별을 읽어 길흉을 점친다. 

여자와 아이들은 별에 소원을 빈다. 

지상에서 깨끗하게 죽은 사람은 하늘 위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무수하게 넘쳐난다 해도 별로 하늘을 메울 수 없다.

별과 별 사이에는 어떤 빛도 비치지 않는 어둠이 있다.

 

와타베는 깨달았다. 나라는 하찭은 사람의 삶은 그런 틈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형태를 이루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어떤 소원도 빌지 않는 별과 별 사이의 어둠에, 내 운명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내가 바라는 바다.         -313면.

 

머릿수를 믿고 일을 벌일 때 사람의 마음은 빛을 잃는다  -34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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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0일 

다짐

1. 책과 인터넷은 집에서만

2. 8시간 노동

3. 귀가시간 지키기

 

기억하기 위해 옮겨적기

 

"당신은 예술을 왜 합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무서운 답은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취미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해야 하는 업이니까요.

 

대학시절 <릴케의 로뎅>을 처음 접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예술을 유희라고 여겼는데,

"작업, 단련, 의무, 수공......"과 같이 예술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이 책 주위에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예술을 노동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유희로 볼 것인가. 전문가(직업인)에게 있어서 예술은 노동이고 아마추어나 감상자에게 있어서 예술은 유희입니다. 또한 아마추어에게는 좋은 예술가나 좋아하는 형식, 스타일이 정해져있지만 프로는 모든 영역을 다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땀방울입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하염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투여하는 겁니다. 

    -김탁환, 따듯한 글쓰기

 

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 -진은영, 긴 손가락의 시

 

추억에는 언제나 경련을 일으키는 세부 사항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러한 세부사항이 추억에 이미 정지현상을 일으키죠. 그것이 감각과, 감각에 의해 촉발되는 모든 것을 자극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어머니가 손에 들고 있던 냅킨과 같은 사물이나, 내 뱃속의 태아를 두고 "아이가 다시 기운을 차렸어요."라고 말하던 불법 낙태시술자의 한마디 같은 문장이 그런 것들입니다.

......

때때로 난 삶과 글쓰기라는 두 차원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당신이 떠올린 "나는 내 사랑 이야기를 '쓰고' 내 책들을 '살고' 있다."라는 문장에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내 삶과 내 책들 사이의 접근과 교환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투쟁입니다. 그러한 상호작용은 내 삶 속에서 그리고 내 책들 속에서, 사랑과 성과 글쓰기 그리고 죽음 사이에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 칼같은 글쓰기, 55면, 158~159면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하게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남쪽으로 튀어, 2권 2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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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5일

"나는 여러해 동안, 쓰레기 처리가 사회의 한 계층의 일로 되어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느껴 왔다.

우리는 가장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이 필수적인 위생 서비스를

처음으로 할당한 사람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누구였든 간에 그는 전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우리 모두가 청소부라는 인식을 마음에 새겨야한다.

그렇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을 깨달은 사람 누구나

청소부 일로 생계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성적으로 선택한 청소부일은

인간의 평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적인 노동은 영혼을 위한 것이고,

그자체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은 보수를 요구해선 안된다.

이상적인 국가에서 의사, 변호사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아니라 오직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일할 것이다.

생계노동의 법을 따르면 사회구조에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 것이다.

생존을 위한 노력을 상호봉사를 위한 노력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 인간의 승리가 될 것이다.

짐승의 법 대신 인간의 법이 들어설 것이다. "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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