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점심을 혼자서 먹었습니다. 동료들이 나와 얘기 한마디만 해도 불이익을 주는 분위기로 몰고 갔지요. 출근할 때마다 ‘지옥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구요. 그렇게 발이 무거울수가 없습니다. 따가운 눈총과 냉소, 모멸감으로 일터에서 ‘왕따’를 만들어 말려 죽이는데 징계보다 더 무섭더군요. 완전히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자살충동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결국 당뇨증세까지 생겼지요. 해고됐더라면 가정파탄나고 모든 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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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봉 화백 |
지난 2003년 대한적십자사가 부실하게 혈액관리를 하고 있다고 고발했던 대한적십자사 직원 김용환씨(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 공익제보 혹은 내부고발이라고 부르는 용기있는 행동을 했음에도 그는 2년 넘게 온갖 고통을 당해야 했다. 김씨는 “심지어 노동조합까지 나서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나를 해고하라고 촉구하고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것을 보며 느끼는 상실감”을 기억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심신이 쇠약해지던 차에 허리를 다쳐 6급 장애를 입은 김씨는 2004년 6월 10일부터 지금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휴직 중이다. 그는 “처음엔 꾀병 부리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더니 나중에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지금껏 문병은 고사하고 전화 한통 없다”고 대산적십자사에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공익제보자가 당하는 고통은 크게 인사상 불이익과 인신공격이다. 공익제보자들은 좌천, 파면같은 인사상 불이익도 큰 고통이지만 “온갖 모략과 멸시, 따돌리기”라고 말한다. “원래 인간성이 좋지 않았다, 승진 못한 불만 때문에 그런 거다,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 언론플레이한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공익제보자를 벼랑으로 내몬다. 조직 전체가 ‘왕따’에 공범이 된다는 것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성명서를 발표한 최상천 전 사료관장에 대해 사업회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인사상 불만이 원인이고 원래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공익제보로 인해 2003년 해고당했다가 법원 판결로 복직된 김태진 산업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은 “공익제보자를 도려내는 방법은 상식을 뛰어넘고 상상을 초월한다”고 증언한다. “엄청난 물적 자원이 기관장이나 단체장에게 있습니다. 공익제보자를 해고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몇 억원을 쓰데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공익제보자가 겪는 스트레스와 순간순간 닥쳐오는 후회가 너무나 견디기 힘듭니다. 조직 우두머리들은 대놓고 말은 안해도 분위기를 보이지 않는 살얼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발 자체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절도,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 걸 수 있는 건 다 겁니다.”
정신적 고통은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1998년 철도청 비리를 언론과 시민단체에 제보했던 조항민씨는 감봉과 지방전출 조치를 당한 후 2000년 7월 자살했다. 그와 함께 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가 지난해 복직한 황하일씨는 조씨가 “주위의 따돌림과 징계, 특히 가정불화로 큰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공익제보는 공직자 의무
부패방지법 제26조는 “공직자는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다른 공직자가 부패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거나 부패행위를 강요 또는 제의받은 경우에는 지체없이 이를 수사기관ㆍ감사원 또는 청렴위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난해 개정된 제32조 1항은 “누구든지 이 법에 의한 신고나 이와 관련한 진술 그 밖에 자료 제출 등을 한 이유로 어떠한 신분상 불이익이나 근무조건상의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실제 청렴위는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조직에서 벌어지는 ‘왕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1992년 군부재자투표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선거를 고발했다 구속된 적이 있는 이지문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당시 육군 중위)은 “법이 아무리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더라도 사회가 이들을 보듬어주지 않으면 공익제보 활성화는 먼나라 얘기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시민단체나 노조를 대리인 형식으로 해서 공익제보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공익제보가 사회를 지킨다
지난 2000년 7월 주한미군이 포름알데히드를 기지에 있는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몰래 흘려보낸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준 적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현직 주한미군 군무원이 시민단체에 제보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공익제보가 사회를 지킨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공익제보자들은 “공익제보자 한 명만 있었어도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또 말한다. “공익제보자들이 조직적으로 왕따당하고 징계를 당해도 누구하나 관심갖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공익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겠느냐”고. 적어도 법적으로는 ‘의무’인 공익제보. 이제 사회가 답할 때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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