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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패배

한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라고 하니 너무 거창한 듯.

하지만 이 글의 제목도 실패,라고 쓰려다가

결국 패배라고 쓴다.

나의 한 시대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패배했다.

 

나는 미디어교사다. 

처음엔 정말 쫄며 설레며 울며 기뻐하며 그렇게 시작했다.

http://blog.jinbo.net/rmlist/691 )

 

미디액트를 근거지로 나는, 우리들은

최초의 여러 시도들을 진행했고 그 성과는 널리 퍼져나갔다.

나는 때로는 내 직전 강사의 강의록에서 내 글을 발견하기도 했고

우리들의 성과를 자기화하려는 단체로부터 필진 의뢰를 받기도 했다.

http://blog.jinbo.net/docurmr/269 )

끝까지 거절했던 나 대신 다른 사람을 필진으로 데려가서

방통위에서 장애인미디어교육가이드북을 썼는데

거기에 내 글이 여러 장 인용없이 통째로 옮겨가있어서

소송을 할까 생각도 했지만

바빠서 관뒀다.

 

2013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다시 돌아보니

미디어교육 지형은 너무나 변해있었다.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나 시청자미디어센터에 모든 자원이 집중되어있었고

이제 기획안을 써서 돈을 따내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우리 시청자미디어센터 강사가 되자"라고 했고

내가 맨 먼저 면접을 보고 탈락도 해가면서 강사가 되었다.

지난 2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저번주에 c와 하반기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2년간의 시도, 혹은 실험을 이제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C가 말하길,

상반기 교육이 반응이 좋아서 센터에서 하반기에 다시 강좌를 개설하고 싶다고 했다한다.

나는 같이 하지 않겠다고 했다.

종강연 때 이미 C에게 '너무 멀어서 지친다'라는 말과 함께 이미 의향을 말한 터였다.

길게 말할 상황이  아니어서 그날 그렇게 끝난 이야기를

C는 다시 꺼내며 단지 거리 때문만이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했다.

내가 오버하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인천에서 다큐멘터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고

내가 도울 수 있기를 바랬거든.

그런데 지난 2년간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래 전부는 아니지만

그냥 방과후 교사나 자유학기제 교사를 하기 위해서 내 강의를 듣는 거였어.

나는 대학에서도 계속 다큐를 할 사람과 다른 전망을 가진 사람을

다른 위치에 놓고 대화를 하거든.

나는 내가 다큐를 늦게 시작해서 

늦게라도 다큐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껴.

동일시같은 거지. 

그런데.....그건 나의 착각이었던 거야.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부업으로 다큐제작을 경험하고 싶을 뿐인 거야.

거리가 멀다는 게 가장 큰 이유긴 해.

그런데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그 만남이 기쁨이고 내가 보람을 느낀다면 나는 상관없어.

그런데 2시간 반을 걸려 거기에 가서 '살짝 경험하고 싶을 뿐인데 왜 이렇게 많은 걸 바라나'

라는 눈빛을 만날 때면 피로감이 몰려와. 극심한 피로감이.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C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C야, 내가 다  못한 말이 있어.

종강연 때 수강생 중 한 사람과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정확히 내가 선 자리를 직면했어.

그는 로봇, 스피칭, IT 등등 다양한 교과목의 방과후교사를 했더라구.

그리고 나의 강의를 듣는 거야. 자유학기제의 보조교사를 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더라.

내가 선 자리가 바로 그런 거였어.

나는 작년에 미디어교육사 재교육 멘토를 했었어.

2004년 미디액트의 그 교사들을 생각했었지.

그런데 그분들은 참 귀찮아했어.

그러니까 결과물만 공유해주길 바랄 뿐이었어.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교육의 내용과 수위는 참여자에게 맞추는 거라고

참여자를 만나고 참여자의 상황을 파악한 후 진행된다고 몇 번을 얘기해도

그분들 중 대다수는 관심이 없었어.

출석하고 수료증 받는 것에 관심이 많더라고.

나의 선생이었던 o는 그만두겠다고 했고 나는 O를 계속 붙들었지.

그래도 우리가 여기 있어야 한다, 이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발굴된다면 그걸로 기쁨인 거야....

 

C는 그 때의 내 입장인 것같고 나는 그 때의 O와 처지가 비슷한 것같아.

그런데 지쳤어.

2년동안 교육을 하면서 프로세스나 평가툴은 

2004년에 O를 비롯한 미디액트의 선생들에게 배우고

함께 만들었던 거랑 거의 비슷하다는 걸 알았어.

그러니까 얼음에 갇힌 맘모스에게서 뿔만 갖고나오는 거랑 비슷한 거지.

붉고 뜨거웠던 피는 다 사라져버리고 

전리품처럼 그 성과만 가져온 거야.

 

나는 힘이 들었다.

나는 돈벌이만을 위해 이 일을 한 건 아니었어.

돈벌이는 많지.

나는 내가 하는 일 중에서 영화 만드는 일 말고 미디어교사가 가장 의미있었다고 생각해.

후배들이나 학생들한테도 말했어.

나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일이야.

미디어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일이야.

모든 사람이 볼펜 하나는 가지고 있듯이

모든 사람이 미디어를 쓸 수 있게 하자.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더라고.

자원이 집약되어있는 공적 기관에서는 성과 내는 게 중요해.

교사들 또한 성과를 내어서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계속 할 수 있게 되는 게 중요해.

종강연 때(그날은 센터의 생일이기도 했어)

센터의 첫번째 정회원이자, 정회원에서 교사까지 하고 있는 

입지전적 인물로 어떤 남자가 축사를 하더라구.

그 남자의 얼굴이 너무나 낯에 익었어.

저 남자를 어디서 봤더라, 저 남자를 어디서 봤더라, 저 남자를....

그런데 C랑 통화하던 중에

작년의 미디어교육사 재교육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 남자 얼굴이 떠올랐어.

 

우리들이 참여자들을 이해하고 교안을 짤 수 있는

수많은 사이트들을 소개해줬는데도

숙제를 한 번도 안해오던 남자가 있었어.

그 남자에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물었을 때

그 남자는 말했지. "바빠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어.

우리는 다들 바빠.

그런데 뭣 땜에 바쁜가가 중요한 거야.

나라의 세금으로 미디어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어요.

당신들, 교사들은, 그 장의 가치를 좌우할만큼 중요한 사람인데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게 당신들을 위해 교사로 나섰는데....

그냥 돈벌이로만 생각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나는 목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그래도 좀 열심히 해달라는 부탁을 했었지.

그때 그 사람이

입지전적 인물로 앞에 서서 축사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그만 두기로 했어.

아깝고 배가 아파.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야지.

그때 뿌린 씨앗들이 이렇게 성대한 밭을 이루었다.

공적 기관들이 찾아가는 미디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면 되었다.

나는 내 일을 하면 되는 거지.

그래도  배가 아픈 건 어쩔 수가 없어.

그 좋은 장비, 그 좋은 시설,

그것들이 조성되는 데에는

2004년에 시작되었던 그 노력들이 컸는데

그 정신들은 다 사라지고

기관들은 성과에 목을 매고 있어.

교사들은 참여자의 상황과 욕구보다 자신들의 선경험을 우선시해.

그건 죽은 교육이거든.

 

거기에 내가 서있는 거야.

기관도, 교사들도, 별 문제의식없이 

부드럽게, 하하호호하며 잘 굴러가고 있는 그 벨트 위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야.

 

그냥 철수하자.

아까워도 그냥 그네들의 천국에 맡겨두는 거야....

 

아, C에게 이런 말도 했엇다.

앞으로 센터와는 학생들 교육만 해보려고.

파주나 강화나 이런 곳 아이들은 혜택을 너무 못 받잖아.

그냥 그 아이들 교육만 할 수 있으면 할래.

그래 그렇게 할래.

 

이렇게 끝.

나는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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