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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된 대지의 수탈된 돼지, 차우

- 차우는 덫이라는 뜻의 한국말, 영어로는 씹어먹는다(chaw)는 뜻이란다.

 

 


 

 

장규성 감독의 2007년작 <이장과 군수> 이후 심상찮은 영화를 발견(?)했다. <이장과 군수>는 언뜻 보면 엉성한데다 억지로 웃음을 자아내는 닳아빠진 코믹영화였고, 방폐장 유치라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이슈를 끼워넣었지만, 지역사회의 토호 지배와 후견주의의 양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눈에 띤 영화가 바로 신정원 감독의 2009년작 <차우>였다. 우선 이 영화는 시골구석을 다룬 여느 영화들과 달리 한적하고 공기좋은 시골동네라는 이미지를 애초에 내세우지 않는다. 물론 산골마을을 음침하고 사람들 속도 알 수 없는 무서운 곳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식민주의적 시선이 느껴지지만(봉준호의 <마더>는 끝까지 이러한 시선을 유지한다), 몇 분만 지나면 이것이 일종의 패러디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인 김순경(엄태웅)은 지방으로 '좌천'되어온 순경이지만, 서울에서 음주단속 하다 취객에게 뺨이나 맞던 그에게 전입해온 산골동네에서의 삶이 자괴감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에겐 임신한 부인과 치매인 어머니가 있다. 바로 이러한 설정이 그로 하여금 식인멧돼지의 출현이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할 주체로 만든다. 또한 그와 파트너를 이루는 대학원생 변수련(정유미)은 괴수영화에 단골 등장하는 과학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만년 조교다.

 

김순경이 도착한 산골마을에서는 이장과 결탁한 개발업자가 주말농장 사업을 벌이고 있었고, 그 가운데 식인멧돼지가 나타난다. 한줌밖에 안 될 잉여를 송출할 통로이자, 토호와 이장에게 이익을 안겨다줄 도시사람들의 방문이 위협받게 되자 민관학협력 작전이 시작된다. 그래봐야 어설픈 경찰, 한물간 사냥꾼, 별 도움 안 되는 대학원생이 모인 것이지만. 여전히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지역주민들이 나서지는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나마 지역사회에서 주변인이자 손녀딸을 식인멧돼지에게 잃은 왕년에 잘나가던 천포수(장항선)가 토착적 지식을 발휘하여 한몫을 하게 된다.

 

식인멧돼지의 탄생 배경을 굳이 일제시대의 실험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까지는 없다 싶었지만, 삶의 터전이 위협받던 와중에 무덤을 파헤쳐 사람 내장 맛을 본 멧돼지가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설정에서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약탈'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더 곤혹스러운 양상들은 중앙에 의해 수탈당하는 지방이라는 구도에서 드러난다.

 

수탈된 돼지의 습격이 코믹하게 그려지는 것은 바로 지방이라는 수탈된 대지를 둘러싼 관계들을 블랙유머로 처리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이장과 개발업자가 불러들인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백포수(윤제문)는 엉뚱하게 허를 찔러대고, 동물행동학을 전공하는 도시처녀 변수련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캐릭터다. 가장 눈에 띤 장면은 느글느글한 신형사(박혁권)가 마을 일을 걱정하면서도 주민들의 담배, 라이터라든지 작은 물건들을 쉴새없이 주머니로 슬쩍 가져가는 장면인데, 이 행위들 또한 그를 파출소 분소로 파견보낸 읍내 경찰서가 지방 내의 또 다른 중앙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식인 멧돼지는 결국 명을 달리하지만, 그 새끼는 살아남아 마지막 장면에서 눈을 부라린다. 수탈된 대지의 수탈된 돼지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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