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운명

옛날에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어떤 행동 때문에  

나는 깊이 상처받았다.

그런데도 헤어지지 못했다.

용서할 수도, 헤어질 수도 없는 관계는

두 사람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용기를 냈어야 했다.

용기를 내지 않았지만

결국 끝이 났다.

 

어느날 그는 강남에서 소문난

명리학자와 상담을 하고 왔다.

그가 다녀온 곳은 늘 예약이 꽉 차 있어서

한 달은 기본으로 기다리는 곳인데

상담가는 남성이었다고 한다.

(그가 알려준 바로는 여성은 주로 신내림으로

남성은 주로 학습과 연구를 통해서

누군가의 운명에 대해서 밝은 눈을 가지게 된다고....)

 

그가 돌아와서 내게 한 말은

"너는 음력 2월생.

음력 2월은 날씨가 풀렸다가 추웠다가 하는데

그래서 너가 변덕스럽대"

그 말에 나는 깊이 실망했다.

 

나는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너를 어쩌지 못하는 거였어.

너를 사랑하지만

네가 한 그 행동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못해서

갈팡질팡했던 거야.

너랑 잘 지내면서 '그래 이러면 됐지' 싶다가도

가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거야.

너 때문에 내 삶에 들어와버린 어떤 돌부리에.

 

결국 나는 그와 헤어졌다.

헤어지길 잘했다.

지금도 가끔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쓰라리다.

아직도 아물지 못한 어떤 부분이 있어서.

 

지난 주에는 우연히 사주에 대한 두 개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년월일을 알면 누군가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이야기.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리고 고부간 갈등으로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동료의 이야기는 그러려니 했는데

고부간 갈등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의아했던 것은

그 사람의 사주에는

남편 자리에 시어머니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남편이 아니고

다른 남편을 만났어도 시어머니라는 존재와는 트러블이 있다는 거지.

그건 너무 이상하지 않나?

 

말하자면 나도 음력 2월 생이라

따뜻했다 추웠다 하는 날씨의 영향을 받아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고 했다는데

그러니까 나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는 거잖아!

내가 고통받았던 것은 그의 어떤 행동 때문이었는데

그건 말이 안되는 거 아냐?

그런 식이라면 노력이나 관계나 인연이라는 것들이

다 소용없는 거 아냐?

 

지난 주에 들은 생년월일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며칠동안 옛날 일이 떠올라 잠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냥 흘려버려야해.

그런데 여전히 내 길에는 돌부리가 있다.

다행히 아주 작아져서 거기에 걸리는 일은 거의 없는데

며칠 전 운명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 돌부리에 걸려서 며칠 엎어져있었다.

부질없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