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5월 9일-13일

5월 9일 월요일

[MP]

오늘로 딱 한달, 이라고 할랬더니 딱 4주를 보내고 5주차에 접어드는 날이다. 월요일. 지금 갑자기 비가 내린다. 이따 운동을 나가야 하는데. 런던에서 햄스테드히스 갔던 일요일을 떠올렸다. 거기서 내려다 보이던 런던 시내의 모습.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펑펑 내리기 시작하던 눈. 그 다음 날 아침 온 교통이 마비된 런던. 어젯밤 꿈에는 편지를 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못 내고 내일은 또 쉬는 날이니 못 내는 그런 꿈을 꿨다. 이번 주엔 출역장에 나갈 수 있으려나. 우중충한 월요일 아침이다. 내 옆에서 주무시는 사장님이 얼른 나가시면 좋겠다. 그냥 아저씨들은 뭘해도 아빠, 나이 많은 사람 이미지가 겹쳐져서 싫다.

5월 10일 화요일

[MP]

어제 좀 더 많은 편지를 기대했지만, 아침, 햄한테 온 게 전부였다. 내 기대가 너무 컸다. 슬슬 나 혼자 잘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지. 오늘이야말로 딱 한달이다. 어젯 밤에 (...)

에딘버러로 떠나는 날 오전 런던에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와, 두렵고 설레는 그 기분. 휴일, 햄한테 편지쓰고 글 하나 써보든지 해야겠다. 지난 토요일에 엄마가 넣어준 책을 비롯한 물품들이 안 들어와서, 수요일까지 좀 더 기다려봐야겠다.

<병역거부자의 날에 부쳐>

5월 11일

[MP]

신기하고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 기억나지 않은 누군가와 (아마도 J?) 함께 출소를 했는데 방콕 공항이랑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다. 곧바로 출국심사대가 나왔고 그곳에서 우리는 수의를 벗은 뒤 엑스레이를 통과한 후 다시 수의를 입고, 따로 출감절차도 없었다. 나올 때 티켓을 받았는데, 웃긴 건 탑승시간과 게이트번호는 있었는데 목적지가 어디인지 안 적혀 있는 것이다. J는 그냥 게이트로 달려갔고 나는 직원에게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직원도 금시초문이란 표정이었고, 처음에 난 서울만 가면 된다였는데, 그 티켓으로 아무데나 갈 수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 자기연결. 상상의 나래. 헤이스팅스에서 출발한 기차는 해변을 따라 런던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우왕. 빅토리아역 도착 후 걸어서 하이드파크로 갔다. 그 고요함, 상쾌함. 기분이 좋아진다. 그제부터 계속 내리는 비. 오늘도 비에 젖은 풀내음 한번 맡아봤으면!

+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에 뭔가를 넣고 먹어야 하는 습관은 아직 '교정'되지 않았다. 분류과 직원이 다녀간 후 잠시 내 평정이 흔들려서 비상식량으로 나온 건빵으 우적우적.

5월 12일

[MP]

자기연결을 안(못) 하고 잡생각이 떠오른다. 짧은 시간안에 집중해서 해야하는 건데. 한달 했다고 이제 아무 때나 자기연결을 해서인지 아니면 잡생각이 정말 많아져서인지 모르겠다. 어제 분류과 직원이 왔다갔다. 관용부로 출역해야지 하는 것이다. 내일쯤 방을 옮기게 되려나. 모르겠다. 휴. 햄과 아침, 엄마한테 총 7통 편지를 받았다. 오늘도 그 세명한테만 오려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 배고프다.ㅋ

5월 13일 저녁 -아침 접견

어제 아침에 취장으로 옮겼다. 설마 했지만 예상을 못 한것도 아니어서. '글쓰기의 시차'란 표현에 꽂혀 있는데 이제 이틀 일하고 이곳에서의 경험을 적는 것에 대한 생각도 든다. 생각보단 덜 힘들다. 정신없긴 하다. 얼굴근육이 굳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 중. "일할 땐 웃지 말랬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뒤의 기린 or 자칼(의 심장)이 보여서 그렇게 자극이 되진 않는다. 결국은 너도 나도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고 싶은데 수단방법이 다르단 생각이 든다.

쿠사리 먹고 싶지 않은 내 생각 뒤에는 일을 잘해서 인정, 존중받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평탄함, 여유를 갖는 것이겠지. 접견을 와준 아침에게 고마울 따름. 눈물이 나는데, 돌폼, 따뜻함에 대한 욕구였을까. 진사장님, 너무 고맙다. 이 악물고 6월 말까지는 해봐야지. 너무 진지하진 않게, 유쾌함, 가벼움 잃지 않으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월 1일-8일

5월 1일

[MP]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되지는 말기. 사소한 자극에 툭 말을 내뱉지 않기. 항상 한번 더 숨 고르고. 오늘 아침 몸 상태는 요 며칠 드물게 허기가 느껴진다. 적당히 묵직한 아랫배도 느껴지면서. 호흡할 때 복식호흡이 잘 안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새 감옥에 찌들어서인지 나를 웃음짓게 하는 곳의 장면이 잘 선명하게 불러와지지가 않는다. 드디어 5워. 괜히 기분이 좋다-가도 마음 한 구석 출역이 어떻게 될지 불안한 구석도 있다. 비가 그쳐서 좋다!

5월 2일

[MP]

월요일 아침. 주말을 견딘 뒤 월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냥 설레인다.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신뢰. 해이스팅스, 런던에서의 시간들, 홀로 돌아다니던 그때의 시간들, 홈스테이 가족들의 따뜻함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게 어떤 시간이 닥쳐도 잘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타인을 내가 먼저 신뢰할 수 있는 것. 그때 내 마음도 편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총 10통의 편지를 내보냈다. 연결된 느낌을 간직하면서,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잊지 말자.

5월 3일

[MP]

남산3호터널 입구에서 정장에 넥타이를 맨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도 계산하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베풀수 있다는 벅차오르는 마음. 내가 받는 사랑을 재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믿음, 편안함. 수업 준비하며 떨리긴 하지만 뭔가 나의 것을 펼쳐본다는 기대. 결과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들뜨는, 생기가 들게 만드는. 이 기억으로 징역의 칙칙함을 이겨보리라.

5월 4일

[MP]

날짜를 적고 보니 5년전 대추리 생각이 난다. 이 곳에선 꿈을 많이 꾸게 되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아직 감옥 꿈을 꾸는 것 같진 않다. 따뜻한 말, 돌봄에 대한 그리움. 맨날 '네 귀'만 하고 살 순 없으니깐. 자기연결하는 중간에 영기가 나보고 싱크대 옆 이불에 물 튀지 말라고 베개에서 썩은 내가 난다고 말을 걸어서, 그것도 한 2번 이상 반복을 해서 잠시 평온이 깨졌다.

5월 5일

[MP]

쉬는 날. 목요일 아침이다. 자꾸 어제 분류심사 장면이 떠오른다. 보소로 지원하라던 직원의 말을 그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취장에 못 간다는 말은 확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탄함에 대한 욕구가 아쉬운 걸까. 동전뒤집기를 해서 하나가 나왔지만 여전히 아쉬운 그런 마음이다. 결국은 취장에 안 갔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달까.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물론 내가 보소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장 내일 방을 옮길 수도 있으니 오늘 편지를 또 많이 써야겠다.

5월 6일

[MP]

런던의 자전거 행진 Bicycle Mass가 생각났다. 하비엘과 함께 달리던. 금요일 밤 런던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때 생각이 난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며 보이던 하늘에 걸려있던 달 생각도 나고. 확실히 휴일 다음날 아침은 몸이 찌뿌둥하다. 오늘 나를 부르려나.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어젯밤에도 꿈을 꿨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양 옆의 사람들과 안 부딪히려고 이불을 침낭처럼 돌돌 말아잤다.

분류심사를 하는데, 가족의 화목 정도를 물어보더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화목'이라고 적었는데 직원이 어떻게 화목하냐면서 '스트레스 심함'으로 고쳐적었다. 그 직원에 의해 우리 집은 화목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 것이다.

5월 7일

[MP]

꿈 속에선 뭔가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고작 하루가 지나 다음날 해가 떠있을 뿐이라 좀 허망하다. 꿈에서 출역을 나갔는데 그게 취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감옥 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엄마와 동생이 접견을 온다. 어제 엄마가 보내준 전자서신을 받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좀 잘 노력해봐야겠다. 편지 적당히 쓰고 책 읽던거 마무리 해야겠다. 이번 주말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진심의 탐닉>.

5월 8일

[MP]

일요일. 오늘은 식수 이후 배식이 바로 와서 이거 적을 시간이 여의치 않다. 자기연결하며 작년 교생때 갔던 북한산 소풍을 떠올렸다. 빵셔틀. 143번 버스. 산에서 먹던 맛있는 점심. 푸핫. 맛있는게 먹고 싶나보다. 방 안에서의 생활이 서로의 생활에 배려를 하는 것이라지만 먼저 있던 자의 방식이 곧 그 방의 질서일 확률이 높고, 그 사람의 방식에 맞지 않으면 쿠사리를 맞는데 그 논리는 "넌 아직 빵에 적응이 안 됐어"이다. 24시간 갇힌 시간 잘 견디자. 이 시간들을 모두 견딘 후, 여권을 만들어 떠날 수 있단 생각을 하니 불끈 기운이 난다. 어디부터 가볼까. 일본? 영국? 라오스? 아님 일단 제주도부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월 25일-30일

4월 25일

[MP]
자기공감을 시도하는데 집중이 안 되었다. 잡생각이 너무 많았다. 어제부터 시작된 그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동시에 그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자극을 받아서 그렇다. 일어난지 얼마 안 되어 점검 준비를 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명진아 상 치워야지"라고 했을 때, 한 방씩 점검자가 다가오고 있는데 내 무릎을 칠 때, 나보고 긴장해라, 준비해라 이 뜻인데 처음 한두번은 고마웠지만 그게 계속 반복되니 이제 짜증이 나려고 한다.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내가 어제 꽂아둔 편지와 보고전들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이제 내가 그냥 그때 그때 직접 편지를 내버릴까 싶다. 나에 대한 존중? 시어머니같은 그이. 규율화가 잘 된 인간. 자꾸 가르치고 싶어 안달인. 난 왜 내 얘기를 표현을 못할까. 난 왜 이렇게 순하게 굴까. 코어자칼 생각이 잘 안 난다.ㅠㅠ

<농담의 위력>

편지 많이 받은 거 답장 다시 다 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하겠다는 방 사람들의 말. BBK의 의혹을 우리도 알아내려면 아이패드 정도면 되겠다는 말. 전원이 없으니 밧데리 좋은 거랑 전원 줄이 긴 걸로 추가 주문을. 웃을 때 내가 진지하게 쥐어잡고 고민하던 것들의 무게가 사르르 사라진다. 2평이 안 되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던 나의 시야와 사고의 벽이 무너지면서 지금 여기서의 삶이 살아볼 만한 것같은 기운이 솟아오른다. 기운을 다시 내봐야겠다는.

4월 26일

[MP]

모닝페이지보다 더 값진 경험을 한 날. 오늘 아침도 자꾸 말을 걸길래 오늘은 며칠 연습하던 말을 건냈다. 나름 차분하게. 근데 그 아이의 반응은 바로 미안해하면서 나를 안는 것이었다. 표현을 해서 좀 후련하긴 한데 그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좀 찝찝하기도 하다. 이 버라이어티 스펙타클한 징역의 일상이란!

<교도관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

까마귀라고 불리는 그들. 옛날처럼 교도관이 재소자를 두드려 팰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래도 기본 수용된 자-감시하는 자라는 구도가 변하진 않았다. 우리가 보기에 교도관이 이유없이 짜증을 내더라도 일단은 다 들어줘야 한다. '인권'이라는 우리의 무기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일상으로 느껴지는 교도관이 가진 권력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더러워서 피한다지만 이곳은 피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존댓말과 반말을 묘하게 섞어쓰는 그들은 재소자들이 할 수 있는 문제제기를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한 자들이다. '인권침해'라는 기소에 걸려들지 않으면서 여전히 효과적으로 재소자들을 관리, 통제, 지배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대응은 "저 사람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는데 우리가 넘어가야지"라거나 "밖에 나가면 쥐뿔도 없는 사람이니 이런데서 이런 일이나 하는 거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고 궁극적으로 인간 대 인가느로 연결을 하는데 별 도움이 되진 않지만, 수평적일 수 없는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보호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수세미 미스터리>

<부활절>

부활절 찬양 미사에 다녀왔다. 먹을 것과 편지쓸 시간 중에 고민을 하다가 집회가 있는 강당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담벼락 없는 하늘 생각이 나자 주저없이 집회를 선택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부활절 미사를 볼 기회가 있으랴 싶은 생각도 있었다. 기도를 드리는 중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이게 다 내 탓이오"하고 따라하다가 눈물이 울컥 나오려고 했다. 기도중에 "우리의 죄" 이런 말이 나오는데 감옥 안에 있는 내 처지가 와락 느껴진 것이다.

라이브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함께 기도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도 좋았다.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며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는데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마지막에 부른 노래 제목은 <내입술로>와 <기뻐하며 왕께>. 끝나고 돌아오는데 먹을 것들로 가득찬 선물꾸러미를 받았다. 방에 들어와 꾸러미를 푸는 순간 모두의 입에서 환호가 나왔다. 초콜렛, 모찌떡, 곡물바, 카라멜, 녹차양갱. 모두 이 곳에선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년 부활절에서 난 이곳에 있겠구나. 출소날이 성큼 다가와있겠지.

4월 27일

<MP>

5시에 빗소리에 눈이 떠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 소리라 생각하니 듣기 좋았다. 살이 1킬로 정도 쪘다는 걸 어제 목욕 때 확인했다. 최근 입맛이 돌아서 많이 먹긴 했다. 저녁, 아침엔 속이 좀 더부룩할 때가 많다. 관리를 좀 해야겠다. 벌써 수요일. 이틀만 더 있으면 접견이다. 오늘은 이발을 해보려고 한다.

<인사>

4월 28일

<MP>

어젯밤 급작스럽게 새로 한분이 오셨다. 무면허운전으로 6월형 받으셨고 집에서 약주하시다 오셨다고 한다. 새로운 분의 등장에 낯섬과 정적, 내가 신입으로 들어오던 날 기분이 떠올랐다. 다시 시작된 하루, 새로운 동료의 등장이 요 며칠 안정적으로 지속된 방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재밌는건, 새로운 사람(외부인)의 등장이 기존 사람들과의 유대를 강화 혹은 강화된 것처럼 믿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제 신입분 데려오던 교도관, 내가 첫날 만났던 분을 반갑게 만났다.

4월 29일

[MP] 접견 - 용석, 정현, 아규, 성민, 슈와

뭔가 자극이 많았던 어제. 오전에 의무과 검진을 다녀온 것이다. 장티푸스 검사와 흉부엑스레이 촬영은 사실상 취장에 가기 전 단계라고 했다. 지금 불쑥 떠오른 생각인데, 초짜처럼 보이는 의사(공중보건의)를 보면서 이 검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못한게 후회된다. 자기표현. 요 며칠 계속 쥐고 있는 욕구이다. 취장에 가게 될지 아닐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 설령 취장에 가더라도 배려, 인간적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혹은 받고 싶은 마음. 돌봄을 받고싶고, 밖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중요(필요)하다는 것을 방금 자기공감 하면서 찾았다. 욕구와 연결되면 수단방법은 자연스레 나온다는데, 두고 볼 일이다.

어젯 밤엔 양쪽에서 코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에 자는 도중 몇번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아침, 햄, 클럽, 여옥, 비대칭, 오리, 재진, 안지환씨, 즐, NVC센터, 성민, 빈가게, 상우.

4월 30일

[MP]

어젯 밤에는 천둥, 번개 소리에 잠이 여러번 깼다. 지금도 내리는 비. 빗소리와 비냄새-아마도 비에 젖은 흙 냄새가 좋다. HELC에서 공부를 마치고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떠올랐다. 투벅투벅 걸으며 나만의 시간들-무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의무나 타인으로부터의 시선,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는 여유가 그리운 것 같다. 오늘 운동은 비 때문에 틀렸지만, 편지를 열심히 써야겠다. 밍크 담요의 단점은 먼지가 많아서 아침이 되면 코가 막혀있다는 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월 21일~24일

4월 21일(목)

[MP]

어젯밤 꿈에는 양치를 하는데 칫솔모가 잇몸과 이 사이에 끼어서 나오지가 않았다. 칫솔을 뺐더니 칫솔모가 잘린 길이만큼 줄어있었다. 해몽을 어찌할지 궁금하다. 오늘 아침 자기 공감에선 낙산 바다의 일출이 떠올랐다. 목 뒤부터 머리 끝까지 소름으로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자기 연결하는데 자꾸 잡생각이 올라오길래 다른 때는 바로 코의 호흡에 집중했는데 오늘은 그 잡생각들을 쫓아가보았다. 파이어폭스 생각이 났다. 메일함과 페북, 후원클럽, 야구기사. 평소에 가던 곳들. 재미, 유대, 편안함, 친밀함, 관심과 돌봄. 사랑이 필요하구나 생각했다.

이제 방 모든 사람들이 "명진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한다. 느낌이 묘하다. 느낌과 욕구를 찾아보기. 하루만 더 기다리면 접견이다!

 

"넷째로 재판 집행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권한을 갖습니다. 범죄자를 처벌해 달라고 기소하면 이를 받아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법원이지만, 그 집행은 다시 검사의 몫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사형집행할 때도 반드시 검사가 입회를 해야합니다."

-김두식 <헌법의 풍경> 180쪽.

 

4월 22일

[MP]

나와 동갑이지만 '사회경제적 지위' 측면에서 극과 극에 있는 그 아이. 무엇이 나와 그를 지금의 위치로 오게끔, 지금의 차이를 불러온 것일까에 대한 의문, 고민. 자꾸만 그 아이를 평가하게 되는 걸 피하고자 노력 중.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기 위해 그 아이에게 배울 점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제부턴가 자기공감을 할 때마다 낙산의 일출이 떠오른다. 오늘은 그와 동시에 그 전날 내렸던 정동진역이 떠올랐다. 이유가 뭔진 모르겠으나 햄과 데면데면하고 있었던 그 때. 후회의 감정들이 몰려왔다. 자기를 잘 돌보고 있다는 기특한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나도 돌봄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떠올랐다. 애도를 하기엔 아직은 좀 이르지 않은가 싶다.

 

4월 23일

[MP]

토요일이다. 날짜를 적고보니 작년 이 맘쯤에는 아니 정확히 작년 오늘에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이쯤에서 햄을 만난적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비가 갠 맑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다. 밤에 불이 꺼져 있으면 동이 터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어제 본 햄의 모습이 눈에 아른아른거린다. 주말, 편지 많이 쓰며 잘 보내야겠다.

 

4월 24일

[MP]

몸이 찌뿌둥하다. 요 며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좀 찌뿌둥한듯. 이를 가는 아이 때문에 밤마다 깨곤한다. 귀마개 주문을 해야겠다. 오늘은 책을 좀 많이 읽어야겠다. 편지는 햄에게 한통...또...오리한테는 우표가 들어와서 넉넉해지면 그때 써야겠다. 108배를 어떻게 언제 할지 고민 해봐야겠다. 일주일에 영화 한편 보는 생활, 나쁘지 않다. 내일 아침 자기공감 때는 뭔가 통찰이 오면 좋겠다.

 

4월 24일

드디어 좀 해볼만한 도전이 찾아왔다. 변태스러울진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 찾아온 갈등, 스트레스를 반갑게 환영하고자 한다. 다 내 경험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상시적으로 '관찰'을 잘 기억해 두려고 하지만, 막상 이렇게 적어보려면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찰을 하고 싶지 않을만큼 화가 올라 있을 때, 일부러라도 관찰을 떠올리려고 하는 것 만으로 일단 흥분된 상태는 어느 정도 가라 앉는 것 같다. "밥 좀 먹어" "국 거기 올려놓으라구" 라는 말에 쌓여있던 짜증이 툭하고 분출되었다.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해"라고. 그 아이는 "아 짜증날라 그래"라고 말했다. (이렇게 상황을 복기하니 가장 자극이 되는 말이 찾아진다. 빙고~) 난 "짜증나? 어떤 말이 짜증나?"라고 했던 것 같다. 그 아이는 "니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했고 난 말하기를 멈췄다. 나도 짜증난다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이럴 때 자기만의 공감, 혼자 조용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건 비극이다. 그렇게 싫던 TV가 이럴 땐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TV의 요란한 소리가 없었다면 방안에 가득 흐르는 미묘한 기운을 맨 몸 그대로 맞닥뜨려야 하는 난감하고 불편한 상황이 됐을 것이다.

'관찰'로 적기엔 힘든 방 사람들의 말들, 예컨대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들, 교도관들과 사동 소지에 대한 '평가' 말들, 말을 시작하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나오는 욕설들. 바깥에서라면 아예 피하면 되지만, 24시간 붙어 생활해야 하기에 스트레스로 내가 지치지 않으려고 선택한 전략은 그냥 그들의 방식과 수준을 준중해주는 것. 다 내 성장의 자원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하지만, 왜 굳이 내가 이렇게 감옥까지 와서 고생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슬프고 억울하다. 편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가끔은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때도 있다. 편지도 쓸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나 혼자 오롯이 견뎌야 하는 비애(?). 지금 같은 방 동료들 역시 결국은 홀로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용쓰고 있겠지. 웃음을 찾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월 16일~ 20일

4월 16일

[MP]

세번째 모닝페이지. '작심3일'의 3일째. 6시에 다들 일어나시더라. 난 6시 30분까지는 자고 싶었는데. 하지만 "to me"가 아니라 "for me"의 마음으로. 덕분에 여유있게 스트레칭, 호흡, 모닝페이지까지.

어젯 밤 뭉쳐진게 느껴지던 어깨를 계속 주물러주고 잤더니 오늘 아침은 좀 가벼워졌다. 장 운동도 적당히 활발한 것 같고. 이불을 소지 분이 새로 갔다주셔서 덕분에 더 편하게 잔 것 같기도. 수면안대를 본 그분이 "완전 다 준비해왔네" 하신다. 그렇게 큰 자극은 아닌데, 그 말을 했을 때 그 분들 느낌과 욕구,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느낌 내욕구도 한번 고민해봐야겠다. 첫 주말, 잘 보내자

덧, 어젯 밤 다같이 이불을 깔면서 MT 온 기분이 난다고 말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서는 무의식 중으로 그동안 밤새 온 문자가 없는지 핸드폰을 찾았다.

 

가장 기운이 있을 때 쓰는 편지. 햄, 엄마 그리고 후원회.

 

4월 17일

[MP]

밤에 다가이 이불을 펴고 기존 두 분이 자기 시작할 때 나와 선규씨는 조용한 가운데 독서에 집중한다. 9시부터 10시 반까지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독서를 한다. 밤에 잠을 못잤다고 낮잠을 자고 싶진 않다. 10시 반이 넘어도 졸리진 않지만 눈을 붙이려고 누웠다. 안대를 한다. 하루중 거의 유일하게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내 의식은 비로소 이 좁은 방을 벗어나 바깥 친구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리움이 몰려오는 순간이다. 지난 주 월요일 헤어지던 날의 풍경들. 햄과 갔던 낙산, 강릉의 풍경들이 영사사진처럼 한장면 한장면 넘어간다.

밖에 못 나가니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더 해야겠다. TV 소리가 안 나니 조용하다. 점검을 기다리는 지금 시간은 아침 6시 30분.

 

4월 18일

[MP]

월요일이다. 애초에 내가 들어왔으면 했던 날짜. 그래도 일주일이 가긴 갔구나. 어젯밤 꿈엔 교도관과 대화를 나눴다. 내 힘듦을 토로하고 있었다.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것 가다고. 실제로 잘 지내고 있는지는 헷갈리기도 한다고. 어쨌든 이제 잠은 잘 드는 것 같다. 오늘은 면도를 좀 해야겠다.

 

4월 19일

[MP]

어제는 6통의 전자서신+상우에게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얼른 다 답을 해야한다는 조급함이 몰려왔다. 기계 찍듯이 편지 쓸 시간을 확보하려고 시야가 '핀 포인트'가 되었다. 엄마와의 관계가 큰 화두이다. 그 사이에서 조정하는 일을 맡아준 고마운 아침에게 어제는 사무적인 편지만 써버렸다. 매일 익일특급을 보낼 것이 아니라면 좀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을 목욕이 있는 날. 일주일 중 가장 설레는 날이 되었다. 날씨가 맑다. 오늘 밤에도 보름달을 지켜봐야겠다. 혀를 데었다. 뜨거운 물인줄 모르고.

 

4월 20일

[MP]

장애인의 날. 어제는 현민을 만났다. 가석방 대상 심사에 오르지 못했다는 그의 이야기. 어떻게 잘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의 처지에 놓였을 때도 지금처럼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자기공감 명상을 하는데 평소보다 집중이 잘 안되는 걸 느꼈다. 멍한 기분이랄까. 벌써 이곳의 일상에 익숙해져버린 것일까. 헤이스팅스를 다녀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떠오른 곳은 낙산 그리고 햄이었다. 금요일에 접견이 있다고 하니 확실히 설렌다. 후원회에 보낸 편지 두 통 모두 잘 갔는지 궁금하다. 상대를 탓하거나 아쉬워할 게 아니라 내가 그냥 중요하다 생각되는 편지는 등기로 보내는게 현명할 것 같다. 그리고 상대를 믿는 것. 여기 바람을 통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전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제 받은 염 편지 덕분에 여기서도 면도 잘 하고 자주 씻고 깔끔하게 관리햐야겠단 다짐을 해보았다. 오늘은 좀 더 시력 관리도 하고, 팔굽혀펴기도 열심히 해야겠다. 자기 공감 후 찾은 욕구를 말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았다. 등장인물들의 마음씀씀이가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맘 놓고 울 수가 없었다. vulnerable 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상시적인 긴장을 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만화 속 예쁜 사랑을 보면서 햄 생각이 많이 났다.

"(혼자) 오래 살아라." '혼자'라는 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채식을 한다고 닭훈제나 소세지, 구운 계란을 안 먹는다고 하고 콜라나 커피도 사양을 하지만 두유와 사과는 잘 챙겨먹고 물을 자주 먹는 나는 "몸 챙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까는 컵라면을 뜯으면서 스프를 반만 부었더니 왜 반만 넣냐면서 또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그런 말들을 별 자극없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는 순간 확 자극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이러면 보기 불편해?"라고 물었다. 한국 남자들은 느낌으로 물어보면 안 된다는데. 역시나 그는 바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불편한 건 아니고..." 하면서 말이다. 일단은 자기 공감. 아니 자칼쇼부터. 왜 다르다는 걸 가만 못 두는지 모르겠다. 그냥 자기랑 다르면 다른 거지. 왜 자꾸 사사건건 나를 특이한 존재처럼 보는지. 상대의 말이 비난으로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고기를 먹는다면, 스프도 하나 꼬박 넣어 먹는다면, 그의 어떤 욕구가 충족이 될까? 유대감? 소속감? 친밀함? 내가 찾은 나의 욕구는 이해, 존중, 배려, 평탄함, 여유 정도. 신뢰의 욕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게 자극이 되는 말을 했던 이는 정작 '비타민약'은 늘 꼬박꼬박 챙겨먹는다. 웃기는 일이다. 그가 낮잠을 곤히 자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풀리긴 했다. 자기부탁. 다시 :너 왜 안먹어?"라는 식의 질문을 들으면 느낌 대신 "내가 같이 먹었으면 좋겠어?" "같이 먹으면 더 친해질 것 같아?"라고 물어봐야겠다. 그 다음에 나는 "나도 친해지고 싶긴 한데 이걸 먹지 않고도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어"라는 식으로 말을 해봐야겠다. 나는 대인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마음을 넓게. 할말은 하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월 14일~15일

[MP-모닝페이지]

호흡. 욕구 명상. 내 몸 돌보기.

오늘 하루도 의미있게 보낼 수 있길. 배움, 성장, 소통.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도 되는.

 

오후 1시15분.

앞으로 살 날짜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질 때, 작년 이맘때, 재작년 이맘때는 무엇을 했나 떠올려본다. 2009년 4월 11일, 나는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버스운전사의 난폭한 운전을 보면서 내가 한국에 오긴 왔구나 싶어서 피식 웃었었는데. 나 그래도 외국물 먹은 사람이야 스스로 생각하면서. 출소하고 나가서 그렇게 쿨한 웃음 한번 날려줄 수 있도록 잘 살다 나가야지.

 

30분 운동을 하고 돌아왔더니 기분이 좀 개운하다. 어제 그제 고무신 신고 뛰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사이즈가 안 맞아 발뒤꿈치가 까이길래 달리기는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냥 전력질주를 해서 한쪽 벽에서 다른 한쪽 벽까지 뛰었다. 마치 벽을 뚫고 나갈 것처럼. 그렇게 뛰니 속은 좀 시원해졌지만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갇혀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병역거부 선언 이후로 그리고 요 며칠 계속 내가 울컥했던 이유도 좀 명확해진 셈이다. 슬픈 것과 억울한 것 중에 내가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억울한 마음이 먼저고 그 다음 따라오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의 감정인 것 같다. 운동화가 들어오면 정말 원없이 뛰어야겠다.

 

저녁 메뉴. 쫄면 채소 무침. 여기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대했던 메뉴였는데 이게 웬걸. 팅팅 불고 마른 면에 색깔은 빨간 물이 들긴 했는데 소면 맛 외에는 심지어 쫄면의 향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괜한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단 좋은 학습을 했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모든 욕구를 최소한으로 낮추었기 때문에 그런지 아직까지는 특별히 뭐 먹고 싶은게 떠오른다거나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진 않는다. 긴장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삶의 방식에서 내 스스로를 돌보며 지치지 않고 남은 징역 생활 잘 마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유치장 48시간만큼의 시간은 넘겼으니 이제부턴 순풍에 돛단 듯 시간이 흘러갈 수 있기를!

 

 밤 10시 반을 넘긴 시간. 담장 너머 비행기 소리가 유독 더 잦아진 것 같다. 바깥으로 오토바이 소리도 들린다.

지금 내 얼굴 모습을 보고싶다. 거울이 없다.

순시를 하는 교도관을 향해 인사해주기. 보는 자와 보이는 자라는 관계를 무화시켜서 그 역시 나에 의해 관찰된다는 식으로. 그게 아니면 정말 동물원에 사육되는 동물들 같아질테니.

 

4월 15일

[MP]

드디어 금요일이다. 시간이 가긴 가는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바라보는 창밖 날씨가 오늘은 좀 찌뿌둥하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좀 꿀꿀해지는 것 같다. 어젯밤 <7년의밤>에 포옥 빠져 읽다가 11시가 넘어 잠이 든 것 같다. 수면시간의 길고 짧음이 수면의 질과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본이 지켜지는 아름다운 생활"이란 가사로 아침 기상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다같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왕 일어나는 거 개운한 몸 상태로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제부터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자기연결을 위한 호흡을 하는데, 108배도 함께 해주어야 하는 건가 싶다.

 

3상3방으로 옮겼다. 같이 방을 쓰던 정XX씨와 함께 옮겨왔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4명이 한방을 쓰는데 넉넉하다. 신승훈 <미소속에 비친 그대>노래를 점심 교정국 라디오로 들었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아 웃고 싶어지면 미소속에 비친 그대 모습 생각하면서" 이런 가사였던 것 같다. 햄한테 써줘야겠다.

 

상대공감과 자기공감. 자기고감이 먼저 안되면 상대공감이 안 되지만, 거꾸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울지 않기 위해) 상대 공감에 에너지를 때려 넣을 수 있다. 검찰 승용차, 앞좌석 직원이 자전거 얘기를 할 때. 접견실 유리벽 너머에 엄마가 울고 있을 때. 엄마가 슬프구나, 내가 잘 지냈으면 하는구나 하는 엄마의 상태에 집중을 하면 내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방식.

 

저녁 7:00

시즌2까지는 아니고, 게임으로 치면 1탄을 깨고 2탄에 돌입한 기분이다. 5일만에 바뀐 새로운 환경.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징역 생활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랄까. 물론 여전히 내가 상상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 아껴둔 내 에너지(내공)는 아직 충분한 편이다. 중학생 때 많이 하던 펌프에서는 떨어지는 미션들을 잘 수행하면 내 에너지를 꽉 채운 상태로 클리어할 수 있었듯이, 지난 5일간은 'S'수준은 아니어도 'A' 정도로 무사히 마치고 에너지 게이지를 가득 채운채로 2탄에 돌입한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 TV를 보는 지금, 게이지에 살짝 손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책상을 펴고 편하게 일기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여기 생활에서 내가 붙들고 있는 양대 욕구는 '존중(->평탄함)'과 '자기표현' 사이의 밸런스(->일치)라는 생각이 든다. 상시적인 노출과 감시라는 이곳의 기본적인 질서를 내가 선택해서 감수하고 왔기에 내게 반말을 하는 교도관이나 나이 많은 아저씨들의 반말 정도는 큰 자극이 되지 않았다. 그 다음 부딪히는 것은 방 사람들이 하는 대화의 주제. 예상은 했지만 "여자"가 주제가 될 때 나는 대화에 끼기가 힘들다. 맞장구를 치기도 그렇고. 이것도 이사람들의 수준이니 어쨌든 최소한의 존중을 해줘야겠다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표현"의 욕구가 올라온다.

또 하나 찾은 욕구는 "소속감"이었다.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면? 좀 더 편하게 생활을 할 수 있겠지. 나와 동갑인 분이 있다. 고기도 자꾸 먹으라 하고, 콜라도 커피도 내가 사양하면 꼭 한번씩 더 권한다. 내가 거절을 했을 때 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내가 쓰러질까봐 걱정되세요?"라고 물었더니 "한밤중에 무슨 일 날까봐 그런거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콜라 따라주는 걸 내가 거절했더니 "예수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개털인데 그럼 과자나 많이 시켜주세요"라고 했다.

지금도 3명이 얘기하는 와중에 켜져 있는 TV 바로 아래서 혼자 책상을 피고 이 글을 쓰는게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지긴 한다. 두세문장씩 미리 생각하며 쓰고 싶은데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 다음 문장을 자꾸 까먹게 된다.

"그래도 여기는 규율이 없는 편이여. 구치소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여 천국."

확실히 이 정도면 살만하다, 라고 생각을 계속 되뇌인다. 방 안에서도 적당히 나만의 최소한의 거리와 공간을 만들었다.

참, 오늘 석영, 나영, 엄마한테 전자서신을 받았다. 즐이 한겨레 기사를 넣어줬는데 유엔자유권위원회 개인통보 구제신청한 병역거부자들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488명 중에 일단 100명분만 심의했단다. 난 이렇게 감옥에 있는데, 그런 소식을 들으니 그런갑다 싶다가도 내가 왜 여기에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기사를 넣어준 즐에게 고맙다. 주말동안 열심히 편지를 써야겠다.

인간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사람이 늘고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내게 집중해서 글을 쓸 시간을 궁리하다보면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나면서 결과적으로 하루가 금방 끝나 아쉽다는 마음마저 갖게 된다. 달력을 보면 아득하지만 하루를 끝내는 건 금방이다. 이 정도면 바깥에서의 일상과 싱크로율이 크게 떨어지진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월 13일 수요일~

어제도 잠을 계속 설쳤다. 저녁 8시쯤 책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때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본방 가면 훨씬 깨끗하다고 하는데, 이 곳 직입소 신입방의 화장실에선 별로 씻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잡수통에 물을 받아 바케스로 떠서 쪼그려 앉은 다음 씻어야 각이 나올 것 같은데, 이제 36시간 째가 지나고 있기 때문에 방을 옮기기 전까지나 아니면 오늘 있다는 온수 목욕까진 좀 버텨볼 생각이다. 오늘 햄이 오기로 했는데 좀 멋있는, 멋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말끔하게 나가고 싶지만, 머리도 여태 한번 안 감았다. 구속되는 날 발랐던 썬크림이 지금쯤은 제대로 지워졌을지 어쩔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이 방엔 거울이 없어서 내 모습을 스스로 확인할 수 없으니 차라리 더 편하기도 하다. 6시 30분이 되면 교정국에서 만든 듯한 노래가 나오면서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낸다. 밤새 서리다가 일어났는데 천정에 형광등은 여전히 켜져 있고,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고, 비몽사몽이다. 그래도 또 하루가 지나갔단 생각이 오늘 하루를 견딜 힘을 준다. 이제 겨우 3일차인데 시간이 이렇게 느리다니, 역시 징역은 징역이지 싶다. 방을 옮기고, 출역을 시작하면 좀 더 시간이 금방 가겠지. 여유있게 일주일 정도는 밤에 계속 잠을 설치더라도 적응기간이겠거니 생각해야겠다. 천정이 높은 건 다행이다. 영국 집들이 좋았던 이유는 천정이 높아서 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경험을 한다. 바깥의 아파트는 창마다 불투명한 창이 한 겹 더 우리 쪽으로 덧대어져 있어서 저기 과연 사람이 사는건가, 우리의 고립감을 달래주기 위해 합성된 배경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밤이 되어 보니 하나 둘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것을 보니 그제야 아 저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었다. 이제 갓 아침 7시 30분을 지난 시각, 감정이 너무 과잉된 것 같기도 하지만. 분명 세월이 지나 이 일기를 보며 웃음지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밖에서라면 이 시간에 깨어 일기를 쓰고 있는 건 상상도 못했을테니, 이 휴식의 시간을 잘 즐겨야겠다.

p.s.1. 라디오가 꺼지니 사동 안이 급 조용해진다. 좀 시끌할 때 우르르꽝을 할 걸.ㅋㅋ

p.s.2. 어젯밤 잠을 설치긴 했지만, 한 꿈에서는 내가 어느 교실에서 누군가를 공감하고 있었다. 마치 비폭력대화 강의에서처럼 말이다. 처음엔 여자 분이었고, 두 번째는 남자 분이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공감하는 말하기가 입에 붙어있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단계에서 어느 정도 단계가 오르면 꿈에서도 영어로 말하게 된다던데. 긍정적인 신호라고 믿고 싶다.

p.s.3. 철커덩, 쾅 하며 닫히는 철문에 벽지를 붙여놓으니 그나마 온기가 도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벽지 바른 벽보다 예쁜 색깔의 페인트 벽이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발견이다.

 

오후 12:45 - 햄 접견

온수 목욕을 기다리는 시간. 아까 12시 좀 전에 햄이 다녀가다. 접견표에 적힌 햄의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마침 같이 방을 쓰는 분도 접견신청이 와서 같이 접견실로 갔다. 접견실에 가면 좋은 이유는 접견실 너머로 환하게 비추는 햇살과 조금이나마 바깥 풍경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내가 접견을 가면 접견실 복도 창문에 불투명한 벽지가 대어져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불투명한 벽지 뒤로 펼쳐져 있을 조그만 정원과 벤치, 민원실 그리고 그 너머의 세상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오후 1:40

1시에 목욕을 다녀왔다. 20분 정도의 온수샤워다. 이틀 참았다가 따뜻한 물로 몸을 씻으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하루 한번씩 온수 샤워만 할 수 있어도 징역이 좀 더 살만할 텐데 싶어진다.

다녀와서는 팬티와 수건만 빨래를 했다. 윗도리 내의도 하고 싶었는데 빨아도 널만한 공간이 없다. 밖에서는 기본 이중 세안을 했는데 여기선 거품 안나는 "오이 비누"로 얼굴을 씻어도 이젠 감개무량이다. 아까 온수로 얼굴에 계속 마찰을 했더니 지금은 얼굴이 많이 땡긴다. 스킨 로션이 아쉬워진다. 샤워를 할 때는 공동으로 하고 하는 동안에는 바깥에서 직원이 유리창으로 지켜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인권 감수성으로 이곳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게 없다. 하지만 내 '보호'를 선택했기에 일주일 한번 온수 목욕만으로도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이곳의 질서를 일단은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내 마음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ㅁㅅ의 말처럼 "스트레스 받아봐야 나만 암 걸릴테니."

아, 그래도 이렇게 고요한 시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 곳이 감옥이라는 사실 - 두 팔을 쭉 못 뻗는 공간. 좁은 곳에서 내 마음도 덩달아 좁아지진 않기를. "수용자 준수사항" 35개 문장의 모든 종결 어미가 "아니된다"이다.

 

밤 10시 반.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제 그제 계속 잠을 설쳤는데도, 오늘 밤 역시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선언하고 수감되기 전까지 너무 잠을 많이 자놔서 그런가보다. 이불을 펴고 누워서 눈을 감았는데 오늘 접견왔던 햄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작 12시간도 채 안 흘렀는데, 마치 며칠 전 일 같다. 사실 여기에 들어온 이후로 난 시간(+날짜)감각을 상실해버린 듯 하다. 나만의 적응방식일 수도 있다. 뭔가 더 몰입하여 시간을 죽일만한 대상이 필요한 것 같다. 아무튼 햄 얼굴이 떠올라 나도 또 눈물이 난다.

<씨네21>을 보다가 <고백> 영화를 보니 또 햄 생각이 난다. 아까 시간 관념이 없어졌다고 말한 건 아마 바깥과의 기억을 모두 차단한 채 여기에 집중하려는 내 몸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지난 주 수요일, 햄과 <고백>을 보려다가 못 본 기억이 나서 또 아쉬움이 든다.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다가 올 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상냥함 혹은 따뜻함

수감시절의 일기들을 다시 보면 내가 지금 하는 고민들이 그 때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든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다면 어떤 부분에서 달라졌는지, 여전히 그때와 다를 바 없는 화두를 들고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기도 하다. 요즘 내가 하는 고민들에서 막혀있는 부분들을 뚫어주거나 혹은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 아, 이런게 나한텐 중요한 문제의식이었구나 라는 걸 찾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런데 문득 출소날 오전 풍경이 떠올랐다. 그나마 인간으로 연결되고 대화가 좀 통하는 직원이 있었는데, 내가 '죄수복'을 벗고 새로운 속옷을 입으려는 순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나의 알몸을 온전히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이제 한시간 뒤면 나도 그와 같은 '민간인'이 될 수 있는 과정이었는데, 그 순간까지도 난 '수용자'라는 신분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셈이다. 내 알몸이 노출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는 상태는 내가 나 스스로를 교도관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자기최면을 걸 때에 가능하다.

 

뭔가 부당한 일을 경험했을 때, 그 경험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1) 그 부당함에 대한 내 의견을 표현하거나 2)그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동등하지 않은 권력관계에서 약자인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것은 적잖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가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표현으로 인해 내가 받을지 모르는 불이익까지도 미리 염두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밀하지 않은 뭔가 공적인 관계에서 바로 버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성향 탓에 더해 이런 저런 것들을 두고 재는 신중함 때문에 이미 한두번 그냥 참고 넘어가는 상황들이 쌓인 상태일 때, 비슷한 상황이 재차 발생한다면 난 또 다시 그냥 참고 넘어가게 될 확률이 커진다.

 

제때 표현하지 않은 나 자신을 두고서 자학과 자기합리화를 왔다갔다하는 과정이 시작된다. 나를 표현할 용기가 없었던 나 자신을 비난했다가, 나를 화나고 겁나게 만든 교도관 개인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던지기도 한다. 나를 화나게 한 그 상황과 상대방을 탓하는 과정 그리고 제대로 표현을 못한 스스로를 비난하는 과정을 겪다보면 어느 순간 나의 감각이 무던해지는 상황이 찾아온다.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 자기방어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무던해진다는 것은 그 상황을 더 이상 예전처럼 큰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애초에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상황을 야기한 권력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약자인 나는 원래 그런 대우를 받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지배체제에 저항해보기보단 그냥 그 체제 자체를 받아들이게 되는, 어찌보면 가장 서글픈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 '또라이'로 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위치지으면서 수치심이나 억울함 자체를 가지지 않으려 했던 모습들. 징역 때를 벗는 것은 내가 맺었던 관계양상 그리고 그 관계에서 내가 익숙해졌던 관계맺기의 전략들을 반추해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 표현을 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비난과 원망, 상대와의 소통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먼저 접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 무력감이 찾아든다.

 

나의 알몸을 여과없이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직원도 뭔가 불편하긴 했던지 부하직원들에게 차양막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선 아직 옷을 덜 갈아입은 사람들은 그 뒤에서 갈아입으라고 했다. 그 지시는 혹여나 인권위 진정을 당할까 하는 몸사림때문이었다기 보단, 설령 자신은 명확히 의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타인의 알몸을 보는 자와 자신의 알몸이 보여지는 자 사이의 관계를 불편하게 여길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감수성이 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인간성, 누구나 어느 시점에선 발현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감각들을 신뢰하며 살고 싶다. 그 감각을 요즘 나는 따뜻함 혹은 상냥함으로 부르고 있다. 나에게 자기표현이란 타인의 상냥함을 믿는만큼 나 자신의 따뜻함을 잃지 않기 위한 의미의 행동이다. 나 스스로를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지 않는것. 내가 인간이고 싶은 만큼 상대와도 인간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것. 그때 상호간의 소통과 이해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나의 일기들을 펼쳐보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년 4월 11일~

징역 첫날 밤을 보내다. 6시 30분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막힌 화장실을 옆에 두고 싱크대에서 물만으로 세수를 했다. 이따 엄마와 햄이 오기 전에 머리는 감고 나가야 말끔해 보일텐데.

이 펜은 어젯 밤 한 방을 같이 쓰신 분이 빌려주셨다. 1급을 달아 독거방을 쓰고 계신 분이었는데 어제 직입소방으로 옮기셨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덕분에 식수도 얻고, 치약도 얻었다. 펜으로 무언가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아침엔 1시간 정도 라디오가 나온다. SBS 라디오이다. 57분 교통정보를 들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감정의 과잉이 되려한다. 이따 접견 나가서 또 울면 어떡하지.

어제는 3시에 공덕역에서 햄을 만났다. 마지막 체온을 느끼며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학원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데 햄이 학원으로 가지 않았다. 나도 좀 더 있고 싶었다. 4시에는 예의 그 뚜레주르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거기 알바와 친해진 듯 하다. 경수, 아침, 햄, 여옥, 의민, 승덕, 정현, 성민, 염. 떠나기 전 함께 해 준 친구들이 고맙다.

검찰 직원은 생각보다 젊었다. 나에게 "어떻게 되는지 다 아시죠? 한 1년 4개월이면 나올 거에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에요"라고 말했다. 저녁 먹였냐고 하면서 차가 8시쯤 출발할테니 저녁을 시켜준다고 하였다. 내가 채식을 해서 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더니 "중국집 밖에 없는데 어떡하지? 아, 짬뽕이 있네. 거긴 고기는 없고 물고기만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6시가 되자 직원과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아까 친구들과 헤어진 곳을 옆으로 바라보았다. 혹시나 아까 친구들이 아직 있을까 했지만 역시나 찾을 수는 없었다. 1층 당직실로 함께 들어가자 다들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동행한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뭐라 설명을 했고, 당직실 끝에 있는 독립된 방으로 안내했다. 아무 것도 없는, 두루마리 휴지 하나가 있는 방이었다. 왜 하필 휴지 하나가 있을까 했는데, 나중에 배달된 짬뽕을 먹으면서 무릎을 쳤다. 손에 묻은 짬뽕 국물을 닦는데 유용했던 것이다. 난 직원과 같이 저녁을 먹을 줄 알았더니, 난 독립된 그 방 안에서 홀로 방바닥에 앉아 짬뽕을 먹었다. 그 직원은 문을 닫으며 "그렇게 힘들진 않을 겁니다. 수형생활 잘 하시고요."라고 말했다. 창 밖으로는 좀 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뚜레주르와 대로의 파란 버스들이 보였다. 눈을 감고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안정이 되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남은 페이지 100여쪽을 단숨에 읽었다. 몇구절 눈물나게 하는 구절들이 있었다.

8시가 되자 나를 데려갈 검찰 직원이 왔다. "규정상 이걸 하셔야 합니다" 하면서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채우고 나선 "손 사용 자유롭죠?"라고 물어봐주었다. 나름 배려를 해주신 것 같다.

그 검찰 직원이 승용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 앞에 정복을 한 직원 두명, 내 옆자리에는 차를 얻어타고 마포역에서 내릴 사람이 함께 탔다. 그 분들은 '자전거 출퇴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는 직원이 300만원 짜ㅣ 자전거를 사와서 자랑하는 이야기를 했다.

마포대교를 지나고, 여의도 공원을 지나 영등포로 넘어갔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을 수갑찬 채로 지나가는 것도 새로운 기분이었다. 

직원이 라디오를 틀었다. 처음 방송에선 뉴스가 나왔다. 채널을 돌린 다음 방송에선 배철수 흉내를 낸 시사 논평이 나오고 있었다. 무한 경쟁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었다. 카이스트가 아니라 까이스트라면서.

그 다음 방송에선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마침 공교롭게도 "힘을 내 여기까지 달려왔잖아"라는 가사의 익숙한 멜로디였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드디어 교도소 정문을 통과했다. 철문을 통과하여 걷는데 "여기 오는 걸 선택한 거에요?"라고 그가 물었다. 수갑을 풀어주면서 검찰 직원은 "수형생활 잘 하라"는 인사를 해주었다. 내 앞에는 노역으로 들어온 분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앞에 분들이 다들 지문을 찍길래 나는 어떡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다 찍기로 했다. 교도관들이 반말해도 그냥 다 네네 하면서 들었다. 들고 간 짐을 설명하면서 현민에게서 들었다고 얘기를 했더니 어이없어 하면서도 대부분 다 그대로 들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 병역거부, 종교인지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면 그럼 무엇인지, 그 다음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나왔는지 물어봤다.

 

막힌 변기를 뚫었더니 속이 다 편하다. 바깥 창으로는 운동장과 그 담벼락 위로 아파트가 보인다. 마치 밀집한 주택가에서만 보이는 불투명 외관이 집집마다 교도소쪽 각도를 향해 덧대어져 있었다. 아직도 아침 9시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구매물을 요일별로 짜볼려고 한다. 일단 세면도구는 뒤로 하더라도 펜이 필요하다. 머리도 감을까 말까 고민중.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간소하게 다니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옷, 여권, 돈, 음식, 빨래? 필기구, 거기에 카메라 정도? 참, 물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감옥엔 무엇이 갖춰져 있는가. 옷이 있고, 밥이 나온다. 그리고 샤워기는 없지만 어쨌든 씻을 수는 있다. 싱크대에서 빨래도 할 수 있다. 펜도 있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닌가 싶다.

 

*규율화의 방법

규율. 내가 기획하지 않은 시간표에 내 몸을 적응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시간표를 보며 지금 몇 시인지 확인해야 하는 것. 혼자 있으니 처음이라 모른다는 핑계가 통한다. 순시, 점검. 옷은 항상 입고 있어야 한단다. 점검 때는 방문을 향하여 앉아 있어야 하는. 난 처음이라 글 쓴다고 계속 집중을 하고 있어서 돌아보질 않았더니 지적을 받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베란다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작은 나무야, 늑대별(시리우스. 겨울 하늘에 가장 맑게 빛나는 항성) 알지? 저녁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보이는 별 말이야. 어디에 있든지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278쪽)

 

고아원에서는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에 채플 예배를 보았다. 그것이 끝나고 나면 곧이어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나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식사 시간에도 빠졌다. 덕분에 나는 저녁마다 늑대별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 침대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창문이 있었는데, 나는 그 창문으로 늑대별이 반짝이는 것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 별은 저녁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창백한 얼굴로 빛을 비추다가 밤이 어두워질수록 점점 더 밝은 빛을 토해냈다. (...) 처음 그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 별을 보며 떠올릴 일들을 낮동안에 미리 생각해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 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추억들을 보내주셨다. (292쪽)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일기

2011년 4월 입소. 2012년 6월 출소. 지금은 2013년, 그리고 다시 6월. 작년 봄, 파릇파릇 새싹들과 꽃망울을 보면서출소일이 다가옴에 설레었던 기분이 올해 봄 내내 떠올랐다. 어느새 그 봄이 지나 강렬한 햇살 내리쬐는 여름이 되었다.

그동안 차마 들춰보지 못했던 수감시절 기록들을 다시 꺼내 읽어보고픈 마음이 이제야 비로소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약. 어떻게 살고 싶은지, 뭐 하며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로 머릿 속은 더 복잡해졌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내딛어 보고 싶은 에너지가 조금씩 움틀거리는 걸 느낀다. 무더위에 늘어지기보단 뭔가 새로운 것을 더 시도해보고픈 호기심이 들었달까. 다시 출소 전 상태가 좋았을 때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감도 든다.

 

새로운 블로그에서 시작하기보단, 이 공간에 지난 나의 기록들을 남겨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있다면 6월이 다 지나가기 전에, 출소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 이전에 이 정리 작업을 마쳐보는 것. 일상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에너지 삼아, 조급한 마음 달래며 딱 한달 기운을 모은단 생각으로 꾸준히 그리고 부지런히 타이핑을 해보리라는 다짐.

 

내 바닥을 다시 봐야한다는 일말의 두려움보단 그 때 내가 치열하게 했던 고민과 문제의식들을 다시 꺼내보고픈 궁금함이 더 커졌달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