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이런 밤엔 나즈막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을 걸어주는 듯한 라디오가 듣고 싶다. 그래서 라디오를 듣다보면 또 뭔가 뜨뜻미지근해져 버린다. 또 그래서 생각이 나는 것은 영화 <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 1990)에서 나오는 마크의 해적방송처럼 두근두근거리고 화끈한 무언가이다. 생각해보면 <볼륨을 높여라>라는 영화는 신경증이 도처에서 폭발했던 1990년대의 서곡이었다. 영화에선 젊디젊은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주연을 맡아 치기어린 남성성을 내보이면서도 풋풋하고 섬세한 주인공을 연기했더랬다. 결국 경찰과 연방통신위원회에 연행되어 가면서도 수줍게 던진 마크의 한 마디는 "Talk Hard"였다. 영화 속 젊은이들은 중요한 장면마다 아직 맞이하지 않은 90년대의 노래가 아닌 20년전 노래인 "Kick out the jams"에 몸을 흔들어대곤 했다.
1990년대의 현실세계에서 젊은이들의 언어는 하드토킹으로 출발했지만 아쉽게도 냉소로 끝나고 말았다.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의 마지막은 "I deny all"이란 후렴구로 끝났지만, 우리는 끝내 그 구절을 부르지 못했다. 결국 우린 1990년대를 끝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내 기억에 1990년대를 제대로 끝낸 이는 역시나 1990년대를 채 반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간 커트 코베인이다. 지금도 나는 매년 4월 8일이면 저 머나먼 동쪽 태평양 연안의 축축한 도시를 향해 잠시 묵념하곤 하는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최신 관용구는 1994년의 그 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이런 밤 내 마음이 앉아 쉴 곳은 역시 커트의 노래다.
영화 <볼륨을 높여라>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대부분 자기만의 채널을 갖게 되었다. 주파수가 아닌 http에 따라 구성된 것이지만 말이다. 묘하게도 <볼륨을 높여라>에서 마크의 친구들은 저마다 방구석에 처박혀 박스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툭 하면 동네 어귀의 넓은 잔디밭으로 자동차를 몰고 나와 한데 모여 방송을 들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이미 어느 정도는 진부화되어버린 공간은 '공터의 학삐리'들이 모여들기에는 너무도 드넓어 두 발로 서지 못하고 고꾸라지기 쉽상이다. 대신 단 한 순간 주파수를 타고 흘러가버리는 음성과 달리, 우리들의 새로운 채널은 당장이 아니라도 서로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 줄 가능성이 더 크다. 밤10시 정각, 레너드 코언의 "Everybody knows"로 시작하던 마크의 해적방송은 1990년의 어느 날엔가부터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볼륨을 높여 그의 노래를 들으며] 에 관련된 글 영화 <건축학개론>을 둘러싼 내 또래, 실은 좀더 지긋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의 공감과 회상에 맞닥뜨릴 때마다 한편으론 끄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한 서사들은 이미 '어른'이 된 이들의 '아련한 기억'의 형태를 띠곤 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도 시큰둥해지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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