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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새벽에 눈이 떠졌다.

이번 주는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야할만큼 일이 많다.

목요일 00영화제에서 '모성'에 대한 발표를 해야  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제 아침에 받은 메일에 추가로 봤으면 좋겠다는 영화 목록이 적혀있었다.

용량이 부족하다는 g메일의 경고는 결국 '수신불가' 경고로  바뀌었고

일요일밤에 구글드라이브 파일들을 대거 지우니

월요일 아침에 그런 메일이 와있었던 거다.

명절 전에 보냈는데 못 받은 거같아서  다시 보냈다 한다.

메일 보내고 문자 하나 보내면 어디가 덧나나.

저번 주에 처리해서 발표준비를 했으면 될 텐데...

목요일  발표는 벌써 한 달도 전에 예약된 거였다.

아는 교수님이 부탁을 해왔고 곧바로 기획서를 메일로 받았다.

기획서에 적힌 영화들을 보고 대략적인 발표의 개요를 잡고 있었는데

명절 전에 보낸 추가메일을 나는 어제사 받았고

추가영화도 보냈다 하길래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추가로 봐야할 영화는 자비에 돌란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 방은진감독의 <날아간 뻥튀기>.

보내주는 영화는 저 두 영화 플러스 <4등>.

나는 <4등>은 봤으니 다른 두 영화를 다시 좀 보내달라는 문자를 보냈고

답이 없어서 전화를 했는데 받을 수 없다는 음성메시지가 들리더니

보내겠다는 문자가  왔다.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안왔다.

 

작업실에서 짐을 챙길 때에는 집에서 할 일을 고려해서 짐을 챙긴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20일까지 <보이스> 원고를 써야하고

노인영화제 관련해서 영화 39편의 시놉시스와 리뷰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는 게 목요일의 발표다.    

작업실에서 관련 일을 하다가 집에 가서 할 일로

00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내주면  그걸 보리라, 하고 가볍게 왔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2시에 일어나서 메일을 체크하니 <4등>만 왔다.

이런 게 스트레스다.

<4등>은 봤으니 나머지 두 영화를 좀 보내달라는 요청이 무시된 거다.

오인이거나 무관심이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낮에 한의원에서 선생님이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남편이 아픈 거"라고 말해놓고서

나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기본적으로 일이 너무 많다.

1학기에 비해  세 개의 교육이 정리가 된 상태라  그나마 좀 낫다.

하지만 여전히 일이 많다.

예전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잘 시간을 꼭 지킨다.

밥은 천천히 먹고  밥을 먹은 후에는 꼭 걷는다.

식사시간, 수면시간, 그리고 운동.

예전에는 밥도 자주 거르고 밤을 새는 일도 많았지만 오래 일할 수 있기 위해  노력중이다.

몸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교류를 끊었다. 

교류라고 해봐야 별 건 없었지만

그래도 푸른영상에 자주 갔고 대학민주동문회의 모임에 가끔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기타 자잘한 교류들.

어제도 한의원 진료가 끝나자마자 공부방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우리애들이 맨 꼴찌)

놀다 가라는 선생님의 제안을 웃으면서 거절.

빨리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빨리 영화를 보고 빨리 글을 써야 했으니까.

이렇게 여유없이 꾸려지는 일상에서

방금, 잘못  온 영화처럼, 삐끗하면, 그게 나한테는 스트레스가 된다.

일이 많다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니라

많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나름 시간을 배치해가며 일상을 조직하는데

새벽 타임이 펑크가 난 이런 상황, 이런 게 스트레스다.

영화 리뷰를 쓰기 위해 노인영화제 일을 가져왔다면 좀 나았을 거다.

뭐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해 화살이 돌아오기도 한다

지메일함을 그때그때 비웠으면, 노인영화제 일을 가져왔다면, 이런 식.

그런데 남탓이 편하다고 새벽에  깨서 00영화제  프로그래머한테 혼자 화를 내고 있다.

일을 왜 이딴 식으로 하냐.

연휴 전에 메일을 보냈다는데  보내면서 메일 보냈다는 문자 하나 주면 뭐가 덧나냐?

어제 내가 전화를 했는데 안받았으면  문자라도  제대로 읽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발표 이틀 전인데 발표장에서 언급되는 영화도 다 제대로 못 본

이 상태가 나한테는 스트레스인 거다.

 

12월까지 완성해야하는 영화는 늘 스트레스의 기본 줄기다.

손에 익지 않는 파이널컷으로 편집을 해야 하는데 

아직 편집은 시작도 안했는데 그러니까 본게임은 시작도  안했는데

다른 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다리가 저린다.

다리가 저려 양반다리를 하면 허리가 아프다.

토요일부터 배변이 안된다. 

물을 많이 마시니 20분에 한번씩은 화장실엘 간다.

새집증후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창문을 열어두면 미세한 소음이 들린다.

큰 소음이 아니라 미세한 소음이다.

신경을 자극하는 미세한 소음의 정체가 궁금해서

시설팀 직원에게 "새소리처럼 삐~하는 이 소리는 무엇인가요" 물으니

환풍기 소리라고 한다. 

진원지가 환풍기라는데 덜컹이는 게 아니라 삐  하는 일정한 파장이 있는 소리를 낸다.

어제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눈보라치는 만주벌판' 을 표현할 때 쓰는 앰비언스가 들렸다.

 

사실 이 모든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가 뭐냐고  물으셔서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사소한 것부터 큰것까지 이렇게 저렇게 생각이 나는 것 뿐이다.

삐~ 하는 소리도, 화장실엘 자주 가야하는 내 몸도, 새집증후군도

다 익숙해졌고 다 이해했고 다 대책을 마련했다.

그냥 살면 되는 거고 그냥 가면 되는 거다.

단단한 땅 밑을 흐르는 물줄기처럼

땅을 파보면 뭔가, 뭣이든 흐르고는 있을 거다.

나는 그냥 덮고 '사는 게 그렇지' 하면서 가고 있다.

많이 발전했다, 나는.

 

그런데 여러 종류의 일을 닥치는대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별을 못할 때가 있다. 

'기회다' 싶을 때가 분명 있다.

문제는 그걸 사전에 감지하는 게 아니라 사후에 깨닫고 나서

'아, 나한테 기회였었는데!' 하고 아쉬워하는 거다.

CBS가 그랬고(KBS3라디오보다 CBS라디오가 훨씬 파급력있다는 걸 놓치고 나서 알았다)

국립재활원 강의가 그랬다.

2주 전에 있었던 진로강의도 역시 나한테는 기회였던 것같다.

미디어교육은 내가 아니어도 대체가능하다.

하지만 모성이 화두인 영화작업, 장애코드로 영화읽기 같은 건 나만의 영역이다.

그런데 그냥 정신없이, 메꾸기에 급급한 태도로 지나간다.  그러다  망한다.  

뭐 그래도 망했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국립재활원  강의는 전국화의 계기라 생각했는데 망해서 기회는 날아갔다.

그런데 의외로 누림센터 강의가 전국화,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파급이 되어서

다음 달엔 제주도에 간다.

구로, 수원, 가평, 제주.....

담당자와 통화를 하다보면 묘하게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 정부에서 인권교육을 조직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해당 조직에서 인권교육은 의무사항이다,

이 의무사항을 지켜야하는데 가능하면 대중적인 강의를 배치하고싶다,

거기에 내가 등장하는 거다.

6월의 서울성북강의를 요청했던 이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직원교육이 의무다, 직원교육으로 섭외를 했는데 이왕 하는 김에 시민들에게도 열어놓았다,

이 멘트도 똑같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나만 모르는 어떤 흐름이 있는 건 확실하다.

작년에 만들고 몇 군데에서 진행하며  호응을 얻었던 강의소스가 있다.

아마 지금 시간을 내어 더 발전시킨다면 더 큰 호응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가 선택의 순간이다.

나는 다큐멘터리감독인데, 인권강사로서의 면모를 더 강화할 것인가.

당연히 다큐멘터리 만드는 데 집중해야지. 그게 내 본업인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돈을 벌어야하니 일상이 분주해지는거다.

 

그래도 어제  40편의 글을 써야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한숨을 쉬다가 생각했다.

일할 수 있다는 게 어디야.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게 어디야.

20대의 그 막막함을 생각해봐.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그걸로 돈을 버는 이 자리는

어쨌든 열심히 노력해서 따낸 거잖아.

그러니 화내지말고 가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가자.

아니, 스트레스는 나를 밀어가는 힘이잖아. 

스트레스를 동력으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가고 있는 거다.

 

가족과 한의원은 다른 색깔의 에너지로 나를 채워준다.

한의원에 가면 돌봄을 받고 있다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충만해진다.

한의사선생님 무척 멋지심. 어제는 받아적고 싶은 말씀을 하셨다.

책을 내시면 좋을텐데.

최근 주변의 암발병율이 갑자기 높아지는 걸 보니 새삼 그런 생각이.

나만 알고 있으면 안되는데.

나만 좋아지면 안되는데.

나만 행복해지면 안되는데.

만나는 사람들에게 틈틈히 내가 알게된 것을 말해주지만

말하다보면 공허해진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야하는 거라.  

전망을 고민하는 둘째에게 "한의사선생님 좋지 않아?" 라고 말한 이유가 그래서이다.

병으로 불안으로 스트레스로 지쳐있는 사람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는 그 일은

세상을 구하는 일인 것같다.

작년 이맘때(아니다, 한달 후 이맘때이다)의 그 절망과 암담함을 생각하면

한의원 분들은 내 평생의 은인.

나중에 영화만들면 크레딧, 고마운사람 란에 꼭 이름을 써야지.

 

가족은....하하

막내는 늘 대변을 본 후에 내게 보이며 자랑을 하는데

어제는 그동안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거대했다.

내가 깜짝 놀라자 막내는 의기양양해했고

첫째와 둘째도 불러서 보여줬다.

다들 놀라움을 금치못함.

어제는 막내가 tv에서 본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빵집에 가서 바게트를 사고 마트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바게트 가운데 구멍을 낸 후에 거기다 아이스크림을 채워넣는 건데

막내는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언니 오빠가 한쪽씩 밖에 안먹어서 내가 열심히 먹어줌.

(요리했는데 안먹어줘서 혼자 다 먹는 설움을 내가 잘 알지)

 

장기출장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과 떠들썩한  통화를 하고 일찍 잤다.

교통사고  후 꾸준히  치료를 해서 내 몸은 좋아지는데

남편은 바빠서 몸을 돌보지 못한다.

<뱀파이어의 고백>의  톰 크루즈는 영생이 얼마나 자신을 외롭게 하는지 토로한다.

내게 영생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렇게 혼자 남겨질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나는 너밖에 없다.

너는 나를 아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이다.

너는 나의 남편이자 친구이며 애인이자 상담자이다.

네가 없으면 나는 세상에 외톨이로 남을 것이다.

제발 내가 먼저 죽게 해줘.

 

아이들이 태어난 후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 여름, 세 아이가  모두 집을 떠난 후에

남편과 둘이 밥을 먹으며  남은 생이 이럴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득해졌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나는 그들의 엄마일 뿐이지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들을 돌보고 홀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돕겠지만

홀로선 그들에게 나는 가끔 보는 사람일 뿐일 거다.

일상을 나누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은 남편 밖에 없을 거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심사 때문에 노인영화제의  영화들을 보면서 그 생각은 더 강해졌다.

그렇게 외롭게 남겨지고 싶지 않아.

내가 그래도 예뻤을 때를 기억하는 너, 

내 삶의 모든 최초들을 함께 겪어온 너,

예민하고 소심한 나를 알아주는 너,

그런 네가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나보다 네가 더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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