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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효용

꿈 조각들

 

1.

세탁 바구니에 빨래가 가득 차있었다.

세탁기를 돌리기만 하면 때가 잘 빠지니

일단 돌려놓고 다른 일을 하자 생각.

그래서 빨래감으로 세탁기를 가득 채우고 돌림.

 

2.

한의원에 갔는데 병원이 커져있고

의사선생님들이 많이 있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다행히 사모님이 계심.

모르는 사람에게 속성으로 치료받고 나옴.

너무 낯선 느낌.

 

3.

배경은 시골집인데 출연진들은 지금 사람들이다.

시골집 부엌에는 식탁이 있었다.

그 식탁에 둘째가 친구들 둘과 앉아있었다.

나는 그 중 한 애가 마음에 안든다.

하지만 그런 표는 내지 못한 채

친절하게 음료와 간식거리를 내온다.

"내가 시간이 얼마 없는데 너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아이들은 교회인지 학교인지 아무튼 어딘가를 가야하지만

가기 싫어서 버티는 중.

일 때문에 나가야하는 나는 어째야할까 고민

 

4.

중장비 기술자를 불러 우리 땅을 갈고 있다.

기술자는 할아버지이고 아내로 보이는 할머니가 같이 와있다.

우리 땅은 좁고 길다.

고랑은 네 개 정도. 그런데 정말 길다.

밭을 가는 기계가 아주 신기.

약간 비탈진 밭고랑을 멀리서부터 갈고 오는데

파란 하늘, 빨간 흙, 그리고 느리게 느리게 기어오는 장비.

그림이 아주 좋다.

촬영을 하고 싶은데 할아버지가 걸리면 싫어할 것같아서

할아버지가 안나오게 조심조심 찍고 있다.

할아버지가 밭을 갈다 말고 내려와서 무슨 촬영이냐고 묻는다.

나는 밭이 너무 예뻐서 흙위에 이 기계가 남기는 무늬가 너무 예뻐서 찍고 있다고

할아버지는 안나오게 찍었다고 촬영본을 보여드린다.

같이 온 할머니가 "별 일 아닌데 찍게 해주지 그래요?" 하고 나를 도와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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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조각들을 기록하면서 내가 왜 꿈을 기록하기 시작했는지 생각해냄.

내 꿈은 나의  하루와 딱 맞닿아있다.

매일매일 자질구레한 일상의 조각들이 꿈에 반영되고

뇌는 그 빈틈을 이야기로 채워넣는다.

이제 편집을 시작하고 구성에 들어가게 되면

꿈에 구성이 보인다.

2004년에 <엄마...>를 만들 때 나는 매일 밤 구성을 했다.

꿈 속에서 나는 '이렇게 기발한 구성이 있다니!' 감탄하며

때론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꿈에서 깨는 순간 생각의 꼬리는 잽싸게 사라지고 연기만큼의 흔적만 남아있다.

'아주 좋은 구성'이라는 연기만 남긴 채

실체는 쏙 사라져있어서

나는 기억하려 애쓰지만 결국 포기하고

현실의 나로서 열심히 구성을 할 뿐이지.

그 때부터 나는 꿈을 기록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얄팍한 내 꿈들을 적는 이유는

작업 때문이었다.

그걸 잊고 있었다.

어느 순간 꿈의 조각들을 기록해두는 게 재미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꿈은 현실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역할도 한다.

몇 주일전에 꿨던 아주 생생한  꿈:

내가 파견되어있는 이 단체의 사무국장이 꿈에 등장했다.

재단은 아주 큰 학술대회를 치르고 있고

식전행사로 나를 포함한 예술인들이 만든 아트필름이 상영된다.

그런데 무표정하다.

학술팀의 팀장님은 아주 만족스러워하셨는데

사무국장님은 왜 저렇지?

궁금한 나는 묻는다. 

 

나:마음에 안드세요?

사무국장:무난하네요. 그런데요 5월부터 10월까지라는 걸 감안하면 좀 실망스럽네요.

다른 제작자였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같은데.

나의 장광설:

꿈 속의 나는 현실의 내가 6개월동안 마음고생하고 속상해했던 그 모든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털어놓는다.

 

처음에 저밖에 없을 때, 제가 "저밖에 안와서 어떡해요?" 걱정했을 때

사무국장님은 "우린 감독님 혼자면 돼요"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임의매칭으로 두명의 예술인들이 더 왔습니다.

그들은 강화에도, 역사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3분의 1의 지분을 가지고 저는 그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했습니다.

재단에서는 애초에 제게 홍보물을 원한다 하셨고

홍보물이라면 제 특기이니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용 부문 예술인이 온 겁니다.

재단은 애초에 원하던 홍보물을 철회합니다.

무용 부문 예술인을 사업에 참여시켜야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한 번도 안해본 아트필름이라는 것을 만들어야했습니다.

다른 한 명의 예술인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학생의 졸업작품을 심사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의욕도 없었습니다.

임의로 이 곳에 파견된 것에 이견을 갖고 리매칭까지 신청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용이라는 낯선 장르, 의욕도 능력도 별로 없는 초짜 영상인, 

그 두 사람을 최대한 고려하며 지난 6개월을 지냈습니다.

각자 연출하기로 한 게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공동연출이었다면 그녀가 무임승차하거나

제가 그녀의 수준에 맞춰서 대충 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겁니다.

......

꿈에서 깨고 나니 후련했다.

협업이 원칙인 파견사업의 특성상 나의 생각을 외부로 발설할 기회가 없었다.

나도 그런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나는 저 사람과 못하겠다'라고 뻐팅기는 방법도 있었다고는 한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하루에 한 시간 정도의 알바를 하고

돈을 받는 정도의 수위로만 에너지를, 감정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답함을, 하지 못한 말을, 가슴에 가득 담은 채 사업을  끝냈다.

그런데 얼마 전 꿈 속 상황은 내게 폭발할 기회를 주었다.

학술대회나 사무국장과 같은 꿈 속 배경이나 꿈 속 등장인물은

그냥 나를 위한 들러리였을 뿐이다.

꿈은, 나의 무의식은, 참고 참아온 현실의 내게 '한 번 터뜨려봐'라며

무대를 마련해주었다.

만약 현실에서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말을 더 잘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런 상황은 결코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오늘만 견디면.

다섯 개의 글을 쓰고나면

내일은 종강.

그리고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의 연주를 볼 수 있다.

오늘만 견디면.

올 한 해 고생했다. 하루.

 

마이웨이

https://www.youtube.com/watch?v=NXzMtjG1o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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