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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작년 파주에 이어 올해 강화 교육을 하면서

'태어난 곳이 운명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번 주 목요일은 정말 환상이었다.

두달 전에 '미디어 속 발달장애인 재현'에 대한 특강이 지역에서 잡혔는데

저번 주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강화에서 미디어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화의 첫 날 강의는 동료에게 부탁했다.

피피티를 만들고 피피티에 따른 설명을 다 써서 대본을 만들어 주었는데

교통편이 문제였다.

그래서 이런 저런 궁리 끝에  내가 개화역에 차를 세워두면

나의 동료가 개화역까지 와서 그 차를 타고 강화의 고등학교로 가고

교육이 끝난 후에 다시 개화역에 차를 세워두면 내가 그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기로.

KTX를 타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섰고.(전철 첫 차가 5시 30분)

10시부터 12시까지 특강.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강화교육을 대신 해준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반응은 괜찮았다고 한다.

학생  수는 20명 정도.

교육이 끝난 후에 담당 선생님이

많이 힘드실거라고. 애들이 공부도 못하고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한다.

"아니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다"라고 하니 선생님이 "그럼 다행이구요" 했다고.

 

선생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남.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방과후 교사에게 할 말인가?

그리고 아이들은 방금, 그러니까 한 달 전에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말이다.

그 학교에는 하은의 친구가 있다.

읍에 있는 학교를 지원했다 떨어져서 그 학교로 갔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지 다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짐작이 간다.

대학시절, 서울대를 가고싶은데 원서를 못 써서 어쩔 수 없이 우리 과에 온 애들이 있었다.

그 무기력과 욕구불만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

 

그런데  선생이라는 자가 떠돌이 교사에게 미리 이런 언질을 주는 건

알리바이를 세우기 위함은 아닌가?

이 학교가 참 마음에 안드는 게

수업 전에  인쇄물을 준비해야하는데

교사는 학교 유선전화 번호만 알려주고

휴대폰 번호도,  이메일 주소도 안 알려준다.

학교의, 교사의 마음가짐이 그 따위다.

조금이라도 자기한테 일이 돌아올까봐 겁내는 분위기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미디어교육은 Co-Teaching이 정말 중요한데

이 학교에서는 바래서는 안된다.

수업 전에  직접 서류를 들고 오라고 해서(이메일은 안된다고 명시가 되어있다!)

교무실에 찾아갔더니

보자마자 계약서에 사인만 하게 하길래

장비며, 학생 수며, 어떤 학생들이 참여하는지 물었더니

장비는 전혀 없고

학생 출석부는 보고 있는데  다시 가져갔다.

이런 교사, 이런 학교에서 소중한  아이들이 미래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속상했다.

두고봐라. 나는 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하게 해줄거다.

 

어제 강화읍에서 기숙사에서 나온 하은이를 데려오는데

뒷자리에서 하은이가 들려주었던 노래.

내가 너무 좋아했던

하은이의 친구들이 직접  고르고 졸업식에서 빨개진 눈으로 부르던 노래.

하은은 이 노래만 들으면 졸업식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한별을 데려가는데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추워서 깡총깡총 뛰면서도 학교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 내 친구 H는 매일매일 여기 들렀다 간대"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하던 선생님들,

서로가 서로를 돌보던 친구들.

그 시절을 떠나서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외국어고등학교로 간 친구는 함께 밥 먹을 친구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한다.

바로 앞 특성화고로 간 친구는 "맨날 놀아"라고 말했다 한다. 

학교가 학생들을 놀리는 건 일종의 방치라는 걸 안 아이의 탄식같은 거였다.

마이스터고라고 불리는 예전 공고로 간 친구는 "우리 학교가 깡패학교로 전국 2위래"라 했다고.

내가 파주에서 만나는 아이들, 그리고 강화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하은이 떠오를 것이다.

하은이 지금이 아닌 다른 자리를 선택했다면 서게 될 자리.

그래서 속상하고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존중받아야 해.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나는 알거든.

존중받아야 해.

모두가 존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미디어교사 한 사람, 단 한 사람 뿐이더라도

너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 그리고 네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하나씩 잘 풀어가라고

말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되고 싶다.

 

<초록비> 

http://blog.jinbo.net/docurmr/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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