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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남, 되돌아옴, 그리고 SWV

엊그제 일 때문에 안산에 다녀오면서 계획에는 없었지만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들렀다. 그토록 어린 친구들의 영정이 그토록 많이도 모여있는 것을 보니, 더구나 커다란 체육관의 한 벽면을 가득 메운, 아직 채워지지 않은 영정들의 빈자리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아찔했다. 뭐랄까 ... 슬프다거나 가슴이 아프다거나 한 어떤 감정이 찾아오기에 앞서 내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떠난 사람들과 떠나보낸 사람들 모두 상실의 아픔과 망연자실 속에서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좀 막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오랜만에 SWV의 노래를 들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건 노래이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목소리 자체가 세월 속에 묻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다가 되살아나고 되돌아온 무엇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듯하다.

 

 

 

SWV는 1990년대 초중반 활동했던 3인조 여성 보컬그룹인데, 이 시기에 메인스트림을 이루고 있던 얼터너티브 내지는 그런지 락, 힙합, R&B 가운데 마지막의 R&B의 흐름을 대표했던 뉴 잭 스윙, 뉴 질 스윙의 흐름 속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보이며 인기를 얻었던 이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내가 즐겨 들었던 곡들만 떠올려봐도 남성 보컬그룹으로는 Jodeci, Shai, Boyz II Men, 남성 솔로로는 Tevin Campbell 등이 있었고, 여성 보컬그룹으로는 En Vogue, TLC, SWV, Brownstone, 여성 솔로로는 Toni Braxton, Aaliyah 등이 있었던 듯하다. R. Kelly의 발탁으로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Aaliyah가 가장 안타까웠더랬다.

 

1990년대가 저물어가면서 대중음악은 생산방식도 변화하고, 소비양식도 변화하였다. 더 이상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쳐의 변증법은 작동하지 않는 듯 보인다. 오랜만에 SWV의 데뷔 시절 곡들을 유튜브에서 찾아 듣던 중 묘한 감정을 자아냈던 것은 그녀들의 모습보다는 비디오 클립 밑에 달린 덧글들이었다. 대부분 1990년대라는 '그 시절'을 언급하는 것들이었다. 노래를 빼면 삶에 다른 어떤 것도 없을 것 같은 뒷골목 출신 소년 소녀들이 음악산업의 기획과 대중들의 반응 속에서 만들어진 어떤 '흐름'을 타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널리 퍼뜨릴 기회를 갖게 되는 일은 사라지고, 서바이벌 오디션 TV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대신해갔다. 특정한 '전통'을 집단적으로 공유하며 그것을 재전유함으로써 집합적 정체성을 지니곤 했던 '잭'과 '질'들은 그렇게 사라져갔다.

 

그러던 가운데 중년이 되어 돌아온 SWV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되살아난다는 것'을 통해 묘한 감정을 전해주었다. 활동을 중단한 17년만인 2012년 새 싱글인 Co-Sign을 발표했고, 비디오 클립에서는 어느새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또 다소간 후덕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녀들의 노래하는 모습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명멸하는 별빛들처럼 수많은 요즘 가수들을 향해 "너네 그걸 노래라고 하니? 언니들이 한 수 가르쳐줄게"라고 하는 듯 당당한 모습도 멋지다. 이른바 '7080'처럼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구매력과 여유를 되찾은 소비자들이 그때 그 시절 아티스트들을 되불러오는 형태가 아니라, 어떻게든 다시 노래하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어했던 이들의 도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SWV는 감동을 준다.

 

올해 초부터는 이들의 재결성 및 활동 과정이 SWV Reunited라는 제목의 리얼리티 쇼로 방영되고 있다.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몇 편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 것은, 이들의 가창력과 하모니가 그리 녹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먹고 살만 해 지니까 다시 노래나 불러볼까 하고' 재결성을 시도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 락 밴드의 재결성에 비해 여성 보컬그룹의, 그것도 오랜 공백기간을 가진 뒤의 재결성이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녀들의 부활과 회복의 내러티브는 어느 정도는 리얼리티 쇼의 시대에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것'일지 모르지만, 되살아나 되돌아온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오늘 우리는 치유받고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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