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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집

꿈으로부터 일어난 생각들.

 

꿈에 집 가스렌지가 고장이 났다.

남편은 전날 C신부님에게 쌀을 앉힌 압력밥솥을 맡기고

아침에 우리가 가겠으니 신부님네 가스렌지에 밥솥을 올리고 불만 켜달라고 부탁한 상태다.

나는 자전거 뒷좌석에 막내를 태우고 C신부님 댁까지 갔다.

갔더니 낯익은 백구가 반기며 펄쩍펄쩍 뛰었다. 

꿈 속에서 그 애의 이름이 뭔지를 애써 기억하려다가 실패하고

암튼 웃으면서(야, 근데 내 옷 다 버리잖아,라는 생각은 속으로만 하고) 같이 놀았다.

신기하게도 백구는 장화를 신고 있었고

꿈 속의 나는 장화를 신고 펄쩍펄쩍 뛰는 백구에 대해 무척 신기해했다.

(개가 장화를 신고 다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저렇게 뛰는데도 장화가 잘 안벗겨지네. 나는 잘 벗겨지던데'하고 신기해함.)

 

신부님 집 앞에 갔더니 신부님과 나란히 자고 있던 사모님이 미안해하며 일어나셨다.

현실에서 나는 C신부님이 갈 데가 없어서 00마을의 채플담당으로 가셨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래서 우리가 살던 사택에서 사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살았던 집.

산 속에 있어서 뱀이 자주 나오고 내가 말벌에 쏘이기도 했던 그 집.

남편은 우리가 완전 이주한 2011년에 집 앞에 데크를 설치해서 마당을 만들어주었다.

남편이 갑자기 대기발령을 받고 떠나온 후

나는 그 곳에 딱 한 번 갔다.

이사가기 일주일 전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은 우리 고양이 토토를 찾으러.

쫓기듯 떠나온 집, 아니다 확실히 우리는 쫓겨났다,  쫓겨난 집을 다시 보니 마음이 쓰라렸으므로

나는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았다.

 

남편이 그 곳에서 일할 때 남편이 낸 프로포절이 뽑혀서 11억 규모의 사업을 받았었다.

그 돈으로 장애인 생활시설을 지을 계획이었는데 남편은 갑자기 그만 두게 되었다.

남편이 그 곳에서 나온 후,

건축은 난항을 겪다가 

작년에 건물을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 곳을 나는 꿈 속에서 갔다.

우리가 살던 집 앞에 큰 밭이 있었고 그 밭에 건물을 세운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꿈이 펼쳐보이는 풍경은 황량했다.

새로운 시설은 산 아래 구석에 날림으로 지어져있고

우리가 살던 집엔 데크마당도, 나무들도 다 사라져있었다.

새로 짓는 생활시설을 위해 조금이라도 공간을 덜 차지하게 하기 위해 벽을 다 깠다고 한다.

(이렇게 디테일한 꿈이라니....)

벽돌들이 다 빠지고 맨 흙만  보였다.  곧 허물어질 것처럼.

태국에서 보았던 수상가옥처럼 문도 없이 발이 쳐져있었고

그 발 사이로 주무시고 계시는 C신부님이 보였다. 

 

사모님이 불을 켜두지 않았으므로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어떻게든 밥을 해야 했다.

미안해하는 사모님께 나는 괜찮다고 하고 압력밥솥을 자전거 뒷자리에 줄로 묶었다. 

그러고나니 막내를 태울 데가 없어서

막내를 자전거 운전석에 앉히고 자전거를 끌고 집까지 가고 있다.

집에 오는 길에 삼거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차들이 많아져서 무서워졌다.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친밀한 미소를 지으며

"너, 걸을 수 있는데 왜 엄마한테 안겨있어?"  

하고 막내에게 장난을 쳤다.

막내는 자전거 앞좌석에 앉아있으면서도 내게 꼭 기대고 있었기에

나는 보드랍고 따뜻한 막내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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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깜짝할 새에 결혼이 이루어졌고 나는 남편의 아내가 되었다.

혼배성사를 하기 전에 "이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은 지금 말하든지 아니면 영원히 침묵하라"

라는 물음을 세 번은 해야 했다.(그게 성공회 규칙인 듯. 제인에어의 결혼이 그 자리에서 깨졌는데)

그래서 결혼식 직전에 교회를 나갔는데

알고 보니 그 교회에는 교인들이 남편의 아내,

그러니까 그 교회의 사모감으로 점찍어둔 여성이 있었고

머리가 노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날라리같은 여자한테

갑자기 자기들의 신부님을 뺏긴 교인들 중에는

나에게 대놓고 싫다는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전정보가 전혀 없던 나로서는 참 황당했다.

남편이 간절히 원해서 이뤄진 결혼이었고

우리 집의 반대가 유일한 걱정이었는데.

사모감 여성은 오래 전부터 남편을 사랑해왔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

남편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어느 해인가는 '그냥 저 사람이랑 살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어쨌든 그런 내막을 전혀 모른 채 나는 남편과 결혼했는데

교회 수련회를 갔더니 사모감 여성의 제자들이 내 앞에 와서 나를 노려보고 가곤 했다.

사모감 여성은 남편과 계속 활동을 같이 했고

큰애의 대모가 되었고 이웃으로 함께 오래 살았다. 

교리를 잘 모르는 나는 남편이 하자는 대로 다 했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 큰애의 대모가 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남편으로부터 통고를 받았을 뿐.

그녀는 유학을 떠났고 유학에서 돌아온 후 강화로 이주해서 남편과 같이 일했다.

그리고 남편이 따내고 후임 신부가 건설한

새로운 생활시설의 시설장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다.

 

몇 주 전, 나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누워있다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진료를 기다리며 그녀는 새로 맡게된 시설의 간판에 대한 통화를 누군가와 했다.

(한의원에서는 모든 소리가 다 들린다. 엿들은 거 아니고 그냥 들었다)

그날 나와 남편과 그녀는 나란히 한의원 침상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었다.

가장 먼저 치료가 끝난 나는 조용히 한의원을 빠져나왔다.

의사선생님이 그녀의 치료까지 마친 후

세 사람이 침을 꽂은 채 나란히 누워있던 그 순간에

나는 그 여성과 남편의 관계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만약 내가 먼저 죽으면 남편은 그녀와 재혼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먼저 죽게 되면 상대가 누구든 연애는 하더라도

막내가 20살이 될때까지는 결혼하지 말아달라는 유언을 남겨야지. 

남편은 유학에서 돌아온 그녀가 "다른 데 갈 데가 없으니" 라면서 00마을로 불렀다.

그녀가 온 지 2년 후 남편은 쫓겨났다.

그녀는 새로운 신부와 일을 잘 한다.

새로운 신부나 그녀나 남편이나 모두 같은 조직에서 일을 한 적이 있기에 서로 잘 아는 사이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소문 때문이다.

남편이 그곳에서 일한 후에 매출이 급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급성장한 매출은 다 주교님 덕분이라고 한단다.

화훼사업을 계획했다가 남편은 몇 천만원의 손해를 봤다.

남편이 그만 두게 된 이유로 거론된 것 중에 하나다.

소문은 이렇다. 

유신부는 00마을에 손해만 끼쳤다.

유신부가 와서 했던 많은 사업중에

매출이 증대하고 11억이 넘는 정부 돈을 따온 건 유신부가 없었더라도 주교님 덕인 거고

그 중 실패한 한 사업만 거론하며 00마을에 해를 끼친 사람으로 얘기된다고 한다.

그런 소문들은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상처가 되었다.

그녀는, 새로운 신부의 최측근으로서 같이 일하는 그녀는

어떤 입장인 걸까. 그게 궁금하다.

 

최근에 미디어교육 관련 프로포절들을 내면서 공모사업들을 리서치하다가

사회복지공동모금 선정기관목록을 보고 기분이 상했다.

서울에서 나는 팀원들과 함께 남편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지적장애인의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http://culture.interview365.com/m/85

http://blog.jinbo.net/rmlist/819?category=3

그리고 강화로 이주한 후 남편의 사업장에서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원장의 아내가 같이 일하면 "쟤네는 부부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라는 말이 나올까봐

나는 기획만 하고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 그리고 내 직장동료들에게 실제 교육을 부탁했다.

기획안과 프로포절은 모두 내가, 우리가 만든 거였다.

2017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선정기관에 00마을이 있었다. 

남편은 떠났는데

내가, 내 학생들이, 내 동료들이 써놓은 문서를 바탕으로

그녀는 사회복지공동모금의 프로젝트를 따내고 있다.

지적 장애인 미디어교육에 대한 상도, 노하우도 없으면서

내 아이디어를 가지고

(!! 그건 내 기획이고 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을 시작한 사람인데!!)

그들은 공모에 참여하고 따낸다.

남편 말로는 남편이 00마을에 있을 때 사회복지공동모금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인천 지역에 성과가 별로 없으니 사업신청을 좀 해달라고 했다고.

그렇게 시작된 게 벌써 4년째.

새로운 신부는 미디어교육을 담당했던 실무자를 잘랐고

그렇게 미디어교육은 없어진 듯하더니

이렇게 공모에는 꼬박꼬박 참여한다.

배아프다. 

그리고 정당하지도 않아.

 

하지만 감정과 사연을 걷고 생각해보면

내가 지적 장애인 미디어교육에 대한 가이드북을 쓰고

워크숍을 열어서 교사를 양성하는 등등의 일을 했던 건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였다.

00마을의 활동은 바람직한 일인 거다.

 

그런데.....

기본마인드도 없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없으면서

그렇게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교육을 진행하는 게 타당한가?

남편에게 "나는 배가 아프다" 라고 했더니

남편이 "나도 그래" 했다.

그러고나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했다.

 

2017년, 나는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새로 교육사업을 시작한다.

나는 잘 할 것이다. 늘 잘 해 왔으니까.

다만 나의 의욕 중에 경쟁심 같은 게 있어서는 안되겠다.

순백의 마음으로 대지에 첫 발을 내딛는 어린 아이처럼

나는 그냥 나의 새로운 참여자들을 보고 

교육자와 참여자가 함께 자라는

교육이라는 신비의 장에 몰입해야 하는 거다.

억울함이나 경쟁심같은 거 없이.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어린 새처럼

그렇게 시작을 해야한다. 

 

덧붙이는 말씀:

저는 하루입니다. 

하루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하루의 이야기를 현실세계에서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혹시라도 그렇게 말이 시작되는 순간, 이 방은 굳게 닫힐 것입니다.

 

최근 방문자수가 평소보다 두 배가 되는 날이 몇 번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방문자 카운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숫자 때문에 불안합니다.

어쩌면 협박편지가 다시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

저의 실명을 아는 사람이,  저에게 적의를 가진 어떤 사람이,

제가 쓴 글들을 일일이 스캔한 후에 어두운 이벤트를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전전긍긍하면서도 나는 왜 쓰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대답합니다.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익명의 관객들에게 제가 만든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입니다.

익명의 관객이 모두 저를 좋아할 리도 없고 모두 저를 이해할 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나의 말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게 기쁨이 됩니다.

 

"한 번 쓰고 나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글을 쓰겠다"라는 아니 에르노의 다짐을 읽었을 때

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백퍼센트 알았습니다.

<무진기행>의 김승옥작가가 종교로 귀의한 후에 그의  소설은 더이상 읽힐 수 없다고 합니다.

불안하고 흔들리고 아프고 

그렇게 영혼의 가시가 박혀서 불편하고 쓰라릴 때

그런 영혼이 만든 예술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습니다.

신에 귀의한 김승옥 작가는 더이상 불안하지 않았나봐요. 

그렇게 얻어진 굳건한 멘탈로는 더이상 예술가의 삶을 살 수가 없었을 것같아요.

 

자꾸자꾸 퍼내고 자꾸자꾸 써내야

이야기의 샘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꿈이든

현실의 어려움이든

누군가의 뒷담화든

망상의 발화든

저는 쏟아냅니다. 

혼자만 보는 일기장이 아니라

익명의 독자가 있는 이 곳에 저는 쏟아냅니다.

20g 와

나뭇결과

산초와

okc......

제가 알고 있는 독자들의 목록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이 저와 많이 닮아있다는 걸 제가 알고

그래서 가끔 님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싶어요.

하지만 그럴 분들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냥 묵묵히 씁니다.

 

며칠 전처럼 아침에 일어났는데 카운터가 175면 저는 놀랍니다.

그런 날은 일일 카운터가 250에서 300 정도가 됩니다. 

원래 이 블로그의 일일 평균 카운터는 100 정도입니다.

그러면 어떤 검색어 하나 때문일  수 있습니다. 

리퍼러 검색어를 누르면

방콕 여행, 꿈, 동료감독의 이름, 영화제목 등이 뜹니다. 

저는 매일 리퍼러 검색을 하고

검색어 목록에 해당하는 키워드를 그날의 글에 찾아가서 지웁니다.

'조퇴와 연가의 차이'는 꾸준한 키워드입니다.

그런건 어쩔 수가 없어서 남겨둡니다.

안그러면 글을 통채로 지워야하니까요.

 

저는 요즘 좀 무섭습니다.

제게 저주편지를 보내는 이는 이 글을 보면 좋아하겠네요.

그런데 제가 무서움을 타는 게 꼭 당신때문만은 아니니까 너무 많이 좋아하지는 마세요.

며칠 동안의 이변 때문에 갑자기 불안해져서 이렇게 씁니다.

불안은 나의 힘, 예민은 나의 장점, 흔들리며 찾아가는 길이 더 절실하다는 것.

그런 말들을 의지삼아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불안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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