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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19(1)
    나르맹

영어공부

*"you could have left me there, in jail."
"could have or should have?"
"Maybe both."

<프리즌 브레이크>에 나오는 석호필과 마혼의 대사 덕분에 이 문법은 이제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혼이 <다크 나이트> 초반부에 나온 걸 보고 퍽이나 반가웠던 기억이 문득 든다. 개인적으로 마혼을 만나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동네 아는 사람을 티비에서 봤을 때 놀라는 반응과 비슷하달까.ㅎ

* 고등학교 시절 여러번 독파한 맨투맨 영문법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문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성검사를 하면 이과적성이 문과적성 수치보다 근소하게 높게 나오기도 했고, 고3때 좋아했던 영어선생님이 다른 친구 한명과 나를 비교하면서 그 친구는 문과적인 냄새가 나는데 나는 이과적인 기질이 더 두드러진다고 얘기를 했을때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던 기억이 난다. 여기 와서 영어 공부를 썩 열심히 한건 아니지만 문법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예전에 맨투맨을 볼 때의 느낌들이 떠오르곤 한다. 특정 문장 구조들을 분석해 들어가면서 뭔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즐기는 걸 보면 내가 정말 이과 체질에 더 가까운 걸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 수학은 가장 꺼리는 과목 중에 하나였는데,,

* 한 학기에 약 15주 정도 되는 대학 수업도 들쑥 날쑥 제멋대로 다니던 내가 여기 와선 매일 아침 9시부터 똑같이 반복되는 26주의 시간을 꾸역꾸역 어찌됐든 결석도 별로 안 하며 잘 다녔다. 이 짧지 않은 기간동안 뭘 배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몇 가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부가의문문,,여기 말로는 tag question. 미국 영어를 배울땐 무조건 문장 뒤에는 'right'을, 상대 말에 반응할 때는 'really'라는 말을 붙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그것만으론 2%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It wouldn't be possible, would it?"와 같은 문장이나  "I've decided to do it"/"have you?" 와 같은 반응들. 한국 말에서 "그치?"라고 할때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줄 때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데 특히나 더 빛을 발하는 정말 유용한 언어인 것 같다. isn't it?
또 하나 여기 와서 확실히 알게 된 건 "will" 과 "be going to"가 다른 맥락에서 쓰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동안 이 두 가지 표현이 똑같은 의미인 줄만 알았는데. 이것과 관련해서 하나 더. 예전에는 곧이 곧대로 문법을 적용해서 "i'm going to go to London"이라고 말을 해야만 하는줄 알았는데 이제는 단순하게 "I'm going to London" 이라고 말한다.
또 생각나는 건..이제는 "more cheap" 혹은 "more easy" 대신에 "cheaper/easier" 라고 말하는 빈도가 더 많아졌다는 거...?!

* 대학 들어가서 처음 영어교육 전공 수업을 들으며 너무나 질려버렸던 기억이 난다. 아직 교사의 꿈을 가지고 있을 때이기도 했고 그래서 더욱더 기능교육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영어교육을 쓰레기 취급하곤 했다. <공산당 선언>을 읽고 세미나를 하며 뭔가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던 나에게 영어교육은 도무지 '혁명을 위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 당시 나에겐 선과 악에 대한 가치판단이 너무나 확고했다. 입시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자가 갖는 남성적 자신감이 자기 운동에 대한 자신감으로 표출되었다고나 할까.

나에게 대학 졸업장이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할 때 들었던 생각 중에 하나가 현실적인 문제의 차원에서 과연 이 재미없는 과에서 당장 졸업논문 주제라도 떠올릴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그런데 여기 와서 내가 어떻게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지 내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떠올리는 게 흥미로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영어공부를 할 때 전형적으로 직면하는 어려움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런 건 한번 연구해보면 재밌겠단 생각도 들었다. 이 변화의 원인은 도대체 무얼까. 내가 유순(?)해져서인걸까 아니면 여기 영어교수법이 더 나에게 동기부여를 많이 하기 때문인걸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슬슬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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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6












































런던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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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는길




여기 생활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요즘 계속 해서 드는데, 사진을 남겨 놓은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아침에 학원가는 길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이 동네엔 언덕이 참 많다. 여기 와서 중고 자전거를 하나 구해서 타볼까 생각했다가 관둔 핑계 중에 하나이다.









여기 와서 처음 학원에 가던 날, 이 길을 보고 약간은 당황스러웠다. 너무나 조용하고 한적한, 야트막한 산자락(?) 사이에 있는 학원이라니.





학원 들어가는 입구...






학원 건물의 모습..지은지 꽤 됐다고 들었다. 학원이 70년대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적어도 30년은 됐을 법한 건물이다.





잔디밭..배구코트와 배드민턴코트가 있었는데 가을 지나고 날씨가 늘 흐리고 젖어있어서 다 철거해버렸다. 따뜻할 땐 밖에서 점심을 먹곤 했는데, 지금은 너무 추워서 어림도 없다.





학원 내부의 모습.. 적당히 아담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지금 속해있는 반이 쓰는 강의실의 모습.




창이 크고 바깥 경치가 보여서 딴 생각을 할 때면 늘 바깥을 바라보곤 한다.





너저분한 책상의 모습..ㅎㅎ



여기 떠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평소엔 학원 사진 같은건 생각도 안해보다가 대부분 마지막 주에 사진을 열심히 찍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좋건 싫건 어쨌든 매일같이 들락날락 했던 곳이니.. 그나마 일주일 넘게 햇볕을 못 보다가 어제 오늘 날이 좋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해서 오히려 가끔은 지루하다고들 말하는,,너무 작은 동네라 덕분에 알바도 못 찾고 좌절했지만 그만큰 또 돈 쓸일도 거의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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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istice Day

초등학교 6학년때였던 것 같다.  현충일. 공휴일이라 자전거를 타고 동네 근처 어딘가를 놀러가다가 아침 10신가 11시 정각에 싸이렌이 온 동네에 크게 울리기 시작하자 자전거를 멈추고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었다. 반공교육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세대이기도 했지만, 워낙에 학교 선생님의 말을 철썩처럼 믿고 따랐던 그 소년은 싸이렌이 울리자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하던 일을 중단하고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을 했던 것이다.

오늘 오전에 학원에서 바로 그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끔 하는 일이 있었다. 11월 11일은 이 동네 말remembrance day, 이런 날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비비씨 뉴스에서 armistice day 라고
부르는 이 날에 대한 설명을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았다.

"Armistice Day
is the anniversary of the symbolic end of World War I on 11 November 1918. It commemorates the armistice signed between the Allies and Germany at Rethondes, France, for the cessation of hostilities on the Western Front, which took effect at eleven o'clock in the morning — the "eleventh hour of the eleventh day of the eleventh month"."
-http://en.wikipedia.org/wiki/Armistice_Day

1차 대전의 종전 협약(the armistice)이 발효됐던 시점인 11월 11일 11시에 맞춰서 영국 전역에서(그리고 참전했던 모든 국가에서, 그러고 보니 독일에서도 같은 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2분간의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런던 중심가에 있는 cenotaph에서 여왕과 베테랑 등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식이 거행된다. cenotaph를 검색해봤더니 한국으로 치면 국립묘지쯤 되지 않을까 싶다. 트라팔가 스퀘어 가기 전에 whitehall street에 있다는데 담에 지나갈 일이 있으면 한번 가서 분위기가 어떤지 한번 봐바야겠다.

여기에 와서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집단적인 감성이나 움직임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집단주의의 냄새를 맡아본 것 같다. 11시에 다들 1층으로 내려와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는 거다.  무슨 애국조회도 아니고.. 그 공지를 10시 반 쉬는 시간 시작할 때 받고 나서 11시까지 30분간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기 시작했다. 흥미로웠던 건 일본 친구의 반응이었는데, 왜 내려가서 그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쯤 대놓고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거다. 나는 평소 성격대로 이 의식과 암묵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전쟁에 대한 찬양이나 국가주의적인 발상과 같은 자뭇 진지한 주제들을 가지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는데, 이 일본친구는 90년 전씩이나 된 일이 뭐가 지금 중요하냐면서 입을 뾰족 내밀었다. 일본엔 이런 날이 없냐고 물었더니 8월 15일에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떠올리며 전쟁의 참상을 상기하는 날이 있긴 한데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전 국가적으로 이렇게 특정 시간에 특정 행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날이라는 식의 뉘앙스로 말을 했다.

암튼 막상 11시가 되자 그냥 강의실에 남아있으려다가 얘네는 어떻게 '의식'을 치루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내려가봤는데 1층에 있는 티비를 틀어놓고 런던 cenotaph에서 벌어지고 있는 ceremony를 관람하며 침묵을 하고 있었다. 한국처럼 싸이렌이 있는건 아니었고, 그래도 심지어 이 시골에 있는 조그만 학원에서 모든 사람이 모여서 같은 시간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의식을 치루는게 나에겐 뭔가 찝찝하게만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역사란 것이 집단적 기억의 산물이기에 특정한 사건이 누구의 어떤 관점에 의해서 어떻게 선택되고 배제되느냐 하는 문제가 후대에게 남겨진 과제 중에 하나일텐데, 오늘 나에겐 영국의 현충일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면서 자뭇 이 동네의 전쟁에 대한 기억의 방식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마도 습관처럼 매년 이 날 오전 11시에 2분간의 침묵을 갖는 여기 사람들은 이 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너무 궁금했다. 궁금한만큼 급한대로 일단 학원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 얘기를 해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적어도 내가 오늘 만난 사람들은 나처럼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괜히 성질 급하게 물었다가 민감한 부분이라도 건드릴까봐 주눅이 들기도 했고.(뭣보다 이런 주제를 말할라치면 더욱더 버벅대는 영어가 주저함의 주된 이유중 하나). 사실 한국에서도 야구장 가면 애국가 부르는 것에 대해서 진지한 문제제기 이전에 단순한 의문이라도 던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여기도 그런게 아닐까 성급한 생각도 든다.  종전을 기념하며 죽은 사람들을 기린다는데 내가 너무 씨니컬하게 받아들인 걸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더 여기서 얘기가 통할만한 사람과 이 날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기린다는 죽은 사람들 목록에 민간인은 없을거란 짐작이 들지만,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의심을 품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따라 유심히 지켜본 비비씨 뉴스에서는 매시간 헤드라인에 이 날 벌어진 행사를 다루고 있고 한국으로 치면 재향군인회(?ㅋ) 쯤 되는 사람들 인터뷰도 나오고 그런다. "in honour of those who fought and died for freedom" "victory of the war" 일종의 국영(공영?)방송인 비비씨라 더 그런 거겠지만 이런 표현이 여러번 들린다. 오늘 런던에서 열린 행사에는 지금 살아 있는, 다들 이미 100세를 넘긴 '참전용사' 3명이 참가해서 더욱 뜻깊었다고들 말하는 것 같다. 문득 그들이 목표로 하고 싸웠다는 'freedom'은 어떤 의미였을까 혹은 지금 어떤 의미로 정의되는 걸까 궁금해진다.

혹시나 한국에서 국기경례맹세를 반대했던 것처럼 여기에도 이 전쟁기념(전쟁기념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내 자의적인 정의는 아닐까 계속 검열하게 된다)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정확히 매치하자면 한국에선 현충일 행사에 반대했던 공식적인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높으신 분들을 제외하곤 현충일은 그냥 휴일일뿐이니..아 집집마다 조기를 게양하긴 하는구나..  그냥 장님 코끼리 만지듯 훓었던 1차 대전의 역사도 문득 궁금해지고,, 이래 저래 머리를 많이 쓰는 하루다. ㅎ

도리야에즈,,,
오늘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 4 파일을 여기 있는 다른 한국 학생한테 받았다. 호호호. 영어공부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봐야겠다.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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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친




학원에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 스페인 친구 한 명이 오늘 입고 온 티에
위에 붙여놓은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다시 봤더니 꽤나 흥미로워서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을 해봤는데 역시나
여기 저기 많이 검색이 되더라. 남성이 갖게 되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잣대를 거꾸로 매치시킨 그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
스페니쉬 친구에게 한국에서 이런 티가 존재한다면 아마 그림이 반대로
매치가 되어있을 거라고 얘기를 했다. 그런데 지금 또 생각해보니,
정희진쌤이 얘기했던 것처럼 '현모양처'라는 양립불가능한 논리가 여성에게
강요되듯이 '내 여자친구'에게도 섹쉬함과 정숙함 모두를 요구하는 게
뭇 남성들의 욕구이기도 하니..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때,
여성에 대한 '성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를 처음으로 깨우치고선
뭔가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스페니쉬 친구는 지난 달에
에딘버러 놀러갔다가 사입은 티셔츠를 우연히 입고 왔을뿐인데,,
난 그 그림 하나를 가지고 하루종일 생각을 해버렸다. 심지어 막판엔,
지금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면 이 그림을 가지고 토론 주제로 들고가도 재밌겠단
생각도 잠시 들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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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푸딩



*지금 아래층에서는 조나단이 열심히 새로운 곡 연습을 하고 있다. 비틀즈의 스트로베리 필즈를 자기만의 색깔을 넣어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인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덩달아 괜히 흥겨워진다. 뭔가에 열심히 몰두하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포스랄까. 위에 링크 걸어놓은 곡은 조나단이 직접 쓴 'champagne'이란 곡. 오늘에서야 처음 들은 곡인데 듣자 마자 푹 빠져버렸다. 이쯤 되면 정말 '원스' 남자 주인공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실력이지 않을까 싶다.ㅎ

*스페인에서 오리를 만나서 라이스푸딩에 대한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저녁 디저트가 라이스 푸딩이었는데, 오늘은 홈스맘에게 한국에선 sweet 한 rice 는 안 먹는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나름 난 여기 와서 달달한 밥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다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우유까지 부어 먹는 거다. 속으로 어찌나 식겁했던지. ㅎㅎ 왜 흔히 밥에 우유 말아먹는 사람이란 비유가 비위 강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가장 큰 문화 충격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흐흐 정말 비위 좋은 영국 사람들..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폴메카트니의 부인이었던 린다 메카트니가 영국에서 베지테리안 음식을 공급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은근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 여기도 단풍이 한창 들긴 했는데 도무지 해가 나는 날이 하루도 없이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춥거나 하다가 3시부터 어둑해지기 시작해서 5시면 오밤중이 되는 곳이라 한국처럼 단풍 구경할 낭만은 없는 것 같다. 물론 한국도 갈수록 단풍이 예전 맛을 잃어가는 것 같긴 하더라만. 단풍을 처리하는 방식은 한국과 사뭇 다른게 한국에서처럼 아침마다 열심히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단풍을 쓸어담는 사람이 전혀 없다. 한국에선 무슨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도 아니고 날마다 열심히 단풍을 쓸어 쓰레기통에 담아내는 미화원 분들이 대단하단 생각도 들고 헛수고를 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여기서는 사방에 흩어진 단풍잎들을 보고 있자니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돈이 안 된듯한 느낌도 받았다. 녹지의 비율이 여기가 훨씬 높기도 하지만, 날마다 단풍잎을 줍는 높은 강도의 노동이 여기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어서 한국과는 자뭇 다른 모습이 보이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들,,

아 어느 새 11월도 삼분의 일을 넘어가는구나,,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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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라운드

일주일 정도 스페인에 다녀오고 나니 어느 새 또 11월..
여기서 지낸지 딱 5개월을 넘겼다.
앞으로 다시 5개월을 보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지 않을까,,
지난 여름 이태리에 다녀와서 여기 생활 2라운드를 맞이하는 듯한
기분이었는데,,이젠 3라운드에 돌입하는 건가..어느 새 한 달 후면 여기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고고씽,,
어제 밤 늦게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하루 종일 잤는데
감기 기운이 되려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날씨도 꿀꿀하니 조용히 침잠하기 좋은 것 같다.




마드리드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을 봤다..그림이 생각보다도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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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ulele weeps by Jake Shimabukuro

요즘 유클레리 배우는데 다시 불이 붙어서 조나단에게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 요 영상은, 조나단이 나에게 inspiration이 필요하냐며 보여준 영상,,조나단도 쉽게 코드를 못 쫓아가길래 어떡하면 저리 될 수 있나 얘기했더니 한 일년쯤 밥만 먹고 연습하면 되지 않겠냐고 태연히 말하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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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에서

* 나동이 일본여행기 올린 걸 보고 나도 다시 자극을 받아 여행기를 써보려고 한다.ㅎ 한동안 어학원에 잘 나가다가 오늘은 아침에 못 일어나고 대낮까지 침대에서 뒹굴뒹굴,, 보통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늘어지게 잔다는 표 현을 많이 썼었는데, 여기서는 해가 중천에 뜨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시시각각 구름이 꼈다 해가 쨍쨍했다가 너무나 날씨가 자주 바뀐다.  어학원에서는 다음 홈스테이 비용을 내라고 닥달해 오는데 내일 5주치 비용을 내고 나면 어느새 이곳을 떠날 때가 되는 셈이다. 휴

* 한국에서 들어왔던 프린지 페스티벌. 홍대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는 정작 한번도 안 가봤는데, 여기 와서 큰 맘먹고 가보게 되었다. 프린지 페스티벌 뿐만 아니라 7,8월 에딘버러에서는 각종 다양한 축제들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덕분에 숙소는 미리미리 예약 안 하면 나중에 피곤해지게 된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예약이란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져서, 사실 이번 여행을 할 때도 예약을 안 했다가 낭패를 몇 번 봤다. 암튼 에딘버러에서 결국 머물기로 한 호스텔은 16명이 한 방을 함께 쓰는 도미토리였다. 말이 16명이지 직접 그 방을 들어가보면 온갖 체취와 묵은 냄새들이 석여서 오래 있을 곳은 못 되는것 같다. 그래도 인간의 적응력은 대단해서 그런 공간에서도 축제 기간 동안 한달 넘게 자기 집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 에딘버러에서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에 잠시 밧데리 충전을 해놓는다고 꼽아놨다가 깜박하고 떠나버렸다. 리버풀에 가기 위해 중간에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했는데, 그 곳에서야 밧데리를 부랴부랴 찾아보다가 놓고 나온걸 깨달았다. 덕분에 리버풀 부터는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어떻게 호스텔과 연락을 취해서 다시 받아볼 궁리가 없나 이리 저리 고민해보았지만, 인터넷을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환경도 안 되고, 어디 한 곳에 머물면서 소포를 받을 수도 없고, 결국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 브리스톨에서 호스텔로 선불 우표를 보내서 헤이스팅스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동안의 여행을 다니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많이 만났는데, 카메라 충전기를 다시 받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것도 지금 돌이켜 보면 나름 재밌는 기억으로 남는다.
아, 또 하나, 에딘버러 호스텔에 밧데리 뿐만 아니라 선글라스를 두고 왔다는 걸 역시나 뒤늦게 알아차렸는데, 안타깝게도 선글라스의 행방은 그네들도 알 수 없다고 했다. 흑,, 이탈리아에서 선글라스가 많이 아쉬웠다.

* 에딘버러에 간다 하니 여기 사람들이 다들 military tattoo 얘기를 하길래 무슨 문신 종류인줄 알고 갔는데, 직접 보고 나서야 문신이 아니라 군악연주라는 걸 알게 되었다.ㅎㅎ 무지 인기가 많아서 한달 두달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그 공연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서울에서 했던 국군의 날 행사를 보진 못했지만 컨셉이 많은 부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행 다니며 돌아다닌 곳에서 경치 하나는 에딘버러가 최고였던 것 같다. 멀리 보이는 성자락과 옆으로 보이는 바다. 좀 어둡게 나와서 아쉽지만,, 도시는 그렇게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걸어서 유유자적하며 돌아보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기차역에 바로 붙어있는 공원의 모습. 책읽고 낮잠자기에 좋아보이는 공원이었다..





타운 외곽에 있는 언덕에 오르면서 찍은 사진. 날씨가 영~





fringe 페스티벌에 한국에서 온 공연팀도 여러 팀이 있었다. 대구 뭐시기 하는, 관에서 문화사업을 지원해주는 그런 팀들이 여러 팀 보였는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하루에도 공연이 적어도 백개씩은 있어서 다들 거리에서 이렇게 자기 공연 홍보를 한다. 그리고 몇몇 한국 팀들에서는 거리에서 공짜표들을 나눠 주곤 했다. 그 중에 하날 얻어서 보러 갔는데 돈 주고 보면 한국돈 4만원정도 되는 가격이었던 것 같다.  한국 공연팀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여기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는 어떤 이미지로 어필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세계 경제 2위라는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뭔가 신비해보이는 듯한 일본 문화 그리고 대륙의 기운(?)을 받아 웅장하고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듯한 중국 문화 사이에 끼어서 한국 문화는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만약에 외국 친구가 한국에 놀러오면 어느 곳을 보여주어야 한국적인 맛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어려움처럼..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 공연팀의 대부분은 차력과 같은 힘쓰는 무술의 이미지나 한복을 입고 총총 걸음으로 유혹하는 '가녀린' 이미지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들의 공연을 홍보하고 있는 그룹.. 표정들이 뭔가 리얼한게,, 특히나 앞에 사람 바지자락( 빤스 자락?ㅋㅋ)을 잡고 인상을 쓰고 있는 저 남자분...아우라가 있어 보인다.ㅎㅎ





중심 거리인 로얄 마일에 위치한 프린지 숍. 안에도 예쁘게 잘 꾸며놨다. 티셔츠 예쁜게 있어서 한참을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막상 맞는 치수가 없어서 좌절을..-_-;;





91년부턴가 시작한 프린지 페스티벌 포스터는 해마다 지역 초등학생들이 그린 그림 중에 선정된 작품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그림이라 더 상상력 풍부한 그림들이 나왔나 싶다..각 해의 포스터들이 그려진 엽서들을 팔고 있었는데 몽땅 다 사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기념품들을 너무 잘 진열해놓아서 앞으로 한국에서 무슨 행사할때 비슷한 컨셉으로 만들면 되겠다 싶은 것들이 많았다.





시내 중심가에서 약 한시간 정도를 걸어나가니 식물원겸 공원이 있었다. 그 곳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 마침 리차드 해밀턴이란 작가의 작품이 전시중이었는데,  박물관 입장료 징수를 문제삼는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따로 포스팅을 해볼까 하는 주제이기도 한데, 영국의 박물관들은 대부분 다 무료이고 도서관 역시 공공성이 무척이나 강해서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도서관의 모습. 오리가 얘기해준 산꼭대기에 있는 연신내 도서관과는 전혀 다른.. 고시생? 노노... 지역 사회와 밀접하게 연계하여 이것 저것 행사들도 많고 기간마다 다른 컨셉의 전시도 많이 하고 결정적으로 인터넷도 누구나 공짜.. 혹시나 평생교육쪽으로 논문을 쓴다면 꼭 이 동네 도서관과 박물관을 주제로 써보리라 생각이 들었다.




에딘버러를 뜨는 날 아침 태양이 나왔다.. 비틀즈를 만나러 리버풀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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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9

* 금요일 저녁에는 올드타운 펍에 나가서 놀았다. 여기 4월부터 머물던 일본 친구와 같이 조나단 생일 파티가 있던 펍에 가서 같이 합류를 했다. 조나단은 결국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에서 잔 것 같진 않고,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술에 쩔어서 아마도 친구 집에 실려 간게 아닐까 싶다. 오늘 저녁엔 성대한 홈스맘이 준비한 성대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홈스맘은 금요일에도 반틈만 일하고 오후 내내 아들 생일 파티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도 아마 한시도 쉬지 못하고 구석구석 청소하려 저녁 준비 하랴 케잌 만드랴 정신 없어보였다. 캠브리지에 사는 딸 안젤리도 어제 여기 찾아왔는데 가족 세명이서 모여 수다떨며 장난치며 노는 모습이 무척이나 좋아보였다. 문득 울 엄마 아빠 생각이 나면서 서글픈 마음도 좀 들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한 마지막 내 생일이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 와서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여기는 한국처럼 9시 뉴스도 없고, 네이버나 다음처럼 포탈 싸이트 개념도 없고, 그냥 가족들 소소한 삶이 가장 중요한 일상으로 여겨진다. 예컨대 비비씨 뉴스에서는 미국 대선이 어떻고 영국 경제 상황이 어떻고 런던 어느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났고 등등 한국 뉴스와 다르지 않게 방송을 해대지만 뭇 사람들에게 그렇게 영향력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여기 사람들이 현재 삶을 더 충실하게 즐기는 걸지도.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자기 삶과 동떨어진 소식에는 별 관심이 없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 그래서 한국에서처럼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그런 응집력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liberal 한 사람들이니 최소한의 인권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사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랄까,,,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어렵사리 설명을 하고 나면 상황 자체를 이해를 못하고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늘 받는다, 적어도 내가 함께 사는 호스트 패밀리에 한에서는 말이다.

* 서울에 있을 땐 해마다 귓전에 들리던 여의도 불꽃축제니 하는 걸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와서 난생 처음으로 불꽃놀이 구경을 했다. 1066년은 여기 사람들에게 중요한 연도인데, 윌리엄 대제?가 지금 영국 왕조의 시작을 연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흔히 '브이'라고 불리우는, 사진 찍을 때 손가락 모양이 여기서는 'peace'의 표시로 여겨진다. 그 손가락 모양 상태에서 손목을 안쪽으로 뒤집으면 'fuck you'와 같은 수준의 욕이 되는데 그 기원이 프랑스에서 건너오던 '적'을 상대하면서 활을 쏠때 사용하던 손가락에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적(아마도 노르망디?)에 포로로 잡히면 활을 쏘는 두 손가락이 잘렸기 때문에 그 두 손가락을 펴보이는 게 여기서는 상대를 모욕하는 심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암튼, 바다 건너 여기를 공격해오는 배가 보이면 바로 봉화를 쏘아 올려서 런던까지 소식을 알리곤 했는데, 최초 발견 시점부터 런던에 소식이 도달하기 까지 봉화로 걸리는 시간은 약 두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서 런던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 두시간 남짓 걸리는데, 봉화의 속도가 꽤나 빨랐던 셈이다. 오늘 헤이스팅스 해변에서 있었던 bonfire & firework 의 역사가 바로 이 봉화 시스템이었다고 하니 꽤나 흥미로웠다. 매년 가을 이맘 때쯤 매주 토요일마다 봉화 길을 따라 도시를 이동해가며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거다. 오늘 어찌나 인파가 붐비던지, 이 마을에 사는 주민 모두가 나온 걸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천만이 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와 십만이 채 안되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의 인파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암튼 여기 와서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람들이었다. 하늘에서 연달아 색색깔깔 흩어지는 폭죽을 보면서, 10세기 즈음인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됐다던 화약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_-), 한편으론 사방으로 흩어지는 불꽃처럼 나도 저렇게 스러지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염없이 흩어지는 불꽃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똘똘 뭉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 자아, 신념, 고집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너무나 진지하게 갈구하며, 가끔 자아 분열증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원운동을 하는 것만 같은 내 모습과는 반대로 중심에서 최대한 멀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자꾸만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 아랫집 사람들과 자전거 여행을 다니면서 좋았던 기억 중에 하나는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던 기억인 것 같다. 처음 영국 건너와서도 최대한 긴장을 풀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즐겨보려고 의식적으로 더 맥주를 사다가 마시던 기억이 난다. 물론 대화 상대 없이 혼자 마시는 술은 괜한 궁상과 센치함을 불러왔지만 말이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펍에 나가서 파인트를 두 잔이나 마셨고, 오늘 낮에는 여기 학생들 몇명과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맥주를 또 한 잔하고, 저녁에는 거나한 생일상과 함께 와인을 마셨고, 불꽃놀이에 가서는 보온병에 든 따뜻한 매실주를 마시고 그 뒤에는 다시 펍에 가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잔을,, 한 달에 한 두번 갈까 말까 하던 펍을 이틀 연속으로 가다니, 1파운드에도 벌벌 떠는 내가 3파운드씩 하는 파인트 한 잔씩을 이틀에 걸쳐 마셔대다니 참 드문 일이다. 이것도 여기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징후인 것일까.

* 12월 8일 저녁 9시 더블린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왕복 20파운드+공항 수속비8파운드+카드수수료 8파운드. 12월 15일 월요일 런던 컴백. 6개월 관광비자를 무사히 받게 되면 내년 3월까진 런던에서 별일 없이 머물게 될 것 같다.  후우






조커 복장의 조나단과 갱스터 안젤리. 여기 와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홈스맘이 손수 만든 생일 케이크,,







한국 돌아가면 여의도 불꽃축제에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불꽃놀이가 일본 친구 말로는 '하나비'에 비할 바는 못 된다고 하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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