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위기극복의 세 가지 시나리오

 

삶의 위기는 불현듯 닥쳐온다. 최근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된 영화들, 재미있게 또는 지겹게 본 영화들은 공교롭게도 그러한 위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참에 앞으로 다시 한 번 닥쳐올 위기에 재치있게 대응(?)하기 위해 각각의 위기를 유형화해 보고 귀감으로 삼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말로는 요즈음이 '악령이 들릴 시기'라는데, 악령에 씌지 않기 위해서라도 꿋꿋한 인간들 혹은 비인간들의 모습을 스케치해 두어야겠다.

 

첫 번째 유형은 심드렁무관심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유형이 맞닥뜨리는 위기는 주로 개인적-생애사적 위기들이다. 뭘 해도 안 풀리는 시기를 맞게 된 이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바로 심드렁함, 무관심함이라 할 수 있다. 팀 버튼의 <에드 우드>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 ... 그 제목만 봐도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성냥공장 소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과거가 없는 남자>, <황혼의 빛> 등등을 보고 있자면 '참 삶이 저럴 수도 있는 건가', 아니, '삶이라는 게 다 저런 건가' 싶다. 이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되도 않는 영화들을 죽자사자 찍어대거나, 밑도끝도 없이 추락하든 말든 그냥 그 순간 순간을 담담하게 살아가며 위기를 넘긴다. 일종의 락 스피릿으로 돌파하기.

 

두 번째 유형은 신체훼손형 또는 좀비형인데, 이런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위기는 주로 마을 수준의 지역사회를 단위로 하며 나(+몇몇 지인) 말고는 전부 맛이 간 놈년들이 동네를 뒤덮음으로써 발생하는 위기이다. 사실 최근의 부조리한 좀비영화들이 아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새벽의 저주> 등과 같은 정통 좀비영화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좀비'를 내세워 지배의 속성을 드러내고자 시도한다. 지배자의 시선으로 보면 피지배자들은 죄다 좀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좀비들이 엄청난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지배자들이 어찌 마음 편할 수 있겠는가. 좀비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좀비의 편이 되어 속으로 "마지막 한 놈까지 물어뜯어라"고 외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진정한 위기의 극복이리라. 신체훼손형도 이와 유사한 에토스를 지닌다. 이와 관련된 영화들 중 최근 정말 재미있게 본 것들로는 <이치 더 킬러>, <머신 걸>, <여자경영반란부> 등인데, 특히 후자의 영화들은 AV와 스플래터 무비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띤다. 여기서 핵심은 잘려나간 신체의 흔적이 아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려나간 팔다리는 다시 들러붙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분수처럼 피가 뿜어나오며 절단되는 신체를 보고 있자면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근대 이후 신성한 그 무엇이자 권력이 자리잡는 밑바탕이 된 신체를 마구 훼손함으로써 동네는 일종의 카니발로 접어든다. 불안이라는 위기는 이렇게 극복된다.

 

세 번째 유형은 재난대항연희형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하자면 "노래가 세상을 구할거야"라는 메시지를 은근슬쩍 혹은 공공연히 내비치는 영화들인데, 여기서 나타나는 위기는 주로 '인류의 위기'이며, 위기의 원인은 부조리하게도 신종 바이러스라든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 같은 것들이다. <20세기 소년 최종장> 같은 경우에는 '다시 한 번 우드스탁을'과 같은 고전적 메시지를 고수하는데, 이게 참 맘에 든다. 더구나 <20세기 소년>에서 위기는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친구'라는 한 인간, 그것도 주인공들의 어릴 적 친구인 바로 그 친구인 과거로부터 위기는 덮쳐 온다. 물론 해결책도 과거로부터 온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 중학 시절 옥상에서 흥얼거리며 만든 노래에 담긴 그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반면, <피쉬 스토리>는 보는 내내 완전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노래가 세상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들고 나와서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필연성의 법칙을 내세우는 것은 대체 뭔가. 게다가 결국엔 천재 소녀가 거대 군사강국이 띄운 우주선에 타서 ... 젠장. 물론 그렇다고 <20세기 소년>의 "구따라라~ 스다라라~"가 완전 좋다는 건 아니다. 아쉽게도 노랫말이 ... '집으로 돌아가자'는 ... 너무나도 아저씨스러운 것이라는 점이 좀 찜찜하다.

 

여하튼 뭔가 삶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싶은 개인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요약해 보자면 ... 만사에 심드렁하고 무관심하게 대처하며,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찢어발기고, 한껏 노래를 불러제끼면 된다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