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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이 되려다간 '과로사'한다

직장의 신이 되려다간 '과로사'한다

 
드라마 <직장의 신>과 관련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 '직장'의 재현을 둘러싼 문제점들 중 다른 문제들보다 그러한 재현이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가능성의 영역을 지워버린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 바 있는데, 그렇다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연한 노동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체현한 '자발적' 비정규직"의 모습이 보기 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직장 내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라고는 하나, '미스 김'의 당당한 존재는 현실에서 그녀처럼 살다가는 '과로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과잉노동과 관련하여 일 중독이나 장시간 노동 문제에 관한 논의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들은 고용의 질 또는 '일 다운 일(decent work)'의 추구라는 문제의식에서부터 '노동사회로부터의 탈피'라는 문제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시도되고 있다. 한편, 한국과 유사헤게 장시간 노동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일본의 경우, 장시간 노동체제 일반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과로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두드러진다. 과잉노동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가장 근본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생애주기에 따른 비교적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죽음이란 죽은 자와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 즉 사회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더욱이 한 개인을 '노동자'로 본다면 그의 죽음은 노동-자본 관계를 떠나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한 노동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대응도 마찬가지이다.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대응에도 죽음이라는 한 사건 자체를 중심으로 한 개별적 접근이 있는가 하면, 그 죽음의 배경에 놓인 사회관계에 대해 보다 폭넓게 접근하는 집단적 접근이 있다.

 

일본의 경우 과로사 문제는 일찍부터 제기되어서 1970-80년대부터 몇몇 사례들이 과로사 인정을 받고 그에 따라 유족들이 보상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개별적 접근이었다면 이후 발전해 온 과로사방지법 제정운동은 그러한 사회적 문제의식과 대응이 집단적 접근으로 확장된 결과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노동자의 죽음은 셀 수 없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여전히 수많은 중공업 사업장에서 계속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대표적으로 조선이나 철강 등의 산업부문에서 산재 및 산재사망이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되며 "위험은 물론 죽음까지 하청된다"는 문제제기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노동-자본 관계에 관련된 노동자의 죽음으로는 정리해고를 배경으로 한 노동자 자살이 2000년대 초반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를 비롯하여 최근의 쌍용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싸운 노동조합에 대한 기업측의 손배가압류 등을 통한 탄압이 노동자들의 절망을 더욱 깊게 만들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돌연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무노조 기업인 삼성에서 노동조합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지역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문제제기와 대응이 이루어져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가운데 한편으로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떠오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처럼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장시간 노동문화 속에서 과잉노동으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이 '과로사'라는 형태로 법적 대응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과로사 문제가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일본에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이 사회운동과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과로사'라는 용어 또는 개념으로 비로소 포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과로로 인한 돌연사와 같은 죽음이 없을 리 없다. 오히려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장시간 노동은 사실 한국의 경우가 더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OECD 노동통계만 보더라도 한국은 일본을 일찌감치 제치고 가장 노동시간이 긴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는 과로사에 대한 논의가 없을까?

 

거칠게나마 추론해 보자면 ... 한국에서는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기업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개인이 '권리'나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고, 이처럼 법적 소송을 중심으로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기회의 평등 중심의 자유주의가 폭넓게 자리잡지도 못했으며, 어느 정도는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그러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조직된 노동이나 조직된 시민사회 정도일텐데, 가시적인 재해가 아니라 입증이 어려우며 특히 화이트칼라 직무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과로사가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그간 대기업 생산직 남성 노동자들 중심이었다. 게다가 워낙 화이트칼라와 생산직 간의 임금격차가 컸다. 여기에 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고용불안이 문제가 되면서 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확보로 연결짓는 논의가 제기되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업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교대체 개편 논의가 제기되어 최근 피크를 이루고 있으나, 아직까지 '시간기획'의 문제가 중심적으로 제기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정교한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장시간 노동관행을 보다 세부적인 측면 및 요인들로 분해하여 비교 분석해 보고, 그것을 넘어 한국에서는 왜 과잉노동으로 인한 죽음이 포착되지 못하고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 못한가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장시간 노동자체는 물론, '일'의 반대 개념으로 규정되곤 하는 여가, 휴가, 생활 등을 둘러싼 이른바 '시간의 정치'에 대한 고민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과 여가(휴가, 생활) 간의 이분법 자체가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지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장시간 노동 문제 외에도 개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와 대응, 달리 말하면 '죽음의 정치' 또한 다른 차원에서 일본의 '과로사'를 둘러싼 정치와의 비교 분석의 대상이 되는,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문제이다.

 

 

 

덧붙임: 한국과 일본의 장시간 노동 연구

 

장시간 노동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노동시간 문제를 다룬 논의는 특히 경제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급증하였는데, 당시의 논의들은 노동조합운동의 핵심 이슈이기도 했던 정리해고 도입 이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후 장시간 노동의 주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주목할 만한 논의들로 '일 중독'의 문제를 제기한 강수돌의 <일 중독 벗어나기>(2007)을 비롯하여 김왕배의 연구 등이 있다. 장시간 노동문화를 다룬 보다 최근의 논의로는 김영선의 <잃어버린 10일>(2011)이 있다. 그는 흥미롭게도 '휴가정치'를 통해, 그것도 경영담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장시간 노동문화의 핵심을 꿰뚫는다. 그의 <과로사회>가 곧 출간될 예정이라 하니 매우 기대된다.

 

일본의 경우 장시간 노동, 과잉노동, 과로사 등에 대한 최근의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사회정책학회가 엮은 <과잉노동: 노동-생활시간의 사회정책>(2006), 쿠마자와 마코토의 <과로로 쓰러지다: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노동사>(2010), 모리오카 코지의 <과로사가 없는 사회를>(2012)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간사이대학 교수인 모리오카 코지는 꾸준히 과잉노동과 과로사 문제를 연구해온 대표적인 학자이며, 항상 현장 및 운동과의 끈을 놓지 않는 모범적인 연구자이기도 하다. 쿠마자와 마코토 또한 일찍이 <일본의 노동자상(像)>(1993)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이 책은 미국의 탁월한 일본 연구자인 앤드루 고든에 의해 1996년에 Portraits of the Japanese Workplace라는 제목으로 영역 소개되었다.),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을 폭넓게 연구하는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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