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15년 1월 4일:신뢰의 길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뻣뻣하다.

사고 후에 베게는 안 쓰는데

의사선생님이 접은 수건을 베고 누워보게 한 후

"이 정도면 어떤가?"라고 물어보셨는데 괜찮았다.

해변에서 쓰는 비치타월을 접어서 베고 잔다.

그런데 최근 3~4일 동안은 목이 뻐근하다.

늘 엎드려 자는 게 습관이었는데

사고 후에는 늘 바르게 누워서 잔다.

그래도 잠버릇은 어쩌지 못해서 새벽에 깨어보면 엎드려있곤 한다.

옆구리가 결리고

아랫배가 아픈데 내장이 아픈 게 아니라 

내장을 둘러싼 몸통에서 은근한 통증 같은 게 느껴짐.

약이 바뀌었는데 처음 며칠동안은 맛이 너무 없어서(!)

약간 괴로웠지만 또 먹다보니 익숙해짐.

정강이가 너무 가려워서 아마도 잠결에 긁어서 그런 건지

상처가 많다.

상처가 점점 커시면서 곪고 진물이 난다.

몸은 정말 이토록 변화무쌍하게 다양한 신호와 상처와 증상을 보여주고 있다.

11월에 너무 아픈 날, "몸한테 빌고 싶다"라고 하니

선생님이 "용서를 빌만 하다"라고 했다.

(부드럽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웃으면서 가끔 신랄한 표현을 하심)

사고 후에 처음으로 나한테 '몸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침을 정말 싫어했는데(무서워서 싫었다)

언젠가 친구 MS가 봉침을 맞는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니

MS는 "침을 맞을 때면 나한테 몸이 있다는 걸 느껴"라는 답을 했었다.

그런데 아파보니 나한테도 몸이 있었더군.

 

H의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매일 통원치료를 해야 한다고 해서

병원을 물색하던 중에 지금 다니는 병원에 처음 가봤다.

그 때 접수대를 지키던 간호사선생님이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한다"라고 해서

물리치료만 받을 수는 없냐고 물으니

물리치료는 병원에 오는 환자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거라

따로 물리치료만 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오겠다 하고 다시 돌아나왔다.

침 맞는 건 정말 싫었다.

동생이 소개해준 한의사들은 약을 주로 쓰고

물리치료를 해줬던 것같은데.

그래서 침 맞지 않는 한의원을 가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해있던 2주동안 

나는 아침이면 늘 뻣뻣한 몸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물리치료실이 문을 여는 순간을 기다려서 늘 1~2등으로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고 나면 뻣뻣했던 몸이 풀렸다.

헤어지던 날, 물리치료사는 나한테 몇가지 스트레칭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단 한 개도 기억하지 못했다.

몸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 말고

몸을 위해 뭔가를 하는 일을 정말 오랫동안 안해본 거다. 

퇴원을 하고나서 내가 바랬던 건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었다.

어깨에 뭔가를 붙이면 전류같은 게 흐르면서 뻣뻣했던 몸이 부드러워졌으니까.

그러고나면 물리치료사가 어떤 지점들을 짚어가며 굳은 곳을 풀어주었으니까.

 

한의사가 된 후배는(우리 과 졸업생들 중 한의사가 된 사람들이 좀 된다. 신기)

여러 번 전화를 해서 동네 한의원을 다니라고 했고

그래서 찾아간 병원이었다.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하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원도 없었다.

결국 가족들이 도시에 있는 엄마의 집을 추천해줬다.

그 선택이 약간 후회가 된다.

결국 지금은 매일 침을 맞고 있다.

그날 한 번 더 생각하고 곧바로 지금의 의사선생님을 만났으면

좀더 빨리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텐데.

어쨌거나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젠 침이 무섭지 않음.

다른 치료가 너무 아프니까 따끔거리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아프냐고 물었을 때

"이젠 뭐가 아픈 건지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통증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해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언어로 표현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이렇게 몸일기 폴더를 만들었다.

 

지금 내 몸의 증상.

1. 코가 막힌다(이건 늘 있는 일)

2. 입술 오른쪽이 부어올랐다

이것도 가끔 있는 증상. 뭔가를 먹으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중2때부터였다.

중2 9월 30일에 나는 해남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종종 당하는 일이다.

몇 번 반복이 되자 그날 먹은 것들을 생각해보곤 했는데

돼지고기, 초컬릿 정도.

3. 목이 뻐근해서 잘 돌아가지 않는다.

목부터 허리까지 이어있는 등뼈에 단단한 철판 같은 게 덮여있는 것같다.

4. 오른쪽 팔이 아프다. 뭔가 무거운 짐을 든 후의 상태같다.

5. 두통:오른쪽 위.

 

어느 순간 의사선생님한테 할 말을 고르게 된다.

다양한 강도와 종류의 통증을 경험하면서

이젠 정말 아픈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빽빽한 침상 어느 한 자리에 누워서 다른 환자들의 말을 듣다 보면

나처럼 말을 많이 하는 환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내가 엄살을 피우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니다 사실 나는 엄살을 피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지만

묵묵히 치료를 받는 사람들 속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엄살을 피우는 것으로 인식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병원이 위치한 곳은 

무려 온수리이니....

그 곳에서 말들이 오가고 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

아는 얼굴들을 하나, 둘, 셋....

급기야 저번주에는 교인을 만났다.

절망적인 마음 상태에서 의사선생님을 만나

심신을 의탁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같다.

이제는 내부와 외부를 구분해야 할 때.

그래서 이렇게 매일매일 자세하게 기록을 한 후에

뭔가 정리된 말을 해야할 것같다고 생각함.

 

나는 지금 선생님을 굳건히 믿고 있는데

사실 내 온 마음이 선생님을 항상 굳건히 믿는 건 아니다.

몸과 건강에 대해서라면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산더미같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내 주위에는 양의든 한의든 의사도 많고

또 교통사고 선배들도 무진장 많다.

소문난 명의를 찾아다니며 장기치료를 받은 사람만 셋.

최근에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가 셋.

어제 마을모임에서 교통사고 얘기를 했다가 

"요즘 교통사고가 유행이야? 왜 이리 많아?"

하는 반응을 접했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보다 2주일 먼저 교통사고를 당한 어떤 사람은

"치료를 잘 받아서" 몸이 다 나았다고, 

병원을 잘 선택한 것같다는 말을 하고

그러면 나는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있나 하는 의심에 빠져든다.

그럴 때 남편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해준다.

자기는 나만큼의 믿음도 없으면서

내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바로잡아준다. (이거야말로 아이러니)

눈을 감고 따라가는 신뢰의 길.

지금은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