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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데 단 한 권의 책이면 충분할 때가 있고, 방대한 데이터보다 한 줄의 경구가 더 많은 통찰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 나에게 이따금씩 번뜩이는 경구로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이 중 하나가 김규항이다. 가끔씩 신문에 실리는 칼럼을 보며, 이 사람의 말은 생생하게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 중 뇌리에 박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말 중 하나가 '요즘 아이들의 거친 입'에 관한 것이었다. 나 역시 중고교 시절에 온갖 뻘짓을 하며 살았지만, 욕을 달고 살지는 않았던지라 중고딩들이 지나가며 온갖 욕을 씨부리면 속으로 '무섭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를 두고 김규항은 억압적인 교육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그네들이 질러대는 '비명'이라 말한다. 그런 그가 엊그제 칼럼에서는 자신의 아이가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고 가족간에 합의롤 보았다고 자랑(?)해대면서 '그들의 엘리트'가 아닌 '우리의 엘리트'는 (좋은) 대학 보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사실 좀 뻔한 이야기이다. 굳이 신문 지면에 칼럼까지 쓰면서 이야기 안 해도 주변에 그런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신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교사로부터 "아니, 선생님처럼 훌륭한 분이 어찌 그리 자녀에게 무관심(?)하느냐"는 요지의 전화를 몇번이고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문제가 된다면 정말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간다. 참 오랜만에 이번 명절엔 고향을 방문했는데, 모처럼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도 찾아와 있어 저녁녘에 읍내에서 만났다. 녀석의 동행은 실업계 여고생. 녀석과 그녀가 무슨 관계인지는 물어보지도 않았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셋이 종종 초점 안 맞기도 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참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풍부한 감정들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때로는 당혹스러운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젠 명실상부한 아저씨들이 된 우리들은 어느덧 수많은 감정들을 단 하나의 깡통 속에 꾹꾹 눌러담는 버릇이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스트레스'라는 깡통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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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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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군요. 아이들에게 내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 두려울 지경입니다. 그저 참고만 하라고 말하기는 한다지만 그래도 입장이 다르다보면 받아들이는 것이 각기 다를 터인데 그게 어려운 것은 극복되기 힘든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그저 남의일이나 넘의일이나 모른척하게 되어버립니다. 에효.오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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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고 뻔한 얘기 조차 보기 어렵고, 용기내어 얘기해야하는 현실이란 참...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