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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으로 만든 방패와 폭력의 모자이크

짚으로 만든 방패와 폭력의 모자이크

 

제17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간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 <짚의 방패>(藁の楯)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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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으로 만든 방패를 든다"는 속담이 있다. 전쟁에서 짚으로 만든 방패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이 영화는 타인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은 이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지키는 이들의 사투를 그린다. 이들은 경시청 경호과의 시라이와 순사부장과 메가리 경부보. ... 둘 모두 강한 원념을 지닌 이들이다. 시라이와는 피해자 소녀와 같은 어린 나이의 아들을 둔 싱글맘이고, 메가리는 부인을 극악 범죄자에게 잃은 경험이 있다.


영화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 영화 아니랄까봐 첫 장면이 한 소녀의 시신과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붉은 피로 시작된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살해당한 한 소녀의 할아버지인 니나가와가 현상금 10억엔을 걸고 용의자 키요마루를 살해할 것을 공개 의뢰한 설정 자체가 거의 영화의 전부를 규정짓는다.


미이케 다카시가 만든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짚의 방패>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라는 것이 그러한 폭력의 얼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변한다.


첫째, 날것의 폭력. 키요마루가 저지른 폭력은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인생의, 추락할 대로 추락하여 막장에 몰린 한 개인이 저지르는 그야말로 날 것의 폭력이다. 키요마루의 홀어머니에 대한 연민이나 학력에 대한 언급, 그의 언행 등에서 그의 밑바닥 범죄자 인생의 면면들이 엿보인다.


둘째, 사회의 폭력. 사이코패스로 그려지는 범죄자의 폭력은 유전과 같은 것으로 사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며, 결국 사회 구성원인 개개인들의 암묵적 폭력과 그로 인해 재생산되는 사회구조의 폭력의 산물임이 끊임없이 암시된다.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곳곳에서 등장하는 핸드폰 카메라를 든 군중들의 모습에 종종 속이 확 끓어오른다.


셋째, 돈의 폭력. 10억엔이라는 천문학적 금액 앞에 시민들의 상식은 물론 국가권력과 그 중핵인 치안조직마저도 흔들린다. 아니, 이제 우리의 상식이란 돈만 있으면 사람 하나 죽이고 살리는 것쯤 간단한 일이라는 것이 되어버린 지도 모르겠다. 돈의 폭력 앞에 법전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되려 형법에 따라 용의자를 법정에 세워야 할 경찰조직의 최대의 적이 경찰조직에 속한 무수한 개인들이 되어버리면서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의 독점이라는 비가시적 구조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며 위기를 맞는다.


넷째, 국가의 폭력. 주인공인 메가리와 시라이와는 외형상 범죄자를 10억엔에 눈먼 이들로부터 안전히 경시청으로 이송하여 검찰에 송치하기 위한 경호업무를 수행한다. 범죄자를 지키는 것은 법에 따른 심판이라는 논리 외에도 조직 보위의 논리에 따라서도 이루어진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조직이 현상금을 노리고 공격해오는 이들로부터 키요마루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 위신이 땅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들은 목숨과 맞바꾸어 키요마루를 경시청까지 호송한다. 결국 예상대로 키요마루는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는다. 짚의 방패를 드는 것의 무의미함에 대한 의문은, 키요마루와 같은 극악한 범죄자를 지키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과도 연결되지만, 결국 법의 심판과 국가의 법 집행이라는 이름 아래 키요마루라는 한 사람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일 또한 살인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으로도 연결된다.


미이케 다카시는 '충무로의 남기남'처럼 몇 개월의 한 편씩 영화를 쏟아내는 감독이면서 오락성 짙은 영화들을 만드는 가운데 종종 문제작들 또한 만들어내는 묘한 감독이다. <짚의 방패> 역시 말끔한 A급 영화의 외관을 하고 있지만, B급의 정서와 클리셰가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가 있다. 전작인 <악의 교전> 또한 <짚의 방패>와 마찬가지로 원작 소설의 구성과 스토리에 크게 힘입은 작품이지만 '폭력의 모자이크'를 통해 인간 사회를 적나라하고도 힘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특히나 <짚의 방패>는 마츠시마 나나코, 오오사와 타카오, 키시타니 고로, 야마자키 츠토무, 후지와라 타츠야와 같은 쟁쟁한 배우들의 이름값 하는 연기가 돋보인 작품이다. 특히 후지와라 타츠야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판에서 성장해 온 경력이 증명하듯,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강한 흡인력의 광기어린 연기를 멋지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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