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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알의 추억

나도 생협 회원이 되었다.

아이쿱 웹진에 투고했다가 수정을 요청받았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 올린다. 이런 건 괜찮겠지?

내가 거짓말하는 건 아니니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것 쯤이야~!

 

  

6년 전 일이다. 하은이가 많이 아팠다. 병원에서는 죽만 먹이라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살림 간판이 보이길래 들러서 달걀 좀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조합원이 아니면 안된다고 했다. 그럼 지금 조합원에 가입하면 안되겠냐고 물었더니 조합원 가입은 조합원 교육을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애가 아파서 죽을 쑤려 하는데 달걀 한 알만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카운터에 서계시던 분은 다시금 딱 잘라 말했다. “한살림 유정란은 조합원들 수요도 다 못 맞춥니다. 조합원들도 사전 예약을 해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조합원이 아니면 안됩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돌아오는 인사 같은 건 없었다. 

첫 애 하은이는 참 많이도 아팠다. 세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하은이 혼자만이었던 그 시간들에서 찾아진다.

6년 전 일인데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속에 응어리같은 게 뭉쳐진다. 그 때 나는 아픈 하은이를 업고 있었다. 아기 업은 엄마는, 아픈 아기를 둔 엄마는 더 예민해지기도 한다. 집에 돌아오는데 겨울바람은 차가웠고 나는 그 때 조금 울었다. 나중에 어린이집 엄마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나한테 연락하지 그랬어? 조합원 번호 있으면 살 수 있는데.”라며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 말들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때 생각했다. 한살림이란 곳은 참 무서운 곳이구나. 얼굴이나 사연보다도 숫자가 통하는 곳. 나는 그 곳에 두 번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어린이집 가는 길목에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그 앞을 지나갔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받드는 동네 봉천동. 이제 이 곳에는 아파트단지가 즐비하다.

얼마 전 아이쿱 생협 회원이 되었다. 아이쿱 생협에 대해서는 가족들로부터 귀에 닳도록 얘기를 들었지만 ‘생협’이라는 곳에 대한 안좋은 기억 때문에 선뜻 가지지가 않았다. 나는 아이쿱 생협보다는 자연드림에 대해서 먼저 알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봉천동, 가난한 동네였던 곳이다. 우리 집 골목 다음 블록부터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우리 동네도 언제 개발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난한 동네라 좋은 점이 많다.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가장 큰 자랑은 공부방이 많다는 것이다. 요즘은 지역아동센터가 많이 생기는 것같은데 우리 동네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공부방이 있어왔다. 일 때문에 바쁜 부모를 대신하여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돌봐 주는 곳. 우리 큰딸 하은이는 봉천동 맑은샘공부방 학생이다. 그리고 그곳 아이들은 화요일이면 자연드림 빵을 먹을 수 있다. 합정동 어딘가에 있는 자연드림에서 우리 공부방 아이들을 위해 후원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방 하니샘이 우리 동네에도 자연드림이 생겼다고 기뻐하셨다. 아이들에게 자연드림은 좋은 곳, 고마운 곳이라 내게 자연드림에 가보자고 자주 졸랐다.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었는데 며칠 전, 큰 맘먹고 자연드림에 갔다. 그 곳은 밝고 깨끗했으며 모든 분들이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자연드림이 아이쿱생협의 매장이라는 것을. 나는 그 자리에서 조합원에 가입했다. 솔직히 “생협 조합원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고 조합원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세 아이를 대동한 채로 거절당하는 일이 유쾌할 수만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금 조합원에 가입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는데 마주 보던 분이 활짝 웃으면서 “그럼요. 되지요!”라고 대답해주셨다. 회원가입을 한 후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홍보영상이 나왔다. ‘윤리적 소비’라는 단어가 마음에 깊이 박혔다.

우리 아이들은 항상 이 곳에 가기를 바란다. 자연드림 관악봉천점 전경

 내가 일하는 푸른영상에서는 요즘 4대강 반대를 위한 영상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팔당 두물머리에 가서 유기농 단지도 둘러보고 체험학습 온 아이들의 예쁜 얼굴도 담았다. 농부들에게 유기농업의 어려움을 물었을 때 한 분이 말씀하셨다.

“유기농업은 풀과의 전쟁이예요. 뽑아도 뽑아도 끝없이 올라오는 풀들을 보다보면 제초제 생각이 날 때가 있는데 그 유혹을 물리치는 게 어려웠어요.”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10년을 견뎌야 땅이 살아난다고 한다. 내가 자연드림에서 산 상추는 그렇게 살아난 땅에서 재배된 것이리라. 비싸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농촌에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지역에 가보면 많은 농민들이 4대강 사업에 자신들의 땅과 집을 내어주고 있다. 농촌에는 정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농사지을 자손이 없는 상황이 그 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하는 분들은 농촌의 희망을 만들고 계신다. 그런데 숫적으로 너무나 열세다. 팔당지역만 해도 90% 이상의 주민들이 도시로 출퇴근하는 분들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시던 한 농민은 장사를 하시는 동네사람으로부터 “너는 너무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땅과 한 몸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 소수인 것이다.

도시인들이 팔당농민들을 지지하기 위해 텃밭 농사를 함께 짓는다. 사진은 '팔당 명랑 텃밭’ 개소식 풍경 출처: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요즘은 이틀에 한 번 꼴로 자연드림에 간다. 예전에 난 생협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를 선뜻 내켜하지 않았다. 몸에 좋은 친환경 음식을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웬지 특권화되어 가는 것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6년 전 사건은 그런 오해를 더 강화시켜주었던 것같다. 그들만의 배타적인 카르텔을 느끼며 나는 극심한 소외감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이제 난 아이들과 함께 틈만 나면 자연드림에 간다. 강화의 콩나물과 팔당의 상추와 제주의 무를 사면서 포장지에 적힌 생산자의 이름을 한 번씩 읽어본다. 자연드림에서 물건을 삼으로써 내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대표하여 땅과 생명을 지키고 있는 생산자들에게 지지와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자연드림에 가면 마을이 생각난다. 카운터에 계시는 분들도, 매장에 계시는 분들도 대화라는 걸 한다. 아이들에게 삽겹살을 먹이려고 한 팩을 달라고 했더니 “그건 너무 많고 이걸 두 개 가져가세요~”라며 랩에 쌓인 고기를 주셨다. 어제는 둘째아이 소풍을 준비하느라 퇴근 후에 달려갔더니 “요즘 축제 중인데 좀 더 일찍 오시면 행사가 많아요~”라고 일러주셨다. 내가 누구인지 모를 테지만 그 분들에게 나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관계가 이어지고 또 그렇게 관계가 깊어지면 조합원이 되기도 하고 생산지 방문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처럼 ‘윤리적 소비’의 실체를 생산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쿱 생협이 도시 안의 마을로 자리잡혔으면 좋겠다. 사진은 ‘팔당명랑텃밭’ 개소식날 풍경. 출처: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시골 마을은 공동체의 끈끈한 정을 갖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배타적이다. 나는 아이쿱 생협이 도시 속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성숙한 인간은 ‘버려진 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고향을 타향으로 느끼며 사회적 패배자들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눈다(에드워드 사이드). 나는 아이쿱 생협이 ‘버려진 자의 시선’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이 마을에는 먼저 오는 사람이 있고 나중에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또한 그저 구경꾼에 머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한 방문이라도 만남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을이었으면 좋겠다. 웃음이 있고 대화가 있어서 내 아이들이 항상 가고 싶어하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내내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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