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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의 뉴타입 정신과 소심함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통에 뭔가 적어놓지 않을 수 없다. 김예슬이 뭔가 다른 점은 한 개인으로서 체계에 공모해 왔다는 점을 솔직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얼마전 언론에 드러낸 그 모습만 딱 보아도 소심할 것 같은데, 그 소심함은 일찌감치 대학을 '그만둔다'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김예슬은 애써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덧붙였지만, 이건 약간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라 본다. 그녀는 그만둔 것이다. 물론 대학은 구조조정의 실험장을 지나 본격적인 시장이 되고 있고, 모 대학에서는 자치언론 발행물의 발간을 학교측이 금지하는 사건이 일어난 데 더해, 급기야 한 학생이 타워크레인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투쟁의 장에서 버티며 싸우지 못하고 일견 비겁하게 도망치듯 대학을 그만둔 김예슬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도 많지만, 나는 그녀의 뉴타입('퍼스트 칠드런'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기존의 인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점에서) 정신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물론 다른 길을 달리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주저앉는 이들 없이 다른 길이 필요하다는 공감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대학교 때 학교의 '브랜드 네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친구들을 보며 '쳇'하고 비웃으면서도 나는 학생운동하는 명문대 친구들이 부러웠드랬다. 뭔가 확신에 차 있는 눈빛에다, 그네들 곁에는 '쟁쟁한' 선배들도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한 학교 후배가 '정말인지 대학을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걸어왔는데, 나는 꼭 김예슬의 대자보 내용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게 나 역시 체계에 공모했다. 그 후배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생각하면 쉽게 네 멋대로 하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김예슬이 뭔가 비빌 언덕이 있어서, 자신감과 용기가 있어서 대학을 그만두었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그녀는 괴로웠을 것이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았을 것이다. 괴롭고 아픈 걸 참으면 병이 되는데,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집단적 병리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내지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그녀와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다"는 지점인데, 나는 애초에 그런 '나'가 있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가 있다는 말에도 갸우뚱 한다.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나'일 것이고, 살면서 살아지는 것이 '나'의 삶일 것이지 싶다. '본래의 진정한 나'라는 걸 생각하면 순간 아찔해진다. 대학을 "그만둔, 아니, 거부한" 김예슬이 그 순간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녀가 고려대 후문에 대자보를 붙였다던 그 날, 그 시점에 얽매여 살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진정한 大학생으로 태어날거라는 그녀보다는 뒷문으로 그만둔 소심쟁이 김예슬을 소심하게 지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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