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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을 받아들고

2003년 11월 12일

 
느지막히 일어나 방청소를 간단히 한 뒤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전면허학원에 들러 면허증을 찾아왔다. 충남 03-XXXXXX-XX라고 큼지막히 기재되어 있는 운전면허증 번호는 다시금 잠시 01-XXXXXXXX이라는 쇳조각에 새겨졌던 지난 시간이 숫자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한달 여 간 일용직 아르바이트 수입에다 집에서 수시로 손 벌린 것까지 합한 돈에다가 하루에 몇 시간씩의 교육과 매주 치른 시험으로 스스로 핑계삼아가며 15kg쯤은 무거워진 몸뚱아리를 집에 묶어놓기도 했던 이 운전면허증. 삐그덕거리는 철문소리를 뒤로 하고 일찌감치 쌀쌀해진 산동네를 빠져나오며 손에 쥐었던, '아, 이거 하나 손에 넣자고!'라고 중얼거리게 했던 전역증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자동차를 탄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불편하고 10분에 한 번은 가슴이 철렁한 내가 운전 배우라는 소리 들었을 땐 정말 삼혼三魂이 날고 칠백七魄은 뛰어 어쩔 줄 몰랐으나, 그냥 면허만 일단 취득해 두라는 집요한 회유에 넘어가고 말았다.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이 운전면허증이라는 것을 손에 넣고 나니 간사하게도 마음 속에 운전면허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 비슷한 마음이 생겨나니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잠시 벽력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요 몇 달 사이 이렇게 체제가 쥐고 돌리는 통과의례의 훈장을 두 가지나 손에 쥐고 나니, 정작 그 해괘망칙한 폴리에틸렌 필름 코팅된 딱지들이 무서운 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기(務器)와 기동 장비를 운용하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어 장차 유용히 쓸 날이 있겠거니 하더라도 그 두 가지는 각각 양심적 거부에 대한 면죄부로서, 이동권에 대한 한 차원 높은 패스포트로서 기능하는 측면들이 본의 아니게 숨어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진정 그리하여 그 두 개의 딱지엔 국방부장관과 충남지방경찰청장이라는 나으리들의 인장이 명히 찍혀 있는 듯 하기도 하다.

 

무릇 깨부수고자 하는 이는 새로 만듦을 사려해야 하는 법인지라, 그 때이름에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꾸 '세상에 딱정벌레가 만연하는 때에 종말이 올 것이니'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서낭당 메아리같이 들려오는 까닭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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