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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6

07:57분에 씀
늘 그렇듯이 게으름을 피우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기차표 예매를 하는데
표가 없었다. 일주일 전의 일이다.
예약대기를 누르고 기다리는데
출발 사흘 전까지 감감무소식.
결국 KTX 카풀 까페에 가입해서
어렵게 표 하나를 구했는데 가족석이다.

가족애카드를 가진 ㅅㅎ로부터
예전에 다른 사람들 표 끊어줬는데
승무원이 카드제시하라고 해서
당황했었다는 일화를 들은 터라 약간 불안.
5만원 중 2만원은 선입금했고
오늘 만나서 3만원을 주기로.

지갑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차 안에 늘 두고 다니는데
개화역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지갑 챙기는 걸 깜박 했다.
돈 찾아야함.
돈 찾아야함.

나 개화역에 도착하기 전 반복해서
지갑 챙겨야함
지갑 챙겨야함
지갑 챙겨야함,
이런 문장을 주문처럼 10번도 더 중얼거렸는데
결국 지갑을 두고 지금 서울역.

하루가 길 듯

 

09:09분에 씀
기차에 탔다.
젊은 여성 4인의 1박 2일 여행,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 자리의 여성이
사정상 여행을 포기함으로써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내게 행운이.
그림자처럼 앉아서 그림자처럼 행동하는 게
편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석보다는 낫지.

옆에 가족석
뿐 아니라 기차 안 곳곳에
이런 소규모 단체 여행객들.
이렇게 여행들을 다니는구나.
오늘은 정권퇴진 3차 국민대회인데
200만이 넘게 모인다는데
세 번 중에 한 번을 못 가는구나.
첫번째 때엔 구례에
두번째 때엔 서울시내 모처에서 반 유폐.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빨간알약이 펼쳐주는 세상과
파란알약이 펼쳐주는 세상이
서로 다르듯
나는 여러 개의 타임라인으로 구성된
세계를 살고 있다.
내 세상은..... 그렇다.

 

오후 06:13분에 씀
내가 탈 기차는 6:33분. 20분 남았다.
장애학회에서 돌아가며 하는 강의인데
내년에는 안한다고 해야겠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한 시도 쉬지 않고 걷고 뛰고 했는데도
3분 늦었다.
헤맨 경로가 작년과 똑같아! 나 정말 대단.
작년엔 일찍 안 끝낸다고 
할아버지들이 난동을 부리더니
오늘은 일찍 끝나서
20분 먼저 인사하고 나옴.
마지막에 실습이 있었는데 
모두들 열심히 참여했음에도
중년여성 둘이서 참여를 안하고
시험공부 하고 있어서 
나도 그냥 일찍 끝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성의가 있어서 다행.
또 제 시간대로 다 수업한다고 난동부릴까봐
걱정이었는데 
오늘은 다들 젊었다.
연령이나 성별에 대한 선입견을 안가지려고
나름 노력하지만
대중적인 강의일수록 선입견이 그대로 구현된다.
실습하는 거 다들 어려워하는데
뻔뻔하게 "안썼다"라고 대답하는
두 중년여성이 참 싫었다.
다른 이들은 뭔가.
그러려면 수업에 들어오지 말지.
하지만 이 강의는 출석기록이 중요해서
그녀들처럼 앉아서 딴짓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아마도 부업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오신 것같은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늘, 어디에나 있다.
예전엔 나름의 정의감으로
분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도 늙었나봐.

인천 강의도 그래서 그만 두었다.
부업하려고 적당히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쓰고싶지 않다.
물론 열심인 사람들도 있다....
그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괜찮은건가?

지금 
괜찮은 건가....

 

밤 9:59분에 씀
기차역에서 본 60대 부부의 모습.
남자는 큰 소리로 
너는 똑바로 하는 게 없다,
왜 그 따위냐,
앞으로 너랑 다니나 봐라
그렇게 짜증을 내며
바로 옆에 있는 나한테까지
짜증감을 전염시켰다.
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6:25분 쯤에 기차 타라는 안내방송이 나와
올라가야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아내에게
또 큰소리로 더 기다리라고 화를 냈다.
그리고선 "좌석이 어디냐?" 물었다.

아내가 없으면 기차도 못 타는 주제에
참 재수없었다.
아저씨 조용히 좀 하세요
여기가 아저씨네 안방이예요?
라고 말하는 나를 상상해봤다.
아마 그 아주머니까지 쌍으로 나를 공격하겠지?
남편의 몸을 가졌다면
한 번 해볼만할텐데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남편은 나같은 마음은 아닐테니.

이번 생애의 모든 기억을 다 간직한 채
다음 생애에서는 
건장한 남자로 태어나보고 싶다.

이제 집으로.
다시 곰곰히 생각해봐도
내년엔 이 교육, 참여하지 않겠다.
너무 소모적이야....

데이터를 아끼기 위해 메모장에 썼다가 블로그에 올리는데

메모장에 막내가 학교숙제로 쓴 양성평등 일기가 있었다. 재미있어서 올림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언니 오빠 나
이렇게 다섯명입니다.
식사준비는 아빠가 요리를 잘하셔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놓으면
엄마가 식탁을 차리고
나나 오빠가 수저를 놓습니다.

빨래를 할 때에는
모두가 같이 빨래를 넙니다.
아빠는 오빠에게
"한별아, 요리를 잘해야한다.
너희들이 사는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남녀 역할 구분이 없어져있을 거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리는 아빠가 더 잘하시고
기계는 엄마가 더 잘 다룹니다.
그래서 집에서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거나
게임기를 설치할 때
인터넷이 잘 안되거나
TV가 잘 안나올 때
기계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면
엄마가 고칩니다.

엄마는 "여자가", "남자가" 하는 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제가 오빠한테 장난으로
"남자답게 말해봐"라고 했다가
주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계속 그런 말을 해서
크게 한 번 혼났습니다.
그 후로 말조심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의 뜻을 잘 몰랐는데
제가 말조심하는 게 양성평등이라고 엄마가 말씀해주셨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이런 말도 하지 않고 이런 생각도 잘 하지 않으면서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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