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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식생활을 문제삼는 세상에 절망했다

친구 H의 강추로 <사요나라 절망선생>을 보다가 온갖 것에 절망하고, 우연찮게 독기가 빠진 인간들에 한탄하는 이토시키 노조무 선생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독기가 오른다. 내 식으로 절망선생의 대사(絶望した! **に絶望した!)를 패러디하자면 "절망했다! 개인의 식생활을 문제삼는 세상에 절망했다!" 쯤 되려나. 몇 년 전쯤 초록정치연대를 띄웠던 우석훈 씨가 "아토피는 정치다"라고 했을 때 당시 아토피를 심하게 앓던 나는 갸우뚱 하면서도 옳거니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5년여 전쯤부터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었고, 1-2년을 그냥 버티다가 결국 피부과 치료를 받았는데, 그 1년여간 섣부르게 항히스타민, 스테로이드 등을 주입받아 간과 신장이 너덜너덜 해졌고, 체중도 약 20Kg 늘면서 뭘 해도 몸이 힘든 상황을 맞았다. 이후 한의원 등등을 통해 독기를 빼는 시간을 보냈다. 생활비를 줄여 병원을 다니다 보니 식생활은 탄수화물 위주로 배를 채우는 방식이었고, 그로 인한 악순환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그건 뭐 지금도 비슷하다. 아뭏든 이를 계기로 네 발 달린 짐승과 날개달린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술도 일절 마시지 않게 되었다. 우유, 달걀, 해산물 정도까지가 나의 타협선이다. 최근엔 금연도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중이다.

 

그러나 삶이란 게 원래 녹록치 않은 것인지 고기와 술을 먹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물음이 단순한 궁금증부터 일종의 공격적 언사까지 덮쳐 온다.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고,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된 것도 이 탓이 큰 것 같다. 가장 빈번하게 받는 질문 아닌 질문은 바로 "채식주의자냐?"라는 것인데, 나는 그냥 건강이 안 좋아서 내지는 아토피 때문이라고 둘러대 왔다. 그런 나의 대답에도 꼭 심층적으로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뭐 어느 정도는 버틸만 한데, 몇 개월 전쯤엔 정말 절망스러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 고기도 안 먹는데 그렇게 살이 쪄요?" 뭐랄까 그땐 정말 화도 안 났다. 그 순간 절실히 느낀 게 있다면, 사람들은 좀처럼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며 솔직하게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솔직하지 못함을 드러내면 그것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어느새 나는 가끔씩 속을 알 수 없다거나 음흉(?)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속내를 나도 몰래 드러냈다가도 곧 흠칫하고 주워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냐?"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식품생산을 살펴보면, 육류생산으로 갈 수록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또 먹이사슬의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중금속 등이 축적되는 비율이 높아, 육식 위주의 식생활은 다음 세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나는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인류의 식량소비가 채식을 중심으로 지역적 생산물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이러한 생각을 대중운동으로 풀어 나가는 것 또한 지지한다.
 

그 이후 오랜만에 또 사석에서 "채식주의자들은 자기들 몸 챙길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개인적인 자리에서 "채식주의자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아저씨들이 술자리에서 누군가 이명박을 까대면 "너 좌파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뭐랄까 그 자리에서도 나는 자기해방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자가 떠올랐다. 때마침 최근 들어 재미있게 읽고 있는 일련의 책들 중 매우 평이하면서도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가동되고 있지 않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실 개인이 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지로 개인에게 성패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 자체가 비생산적이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소신껏 일을 추진할 수도 없고 결국 그것은 수많은 사회변동의 싹을 압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 쳔꽝싱(陳光興), 백지운·임우경·송승석 옮김. 2003, 『제국의 눈』, 창비. p.27

 

 

식품의 생산과 소비의 구조적인 문제 또한 개인이 짊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아토피라는 원인불명의 환경병을 겪는 개인적 경험 또한 개인적인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에 대응하는 개개인들의 의료서비스와 식생활 등에 관련한 선택을 공격적으로 문제삼는 것 또한 비생산적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이야 얼마 안 되겠지만, 얼마 안 되는 이들에게라도 사석에서 누군가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왜 고기를 안 먹느냐고 사정없이 캐묻지는 말아 주었으면 한다고 말하고 싶다. 상대방이 채식의 이유와 필요성과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채식을 권할 경우에는 그에 맞게 진지하게 대화를 풀어 나가면 좋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 몸이 물질적-정신적으로 식민화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 경험을 통해 개인적으로 대응해 왔을 뿐인데, 물론 기회가 된다면 집합적인 대응에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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