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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들을 위한 송가

 

 

 

 

 

 

계급에 대한 글을 하나 번역하여 포스팅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 글을 읽다보면 웬지 기운이 빠진다. 글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거기서 제기하지 않는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적잖이 회의하게 된다. 마치 설명서에 나오는 놀이동산이나 바이킹 해적선 따위가 아닌 독창적인 무엇이지만, 결국은 주어진 레고 블럭을 갖고 만든 피규어일 뿐인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물론 분석적(혹은 non-bullshit) 맑스주의자들의 강점은 모르는 것이나 알쏭달쏭한 것에 대해서는 섣불리 이야기하지 않고, 경험적인 자료에 기반하여 인과적 설명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내가 다 알지~~" 식의 이야기로 들릴 때가 많다

 

라이트의 경우만 해도, 그가 종종 "세계를 해석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테제를 인용하며 하는 이야기들도 ... 어딘가 꼬여 있는 내가 듣기로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긴 한데,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세계를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자칭 맑스주의자라는 이들은 세계를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하면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소리만 꽥꽥 질러댄다"는 말로 들린다. 이른바 부르주아 사회과학을 통째로 매도할 것은 아니라는 말도 일단은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사회학이라는 분과학문 정체성을 강하게 내세우는 것은 끝끝내 거슬린다. 결정적으로는 과학주의에 대한 반대를 가장한 과학주의가 기존에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영역들을 계속해서 비과학적이며 중요하지 않은 영역들로 남도록 만든다.

 

이런 헛소리(bullshit)을 주구장창 늘어놓는 까닭은 ... 과학을 내세우는 이런저런 논의들이 결국 사람 사는 것 또는 역사에 대해 별로 말해주는 것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노래의 힘' 같은 것이 아닐까? 톰 웨이츠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의 노래들은 부르스 스프링스틴, 닉 케이브, 레너드 코언을 뒤섞어 놓은 듯 하면서도 듣는 이의 혼을 쏙 빼 놓거나, 아니면 속이 안좋아질 정도로 거북하게 하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1976년에 발매된 와 1985년 앨범 에 실린 곡들을 좋아하는데, 특히 후자의 앨범은 한 해 전 발표된 스프링스틴의 앨범과 여러 모로 비교가 된다. "Downtown Train"과 "Downbound Train"은 곡의 분위기조차 비슷하다. 그렇지만 스프링스틴의 앨범은 제목부터 "미국에서 태어나서"이지만, 톰 웨이츠는 태생부터가 달리는 택시 안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가 "너희들"의 세계이지 "우리들"의 세계는 아니라는 감수성을 지닌 이들에게 세계에 대한 설명은 눈앞에서는 몰라도 돌아서는 순간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렇게 한숨 한 번 내뱉고 돌아선 "우리들"을 불러모아서 다독여주는 노래가 톰 웨이츠의 곡들이다. 요즘 말로 하면 루저들을 위한 송가인 셈인데, 스프링스틴이 주로 '생활전선'에서의 루저를, 레너드 코언이 '주류에의 진입'을 둘러싼 자발적 패배자들을(그는 <아름다운 루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닉 케이브가 '정상적인 인간'으로의 분류를 둘러싼 전쟁에서의 패자들을 그린다면, 웨이츠는 총체적인 루저의 정서를 담담히 노래한다. 물론 최근의 루저 논란이나 루저라는 표현조차도 그리 맘에 들지는 않는다. 며칠 전 동네 분식집에서 일요신문을 뒤적이다 본 칼럼에서 한 교수는 루저 담론이 뭔가 싸워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을 패배자로 만든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그 말은 틀렸다. 일상의 정치에서건 제도정치에서건 정치는 전쟁의 연속이다.

 

물론 젊은 세대들을 위한 노래는 예전에도 많았다. 예컨대 ...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일어서라 대결의 용기로~ 마침내 열려질 미래 전진하라 청년이여~" ... 이런 노래라든지 ... 아뭏든 청춘, 청년학생, 백만학도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노래들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젊은 세대들을 '위한' 노래라기보다는, 이들을 '채찍질하는' 노래들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전쟁상태'에서 '루저상태'를 유지하며 그저 나이만 퍼먹어 온 일단의 어정쩡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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