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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주말 저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담배 한 갑을 사러 슈퍼에 들렀다. "'시가 1mm' 주세요"  하니까 김장을 준비하시는지 카운터(?)에 앉아 눈도 안 마주치고 마늘을 까던 아주머니는 한 귀퉁이에서 3단변신 로봇 완구와 놀고 있던 대여섯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애야, '시가 1mm' 하나 드려라. 거기 그 누런 거" 그러신다. 오랜만에 보는 진풍경에 멍해졌달까, 기시감이 왔달까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소년은 내게 당당히 원 1mm를 내놓는다.

 

당황한 나는 무심결에 "그거 아닌디"라고 해 버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힐끗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상체를 왼쪽으로 젖히면서 팔을 주욱 뻗어 내가 원하던 담배를 꺼내 주었다. 거기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 소년이 마치 주문을 외듯 "아닌디~~ 아닌디~~ 아닌디~~"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녀석의 재기발랄함에 웃음을 지으면서도 얼굴이 살짝 붉어진 나는 약간 긴장하여 내놓으려던 만원짜리 지폐를 도로 넣고 천원짜리 두 장에 동전지갑을 꺼내어 2500원을 맞춰 주고는 황급히 빠져나왔다. 아무 생각 없는 듯 했던 몇십 초 동안 내 신경계는 무엇에 반응했던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생각에 빠져 보았다. "그 꼬마는 그 흔한 학원도 안 다니나? 아뭏든 아이가 담배 상품명을 줄줄 꿰고 있는 건 역시 이상하지?" "어렸을 때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청자 한 보루 사러 신작로 저 아래 **네 구멍가게에 가면 옆반 민정이가 미닫이문을 스윽 밀고 나와 담배를 꺼내주곤 했지." 이런 잡다한 것들을 떠올리느라 채 그럴싸한 답을 내어 보기도 전에, 건널목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 모든 걸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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