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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8

<애도하는 사람>의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는

유키오를 사랑하게 되지만

유키오와 시즈토는 각자의 길을 간다.

유키오는

사랑도 집착이라고 하는 전남편 사쿠야의 말을 떠올리며

시즈토를 떠나보낸다.

 

이름이 없어서, 흔해빠진 죽음이어서 잊혀져간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죽어서도 미움받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혼을 애도하는 사람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배타적인, 구체적인, 몰입의 상태에 빠져들게 되면

애도라는 행위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남편은 성공회 사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제는 결혼하지 않는 게, 가정을 갖지 않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사목으로 장애인 관련 활동을 하는 남편은

개교회에서 사목활동을 하는 사제들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혼자 있는 게 맞다.

 

2013년 이후 쉴새없이 닥치는 일들에 대해서 남편은 무능했다.

어느 날, 선배감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선배가 그랬다.

"너희 남편이 뭘 알겠니. 속세와는 거리를 둔 사제일 뿐인데."

그 말을 들으면서 살짝 짜증이 났다.

그런데 몇달 전,

중환자실에 입원한 어떤 분을 방문했다.

그 분은 상해여행때 내 룸메이트였던 분의 남편이었는데

남편이 기도하고 손을 잡아줄 때 그 분 눈에 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그 분은 그 방문을 감사했고 그 방문에 힘을 얻었다.

남편이 한 단어, 한 단어 신중하게 선택한 말들로 그 분을 위로하고

그 분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

그 분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맞아, 당신은 사제고 지금의 자리가 가장 어울린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기업의 대표들을 쫓아다니고

아이가 세 명이나 되는 가정의 공동책임자로 역할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당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찾아서

그렇게 살아갔으면 될 일인데

당신은 내게 왔고

우리는 서로 고통스럽게 되고 말았다.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 서있을 때 빛나는데

사제인 당신은 내 옆이 맞지 않는다.

나 또한 사제인 당신의 옆자리가 맞지 않는다.

다음 생에서는 당신의 자리를 찾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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