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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육청인지 어디선지 실시하는 자기지향평가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다. 시험이라 ... 푸코의 <감시와처벌>을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몇 쪽 안 읽었지만 읽다 보니 고3이 되고 나서는 거의 학교생활의 전제가 된 듯한 대입수능시험과 그를 준비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그 ‘시험’이란 것도 슬슬 속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험점수라고 하는 것은 분명 ‘길들이기’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권력의 ‘개’가 싫으면서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인 것이다. 토플러는 <권력이동>에서 ‘지식의 적용에 의한 권력이 고품질 권력’인 이유는 권력의 지배를 받는 자로 하여금 ‘알아서 기도록’ 하여 나아가서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방향잡는 힘 즉, 자아를 지배논리에 일치시켜 저항의 여지가 없도록 만든다는데 있다고 하였다. 이건 정말인지 무서운 일이다. 좀 더 분명하게 안토니오 그람시는 ‘강제의 철갑을 두른 헤게모니’란 말로 민주국가를 정의한다. 그람시의 마르크스주의적 국가관은 사실 잘 모른다. 그의 저작 <옥중수고> 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충분히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아침엔 작정을 하고 학교에 늦게 갔다. 7시 30분까지 등교이긴 하지만 시험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다 가고 난 뒤에는 잠시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사감선생이 나가고 조용해진 뒤에 옥상에 올라 담배 한 대 피우고 여유 있게 등교했다. 아이들은 조용히 자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봤다. 아침에 시험에 대한 생각들을 하며 가뜩이나 무기력함에 빠져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점심시간에 H와 심한 말다툼을 벌였다.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도를 넘는 과민반응을 보여 당황했고 화가 났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자괴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곁에 있던 S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같이 옥상에 올라가 얘기를 나눴다. 맑은 날씨에 따스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니 가슴이 좀 탁 트이는 듯 했다. S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이 없다고 했다. 백번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야인(野人)을 기대하기란 무리일 것이다. 지난번 L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얘기했듯이 B고교라는 곳은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우리 사회 전반이 그렇지만 이러한 교육기관에서 더욱 문제시되는 것이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떠한 담론이 형성되길 기대하는 건 더더욱 무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답답한 점은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어렵다는 것이다. 친구사이에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보려 했다가 상처만 받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여하튼 그런 얘기들을 S와 나누다가 오후 시험시간을 맞았고 시험문제는 한 자 쳐다보지도 않고 80문제를 다 찍어버리고 자버렸다. 정말 답답하다. 생각해보면 만 2년이 넘은 나의 고교생활은 막연한 기대와, 오늘 느낀 것과 같은 환멸로 점철되어 온 것 같다. 나 역시 S의 말대로 우린 힘이 없기 때문에 억압당하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즉 공부를 열심히 해서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쉽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죽도록 증오한다. 그런 증오 뒤에는 물론 자괴감이 수반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조금도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나 자신을 파괴해 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오직 한 가지 ‘모든 억압하는 것에 저항하라’ 이 말을 믿는다.
어제 H에게 받은 Smashing Pumpkins의 를 듣는다. 이들의 음악은 정말 충실한 얼터너티브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너바나가 커트의 자살로 막을 내린 락 씬을 장악한 이들을, 머드허니 류의 시애틀 그런지의 범주에 넣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960-70년대의 사이키델릭과 하드락의 전통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음악은 훌륭한 얼터너티브 락이다. 이들의 음악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우선 사운드가 좋다. Rancid 같은 네오 펑크의 기수도 ‘그저 사운드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듯 사운드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런지 락 보다는 깨끗한 사운드에, 부드럽고 감성적이다. 1995년작인 에 이르러서는 비틀즈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는 데뷔작인 만큼 록큰롤 밴드로서의 면모에 충실하려 한 면이 보여 마음에 든다. 불현듯 에 수록된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하드한 사운드의 곡의 한 소절이 생각난다. "Despite all my rage I'm still just a rat in a cage." 이들을 좀더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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