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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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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10. 2010/05/25
    2010/05/25
    나르맹

이것이 인간인가

오랜만에 다시, 독서일기. 그동안 아껴두었던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이번에 읽었다. 인간에 대한 회의와 불신 속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또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이성과 감정, 기억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야만 하는 역설적 상황. 가슴 아릿한 구절이 너무 많았다. 아우슈비츠를 떠올리면 한국의 감옥은 훨씬 더 견딜만한 곳일 것이라는 묘한 위안.

 

"역사와 삶 속에서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잔인한 법칙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 홀로 존재하며 삶을 위한 투쟁이 원초적인 메커니즘으로 축소되어버리는 수용소에서, 이 불공평한 법칙은 공공연히 효력을 발휘하며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 ..... 가장 간단한 방법은 굴복하는 것이다. 명령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일터와 수용소의 규율에 따라서만 배급을 먹으면 된다." 

-134-135쪽

 

"'변화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수용소의 격언 중 하나였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경험은 우리에게 모든 예측이 헛되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여주었다. 우리의 그 어떤 행동도, 그 어떤 말도 미래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뭐하러 고통스럽게 앞일을 예측하려 하겠는가? 우리는 고참 헤프틀링이었다. '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미래를 상상하지 마라, 모든 게 어떻게 언제 끝나게 될지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마라'는 게 우리의 지혜였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도, 스스로 자문하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 178-179쪽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비가 오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다. 혹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하지만 오늘 저녁 내가 추가로 죽을 배급받을 차례라는 것을 안다. 혹은 상황이 더 안 좋아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보통 때와 다름없이 배가 고프다. 그러면 정말로 바닥에 누워 있는 것 같을 때마다 종종 그렇듯 정말로 마음속에 고통과 지루함밖에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좋다, 나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건드리거나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러면 비는 끝이 날 것이다."

-201쪽

 

"운명의 선물은 단번에, 가능한 한 철저히 즐기면 된다. 내일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할 수 없으니까."

-214쪽

 

"코만도의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그러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 내가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침에 내가 사나운 바람을 피해 실험실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바로 내 옆에 한 친구가 등장한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순간마다, 카베에서나 쉬는 일요일마다 나타나던 친구다.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내게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쓴다."

-216쪽

 

 

- 어젯 밤엔 인천의 어느 구청에 단수여권을 발급하러 가는 꿈을 꾸었다. 4시 반이 마감이었는데 후다닥 뛰어가서 번호표를 발급받고 마지막 순서로 줄을 서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난 급한 마음에 인지를 안 사붙이고 일단 작성한 서류부터 냈는데 그 공무원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오늘 업무는 이제 끝이 났다고  다음에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억울해서 그 공무원을 붙잡고 사정을 좀 했더니,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오되 대신에 신청 후 한시간 이내에 바로 여권을 받아갈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준다고 했다. 그런데 난 그 구청이 집에서 먼 곳이기에 그냥 다음에 서울에 있는 구청으로 가야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꿈이 깼는데, 생각해보니 서울에 있는 구청으로 다시 가면 발급하고 나중에 또 한번 찾으러 가야하는 건데 그냥 인천의 그 구청에서 그 공무원의 제안을 받아들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왜 이런 꿈을 꿨는지 모르겠다.-_-; 책 내용이랑은 상관이 없지만 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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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8

낮에 마을버스를 타고 숙대쪽으로 나가는데 버스에서 영진씨를 만났다. 새삼 사람 일이란 참 공교롭다 싶었던게, 엊그제 조은 파티 때 잠깐 영진씨 얘기를 나누면서 프랑스에서 공부 잘 하고 있나 이런 말들을 했었는데 마침 그렇게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무지 반가웠다. 6월 초에 서울 들어오기 직전까지 프랑스에선 추위를 탔는데, 서울 돌아오니 참 후덥지근하다는 날씨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눴다.

난 가끔 추운 것과 더운 것 중에 선택을 해야한다면 무얼 고를지 고민을 하곤 한다. 굳이 왜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히 선선한 날씨만 계속 되는 건 왠지 삶에 재미가 줄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 내가 원하는 좋은 일만 있을리는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있기도 하다. 여튼, 그래서 둘 중에 고르라면 그래도 추운 것보단 더운 게 생존에 그나마 친화적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잠시 해봤다.. 

 

은행에 가서 조은 후원계좌를 만들었다. 아이디 비밀번호 등등 다 예전에 전없세 재정 일 할 때 쓰던 것들하고 비슷하게 정해버렸다. 체크카드와 인터넷뱅킹까지 한번에 해결한 스스로를 기특해하면서.

 

학교에 가서 '중등교원자격 무시험검정원서'를 제출했다. 500원 수입인지를 붙이고 신상에 관한 몇 글자를 적어내는 것으로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니, 기분이 참 묘하다. 일정 학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리 내 점수가 안 좋기로서니 그 커트라인을 못 넘을까 싶다(라고 믿고 있다). 이걸 따려고 이렇게 졸업에 집착을 했던건가 싶은 약간의 허무함도 든다. 운전면허증 다음으로 많은게 교사자격증이라고 하지만, 암튼 부모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므흣하긴 하다. 친구랑 같이 도서관에서 잠시 시간을 때우는데, 이 공간도 조만간 영원히(라는 건 없다고 믿긴 하나)  빠이빠이라는 생각이 드니 괜한 아쉬움도 들었다.

 

씨네큐브에서 <시>를 보았다.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마음 한구석이 걷잡을 수 없이 착잡했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같이 봐도 좋았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하하>에서 문소리를 보면서도 그랬고, <시>에서 윤정희를 보면서도 연기력에 절로 감탄을 했다. 산자락을 휘감으며 흐르는 남한강도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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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병역거부선언 파티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을 해오던 조은이
6월 15일 입영일을 맞아 병역거부선언 파티를 합니다.
오셔서 지지의 응원의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세요!

일시 : 2010년 6월 15일 화요일 저녁 7시반
장소 : 망원동 전쟁없는세상 사무실

<오시는 방법>

6호선 망원역 1번출구에서 9번 마을버스를 타고 동교초등학교 앞에서 내리세요
동교초등학교 입구 알파문구, 김밥집이 있는 건물의 3층입니다
02-6401-0514



*출처: 전쟁없는세상

 

조은 병역거부 지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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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8

아침 10시 수업, 교생 때 강의를 못 들은 사람들을 위하여 선생님이 특별히 4주 강의분 요약을 따로 해주었다. '수학에 대한 두려움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도 있던데, 나야말로 수학에 대한 울렁증이 도져서 단일표본 t검증이니 분산분석이니 하는 말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막상 문제로 나온 것을 보면 그렇게 또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직접 푼다 생각하면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주변에 도와줄 만한 사람들은 다들 통계를 배운지 너무 오래됐고, 강의 내용을 잘 아는 수강생들 중에는 마땅히 누구한테 도움을 청해야할지 난감하다. 이럴 땐 나도 동기들이 있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도 든다. 졸업도 늦게 하면서 바라는 것만 많은건가... 교생들은 과제도 교생 다녀와서 늦게 제출해도 된다고 배려를 해주시고, 못 들은 강의를 다시 한번 해주신 선생님한테 고마워서라도 마음 약해지지 말아야 될텐데.

 

한 달 교생을 마치고 나니 그간 내가 어떤 일상을 살았던지가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수업 끝나고, 우체국에 들려 일을 보고, 정문까지 걸어가서 파란 버스를 탔다. 에어컨 소리에 귀에 꽂은 음악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봉천고개를 넘을 땐 내가 탄 버스가 신호등에 걸리나 안 걸리나를 살핀다. 학교 갈 땐 늘 그 신호에서 아슬아슬하게 걸려서 사람 마음을 애타게 하는데, 집에 돌아갈 때는 왜 이리 씽씽 잘 통과를 하는 것만 같은지. 상도터널을 지나 한강대교를 한번에 건넜다. 날이 뿌옇지 않아 한강 너머 멀리까지 보여서 좋다. 황사가 갔나 싶으니 이젠 자외선이 힘들게 한다.

 

용산에서 버스를 내리면 바로 옆으로 남일당 건물이 보인다. 철거된 레아건물을 한번 씨익 돌아보며 용산역으로 향한다. 동네슈퍼에서 살 수 없는 몇 가지(맥주?)를 사고 1호선을 탄다. 남영역에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해방촌오거리를 지나 종점약국에 내려 잠깐 장을 더 보고 집에 올라오니 땀이 뻘뻘. 날이 너무 덥다. 선크림을 미처 못바른 목 뒷덜미가 따갑다. 

 

날씨를 보며 지구의 멸망이 얼마 안 남았다는, 여전히 '진지한' 생각도 하며 사는 것 같지만, 하루 중 가장 생기가 도는 순간은 마을버스가 금방 도착했을 때라는 자각이 들면서 살짝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해진 일상, 어제와 같은 오늘, 별 특이할 바 없이 무미건조하게 진행되는 일상에 만족해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다시 새로운 '약발'을 찾아봐야할 때가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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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Society on Military Ethics (formerly JSCOPE)

2008년 1월에 미국 샌디에고 대학에서 있었다는 심포지엄의 발제문들을 구글이 잡아다 주었다. 구글의 검색력에 새삼 놀라워하며.. 한국 상황에 대한 발제는 해군 소령이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음..

 

http://isme.tamu.edu/ISME08/isme08.html

 

Keynote Address:

“Military Ethicists:  What are they Good For?”

 

 

Opening Plenary Session: 

“Selective Disobedience in Unjust Wars”

 

 

Concurrent Sessions I

Track One:  Military Obedience and Conscientious Objection

Track Two:  Ethical Challenges of Contemporary Warfare: Nonmilitary Contractors

Track Three:  Emerging Issues in Just War Theory

 

Concurrent Sessions II

Track One:  Military Obedience and Conscientious Objection

Track Two:  Ethical Challenges of Contemporary Warfare

Track Three:  Emerging Issues in Just War Theory

 

Special Plenary:  “Ethical Leadership”

 

 

Banquet Address

“Should Members of the Military Refuse to Fight in Immoral Wars?  A Case for Selective Conscientious Objection”

 

 

Opening Plenary Address

“The Revolt of the Generals”

 

 

Concurrent Sessions III

Track One:  Military Obedience and Conscientious Objection

Track Two:  Ethical Challenges of Contemporary Warfare: Non-Lethal Weapons

Track Three:  Emerging Issues in Just War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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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6

*"제55회 현충일인 6일 조기 대신 이불만 내걸린 강원 춘천시내 한 아파트단지의 모습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을 대변하는 듯 하다."

 

- 싸이월드 메인에 떠서 본 연합뉴스 기사. 씨니컬지수가 잠시 급상승했더랬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천안함에서 죽은 사람들도 '북한의 공격에 의해' 죽은 것이니 그럼 다들 순국선열이 된걸까? 가진 자들은 자꾸만 '여러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만 말하는데 정작 죽은 당사자나 가족들의 입장에선 저 말들이 어떻게 들릴까. 순국선열이란 칭호 따위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데, 그나마 정말로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 죽은 거라면 폼이라도 살텐데, 순식간에 '개죽음' 당한 이들의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좀 지켜주면 좋겠다. 지들 멋대로 동원해서 부려먹다가 죽고 나니깐 '용사'들이라 부르고, 정작 자기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북한' 탓이나 하는 모습이 너무 꼴사납다. '죽어야만 기억이 되는 존재들'.

 

 *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사실상 전혀 증가되지 않아 가난의 대물림이 일상화된 반면 "부동산 부자", "주식 부자"들의 호강이 날로 심해졌다는 것도, 국가의 고용자측 두둔이나 단순 무관심으로 분쇄 당한 고속철도 여승무원이나 기륭전자의 비극적인 세계사상 최장기 파업들도, "개혁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무능과 비겁함으로 인해 끝내 없어지지 않아 살아남은 국보법도, 다 망각되거나 "용서"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거의 사냥 수준의 탄압을 당해온 쌍용 파업 노동자와 달리 별 방해없이 그 정치 활동을 해온 "개혁" 판매업자들이 20여년 전처럼 "독재 대 민주"라는 구도를 잡아 매우 편안한 중상층 상류의 생활을 해온 자신들을 "민주 투사"처럼 치장했는데, 사회의 상당부분은 이를 액면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자유주의자들의 패러다임에 이끌리게 된 그 "시민 사회"의 압력이 얼마나 거세기에 심상정씨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노동운동가까지도 이라크 파병을 수긍한 사람에게 표를 주라 하면서 퇴장하게 이른 것입니까? 그러면 저들이 정치시장에서의 위치를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 질문에 상당수 독자들이 "대북대결과 4대강 망동 등을 더이상 좌시 못한다 싶은 수많은 이들이 될성싶은 자유주의 정치인들에게 표를 모은 게 당연한 게 아니냐" 반문할 것입니다. 그건 다 맞는 이야기인데 노회찬과 같은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이 "나야말로 이명박의 진정한 대항마"라는 의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지 못한 이유가 뭐냐는 건 제 질문의 핵심입니다.""  -박노자 블로그에서

 

 

- '새벽 5시까지 개표상황을 지켜보다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오세훈이 역전을 해서 엄청 당황'했다는 친구와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내 얘기를 듣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썩소'를 날리던 친구의 얼굴. 총학생회 선거때도 나더러 왜 투표하지 않느냐면서 연장투표마저 끝나가던 날 결국 나에게 뭐라 한마디를 했던 친구였다. 서울시민 투표권이 없긴 하지만, 내가 만약 노회찬을 찍었다고 하면 그 친구는 차라리 그나마 나를 이해해줬을까.

워낙 청개구리 심보가 강해서인지 주변에서 동네방네 '가족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에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세요'라는 말이 너무나 싫었다. '투표로 말하세요'란 말은 마치 '투표로만 말하고 다른 때는 조용히 하세요'라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아는 친구가 선거에 나왔다면 한 표 적어줬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투표나 선거, 간접민주주의 이런 거에 체질적인 반감이 있다. 그것들이 내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유를 잘 못 찾겠다. 무엇보다 투표하러 가는 것보다 그 당시 나의 일상의 시간이 더 중요했다. 이런 나에게 '게으르다'거나 '말 할 자격'이 없다거나 라고 말한다면, 나도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는 그냥 말을 섞고 싶지가 않다. 

투표율 50% 중에 90% 이상이 한나라당 민주당을 찍는 세상은 그나마 투표를 하지 않은 나머지 50%에 대한 일말의 신비감이라도 있지만, 투표율 한 90%쯤 되는데 한나라당민주당 지지율이 90%를 차지하는 세상은 끔찍한 현실이 수치로 직접 확인이 되는 것이기에 정말 더 무서을 것 같단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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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2

비폭력과 가자해방운동

 

이 글에서 언급한 몇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견해)

 

-활동가들은 정말로 비폭력적으로 행동하였는가?

-활동가들의 소기 목표가 달성되었는지의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거봐라, 비폭력으로 시작한 너희들도 결국은 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느냐"라는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의 문제)

-'자유함대freedom flotilla'의 목적은 '구호'였는가 '활동'이었는가?

(많은 언론들이 '구호물자를 실은 배'라고 표현을 함으로써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물자 공급은 외부의 개입 없이 자신들이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과 연결이 됨. 활동가들의 목적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동을 펼치는 것이었음)

-언론은 누구의 고통을 애도하고 있는가?

(서방 언론들은 당연하게도 서구 출신 활동가들의 죽음에'만' 주목을 하고 있음)

-이번 사건에서 어겨진 법은 무엇인가?

-이번 사건의 활동가들은 어떤 집단을 대표하고 있는가?(하마스나 '테러리즘' 집단으로 몰아가려는 시도에 대한 경계)

-이번 사건의 공식 전말은 어떻게 조종이 되고 있는가?(공해상이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이스라엘 정부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됨)

 

 

 

 

Recuerdos de la Alham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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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잘가 봄.

햇살이 따가웠던 하루. 선글라스가 아쉬웠던. 

파프리카와 맥주 한잔. 

 

가자지구에 구호물품을 전하려던 활동가들이 이스라엘 해군의 공격에 죽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연극 볼 일이 있으면 나의 하우스메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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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주말 내내 한 스무시간쯤 잔 것 같다. 자도 자도 끝이 없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밀린 과제들과 졸업논문을 끝내야 하는데 너무나 귀찮다. 3월부터 시작한 기나긴 레이스가 아직 좀 더 남았는데, 다시 정신을 차릴 힘이 나지 않는다.

 

교생의 경험이 이렇게까지 나를 뒤흔들지 몰랐다. 아이들의 웃음, 동료교생 간의 지지, 지도교사의 배려 속에 보낸 지난 한 달이 꿈만 같다. 아이들이 내게 보여준 환대는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대표수업을 했던 금요일 2교시, 9시 30분에 시작을 하기 전에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컴퓨터와 칠판, 준비물 세팅을 모두 마쳤다. 교실 뒤로 교생들이 하나둘 들어왔고, 교감 등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 여러분 수업 시작할 준비가 됐나요?"라는 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는 시 10시 10분까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수업을 진행했는지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정말 정신줄 놓고 진행을 한 것 같다. 다행히 아이들이 그날 수업을 너무 진지하게 들어주어서 고마웠다. 예정된 활동 네 개를 마치고 오늘 수업 정리를 하는 질문을 던져서 첫번째 학생이 발표를 하는데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다. 그 소리에 난 씨익 웃으며 한 명 더 발표를 시켰고, 다음 시간 수업 내용을 공지하며 수업을 마쳤다. 그제야 뒤에 있던 교생들도 환호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뭔가 하나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버렸다.

 

금요일 저녁 다 같이 회식을 하며 대학로에서 새벽까지 놀았다. 다음 날 아이들에게 줄 편지도 못 썼는데 마냥 놀았다. 한 세시간 자고 다시 마지막 날 출근을 했다. 부랴부랴 아이들 한 명씩에게 편지를 썼다. 비몽사몽 코팅을 해서 다 자르고 4교시에 교실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목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꾹 참고 웃으면서 헤어져야지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담임쌤이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교생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보자고 하신다. 그렇게 한 명씩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는데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내 옆에 있던 교생쌤도 같이 우니깐 이젠 아이들도 하나둘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랑 다른 교생쌤이 한마디씩 마치고 아이들 한명씩 불러서 편지를 전해주고 한명한명 꼬옥 안아주었다. 나한테 장난치고, 내 말을 잘 안 듣던 남자 아이기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서럽게 우는 걸 보면서 마음이 더 짠했다. 담임쌤이 우리 둘을 보내면서 책 한권씩을 주시는데, 담임쌤도 눈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한달 교생 기간동안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 대한 신뢰? 타인에게 나란 존재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자각? 급식실 가는 그 짧은 길에서도 내 손을 서로 잡지 못해 아쉬워하고, 밥 먹을 때도 서로 내 옆에 앉으려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냥 행복했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와서 나랑 묵찌빠를 하면서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 복도에서 걷다가 떨어진 필통을 주워주어서 고마웠다고 편지에 쓴 아이, 자기도 커서 교생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 28명 아이들 한명 한명을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너무 놀라웠다. 아이들 덕분에 내 마음이 한 200배쯤은 넓어진 것 같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마다 개인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을 보면 내가 그동안 알던 사람들의 얼굴과 겹쳐 보이곤 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얼굴을 하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 아이의 얼굴과 함께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가족관계도 추측을 하곤 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게 될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니 나 혼자 괜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다들 지금처럼 예쁘게 자라서 자신을 아끼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할 것인가?" 영성으로 충만해진 지금 이 기운을 앞으로 한동안 더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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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5

확실히 몸을 움직이고 부딪혀야 자극도 많아지고 느끼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 자꾸 무언가를 써뱉어내고 싶은 상태. 그렇게 게워내야 다시 또 수업준비를 기꺼이 할 마음이 든다.
 
6학년 반 교생을 할 때 만난 아이 중에 시영이라는 친구가 있다.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를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막 하는 아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막상 만나보니 게임을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딱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전반기에 그 반에서 함께 생활할 때 남자 아이들이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캐치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 주변에 모습을 보이면 항상 시영이가 나를 반겨주곤 했다. 일기장과 내게 준 편지에 "교생 선생님이 와서 야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데 내가 아웃될 때만 보시고 내가 안타를 쳤을 땐 다른 데를 보고 계셔서 아쉬웠다"고 쓴 아이였다. 그런데 난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에 게다가 정장을 입은 채로 함께 땀 흘릴 여건이 안 되기에 같이 못 놀아서 아쉽단 말만 했었다. 
 
교생들이 반을 옮기면서 서로 못 보게 되었는데 시영이가 교생들이 있는 준비실에 찾아와서 야구를 함께 하자고 찾아왔다. 같은 반에 있던 때에도 내 몫이라며 집에서 글러브를 두 개씩 챙겨오던 아이였다. 심지어 자기는 헌 글러브를 쓰고 나에게는 지난 주에 막 샀다는 새 글러브를 끼라고 주었다. 내가 함께 놀고 싶은데 교생 선생님들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같이 놀 시간이 잘 안 나서 아쉽다고 말하면 시영이는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엔 꼭 해요, 알겠죠? 꼭 기억해야 되요 알겠죠?”라고 말을 했었다. 오늘이 바로 그 화요일, 난 사실 깜박하고 있었다. 아이들 하교지도를 하고 교생 준비실로 돌아오는데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영이 모습을 보니 오늘 함께 놀기로 한 약속이 그제서야 퍼뜩 떠올랐다. 
 
정말 함께 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당장 수업 준비에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난 지난번처럼 똑같이 “시영아 선생님도 야구 시영이랑 정말 같이 하고 싶은데 오늘도 또 교생 선생님들 일정 때문에 어려울 것 같으네. 아쉬워서 어떡하지?”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시영이는 나보고 그래도 같이 하자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아 그래요? 선생님 그럼 우린 언제 같이 한번 놀죠?”라고 답을 해서 더욱더 미안해졌다. 게다가 오늘은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시영이는 날씨를 알고서도 같이 야구를 하자고 말한 약속을 지키려고 내 글러브까지 두 개를 챙겨서 온 것이었다. 시영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다음에 혹 시간이 나더라도 길게 하지는 못 할거라고 해도 "괜찮아요. 저는 조금만이라도 선생님하고 캐치볼 하면 돼요" 말하는 아이. 이런 아이에게 난 대체 뭘 해주고 있는건가 싶었다.
 
지난 스승의 날에 다른 아이들은 교생들에게 편지만 주었는데, 시영이는 자기가 아끼는 샤프 하나씩을 교생에게 주었다. 난 샤프를 쓰지 않기에 시영이 샤프도 편지 무더기 어느 틈에 함께 묻혀 있지만, 시영이한테 샤프 정말 고맙게 잘 쓰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시영이 왈 “선생님 저 그 때 교생 선생님들 샤프 사고 편지지랑 봉투까지 산다고 2주치 용돈을 다 썼어요”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날 위해 2주치 용돈을 다 바쳐서 선물을 한 아이에게 난 그만한 보답을 해주었을까 생각하니 순간 울컥했다. 내겐 돈 만원쯤이야 하루 술값 밥값으로 너무나 쉽게 쓰게되는 돈인데, 그 아이에겐 2주치 용돈을 다 바쳐서 뭔가를 주려고 했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당장 하루하루 수업 준비에 피곤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시영이와의 대화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최소한 이 아이들이 내게 하는 것만큼 내 존재를 바쳐서 만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잠 몇 시간 못 자는 거 당장 다음 주면 실컷 잘 수 있을텐데, 좀 더 온전하게 아이들과 만나려고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 다음에 시영이를 만나면 헤어지기 전에 한번 꼬옥 안아줘야겠다.
 
 
 
난 매일 생각한다
-윤귀봉
 
오늘은 무엇을 할까
창우를 때릴까
초이와 소희가 청소를 
잘 하니까 칭찬할까
만약 내 머리가 대머리면 
모자를 쓸까 말까
내 생각은 
끝도 없다. 
 
 
-우리 반 뒤에 걸린 동시.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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