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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헤이스팅스에서 맞는 세번째 주말.

6월 22일. 헤이스팅스에서 맞는 세번째 주말.

 

오늘은 일요일. 홈스테이하는 집에 딸려 있는 정원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 정착 준비를 끝내고 있다. 여기 온지 벌써 3주째인데 아직 정착 준비라고 하니 뭔가 어색하긴 하다.

 

어제 내가 살 플랏 주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Scott. 이 근처 도시인 Rye에 주로 머문다고 한다. 덕분에 플랏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나 혼자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 문제는 거기도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아래층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무선인터넷 접속 비밀번호를 물어봐야할 것 같은데, 별로 친한 사람들도 아니고 약간 거시기 하다.

 

내 홈스맘은 내가 플랏에 나가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이후부터 하루에 한 번씩은 이제 너가 여기 머물 날이 며칠밖에 안 남았구나 얘기하면서 너무 아쉬워하신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내가 나가도 저녁엔 밥 먹으러 오라는 말까지 하신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대학을 다니고 이후에 잉글랜드에서 정착을 하신 분. 맘 같아선 여기서 계속 머물고 싶지만, 잘 모르겠다. 사실 한달에 100파운드짜리 홈스테이와 65파운드(+식비)짜리 플랏 중에서 비용만으로 보면 플랏에 살아야 할 것 같지만, 하루하루를 보낼수록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도 커진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여기 있는 다른 한국 학생의 플랏에서 술을 함께 했다. 한국 학생 서너명, 일본에서 온 학생 한 명 이렇게 해서 놀았다. 그날 함께 했던 한국에서 온 여자 분들은 모두 일을 하다고 여기로 오신 분들이고 남자 분 한 분은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여기에 오신 분이었다. 므스가 남미 여행 가서 만났다는, 은퇴 여행을 하고 있던 몇몇 여성 분들 얘기를 들은 것도 있고 해서 나름 일 하다가 때려치고 훌쩍 떠나온 여자 분들에 대한 모종의 환타지가 있었는데, 금요일에 술을 같이 마시고 나니 환타지 같은 건 다 사라졌다. 역시나 미래의 취직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고 있는, 예전의 나였다면 세속적인 사람들이라고 지칭했을 그런 분들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지금의 나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 그 사람들의 고민보다 무언가 좀 더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도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난 오히려 그들만큼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고 그저 띵가띵가 노는 걸 좋아하는 한량밖에 안 된다는 자괴감도 살짝 든다. 어떻게 하면 굶어죽지 않고 입에 풀칠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몰아치듯 일하긴 싫고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빌붙어 지내긴 싫고. 답이 잘 안 보이는 고민이다.

 

여기 홈스맘의 아들인 조나단은 노래를 만들고 불러서 돈을 번다. 꾸준히 작곡을 하고 데모씨디를 만들어서 곳곳의 펍이나 요양센터에 뿌리고 자신을 부르는 곳에 가서 노래를 하고 돈을 번다.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꾸리고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방식이 아니라면, 조나단의 삶은 나에겐 그야말로 하나의 이상향처럼 보인다. 왠지 그의 삶에는 노동에서의 소외가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환상. 그나저나 난 여기서 알바를 과연 잘 구할 수 있을까.

 

이번 주에는 꾸준히 알바를 찾아 다녔다. 이곳에 cosmo 라는 차이니스 레스토랑이 있어서 방문을 했다. 수요일에 처음 방문을 해서 매일 방문을 한 끝에 금요일에 겨우 매니저를 만날 수 있었다. 수요일에 갔을 때 목요일에 오면 매니저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목요일에 찾아갔는데 매니저가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 사실 적지 않게 좌절을 했었다. 그까짓 레스토랑 알바 자리 따위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일종의 비굴함도 느꼈고.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역시 난 먹물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결국 금요일엔 여기 학교에 있는 타이완 학생이 선뜻 나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같이 동행을 해주었다. 다행히(!!) 매니저를 만났고, 너무나 간단하게 면접이 끝나버렸다. 사실 면접도 아니라 단지 만나서 악수를 하고 인사를 하고 이름과 전화번호와 나이를 적어가는 걸로 끝이었다. 나름 충격적이었던 건, 내가 그 레스토랑 알바자리를 바라고 있는 다섯 번째 대기자라는 거다. 허허.

 

사실 오늘은 이 근처에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rye에 놀러가려 했는데, 특유의 귀차니즘이 발동해버렸다. 아마 수요일 오후쯤 갈지 말지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다. 일주일 뒤면 플랏으로 이사를 하니 대충 준비도 하고. 무엇보다 모리슨에 가서 내가 직접 요리해 먹을 재료들을 잘 찾아놔야 할 것 같다.ㅋㅋ 영어공부에 대한 생각들도 적어보고 싶은데 이건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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