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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Society on Military Ethics (formerly JSCOPE)

2008년 1월에 미국 샌디에고 대학에서 있었다는 심포지엄의 발제문들을 구글이 잡아다 주었다. 구글의 검색력에 새삼 놀라워하며.. 한국 상황에 대한 발제는 해군 소령이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음..

 

http://isme.tamu.edu/ISME08/isme08.html

 

Keynote Address:

“Military Ethicists:  What are they Good For?”

 

 

Opening Plenary Session: 

“Selective Disobedience in Unjust Wars”

 

 

Concurrent Sessions I

Track One:  Military Obedience and Conscientious Objection

Track Two:  Ethical Challenges of Contemporary Warfare: Nonmilitary Contractors

Track Three:  Emerging Issues in Just War Theory

 

Concurrent Sessions II

Track One:  Military Obedience and Conscientious Objection

Track Two:  Ethical Challenges of Contemporary Warfare

Track Three:  Emerging Issues in Just War Theory

 

Special Plenary:  “Ethical Leadership”

 

 

Banquet Address

“Should Members of the Military Refuse to Fight in Immoral Wars?  A Case for Selective Conscientious Objection”

 

 

Opening Plenary Address

“The Revolt of the Generals”

 

 

Concurrent Sessions III

Track One:  Military Obedience and Conscientious Objection

Track Two:  Ethical Challenges of Contemporary Warfare: Non-Lethal Weapons

Track Three:  Emerging Issues in Just War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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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6

*"제55회 현충일인 6일 조기 대신 이불만 내걸린 강원 춘천시내 한 아파트단지의 모습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을 대변하는 듯 하다."

 

- 싸이월드 메인에 떠서 본 연합뉴스 기사. 씨니컬지수가 잠시 급상승했더랬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천안함에서 죽은 사람들도 '북한의 공격에 의해' 죽은 것이니 그럼 다들 순국선열이 된걸까? 가진 자들은 자꾸만 '여러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만 말하는데 정작 죽은 당사자나 가족들의 입장에선 저 말들이 어떻게 들릴까. 순국선열이란 칭호 따위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데, 그나마 정말로 '조국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 죽은 거라면 폼이라도 살텐데, 순식간에 '개죽음' 당한 이들의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좀 지켜주면 좋겠다. 지들 멋대로 동원해서 부려먹다가 죽고 나니깐 '용사'들이라 부르고, 정작 자기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북한' 탓이나 하는 모습이 너무 꼴사납다. '죽어야만 기억이 되는 존재들'.

 

 *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사실상 전혀 증가되지 않아 가난의 대물림이 일상화된 반면 "부동산 부자", "주식 부자"들의 호강이 날로 심해졌다는 것도, 국가의 고용자측 두둔이나 단순 무관심으로 분쇄 당한 고속철도 여승무원이나 기륭전자의 비극적인 세계사상 최장기 파업들도, "개혁주의자"들의 극단적인 무능과 비겁함으로 인해 끝내 없어지지 않아 살아남은 국보법도, 다 망각되거나 "용서"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거의 사냥 수준의 탄압을 당해온 쌍용 파업 노동자와 달리 별 방해없이 그 정치 활동을 해온 "개혁" 판매업자들이 20여년 전처럼 "독재 대 민주"라는 구도를 잡아 매우 편안한 중상층 상류의 생활을 해온 자신들을 "민주 투사"처럼 치장했는데, 사회의 상당부분은 이를 액면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자유주의자들의 패러다임에 이끌리게 된 그 "시민 사회"의 압력이 얼마나 거세기에 심상정씨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노동운동가까지도 이라크 파병을 수긍한 사람에게 표를 주라 하면서 퇴장하게 이른 것입니까? 그러면 저들이 정치시장에서의 위치를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 질문에 상당수 독자들이 "대북대결과 4대강 망동 등을 더이상 좌시 못한다 싶은 수많은 이들이 될성싶은 자유주의 정치인들에게 표를 모은 게 당연한 게 아니냐" 반문할 것입니다. 그건 다 맞는 이야기인데 노회찬과 같은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이 "나야말로 이명박의 진정한 대항마"라는 의식을 유권자들에게 심지 못한 이유가 뭐냐는 건 제 질문의 핵심입니다.""  -박노자 블로그에서

 

 

- '새벽 5시까지 개표상황을 지켜보다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오세훈이 역전을 해서 엄청 당황'했다는 친구와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내 얘기를 듣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썩소'를 날리던 친구의 얼굴. 총학생회 선거때도 나더러 왜 투표하지 않느냐면서 연장투표마저 끝나가던 날 결국 나에게 뭐라 한마디를 했던 친구였다. 서울시민 투표권이 없긴 하지만, 내가 만약 노회찬을 찍었다고 하면 그 친구는 차라리 그나마 나를 이해해줬을까.

워낙 청개구리 심보가 강해서인지 주변에서 동네방네 '가족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에 당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세요'라는 말이 너무나 싫었다. '투표로 말하세요'란 말은 마치 '투표로만 말하고 다른 때는 조용히 하세요'라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아는 친구가 선거에 나왔다면 한 표 적어줬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투표나 선거, 간접민주주의 이런 거에 체질적인 반감이 있다. 그것들이 내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유를 잘 못 찾겠다. 무엇보다 투표하러 가는 것보다 그 당시 나의 일상의 시간이 더 중요했다. 이런 나에게 '게으르다'거나 '말 할 자격'이 없다거나 라고 말한다면, 나도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는 그냥 말을 섞고 싶지가 않다. 

투표율 50% 중에 90% 이상이 한나라당 민주당을 찍는 세상은 그나마 투표를 하지 않은 나머지 50%에 대한 일말의 신비감이라도 있지만, 투표율 한 90%쯤 되는데 한나라당민주당 지지율이 90%를 차지하는 세상은 끔찍한 현실이 수치로 직접 확인이 되는 것이기에 정말 더 무서을 것 같단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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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2

비폭력과 가자해방운동

 

이 글에서 언급한 몇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견해)

 

-활동가들은 정말로 비폭력적으로 행동하였는가?

-활동가들의 소기 목표가 달성되었는지의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거봐라, 비폭력으로 시작한 너희들도 결국은 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느냐"라는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의 문제)

-'자유함대freedom flotilla'의 목적은 '구호'였는가 '활동'이었는가?

(많은 언론들이 '구호물자를 실은 배'라고 표현을 함으로써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물자 공급은 외부의 개입 없이 자신들이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과 연결이 됨. 활동가들의 목적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하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행동을 펼치는 것이었음)

-언론은 누구의 고통을 애도하고 있는가?

(서방 언론들은 당연하게도 서구 출신 활동가들의 죽음에'만' 주목을 하고 있음)

-이번 사건에서 어겨진 법은 무엇인가?

-이번 사건의 활동가들은 어떤 집단을 대표하고 있는가?(하마스나 '테러리즘' 집단으로 몰아가려는 시도에 대한 경계)

-이번 사건의 공식 전말은 어떻게 조종이 되고 있는가?(공해상이었으므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이스라엘 정부에게만 맡겨져서는 안 됨)

 

 

 

 

Recuerdos de la Alham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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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잘가 봄.

햇살이 따가웠던 하루. 선글라스가 아쉬웠던. 

파프리카와 맥주 한잔. 

 

가자지구에 구호물품을 전하려던 활동가들이 이스라엘 해군의 공격에 죽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연극 볼 일이 있으면 나의 하우스메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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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주말 내내 한 스무시간쯤 잔 것 같다. 자도 자도 끝이 없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밀린 과제들과 졸업논문을 끝내야 하는데 너무나 귀찮다. 3월부터 시작한 기나긴 레이스가 아직 좀 더 남았는데, 다시 정신을 차릴 힘이 나지 않는다.

 

교생의 경험이 이렇게까지 나를 뒤흔들지 몰랐다. 아이들의 웃음, 동료교생 간의 지지, 지도교사의 배려 속에 보낸 지난 한 달이 꿈만 같다. 아이들이 내게 보여준 환대는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대표수업을 했던 금요일 2교시, 9시 30분에 시작을 하기 전에 아이들이 담임선생님과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컴퓨터와 칠판, 준비물 세팅을 모두 마쳤다. 교실 뒤로 교생들이 하나둘 들어왔고, 교감 등 다른 선생님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 여러분 수업 시작할 준비가 됐나요?"라는 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는 시 10시 10분까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수업을 진행했는지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정말 정신줄 놓고 진행을 한 것 같다. 다행히 아이들이 그날 수업을 너무 진지하게 들어주어서 고마웠다. 예정된 활동 네 개를 마치고 오늘 수업 정리를 하는 질문을 던져서 첫번째 학생이 발표를 하는데 수업 끝나는 종이 울렸다. 그 소리에 난 씨익 웃으며 한 명 더 발표를 시켰고, 다음 시간 수업 내용을 공지하며 수업을 마쳤다. 그제야 뒤에 있던 교생들도 환호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뭔가 하나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버렸다.

 

금요일 저녁 다 같이 회식을 하며 대학로에서 새벽까지 놀았다. 다음 날 아이들에게 줄 편지도 못 썼는데 마냥 놀았다. 한 세시간 자고 다시 마지막 날 출근을 했다. 부랴부랴 아이들 한 명씩에게 편지를 썼다. 비몽사몽 코팅을 해서 다 자르고 4교시에 교실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목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꾹 참고 웃으면서 헤어져야지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담임쌤이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교생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보자고 하신다. 그렇게 한 명씩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는데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내 옆에 있던 교생쌤도 같이 우니깐 이젠 아이들도 하나둘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랑 다른 교생쌤이 한마디씩 마치고 아이들 한명씩 불러서 편지를 전해주고 한명한명 꼬옥 안아주었다. 나한테 장난치고, 내 말을 잘 안 듣던 남자 아이기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서럽게 우는 걸 보면서 마음이 더 짠했다. 담임쌤이 우리 둘을 보내면서 책 한권씩을 주시는데, 담임쌤도 눈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한달 교생 기간동안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인간에 대한 신뢰? 타인에게 나란 존재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자각? 급식실 가는 그 짧은 길에서도 내 손을 서로 잡지 못해 아쉬워하고, 밥 먹을 때도 서로 내 옆에 앉으려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냥 행복했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와서 나랑 묵찌빠를 하면서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 복도에서 걷다가 떨어진 필통을 주워주어서 고마웠다고 편지에 쓴 아이, 자기도 커서 교생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 28명 아이들 한명 한명을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너무 놀라웠다. 아이들 덕분에 내 마음이 한 200배쯤은 넓어진 것 같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마다 개인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을 보면 내가 그동안 알던 사람들의 얼굴과 겹쳐 보이곤 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얼굴을 하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 아이의 얼굴과 함께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가족관계도 추측을 하곤 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게 될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니 나 혼자 괜한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다들 지금처럼 예쁘게 자라서 자신을 아끼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할 것인가?" 영성으로 충만해진 지금 이 기운을 앞으로 한동안 더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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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5

확실히 몸을 움직이고 부딪혀야 자극도 많아지고 느끼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 자꾸 무언가를 써뱉어내고 싶은 상태. 그렇게 게워내야 다시 또 수업준비를 기꺼이 할 마음이 든다.
 
6학년 반 교생을 할 때 만난 아이 중에 시영이라는 친구가 있다. 담임선생님은 그 아이를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막 하는 아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막상 만나보니 게임을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딱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였다. 전반기에 그 반에서 함께 생활할 때 남자 아이들이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캐치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운동장에 나가 아이들 주변에 모습을 보이면 항상 시영이가 나를 반겨주곤 했다. 일기장과 내게 준 편지에 "교생 선생님이 와서 야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데 내가 아웃될 때만 보시고 내가 안타를 쳤을 땐 다른 데를 보고 계셔서 아쉬웠다"고 쓴 아이였다. 그런데 난 눈 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에 게다가 정장을 입은 채로 함께 땀 흘릴 여건이 안 되기에 같이 못 놀아서 아쉽단 말만 했었다. 
 
교생들이 반을 옮기면서 서로 못 보게 되었는데 시영이가 교생들이 있는 준비실에 찾아와서 야구를 함께 하자고 찾아왔다. 같은 반에 있던 때에도 내 몫이라며 집에서 글러브를 두 개씩 챙겨오던 아이였다. 심지어 자기는 헌 글러브를 쓰고 나에게는 지난 주에 막 샀다는 새 글러브를 끼라고 주었다. 내가 함께 놀고 싶은데 교생 선생님들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같이 놀 시간이 잘 안 나서 아쉽다고 말하면 시영이는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엔 꼭 해요, 알겠죠? 꼭 기억해야 되요 알겠죠?”라고 말을 했었다. 오늘이 바로 그 화요일, 난 사실 깜박하고 있었다. 아이들 하교지도를 하고 교생 준비실로 돌아오는데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영이 모습을 보니 오늘 함께 놀기로 한 약속이 그제서야 퍼뜩 떠올랐다. 
 
정말 함께 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당장 수업 준비에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난 지난번처럼 똑같이 “시영아 선생님도 야구 시영이랑 정말 같이 하고 싶은데 오늘도 또 교생 선생님들 일정 때문에 어려울 것 같으네. 아쉬워서 어떡하지?”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시영이는 나보고 그래도 같이 하자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아 그래요? 선생님 그럼 우린 언제 같이 한번 놀죠?”라고 답을 해서 더욱더 미안해졌다. 게다가 오늘은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시영이는 날씨를 알고서도 같이 야구를 하자고 말한 약속을 지키려고 내 글러브까지 두 개를 챙겨서 온 것이었다. 시영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다음에 혹 시간이 나더라도 길게 하지는 못 할거라고 해도 "괜찮아요. 저는 조금만이라도 선생님하고 캐치볼 하면 돼요" 말하는 아이. 이런 아이에게 난 대체 뭘 해주고 있는건가 싶었다.
 
지난 스승의 날에 다른 아이들은 교생들에게 편지만 주었는데, 시영이는 자기가 아끼는 샤프 하나씩을 교생에게 주었다. 난 샤프를 쓰지 않기에 시영이 샤프도 편지 무더기 어느 틈에 함께 묻혀 있지만, 시영이한테 샤프 정말 고맙게 잘 쓰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시영이 왈 “선생님 저 그 때 교생 선생님들 샤프 사고 편지지랑 봉투까지 산다고 2주치 용돈을 다 썼어요”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날 위해 2주치 용돈을 다 바쳐서 선물을 한 아이에게 난 그만한 보답을 해주었을까 생각하니 순간 울컥했다. 내겐 돈 만원쯤이야 하루 술값 밥값으로 너무나 쉽게 쓰게되는 돈인데, 그 아이에겐 2주치 용돈을 다 바쳐서 뭔가를 주려고 했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당장 하루하루 수업 준비에 피곤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시영이와의 대화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최소한 이 아이들이 내게 하는 것만큼 내 존재를 바쳐서 만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잠 몇 시간 못 자는 거 당장 다음 주면 실컷 잘 수 있을텐데, 좀 더 온전하게 아이들과 만나려고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 다음에 시영이를 만나면 헤어지기 전에 한번 꼬옥 안아줘야겠다.
 
 
 
난 매일 생각한다
-윤귀봉
 
오늘은 무엇을 할까
창우를 때릴까
초이와 소희가 청소를 
잘 하니까 칭찬할까
만약 내 머리가 대머리면 
모자를 쓸까 말까
내 생각은 
끝도 없다. 
 
 
-우리 반 뒤에 걸린 동시.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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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4

교생일기..까지는 아니고.

 

저학년 내려와서 오늘 첫 수업을 했다. 월요일 1교시, 듣기말하기쓰기(예전엔 말하기듣기였는데 개정 교육과정에선 듣기를 강조한다고 듣기말하기가 되었다고 한다) 수업의 '알기 쉽게 차례대로' 단원, 오늘의 학습목표는 '안내하는 말을 할 때 주의할 점 알기'였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알기 쉽게 자세히 차례대로 길을 안내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저학년 수업일수록 더더욱 초반 5분 동기유발을 고민해야 한다는데, 오늘 수업 도입 활동으로 뭘할까 막 고민을 하다가 어떤 선생님이 '1박2일'을 얘기하기도 하고, 지도안에도 동기유발용 예시 활동이 있기도 해서 뭘 쓸까 하는데 사실 두개 다 썩 맘에 들진 않았다. 그런데 웬걸, 어젯밤, 연휴 내내 교안을 붙잡고 좀비처럼 메말라 있던 내 머리에서 번쩍 예전 현민의 '영장찢고 갈라쇼' 장소 찾아가는 동영상이 떠오른게다. 홍대 '숲의 큐브릭' 카페였는데, 다행히 아직 '찾아가는길 동영상' 이 남아있었고, 심지어 자막으로 예컨대 "~에서 ~을 끼고 우회전 하세요" 등의 길안내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그야말로 "올레~"를 외친 순간이었다. 40분 수업은 예상만큼 제대로 진행하진 못했지만, 지도 교사한테 이 동영상 사용한 것은 칭찬을 받았다. 이 뿌듯함.ㅋㅋ

 

근데 중요한 건 교생 마지막 일주일 중 이제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다는 거. 내일하고 목요일 약안 수업 한번씩 더 하고 금요일에 대표수업까지 하면 1년 3개월 살고 출소한 사람처럼 홀가분할 것만 같다.

 

'새끼를 낳는 동물의 한살이'. 과학 수업이다. 강아지가 자라는 과정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더 나아가 새끼를 낳는 동물의 한살이를 이해하는 것이 학습목표인데, 아직 '보여줄 만한' 포스있는 학습활동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안 그래도 개 무서워하는 사람이 개를 소재로 수업을 하게 되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오늘 열심히 지도안 짜서 가져갔는데 지도교사 왈, 토론수업을 넣어보면 어떻겠냐고 하신다. 토론수업이야 재미있기도 하고, 뒤에 있는 교사들한테도 보여주기 괜찮은 장면이긴 하다. 그런데 정작 이 수업내용이랑 관련있는 토론주제를 찾기가 더 힘들다는거. 옆반 교생 쌤이 동물 대량 사육하는 것을 소재로 자연 본래의 한살이 과정을 왜곡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토론을 시켜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는데, 아마 아이들은 모두 당연히 그런 동물 대량 사육을 반대하지 않을까. 그럼 토론이 되질 않을텐데... 혹시나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는 사람은..

 

 

우리개 이야기 예고편. 강아지가 귀여워서 더 짠하다. 이것도 어떻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써먹을 수 있을지 궁리중. 교생 끝나면 이 영화부터 봐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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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4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수도자는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립은 공동체와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매 순간 형성되어 간다. 

 

절대 고독이란, 

의지할 곳 없어 외로워서 흔들리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당당한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수행자가 가는 길은 

홀로 가는 길이라는 말도 있지만,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 

오묘한 도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수행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라고 했지. 

자기에게 그치라고 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로 삼지는 말라는 뜻이다. 

자기를 바로 알되

자기에게 사로잡히지는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산속으로 들어가 수도하는 것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그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수행자'中.  80-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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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법정스님의 글을 읽게 될 줄이야. 지난 목요일에 같이 교생 나간 간호대 쌤 한 분이 대뜸 이 책을 빌려주셨다. 안 그래도 요즘 책 읽을 여유가 없었는데, 그래도 빌려주신 거라 짬짬히 틈 내서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다. 요즘 하는 고민이 관계에 대한 고민들이다 보니 눈에 확 들어왔나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이 책 제목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말이 보통은 '부자되세요'처럼 천박하게 들릴 때가 많아서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문구가 담고 있는 의미도 사실 잘 와닿진 않는 것 같다. 법정스님이든 틱낫한 스님의 글이든 이 쪽 글들은 그 글 자체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의미 전달이 직설적이기에 그다지 큰 감동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삶의 의미를 깨우치고 싶을 땐 차라리 괜찮은 소설책 한 권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mb가 자기도 법정스님 글을 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느낌. 베스트셀러나 관중 1000만을 동원했다는 영화는 오히려 더 안 보게 되는 심리처럼 법정스님 글에 대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도 위에 베낀 구절은 묘하게도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와닿았다.

 

김훈태 쌤이 수감 중에 틱낫한 스님 글을 번역해서 내보내던 기억이 난다. 나도 언젠간 삘이 꽂혀서 이 쪽 글들을 독파할 때가 오게 되려나. 흠.

 

 

 

 

 

 

라디오를 듣다가 느낌이 팍 와서 바로 검색해봤는데 역시나 Phamie Gow의 음악이었다. Rackwick Bay. 이번 주도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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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2

 

부천 집에 와서 오랜만에 엄마 밥을 먹으니 므흣하다. 엄마가 보고 있던 세바퀴를 잠깐 같이 봤는데 소녀시대 멤버들이 나오고 있었다. 학교에서 이름이 '유리'인 교생 쌤이 있는데 소녀시대 '유리'랑 이름이 같다고 소개를 해서 그 이름이 머리에 남아있다가 마침 티비에 그 유리가 나왔던 것이다. 보면서 아 저 사람이 소녀시대 유리구나 생각했는데, 그보다 유리 옆에 있던 써니의 얼굴이 눈에 더 확 들어와버렸다. 아이돌에 반해본 적이 없었는데, 때마침 티비에 나오는 써니의 '주먹을 부르는 애교'를 보니 왜 이리 귀엽던지.-_-ㅋㅋㅋ 내친 김에 gee 뮤직비디오도 다시 찾아봤는데 왠걸 유튜브 조회수가 1,500만이 넘는다. 런던에서 만났던 한국 남자 유학생들이 gee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사실 그땐 이해가 잘 안 됐는데 그 심정이 오늘에서야 급 이해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도 아저씨가 된 듯한 이 씁쓸한 기분은 뭐지. 푸핫

 

 

혼자 있을 때의 편안함과 관계에서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 느끼는 충만함, 이 둘 사이의 어딘가.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칙칙하고 황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경각심. 서로 왔다갔다 하는 감정의 품을 계량화하여 비교하고 손익계산서를 따지려는 팍팍함 혹은 신중함 혹은 주눅든 상태. 기존 관계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관계에도 기꺼이 마음을 여는 것. 지금 필요한 것은 오히려 단순함이 아닐까란 생각. 장님 코끼리 만지듯 깊은 안개 속에서 혼자 헤메이는 느낌.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명료함? 홀가분함? 혹은 이해? 연결? 혹은 자기보호 혹은 자기표현. 쌍콤한 뭔가가 필요해

 

        <  거   울  > --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고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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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