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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을 둘러싼 논의들의 불편함

 

어제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직장의 신>이 직장 내 권력관계를 잘 다루고 있다는 그분의 말씀에 입이 근지러워 한 마디 했더랬다. 한편으론 참 불편하다고. <직장의 신>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물론 긍정적인 현상이다. 매회마다 드라마 속 사건이나 스토리가 대중적 관심사로 부각하면서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들은 그에 관한 의견을 묻는 언론의 인터뷰 전화로 바빠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한 선생님의 말씀대로 <직장의 신>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주관성과 직장 내 인간관계를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직장의 신>은 그 설정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의 지형에 있어서도 많은 불편함을 준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연한 노동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체현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라니. 여성 비정규직 일자리 선택의 자발성이라는 게 어느 정도 강제된 자발성이거나 체념적 자발성이라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의 비정규직 일자리는 직무 성격이 주변적이거나, 핵심적이더라도 보상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다. 그런 건 다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직장의 신>을 모두 챙겨보지는 않았고, 원작인 <파견의 품격>은 몇년 전 보았던 기억이 있긴 해도 한국판과 일정 부분 다르다고 하니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두 드라마 모두 작업장 내 사회관계를 '개별적 근로관계'에 국한시키고 있다는 점이 가장 불편하다.

 

변화한 고용체제 하에서의 직장 내 인간관계를 잘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효과는 직장 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하고 보장되어야 하는 '집단적 노사관계'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하다못해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을 등장시켜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한다거나 '정규직 이기주의'를 비난할지라도, 작업장 내 사회관계의 핵심 축이 집단적 관계라는 점이 드러난다면, <직장의 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의 방향도 달라졌을 거라 본다. 물론 테레비 드라마 가운데 노동조합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지만 말이다. 이 모든 배경에는 한국 자본의 극렬한 반노조주의와, 특히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화 시도에 대한 강도 높은 이념공세 및 물리적 탄압이 자리 잡고 있다.

 

어제 저녁 한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다른 누군가는 나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어느 정도 시원하게 긁어 주는 칼럼을 쓰고 있었던 듯하다. 천정환 교수는 "직장의 신은 어디 있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타당하게도 진정한 직장의 신은 노동조합이라 지적하며, "2012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7%, 정규직은 14%를 기록했다 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통이 이 낮은 수치에 집약돼 있는 것 같다"고 결론짓는다.

 

* 덧붙이자면 ... 보다 정확히 말해 그 '선생님'은 <직장의 신>이 직장 내에서의 복잡하게 얽힌 '갑을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했다. 물론 동의하지만, '갑을관계'라는 말 또한 불편하다. 요즘 어디서든 '갑'과 '을'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쓰는데, '직장생활'에 관한 한 이런 표현이 좀 자제되었으면 한다. 안그래도 고용관계에 자꾸 민법상 계약관계 개념이 끼어들어와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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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직장의 신은 어디 있나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한국일보 2013년 5월 7일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다 인기 높은 웹툰 <미생>은 인턴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장그래를 비롯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은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인턴일 뿐인데, '스펙' 뿐 아니라 벌써 대기업이 자기들 정규직사원에게 요구하는 마인드와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거나 또는 그러려고 분투한다. 과연 그게 바람직한지, 또 <미생>이 그리는 회사가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다수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생겨난 인턴이라는 제도가 싸고 편하게 젊은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제도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착취의 명목을 '산학협동'이니 '스펙'이니 '현장실습'이니 치장하지만 듣기 좋은 허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런 현실을 바꾸지 못할 뿐이고, 모든 '절대 갑(甲)'의 자리를 자본과 고용주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바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고생스런 인턴 생활을 몇 개월씩 하고 그냥 '버려진' 대학생들의 실화를 나도 여러 번 들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이야기가 정말 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최근 편의점 학원 미용실 등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73%가 최저임금 4,860원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시간외수당은 꿈도 못 꾼다고 응답했다.(노컷뉴스 2013.4.30) 청소년이나 학생들을 착취하고 인격을 침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관행과 일상으로 만든 이 문화는 죄가 많다. 이런 일은 내 주변에도 널려 있다. 대학 조교들의 상당수는 사무직 풀타임 노동자가 하는 일을 똑같이 하지만, 아주 싼 임금을 받는다. 그 임금은 대개 장학금 명목으로 되어 있고 신분을 '학생'으로 분류해두었기에 근로기준법 바깥에 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문제제기하거나 해결책을 찾고 싶지만, 젊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업계에서 찍힐까봐"이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순진한 그들은 고용주나 어른들의 엄포나 술수에도 쉽게 진다. 기성세대의 죄가 정말 크다. 나 또한 공범인지 모른다. 이 사회가 누리는 번영은 여전히 부끄러운 갈취와 억압의 문화 위에 구축돼 있는 것이다. '싸움의 철학'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누가 대신 싸워주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현실에서는 <직장의 신> '미스김씨'가 없다. '미스김'은 모든 면에서 전지전능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사실 속도 깊은 '진짜 동료'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나설 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충까지도 해결해준다. 그야말로 그녀는 '직장인'의 신이다. 이 인기 드라마는 잘 된 드라마의 원리를 충실히 구현하는 것 같다. 디테일이 살아있고 '현실'을 반영한다. 그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원망을 담아내고 위로한다. 그러나 '레알' 세계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며 기실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드라마는 초과근무 정리해고 회식 시간외수당 생리휴가 등 노동자들이 늘 맞닥뜨리는 현실과 차별 전반을 문제 삼고 시원한 멘트를 날려주기는 하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말 못한다.

 

현실에서 '미스김' 같은 '직장인의 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제대로 된 노조뿐일 텐데, 많은 사람들은 노조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의 '을'들이 노조라는 미스김을 동료를 두지 못하는 것은, 권력자와 사장님들이 노조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7%, 정규직은 14%를 기록했다 한다. 나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통이 이 낮은 수치에 집약돼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각고의 노력 끝에 청년유니온이 드디어 전국 단위 법내 노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다.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아르바이트생을 주된 가입대상으로 하는 청년유니온 같은 노조가 30개, 50개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또 거기 강사나 조교들이 대거 가입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10,20대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과 대학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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