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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장밋빛 인생이 있었던가

2003년 10월 17일

 

알랭 베를리너(Alain Berliner) 감독. 1997, <나의 장밋빛 인생>


운이 좋은 건지, 시내의 비디오가게 중 나의 단골이자 드나드는 유일한 가게인 '충남비디오'에선 찾아갈 때마다 눈에 확 들어오는 그런 비디오테잎이 꼭 하나씩 있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 중 내 기억을 강렬히 지배하는 영화라면 ... 최근의 영화인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헤드윅>일 것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하나님의 실수'로 표현하는 모습에선 정말인지 <헤드윅>이 떠올랐다. 물론, 영화를 만든 어른들이 애써 아이의 시선을 포착하려다. 실수한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의 장밋빛 인생>은 어른들과는 고도상으로 다른 공간을 통해 살아가는 어린이의 성정체성을 담아냈기에 독특하고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어린 아이의 '성장'을 통과하며 성정체성을 담아내기 때문에, 성정체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두 배의 고통을 선사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가 남겨주는 최대의 교훈이란 이른바 '시골담론'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이웃을 잘 만나야 내 집안과 동네가 평화롭다"에 다름아니다.

 

주인공 루드빅을 연기한 조르주(Georges du Fresne)라는 꼬마의 눈앞이 아른거릴 정도로 깜찍한 연기와 심지어 자식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시점을 자연스럽게 잡아내고 있는 카메라워크는 정말 놓칠 수 없다

 

가장 골치아프고 복잡한 것은 일상이라 했던가. 영화는 이 모든 것을 한 아이의 눈높이를 통해 관객의 일상과 동일선상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마지막에 옷을 바꿔 입은 여자아이가 못생긴데다 남성의 성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설정이 아니었다면, 결말의 그런 화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이야기는 아쉽게도 '가족'으로의 화해로 귀착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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