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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인간

지난 주 한겨레 신문을 들어 펼쳤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일이 있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손바닥보다 더 큰 사이즈로 들어앉은 정운영씨 사진때문이었는데, 사진이 어찌나 섬세한지, 진짜 그 사람이 들어와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정운영하면 따라붙는 '큰 키에 깊은 눈매'란 수사, 딱 그런 모습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냥, 죽으면 죽었지,했던 느낌이 새삼 동요했다.

새삼 쓸쓸했다.

새삼 인생이 덧없고, 새삼.....

 

 

내가 가방에서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를 꺼내자, 전수찬이 "추모독서라도 하는거야?"했다. 정말 나는 '추모독서'를 하고 있었다.

80년대 끝, 90년대를 소망하는 시점에서 쓰여진 이 글들을 보고있자니, 반짝반짝 그 소망들이 띤 빛이 너무 순진해서 가엾다. 그 때만해도 이런 소망들을 품고 있었구나. 품을 수 있었구나. 자본이 귀신과 악마의 회오리가 되어 모든 걸 휘어삼킬 줄 모르던 때였구나. 그런 때도 있었구나.

아마 그는 2000년대를 견디지 못 했었을 것이다.

그가 해석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2000년대를 살고있다.

인간은 이미 다른 종(種)이다. 소비인간 쯤으로 명칭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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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스타기 싫어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

아침 9시대에 버스를 타고다니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가 익숙하게 된 것은 <지금은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쓰고보니 이름이 웃기군).

명망있다고 표현할만한 여자엔터테이너와 그에 약간 못 미치는 명망의 남자엔터테이너를 디제이로 해놓고(전 환경부장관 손숙과 김승현 식의 커플. 다른 프로와는 달리 여자엔터테이너를 더 명망있는 사람으로 해놓은 건 이제보니 제목과도 연결이 되어있나보군) 사람들이 보내는 사연들을 읽어주는 프로인데, 처음에 등장했었을 당시(벌써 십몇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아침 9시대에 버스를 타고다니는 날이 많았었던 나의 이십대초반이었다.) 인기집중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여간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총체적 기념의 의도는 없으니 대충 짧게 해두자.

원래부터 이런 프로그램에는 별 관심도 없다. 버스 운전기사가 틀어놨으니 그냥 듣는 것이다. 그러다 웃기면 따라웃기도 하지만(그렇게 듣다가 따라 웃는 프로로는, 강석 김영혜의 싱글벙글쑈가 제일이지).  

 

이 프로그램은 그러니까, 사회자가 원하는 대로 내 감흥을 따라가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저런 소리는 좀 그만 듣고 싶은데, 하는 것이 30분마다 등장하여 결국 내 손으로 라디오 채널을 맞추어 들을 리는 없는 프로인 것이다. 예를 들면 허리케인 카트리나 얘기를 하면서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은 보호소에 있는데 한국사람들은 보호소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 다른 지역의 한국 이민자들이 자기 집으로 불러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으니까, 자기 집을 거의 내준 사람도 있다더라.라는 소리를 한다던가...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한건데, 얘기가 주절주절 길어졌음.

오늘 아침 들은 사연 하나.

어느 부부의 남편인 자가 보낸 사연인데, 자기가 청소하다가 뼈골이 빠진다는 얘기.

마누라가 청소의 ㅊ자도 모르고, 쓰레기 봉투도 자기가 직접 묶고, '심지어는' 분리수거까지 하고 있다고. ('심지어는'의 단어는 그 남자가 직접 쓴 표현임)  게다가 여자가 둘째낳고부터 팔이 아프다며 걸레질까지 자기가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부부는 원래 맞벌이여서 부엌쪽은 아내 담당, 청소는 남편 담당이라고 결혼때 결정했단다(참으로 용기있고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지금 이 남자가 웃으라고 이 글을 써보낸건가,  헛갈렸다.

 

원래 청소담당이라면서 청소하는 일이 힘들다는 투정은 국민학생도 아니고 뭐 하는 소리인가. 둘째낳고부터 여자가 걸레질을 못한다고 했다면 그 전까지 걸레질은 마누라가 했다는 소리인데. 진공청소기 한 번 돌리고 청소 끝 하셨나. 분리수거하는 것도, 쓰레기 봉투 묶는 것도 참으로 큰 일 하신다는 그 자세는 무언가. 그러고 계속 나오는 이야기에 여자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리가 없는 걸로 보아(이 남자, 여자가 전업주부인데도 자기가 청소하면 집에 폭탄이라도 떨어뜨릴 양반이다), 여전 맞벌이인가본데, 어떡하면 청소에서 도망갈까,하는 궁리 태세였다.

 

나는 프로그램 피디나 디제이가 <지금은 여성시대>인데, 이러시면 안된다는 훈계를 하려나보다, 중년대상의 프로그램이라지만 이런 식의 농담은 좀 시시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엇. 남자사회자는 그렇다치고, 옆에서 듣고 있는 양희은을 보라.  남자의 하소연에 동조하는 추임새를 넣고 자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이것이 액면 그대로 통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 아연실색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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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주 자상하고 세련된 말투. 당장 만나보고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연이어 다른 편지를 건네받았다. 조잡하게 프린트된 꽃무늬의 작은 수첩이었다. 

편지가 아니라 개인 수첩같았다.

수첩을 열었더니, 내가 아는 이름들이 적혀있다. 내가 아는 이 사람들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 기록 수첩. 내용을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이 아주 유치했다. 누구누구와 ****(강남의 나이트클럽이름이라고 생각하였음)에 감, 이것 밖에 없었다. 그게 매일 매일 적혀있었다. 이런 사람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란 생각을 하면서도 이 수첩을 나에게 보낸 이가 내가 지금 짐작하고 있는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나는 수첩의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공들여 넘겼다.

맨마지막에는 핸드폰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있고 그 옆에 원래의 이름이 볼펜으로 죽죽 덧그어진 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 하나가 적혀있었다. 볼펜으로 죽죽 그어진 속의 원래 이름을 살짝만 보고, 내가 짐작하고있었던 그 이름이 맞군, 대번에 확신하고 수첩을 접었다.

수첩을 접을 땐 어느새 이 남자를 빨리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편지도 아니고, 특별히 나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 이 코딱지만큼 정도 가치의 수첩을 나에게 보낸 이유는 그가 당장 나를 만나야하기 때문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그 핸드폰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랬더니, 몇십년만에 듣는 목소리가 나왔다. 누구라고 상대가 밝히지도 않았으나 나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녀는 몹시도 짜증난다는 투로, 그 남자의 전화번호가 아니라 이것은 자기의 전화번호라고 대꾸했으며, 그에 대해서 자기가 아는 바는 없다고 했다. 자기가 들은 것은 사람들이 그가 (이 부분에서 나는 깜짝 놀랐는데) 자살했다고 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외에 가야했다.(절박한 순간에 꼭 과외에 가야하는 이 구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런 제기랄,하고 화를 잔뜩 내면서 과외에 갔다. 수학문제를 많이도 풀었다. 무슨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약간의 짜릿한 쾌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받았던 사람들이 무대에 서있는 양 일렬로 죽 서있었고, 스무명이 넘어보이는 할머니들이 관중인 양 맞은편에 둥그란 대형으로 앉아있었다. 할머니들은 그 남자의 실종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할머니들이 그 남자의 실종신고를 했던 최초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할머니들의 중구난방 증언에 이어 나의 증언 순서가 돌아왔다. 나는 입을 떼었다. "그 남자와 저는 고등학교 때 잠시 사귀었었습니다. 잠시 뿐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엔 거의 연락이 없었습니다. 꼽자면 한 서너번 정도 만난 것도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지 이십년(이 부분에서 할머니들이 티뷔 토크쇼 방청객들마냥 '오오~' '와~' '우우~'하는 괴성을 내었다)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서너번 보았으니 거의 보지 못했던 셈입니다."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는 형사라고 하는데, 가래침을 연달아 뱉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역겨워 말을 못 잇고 있었으나, 내가 갖고있는 그의 수첩이 큰 단서가 될거라는 예감에 심장이 크게 쿵쿵 뛰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할머니들은 어느새 하나 둘씩 방청석을 떠나고 있었고, 형사들은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이 부분은 참으로 전형적이다). 나를 후랑스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그들이 나에게 무얼 사주려한다기보다는 내가 가야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여기저기 테이블에 남겨있는 음식들을 죽 돌아본 후 디저트 메뉴를 하나 골랐는데, 그 돈이 있을까,하고 가방 주머니 속을 뒤져보니 후랑스 후랑 동전이 잔뜩 들어있었다.

내 옆에 어느 남자는 지금 미국에서 포르노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강수지(그는 '보라빛'이라고 불렀다)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성전환수술을 받아 남자의 성기를 몸에 달고 영화에 출연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들이 인상적이어서 할머니들에 대해 적어두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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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there was a way

 

오랜만에 간 도봉도서관에서 타블로이드신문판만한 사진첩을 발견했다.

한국판 제목 (원제목(Once there was a way> ).

 


 

이 유명한 사진은, 그냥 사진기자는 절대 찍을 수 없었을 사진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아니라면 찍을 수 없는 이 사진을 찍은 해리 벤슨은 1964년 비틀즈의 빠리 공연부터 인연을 맺어 그 뒤로 미국공연이며, <어 하드데이즈 나이트>영화촬영이며 그들과 '밀착생활'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사진기자, 해리 벤슨은, 처음에 비틀즈 공연 동행취재 기사를 맡았다가 다시 또(미국갈때라고 했었나) 신문사가 동행취재 기사를 자기에게 맡기려고 하자, 비틀즈말고 다른 것을 찍고싶었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일견 이해가 간다. 나 같아도 사진기자가 되었으면 인기가수말고 다른 사진을 찍고 싶겠다. 하지만 계속 동행을 했고, 그러다가 비틀즈랑 가까워지고, 심지어 조지 신혼여행을 몰래 따라가서 찍기도 했다는 둥, 결국 해리 벤슨에게 비틀즈 사진은 대대로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 사진집에서도 자기가 얼마나 비틀즈와 가까웠는지 왕 자랑 일색이다. 자랑할만하다. 나 같아도 대대로 가보로 물리고 죽을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이미 했던 얘기도 수백번 되풀이하며 비틀즈 뒷얘기만 하였을 것이다.

 


 

이 유명한 베개싸움 사진은, 해리 벤슨 말에 의하면, 비틀즈의 방에서 사진기자며, 수행원이며, 모든 사람들이 떠난 후 자기와 비틀즈만 남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을 찍은 거라는데.

 

해리 벤슨은 그들이 베개싸움을 하는 동안 사진기를 들고 필름 한 통을 다 찍고

 

그걸 목욕탕에서 열심히 현상하고 자르고 오리고 인화하느라 밤을 샜다고 한다.

 

근데 난 사실 스타의 이런 사생활 사진을 보면 왠지 이상하더라.

갑자기 확, 얼굴 뾰루지가 눈에 달려들고, 겨드랑이 냄새가 달려들고, 땀구멍이 숭숭하고 거기로 숭숭 털이 난 몸체가 달려들어...

뭐, 하여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 같은데(보나마나 최종민이나 전수찬에게서 들었겠지), 해리 벤슨 말에 의하면 가장 휀 레터를 많이 받은 사람은 링고였다고 한다. 역시 귀염동이 링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조지. 미소년의 수줍음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존. 그 다음에 폴. 폴은 왜 그랬지? 얼굴도 이쁘게 생긴데다 비틀즈의 마술상자였는데.

 

조지는 막 비싼 새차를 사놓고, 할부금이나 제대로 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으며, 링고는 미용실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한다. 하하하, 미용실. 아이고 귀여워.

 

해리 벤슨이 전하는 귀염동이 링고의 재치 한토막:

달려드는 기자들 중 하나: 베토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링고: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의 시(詩)가!

 

해리 벤슨이 주장하는 비틀즈에 내린 자신의 영향력:

극성휀들 때문에 호텔방에서만 머무르며 테레비만 보고있던 비틀즈들과 함꼐 테레비만 보고 있던 해리 벤슨은 당시 헤비급(맞나?) 도전자였던 캐시우스 어쩌고가 테레비에 나와 챔피언 소니 어쩌고를 당장에 쓰러뜨리겠다 어째버리겠다 큰소리 왕왕 치는 걸 보고, 이 사람과 비틀즈가 만나면 그림이 되겠다는 반짝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비틀즈 멤버들은 도전자를 만나다니, 챔피언을 만난다면 모를까,란 반응이었고, 해리 벤슨은 비틀즈를 속여 챔피언을 만나러 간다고 뻥을 치고 도전자 캐시우스 어쩌고를 만났다. 캐시우스 어쩌고 이 남자는 폴이 여자같이 생겼다는 둥 링 위에서 비틀즈를 데리고 놀았다. 비틀즈 멤버는 이 일로 해리 벤슨에게 무척 화를 내었다. 캐시우스 어쩌고 도전자는 소니 어쩌고 챔피언을 당장에 때려눕히고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으며, 챔피언이 되고는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꾸었다.

 


 

펀치가 직접 얼굴에 닿은 조지 표정은 그렇다치고, 폴은 뭐야(저러니 휀레터도 안왔지).

존은 여전 바보짓. 어쩔 수가 없어(너무 사랑스럽지 뭐야).

링고는 뚱 화난 귀염동이.

 


 

이 사진은 해리 벤슨이 비틀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비틀즈에게도 첫 미국행이었고, 해리 벤슨에게도 첫 미국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긴장된다는 얘기를 비행기에서 주고받았다고 했다.)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는 비틀즈를 찍은 것인데, 해리 벤슨은 미리 비틀즈 멤버들에게 비행기에서 나갈때 꼭 뒤돌아 자기를 보아달라고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까먹고 비행기 사다리를 거의 다 내려갔는데, 링고가 다시 그걸 기억해내고는 멤버들을 불러 뒤를 보게 했다고 한다. 링고가 그랬을 것이다. "아, 맞아, 해리가 뒤돌아보라고 했잖아. 얘들아, 얘들아."  아, 귀엽고도 자상한 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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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했던, 엿들은 대화

어제 아침 지하철 안. 바로 옆자리에 아무리 많이 봐줘야 열여덟, 열아홉살인 소녀 셋이서 한껏 멋을 내고 앉아 타블로이드판 공짜 지하철신문들을 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엿들어 미안하지만, 그들 대화에서 빠지지않는 핸드폰에 관한 것, 훼션에 관한 것으로 미루어 간단히 짐작하건대, 그들은 최신식세대였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영락없는 구세대다. (그들에 안 비해도 구세댄가.)

그들이 마침 넘긴 신문 새 면엔 <너는 내 운명>영화 광고 전면 포스터가 있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전도연과 황정민에 대해 뭐라뭐라 품평회를 했다. 전도연 너무 이쁘지 않냐, 너무 어려보이지 않냐(여자가 어려보인다는 것은 왜 이렇게도 절대가치적인 걸까). 그러더니 황정민더러 너무 아저씨 같다, 사십대는 돼보인다, 아니다, 늙어보이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실제로는 삼십대후반으로 보인다(뭐냐, 황정민이 나랑 동갑인가 아니면 한 살 어린가 하는데)...

그래서 그들은 너무 어려보이는 여자와 너무 늙어보이는 남자의 커플이라는 것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었다. 그 순간, 뱉어내는 그들의 말, "그래서 더 멋있잖아."

 

그럴 수 있다, 중후한 나이의 남자와 앳된 여자의 커플은 멋있어보일 수 있다. 중후한 나이의 여자와 앳된 남자의 커플은 도발적일 수 있다,라는 개념을 제공하듯이. 그런데 내가 그 순간, 어리둥했던 건, 그들의 자연스럽고도 거침없이 순식간에 후다닥 결론을 내리는 태도였다. 마치 착하게 사니까 복받은 거야,란 말을 중얼거리는 노인네들마냥.

 

그들 대화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속할 수도 없었던 나만 혼자 계속, 그런가?를 갸우뚱했다.

그래? 그래서 더 멋있나?

황정민과 전도연 캐스팅에 그런 계산도 있었나?

실제로 황정민과 전도연은 나이 차이가 별반 안나거나, 혹은 어쩌면 확실히는 모르지만 전도연이 연상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그거야 배우 사생활이고, 배우 이미지로서는 전도연이 연상으로 보일 수는 없는거니까.

 

그들의 나이, 많아야 스물. 바로 그 절대가치 절정을 앞으로도 몇년은 구사할 느긋한 나이라서, 그들에겐 또래의 십대후반, 이십대후반의 남자들부터 삼십대 혹은 사십대까지의 남자들이 전부 시장에 나와있으니, 어린 여자와 늙은 남자의 커플이 멋있어보이건, 실제로 멋있건 안 멋있건, 만약 아니라면 왜 그런 이미지가 나오게되었건 쥐뿔, 콧방귀 뀔 관심조차 쥐어짜도 없을테니, 껌이 입에 들어가면 씹고 단물 빠지면 뱉듯 들어가고 나온 말일 것이다.

 

그 뒷끝을 붙잡고 이리쿵저리쿵 뒤집고 앉아있는 나는, 절대가치 절정을 이미 주욱 타고 내려와 거의 펑퍼짐해질라고하는 둔덕께의 나이. 남녀커플의 나이상관관계에 상대적으로 예민해져있다고 지적해도 할 말이 없지.

 

그러나, 착하게 살면 복받아? 착하게 사는 게 뭐야? 그게 착한 거야?라고 노인네들 결론에 항상 꼬투리를 잡고 싶듯...

아, 또, 인간성 혹은 사회성 기질상 '착함'에 상대적으로 예민하다고 지적해도 또한 할 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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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인디밴드 공연

광명시는 야심차게 음악축제를 벌였다.

덕분에 공짜로 멋진 구경을 하였다. (가샛골댁에게 고마움을...)

오늘은 인디밴드공연.

수찬은 코스모스가 제일 멋진 밴드라고 하였다.(아시는 분?)

더더 출신의 보컬이 꾸린 푸른새벽도 인상적이었지만, 오늘의 하일라이트, 규민의 춤.

규민과 내가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추었는데,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 규민이 나를 리드하였음. 나는 너무나 황홀하였다. 그녀의 춤에 홀딱 반하였다.

나는,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뻔뻔스럽게도, 인간은 과잉이라고 믿고있다.

그러나, 나에게 규민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 존재, 존재 자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될 줄이야.

 

지금 술 만빵 먹으며 이 글 쓰고 있다. 옆에서 전수찬 왈,

"그거 내일 되면 지울걸."

음주접속 벌써 십여년차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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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내가 카슨 맥컬러스를 처음 본 건 롱아일랜드의 어느 호숫가에서였다.

이마 위에 가지런히 내린 앞머리, 어깨에 닿을 듯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검은 색 단정한  단화, 흰 발목 양말, 이런 것들이 그녀를 여전 소녀처럼 보이게 했으나 그녀의 나이는 막 서른 살을 넘긴 뒤였다.

부리부리하게 큰 눈과 약간 메부리코 식의 큰 코는 그녀가 꿈꾸는 장황하고도 기괴한 세계를 향해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고집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에디터, 조지 데이비스하고 호숫가로 산책을 나온 틈이었다. 비스듬히 누운 두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는데, 조지 데이비스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이 소녀 같은 여자가 토해낼 점액질의 무엇에서 어떤 질병이라도 옮아올까. 점액질의 존재감,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녀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끼어있는지, 펜이었는지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앙리 꺄르띠에 브레송 사진이었다. 호숫가에 비스듬히 누운 남녀-사진사를 응시하고 있는 남자, 그 남자를 올려다보고있는 여자. 붙어있는 딱지엔 <작가 카슨 맥컬러스와 에디터 조지 데이비스, 카슨 맥컬러스는 기형인, 꼽추, 거인이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그린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대표적 미국 남부 작가로 꼽히...> 처음엔 남자가 작가고 여자가 에디터인 줄 알았다. 선입견대로. 그런데 가만, 조지가 남자이름 아닌가.

 

    <슬픈 카페의 노래>는 그렇게해서 읽게된 소설이었다. 재미있을 거라고 만판 기대를 걸며 보았고, 소설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덩치 좋은 남자보다 더 큰 거구의 사시 여인 아밀리아와 그녀가 사랑하는 1미터 14센티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열두살인지 마흔살인지 조차도 알 수없는) 꼽추, 그리고 이 꼽추가 한 눈에 사랑에 빠진, 한때 아밀리아를 사랑했으나 그녀에게서 버림받고 악마의 화신이 되어 지금은 아밀리아를 저주하는 화려한 체구와 외모의 마빈, 이 세 사람의 사랑. 아, 사랑, 그 고독함.

 

카슨 맥컬러스는 사랑이 두 사람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49p) 사랑은 혼자의 것이다. 사랑은 원초적으로 고독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말하는, 이러한 존재론적 고독을 공감하고 깊이 사유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워낙 빠르게 전개되고 (또 짧기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치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라는 느낌. (그래서 소설을 길게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봐.)

 

내가 가장 깊게 음미한 부분은,

 

... 백지 위에 레몬 즙으로 메시지를 쓰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종이를 잠시 동안 불에 대고 있으면 글씨가 갈색으로 변해 그 내용을 분명히 알아 볼 수가 있다. 위스키가 바로 그 불이고, 메시지는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씌어진 글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아밀리아가 만든) 술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심히 흘려 버렸던 일들, 마음속 깊이 은밀한 구석에 숨겨져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직조기와 저녁 도시락, 잠자리, 그리고 다시 직조기, 이런 것들만 생각하던 방적공이 어느 일요일에 그 술을 조금 마시고는 늪에 핀 백합 한 송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그 꽃을 올려놓고 황금빛의 정교한 꽃받침을 살펴볼 때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고통처럼 날카로운 향수가 일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눈을 들어 1월 한밤중의 하늘에서 차갑고도 신비로운 광휘를 보고는 문득 자신의 왜소함에 대한 지독한 공포로 심장이 멈추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 아밀리아의) 술을 마시면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고통을 느낄 수도,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이 경험들이 보여 주는 것은 진실이다. (그) 술을 마시면 영혼이 따뜻해지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22p)

 

오, 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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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에게

날아다니는 모기를 탁 잡았다.

아싸.

 

모기는 제대로 맞지 못해 단숨에 죽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가늘은 다리를 드문드문 떨며.

모기를 위한 송사.

 

모기야 미안해, 니가 미워서 죽인 것은 아니었어.

니가 꼬리로 콱 물면 가렵고 아퍼서 그게 싫어서 그런 거였어.

그러니까, 다음엔 모기로 태어나지마.

다음엔 나비로 태어나거나, 힘센 호랑이가 돼라.

 

옆에서 들여다보고 있던 규민의 말,

그래, 모기야, 다음엔 나비가 되나, 호랑이가 되나, 올챙이가 되나, 개구리가 되나, 음음, 또오, 악어가 되나 잘 생각해보고, 그렇게 해라. 나비가 되어서 훨훨 날아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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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이 때문에 눈물콧물 짬

오랜만에 나에게 드라마 바람이 불었다.

마지막 바람이 언제였던가....

제목이... <신(新)황태자전>이던가?

최지우가 재벌집 딸인데, 결혼하라고 닥달하는 부모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영국유학중인) 약혼자가 있다는 뻥을 치고 잠시 그 약혼자가 한국에 왔네, 쑈를 하며 부모에게 잠깐 선을 뵈는 작전을 피우는데, 그 작전용 약혼자로 생수배달원 김승우를 내세웠다가, 둘이 정말 사랑하게 되어 고비를 넘기고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는 이야기.

옆에서 날 한심하게 보는 남편, 오죽하랴, 나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뻔한 유치뽕인 줄 알면서도, 생수배달원 김승우가 이용만 당하고 상처받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보았다.

 

그 전 바람은, <8월의 신부>.

김지호가 쓰러졌다 다시 깨어나는데 다시 깨어나는 바람에 전생을 기억하게 된다. 전생에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남자의 친구의 배신으로 불운한 죽음을 맞았다. 그때 둘이 못다한 사랑과 억울한 죽음에 한이 맺혀 전생의 모습을 그대로하고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김지호는 그것을 기억하나 남자(정찬)는 모른다. 남자에겐 이미 약혼녀(박상아)가 있다. 김지호는 그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슬슬 이 남자도 왠지모를 힘에 의해 강력하게 김지호에게 끌림을 느낀다. 아, 전생의 못다한 사랑의 인연과 현생의 또렷한 사랑의 기억, 이 갈림길에 선 자의 선택은...

이건 유치뽕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정말 몰입해서 봤다.

 

김지호가 우수와 비련에 찬 표정을 도회풍으로 세련되게 구사하며 나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었다. 남자주인공 정찬은 지금이나 그때나 어금니로 발음을 씹으며 눈썹 찌푸리는 게 연기의 전부이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의 호감을 받고 있다. (지난 총선때 민주노동당 지지자로 커밍아웃을 하여 그나마 떳떳하게(?) 호감을 드러냄)

회사 다닐때 방송되었던 것인데, 회식이 있어 보지 못하는 날엔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하여 비디오 녹화까지 하면서 봤다. (당시 이 드라마가 제법 인기드라마였던 듯, 회식 끝나고 내가 이 드라마를 녹화했다는 소문이 사무실 내에 돌자, 남녀젊은 사원들이 앞다투어 대여해갔다. 나는 김지호와 정찬의 휀이라 그 둘의 사랑을 절찬 지지하고 있었고, 박상아(정찬의 현생 애인)는 거들떠도 안 보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선배사원 하나(남자였음)가 박상아 캐릭터가 정말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아는 인물이라고 침이 튀기도록 칭찬을 하여 잠시, 정말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때 그 교훈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가만 생각해보아야하는 것이란 교훈. 그러고보면 그 선배사원,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할 줄 아는 남자였었던 것 같다. 내 타입이 전혀 아니게 생겼다는 게 그와 나 사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였지만, 검지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다니던 그 남자, 지금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랑하며 잘 살고 있기를...  )

 

그리고나서 완전히 잦아들어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드라마 바람이 다시 불었다.

뭐, 이 까짓것 이주일에 한 번 볼까말까해도 내용 다 꿰겠고, 봐봤자 성질만 돋구고 안 보느니 못하다,라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불이 붙었다.

구재희(배우 이름이 강지환이라고 함, 오, 새 인물 발견)의 사랑이 메마른 내 가슴에도 불을 붙인 것이다.

어제는 드디어 내 손으로 테레비를 켜고 보았다.

그리고는 얼마나 질질 짰는지 모른다. 박인환의 연기 때문에.

박인환은 금순이의 시아버지인데, 아들이 죽은 후, 손자를 낳아 제 집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 금순이가 이제 재혼을 하려하자, 금순에게 손자를 이 집에 놔두고 결혼하라고 협박, 호통, 애걸, 간청한다. 그 때까지는 고집쟁이 이기주의자 같기만 했는데, 오밤중에 몰래 죽은 아들 사진을 가슴에 부비며 눈물을 철철 흘리는 장면에서 그만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금순이도 그걸 봐버렸다. 시부모와 대적 상황이기만 했던 금순의 마음은 이로써 대선회하여, 시부모가 가엾어 그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 금순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또한 괴로워하는 남자, 구재희(강지환).

오늘 그는 금순과 차라리 헤어질 결심을 하며 전화를 걸어 일부러 잔인한 말을 내뱉는다.

그때 그의 그 일그러지며 오열을 삼키는 표정, 아!

이 표정 때문에 드라마 끝나고도 한동안 멍했다.

구재희랑 금순이랑 정말 헤어질까봐 내 가슴이 쓰라리다.

둘이 헤어지면 얼마나 그들 가슴이 찢어질까.

아니야, 현실에 저런 사랑이란 없어, 하고 의도적으로 냉정한 말을 뱉었다.

드라마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스스로에게 일침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 그렇다.

실제로 저런 식의 사랑은 드라마 식의 드라마틱한 사랑인 것이다.

실제 사랑이 아니라, 실제 사랑을 그럴싸하게 흉내낸 밀랍 장식 같은.

그런데도 왜 나는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설득당하였는가.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아무리 비현실적이라고 한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용이거나 혹은 장식용라고 한들, 없느니 차라리 존재하여야할 것인가.

그래서 보이면, 아주 희미하게 보여도 보이기만 하면 거기에 매달리는가.

그리하여, 그러나, 그래서, 그럼에도 사랑은 결국 .... (이하 생략)

 

나는 혼자 각본을 썼다.

그래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헤어지지 못한다. 너무도 괴로워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둘을 다시 엮어준다. (아이를 두고가라던 시아버지가 결혼까지 포기할 뻔하는 금순의 모습에 반성하며 아이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혼자 해피엔딩의 각본을 쓰며 내 마음을 달랬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 싸이트 우표사진 뉴스에 금순이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이 걸렸다. 마지막회 사진이란다. 둘이 결혼에 결국 성공하는 것이다. 그걸 보고 내 마음이 비로소 정말 달래졌으니, 결혼은 사랑의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평소의 믿음도 드라마 앞에서는 말짱 헛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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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도서관

오래된 도서관.

프랑스문학 칸이 무려 한 복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로줄 책. 그 책 냄새.

손으로 쓰여진 분류표, 누런 봉투에 꽂혀 책 뒷 장에 붙어있는 대출자 카드.

(바코드는 정말 싫어.)

대출자카드를 뽑아 이름을 적고, 먼저 이 책을 빌려갔던 사람들의 이름들을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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