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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던 시간

** 매일매일 작업일지

 

1.

컨버팅이 끝났다. 이제 써치를 하면 된다.

써치만 하면 되는데...

늘 그렇듯 다른 일들이 너무 많아.

 

2.

저번 주에 개강을 했다. 

저번 학기부터 학생수는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다른 교수님들과 모여앉아서

"왜 이런 일이...."

하며 머리를 맞대보지만

당연한 거다.

과의  정원이 30명인데

졸업작품 준비하는 학생이 20명이 넘는다는 건

원칙적으로는 놀랄 일이 아닌 거.

나는 이번 학기에 7명의 학생을 배정받았고

저번 주에 기초조사를 했음.

대부분 휴학을 했다가 복학을 했고

그게 마침 저번 학기부터 이번 학기까지 인 거고

그러니 앞으로 이런 일은 더 늘어날 것이다.

 

하고 싶은 작업에 대해서 물어보다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를 들음.

폐광지역의 10대 후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런데 그 10대들은 자신의 부모.

계산해보니 그애의 부모와 나 사이에는 3년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

아니다 나는 떠나왔으니

떠나지 못하고 남은 동네 오빠, 동네 언니, 내 친구들일 수있는

그애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절망이 떠올랐다.

그 절망은 너무나 익숙하고 그래서 나는 오빠에게 감사했다.

http://blog.jinbo.net/rmlist/154

 

3.

작업 외에 하는 일 중에 그나마 맘에 드는 일은

심사.

제작기획안을 보거나 영화를 본 후

회의를 하고 어떤 결과를 내는 일.

게다가 돈도 받는다.

 

보다가 눈물을 펑펑 쏟았던 영화.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일은

이런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그런 순간을 만들고 있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pGBYzbvssQ0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음악.

최근에 발견해서

듣고 듣고 또 들었던

스웨덴세탁소의 음악을

새롭게 느끼게 해준 영화.

음악은 정말 가장 몰입도가 뛰어난 장르.

 

 

 

 

 

4. 

다음 주 천안에서 있을 어떤 심포지움의 발표를 위해

영화들을 본다.

<4등>은 아름다웠고 <비밀은 없다>는 처절했다.

<4등>의 엄마는 혐오스러웠고

<비밀은 없다>의 엄마는 나를 보는 것같았다.

아빠들은 다 어디 가고 엄마들만 악에 받쳐있는가.

그런 내용으로 발표하고 싶다.

 

5.

촬영감독과 돈대답사를 다니는데 엔진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엔진오일 갈 시기를 놓쳐서 그런가 했는데

갑자기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오일없이 삐걱거리는 부속들이 연상되어서

걱정이 되었다.

정비소에 가보니 그럴 일은 없었던 게

엔진오일이라는 게 자동차 연료처럼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

그러니까 엔진오일 교체시기를 놓친다는 건

엔진오일 안에 찌꺼기가 많이 생긴다는 거였다.

안심.

 

차에서 소리가 많이 나는 이유는 마후라가 깨져서라고 했다.

뒷부분, 중간 부분 두 부분이 깨졌다 했다.

촬영감독에게 그 말을 전하니

"일부러도 개조하는데 냅둬요.

소리로만 따지면 스포츠카인 걸"

 

며칠 후 D선배도 내게 똑같이 말했다.

"뭘 그런데 돈을 들여? 일부러도 개조하는데"

그 때 우리는 동그라미가 네개 그려진 외제차를 타고 있었다.

내가 내 차의 소음 얘기를 꺼낸 이유도

차가 너무나 조용해서였으니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운전자 및 차주는

"개조랑 깨진 게 같아?

할리 데이비슨 같은 오토바이만 해도

마후라 개조할 때

얼마나 정교하게 디자인하는데"

라며 우리를 좀 한심하게 보았다.

 

그래도 뭐 어때, 하면서 타고 다녔는데

어느 날 아침, 모임 때문에 차를 두고온 남편을 태워다주는데

차 소리 시끄럽다고 난리난리....

"나는 시끄러운 거 괜찮아" 하는데

연료도 많이 먹고 차가 상한다,라며 꼭 고치라고 했다.

결국 정비소 가서 고침.

고치고 나니 볼륨을 높이지 않고도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음.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삼거리의 볼록거울을 보고 철렁.

양쪽에 차가 안와서 출발했다가 볼록거울 보고 깜짝 놀라서 다시 보면 그게 내 차다.

이솝우화의 개도 아니고

볼록거울 보는 법을 공부햐야겠음.

볼록거울 보는 법, 비보호,는 아직도 잘 모르겠음.

 

6.

얼굴은 모르지만 아는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금요일엔 그 분 삶을 애도하며 술을 마심. 

너무 슬퍼서 너무 많이 마셨다.

 

매혹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나는 결혼하면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일들이 없어질 줄  알았다.

한국 사회의 남성들이 젊은 여자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외모와 상관없이 끈적거리는 게 있었다.

그게 싫고 골치아팠고, 그리고 결혼하면 그런 게 없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고 만남의 폭이 넓어지면서

나와 내가 믿는 사람들이 속해있는 세상과는

사뭇 다른 구조와 작동방식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됨.

몇 번의 혼란스런 상황을 겪은 후, 여지를 두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게 됨.

 

매혹은 언제나 어디나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데에 나이 제한이 있을리는 없으니까.

다만 그 호감이 어떤 길로 갈 건지는 섬세하게 길을 내고 벽을 쳐야 한다.

금요일의 나의 슬픔은

그러지 못해서 평생 외로웠던 한 인간에 대한 애도였다.

<비밀은 없다>를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짐.

금요일의 그 사람도, <비밀은 없다>의 남편도 매혹을 비밀스런 관계로 이어갔다가 몰락함.

 

호감을 로맨스로만 이어가기 위해서는 마땅한 댓가를 치러야한다.

호감을 로맨스로 이어가는 게 뭐가 문제냐고?

그러려면 감정과 관계를 일치시키는 삶을 선택하면 된다.

어떤 이의 에세이에 나오길

감정과 관계의 일치가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어떤 나라의 경우,

그러니까 동거나 결혼이 자유로운 어떤 나라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평생동안 여덟 번 정도의 결혼이 평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마음 가는대로 감정이 끌리는대로 몸이 이끄는대로 살다보면

평균 여덟 사람 정도와 같이 살게 된다는 거지.

평생 여덟 사람에만 매혹되겠어?

그 나라의 평균치가 그만큼이라는 거겠지.

감정과 관계를 일치시키지 못할 바에야

관계를 지키고 감정을 조절하는 게 현명.

내가 도덕적인 인간이라 그러는 게 아님.

폴리아모리로 살아갈 게 아니니 그러는 거다.

빛나던 것들이 어떻게 스러지는가를

그 스러짐의 불일치 때문에 얼마만큼 힘들었는가를

잠깐 생각해보면 현재의 매혹도 그 끝이 보인다.

잠깐 스러질 빛에 명예와 가족과 신뢰를 걸 수는 없는 일.

세상 모르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저번 주에 읽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인>은

소위 '불륜'이라 불리는 행위의 주체와 그 행위 때문에 영향받는 사람들

:그러니까 당사자, 각자 가정의 구성원들(배우자, 자녀), 회사 동료

의 관계와 심리적 고통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우연히 집어든 소설 하나도

우연히 다운받은 영화 하나도

비슷비슷한 경고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 바로 곁에서 그런 사람의 일대기를 알게 됨.

'(본인에게는)강렬한 로맨스'였을 어떤 행위 때문에

명예와 가족과 후반부 삶의 평화를 잃은

고인에게 깊은애도를 표함.

 

여태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나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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